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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시민연합 등 83개 시민단체가 참여한 '친일·독재 찬양 방송 저지 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 6월 9일 KBS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독재자 이승만·친일파 백선엽 찬양방송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83개 시민단체가 참여한 '친일·독재 찬양 방송 저지 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 6월 9일 KBS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독재자 이승만·친일파 백선엽 찬양방송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 민언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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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회(회장 박유철)가 단단히 화가 난 모양입니다. 발단은 KBS 때문입니다. KBS는 지난 6월 24~25일 이틀에 걸쳐 '백선엽 특집방송' 내보내면서 그의 친일행적은 제대로 다루지 않은 채 '전쟁영웅'으로만 묘사해 물의를 빚었습니다.

KBS는 24일 방영된 제1편에서 "백선엽이 평양에서 자랐고 이후 만주군관학교 입학해 일본군 장교를 지냈으며, 이 전력으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됐다"고 언급한 게 전부였습니다. 친일전력의 핵심이랄 수 있는 간도특설대 근무 경력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으며, 이어 곧바로 "민족주의자 조만식 선생의 비서로 활동했다"고 얼버무렸습니다.

방송이 나간 후 4.19기념단체를 비롯해 시민단체 등 각계에서 KBS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이어졌으며, 최근 KBS의 수신료 인상 문제와 맞물려 국민적 관심을 끌었습니다. 아울러 이 사안은 현재 '휴화산'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KBS가 올 8.15광복절을 전후해 '이승만 특집' 5부작을 준비 중이기 때문입니다. 

광복회의 '훈장 반납' 투쟁, 진짜입니까?

KBS의 '이승만 특집' 강행에 맞선 세력 가운데는 광복회도 포함돼 있습니다. 광복회는 '백선엽 특집방송'이 나가기 하루 전인 지난 6월 23일 KBS에 공문을 보내 "백선엽은 항일세력을 무력 탄압한 조선인 특수부대 '간도특설대'의 장교로서 일제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친일파"라며 "백선엽 찬양방송은 물론, 오는 8월15일 광복절에 내보내겠다는 이승만 찬양 다큐 제작도 당장 중단하라"고 촉구했습니다.

그러나 KBS는 광복회를 비웃기라도 하듯 애초 계획대로 이틀에 걸쳐 '백선엽 특집방송'을 내보냈습니다. 뿐만 아니라 KBS는 광복회에 보낸 답변서에서 "백선엽 다큐는 광복회 정신과도 그 뜻을 같이 한다"고 궤변을 늘어놓았습니다. 이 답변을 받은 광복회는 격분하였고, 급기야 "향후 극한 투쟁도 불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지난 15일 광복회는 KBS가 올해 광복절 '이승만 특집방송'에서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으로 묘사하면 정부에게 받은 훈장을 반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광복회 나름으로는 '중대결단'을 한 셈입니다. 그러나 이번 입장 표명은 앞서 "이승만 찬양방송 중단"을 요구하던 데서 한 걸음 물러선 것인데다 '훈장 반납'이 가져올 파괴력이 과연 얼마나 클지도 의문입니다.

광복회를 떠올리면 저는 왠지 대한불교 조계종이 같이 연상됩니다. 왜일까요?

이명박 정부 들어 종교편향 문제가 자주 거론됐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과거 서울시장 시절 '서울시 봉헌'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고, 얼마 전에는 강남의 한 교회 신자들이 봉은사에 난입해 불교를 모독하는 행위를 한 적도 있습니다. 참으로 몰상식한 짓이지요. 심지어 국회나 관계 당국 역시 불교를 괄시하는 경향을 더러 보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피해 당사자랄 수 있는 조계종이 보인 태도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서울 조계사에 한나라당 의원들의 출입을 금지하는 현수막을 내거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한동안 이명박 정부에 대립각을 세우는가 싶더니 그건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불과 얼마 뒤 절 입구에 붙였던 현수막을 내리더니 총무원장은 대통령을 만나 '언제 싸웠느냐'는 식으로 화기애애하더군요.

이명박 정부의 종교 편향에 항의해 서울 조계사 일주문에 한나라당 국회의원의 조계사 출입을 금지한다는 현수막을 내건 모습.(2011. 3. 6)
▲ "한나라당 국회원들 조계사 출입금지" 이명박 정부의 종교 편향에 항의해 서울 조계사 일주문에 한나라당 국회의원의 조계사 출입을 금지한다는 현수막을 내건 모습.(2011. 3. 6)
ⓒ 정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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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몇 년 전에는 <조선일보>의 불교계 편파보도에 항의해 전국 조계종 소속 사찰에 '조선일보 구독거부' 현수막을 내건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불과 얼마 뒤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이 조계종 총무원을 사과차 방문하자 곧바로 현수막을 내리더군요. 대개 이런 식이니 현 정부나 일반 시민이 불교계를 어떻게 보겠습니까? 아마 '배알도 없는 집단'이라고 하지 않을까요?     

광복회도 불교계와 행태가 비슷합니다. 명색이 독립운동가 집단이라고 하면서도 '결기'라고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오래 전 일은 차치하고 이명박 정부 들어서 발생한 일 한두 가지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첫해인 2008년 12월, 문화체육관광부는 <건국 60년-위대한 국민, 새로운 꿈>이라는 책자를 제작해 일선 학교와 도서관 등에 배포했습니다. 이 책자는 뉴라이트의 입장에 기반한 이명박 정부의 역사관을 담은 것으로, 임시정부의 법통성을 무시하는 내용이 골자였습니다. 이에 광복회는 문광부에 책자 회수 및 폐기를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문광부는 '문제없다'며 이를 거부하였습니다. 역사적 당위 여부를 떠나 광복회가 판정패한 셈입니다.

