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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겠단 사람들이 이렇게 야매로 하면 안 되지!"

"말씀 너무 심하게 하시네, 흥분하시지 말고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지금은 시간이 촉박하니까 부족한 게 있으면 내일 와서 빠짐없이 추가하겠다니까요."

 

6월의 마지막 촛불이 타오르던 29일. 7월 집회신고를 위해 나는 별다른 거리낌 없이 집회신고서를 들고 경찰서로 향했다. 등록금넷 대학생 간사이자 신고 대리인으로서 신고서만 전해주면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전은 그게 아니었다.

 

지루한 승강이가 이어졌다. 우리 쪽 준비가 일부 부족하긴 했다. 집회신고서에 미처 채워 넣지 못한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내 말대로 다음날 와서 수정해도 안 될 것은 없었다. 집회 신고 후 48시간 내에 추가하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간은 벌써 오후 4시를 넘기고 있었다. 곧 경찰서 업무를 마감할 시간이었기에 나는 조금씩 초초해졌다.

 

"화만 내지 마시고, 생각을 좀 해보세요. 마감시간 내에 이걸 어떻게 바꿔 와요. 이거 내일 추가해도 되는 거잖아요!"

"다시 해오든지, 아니면 내일부터 집회하지 말든지 알아서 해!"

 

나도 소리를 높여가며 따지기 시작했지만, 상대는 요지부동이었다. A경사는 새 신고양식을 가져오더니 내 앞에 집어던졌다. 나도 더 이상 지체하면 정말로 마감시간 내에 집회신고를 할 수 없었기에 설득은 포기하고 새 신고양식 작성을 위해 재빨리 경찰서를 나왔다. 신입인 나를 군기잡기 위해 일부러 저렇게 깐깐하게 구는 것이 확실해 보였지만, 경찰서에 처음 그것도 혈혈단신 들어간 생초보인 나로서는 더 이상 비빌 언덕이 없었다.

 

내가 일처리를 서투르게 해서 7월에 집회가 열리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오후 내내 안절부절못했다. 이 종이 한 장에 걸린 7월의 등록금 촛불집회는 꽤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방학기간 동안 등록금 문제에 대한 최소한의 이슈파이팅도 진행되지 않는다면, 새 학기가 되더라도 반값등록금 여론이 다시 살아나기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걸음을 재촉했다. 경찰서에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광화문까지는 평소엔 얼마 걸리지 않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지방에서 올라온 농민들과 대학생들이 합세해 대규모 집회를 진행하고 있는지라 부근 도로가 통제되고 있어 버스는 모두 우회로로 향하고 있었다. 택시를 어렵사리 잡아탔지만, 비까지 내리는 도로에서 역시 예상대로 지척에 있는 목적지가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차에서 내리니 시계는 네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집회신고서를 작성한 담당자를 만나기 위해 차에서 내려 부리나케 내달렸다. 광화문 광장 앞에 놓인 여러 대의 경찰 차벽이 오늘 집회의 규모를 가늠하게 해주었다. 수많은 인파 사이에서 겨우 담당자를 만나 수정했다. 마지막으로 팀장님의 확인을 받고서도 신고서를 다시 살펴보았다. 6·29 민중대회 참가자들의 거리행진으로 날카로워진 경찰이 또 다른 트집을 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두 번 세 번을 살펴보고 나서야 걸음을 옮겼다.

 

집회신고서 돌려보내던 A경사 "반값등록금 나도 공감해요"

 

다시 정보과 문 앞 인터폰을 눌렀다. 이번엔 나도 쉽사리 물러나지 않을 기세였다.

 

"들어와요. 커피 한 잔 하게."

 

좀 전의 울그락 불그락 하던 얼굴은 사라지고, A경사는 따뜻한 삼촌미소를 머금고 나에게 말했다. 나는 어리둥절했지만,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A경사는 나에게 커피를 내주고는 의자에 털썩 앉으며 아무일 없었다는 듯 집회신고서를 훑어봤다. A경사가 신고서를 보고 있는 순간에도 무전기에서는 집회 참가자들의 행진경로를 알리는 다급한 무전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살고자 하는 서민들의 외침이 다른 이에겐 고단함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잘못은 다른 곳에서 하고 있는데, 왜 애꿎은 경찰과 시민이 적으로 만나 반목해야 하는 것인지 화가 나기도 했다.

 

"반값등록금 그거 나도 공감하긴 해요, 요즘 대학생 자식 둔 선배들 돈 들어가는 것 보면 나도 정말 아찔하다니까."

"그러니까 저희가 A경사님 자제분들 대학 들어갈 땐, 꼭 반값등록금으로 만들어 드릴게요. 저희 좀 많이 도와주세요."

 

A경사는 허허 웃었다. 우리와 각을 세우던 경찰도 학생의 학부모이기에 등록금 부담에 대한 고민은 떨칠 수 없는 것이었다. 내가 길에서 매일 1인시위를 진행하며 만나본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경찰도 반값등록금에 대해서 만큼은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그만큼 등록금 문제가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시급한 과제라는 뜻이 아닐까. 아까는 그토록 야속하던 A경사가 건넨 의외의 한마디에 오늘의 수고가 조금 위로받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경찰서를 나오자마자 긴장이 풀렸는지 진이 쭉 빠졌다. 그도 그럴 것이 경찰서는 가면 큰일 나는 줄 알았던 내가 베테랑 형사를 상대하며 반나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눈은 동그랗게 뜨고 당당한 척 했지만, 속으론 내가 마시는 커피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분간할 수 없었다. 아마 그도 내가 돌아간 뒤 적잖이 웃었을 것이다.

 

요즘,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입버릇처럼 "반값등록금 꼭 실현시키겠습니다"라고 약속한다. 경찰서에서 나는 다시 한번 그 약속을 한 것이다. 정보과 A경사에게 한 말이 거짓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반값등록금 문제와 끈질기게 씨름하며 A경사의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갔을 때에는 꼭 반값이 되어 그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비싼 등록금에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인 그를 위해서도, 그가 사랑하는 그의 아이들을 위해서도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형섭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 기자단 '오마이프리덤'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반값등록금, #등록금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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