'관변단체' 전락한 광복회, 자업자득입니다

이에 광복회는 이사진과 전국 시·도지부장이 참석한 연석회의에서 정부를 강력히 비난하고는 회원들이 정부에게 받은 건국훈장을 전부 반납하기로 결의했습니다. 광복회의 존재 이유이자 근거랄 수 있는 '임시정부 법통'을 짓밟았으니 광복회로서는 그런 극약처방을 쓴 것이 이해가 갑니다. 광복회의 강공에 놀랐던지 문광부는 즉각 사태 수습에 나섰습니다. 당시 유인촌 문광부 장관은 당일로 광복회를 방문해 최근의 사태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그러면 그 후 광복회의 '훈장 반납' 건은 어찌 됐을까요? 그로부터 3년이 지났지만 그 일로 광복회원들이 훈장을 반납했다는 보도를 여태 보지 못했습니다. 한마디로 '훈장 반납'은 말뿐, 그 후에 흐지부지되고 말았다는 얘기지요. 그동안 제가 지켜봐 온 걸로는 광복회는 대개 이런 식이었습니다. 그래서 광복회가 이름값을 제대로 못 한다는 따가운 지적도 여러 차례 받아왔죠. 심지어 광복회장이 보훈처 담당 사무관보다 못하다는 비아냥도 없지 않습니다.

광복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점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조직의 비민주성과 관변단체 성격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광복회는 수장인 회장을 간선제로 선출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몇몇 인사들이 회장 선출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지적이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습니다. 그러나 광복회는 여태 이를 개선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관변단체로 전락한 나머지 각종 사회 현안에 대해 원로단체로서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그것입니다.

미국산 수입 쇠고기 광우병 논란과 관련해 2008년 5월 23일자 일간지에 실린 광복회 명의의 '성명서'
 미국산 수입 쇠고기 광우병 논란과 관련해 2008년 5월 23일자 일간지에 실린 광복회 명의의 '성명서'
ⓒ 광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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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수입 쇠고기의 안전성 문제를 놓고 이른바 '촛불집회'가 잇따라 열릴 정도로 국민적 관심이 고조됐던 2008년 5월 23일, 몇몇 일간지에 광복회 명의의 성명서가 하나 실렸습니다. '정부와 정치인 및 국민에게 드리는 성명서'라는 제목의 성명서에서 광복회는 마치 어른이 아이들 나무라듯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을 훈계하였습니다.

광복회는 "한창 공부에 열중해야 할 어린 학생들이 국론을 분열시키는 촛불시위에 동원되는 것을 목도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어 성명서를 발표한다"며 "국론을 분열시키고 선동·획책하는 세력은 누구를 막론하고 용서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안전성 문제를 놓고 다양한 의견이 나왔고, 또 한창 논란 중이었는데도 광복회는 당시 농림부나 청와대, 혹은 공안당국이 폈음 직한 주장을 들고 나온 것입니다.      

엄격히 말해 광우병 쇠고기 파동 건은 굳이 광복회가 나설 사안도, 또 관련성이 깊은 사안도 아닙니다. 광복회가 앞장서야 할 사안은 친일청산 등 역사청산 문제나 대일(對日)관계, 올바른 역사관 정립 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간 광복회는 이런 사안에 대해서는 오히려 미온적이거나 아니면 침묵으로 일관해 왔습니다. 지금처럼 낮은 위상과 미약한 존재감은 바로 광복회의 이같은 태도에서 기인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자업자득'인 셈이지요.

이번에도 '쇼'할 거면 '광복회' 간판 내리십시오

광복회는 생존 애국지사나 선열의 후손들로 구성된 대표적인 원로단체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나라가 민족정기가 바로 선, 제대로 된 나라라면 새 대통령이 취임 후 국립현충원 참배 다음으로 광복회장을 예방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안타까울 지경입니다. 광복회의 위상은 떨어질 대로 떨어졌고, 광복회장은 3.1절이나 광복절 행사 때 '행사요원' 정도로 구색이 돼버린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1차적인 책임은 바로 광복회에 있습니다.

박유철 신임 광복회장
 박유철 신임 광복회장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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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라도 광복회는 이름에 걸맞은 위상을 되찾아야 합니다. 선열들의 위업에 걸맞은 명성과 품위를 갖춰야 합니다. 그리고 사회적 역할도 다해야 합니다. 민족·애국단체로서, 원로단체로서 우리 사회의 각종 현안에 대해 때론 위엄과 연륜이 묻어나는 고견을 기탄없이 내놓아야만 합니다. 그것만이 광복회가 "연금 수혜자들의 친목단체"라는 비아냥에서 진정한 존재감을 되찾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박유철 신임 광복회장님께 고언 겸 제안을 하나 드립니다. 재임 동안에 위엄 있고 존경받는 광복회를 부디 만들어 주십시오. 그리고 그 첫걸음으로 이번 KBS와의 투쟁에 광복회의 '전부'를 거십시오. 광복회의 '훈장 반납' 결의가 또 말뿐일지 국민 여러분과 함께 지켜보겠습니다. 만약 이번에도 대충 '쇼'만 하고 말 것이라면 차라리 광복회 간판을 내리십시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개인 블로그 <보림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광복회, #훈장 반납, #KBS 이승만 찬양특집, #박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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