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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루액을 맞아 고통스러워하는 여학생에게 사람들이 전경들로부터 그를 보호하며 물을 뿌려주고 있다.
 최루액을 맞아 고통스러워하는 여학생에게 사람들이 전경들로부터 그를 보호하며 물을 뿌려주고 있다.
ⓒ 문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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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스 라인의 상황은 심각했다. 폴리스 라인 위에서는 채증을 위해 쉴 새 없이 사람들의 얼굴을 찍고 있었고, 양쪽 옆에서는 전경들이 조그만 물총에 담긴 최루액을 뿌려대고 있었다. 최루액이 뿌려질 때마다 사람들은 눈을 감고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했고, 우리들은 뒤에서 건네진 물을 받아 뻘겋게 달아오른 그들의 얼굴에 뿌려줬다.

바로 옆에는 심상정, 권영길 등 전·현직 의원들이 있었고, 그 뒤에는 <오마이TV>가 모든 것들을 생중계하고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대놓고 시민들의 얼굴에 최루액을 뿌릴 수 있는지 나에게는 아주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무서웠고 도망치고 싶었다.

평창올림픽에서 조남호 한진중 회장이 떠오르다

부산은 처음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일본으로 수학여행을 갈 때 부산역에서 배를 타기 위해 잠시 들렀던 것을 빼놓고는. 게다가 <오마이뉴스> 인턴기자로 참여하는 첫 취재여서 내 마음은 긴장과 설렘으로 가득했다. 물론 집회라고는 대학교 새내기이던 2008년 촛불집회와 지난 6월 노동자대회에 참여해본 것이 다지만, 두려움보다는 기대감이 더 컸다.

낮 12시 쯤 시청역 근처 재능교육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이미 희망버스에 오르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학교 동아리 친구들을 만나 지하상가에 가서 밥을 먹었다.

우리 동아리는 학교 청소노동자 아줌마 아저씨들에게 한글과 컴퓨터를 가르쳐드리며 연대하는 동아리다. 자연히 노동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친구들이 많다. 친구들은 "이번에 APEC 이후 최대병력이 동원됐다고 들었다"는 등 밤새 일어날 충돌을 걱정하면서도 즐거운 모습이었다. 그때 식당 텔레비전에서 전전날 발표된 평창 동계올림픽 관련 뉴스가 방송됐다.

"평창 띄우는 거 짜증나 죽겠어."
"나 어제 택시 기사 아저씨랑 같이 평창 욕하면서 갔잖아."
"경제학과 친구들도 평창 65조 이익 내는 건 말도 안 된다고 하던데."

텔레비전에 비춰지는 조양호 유치위원장의 미소 가득한 얼굴이 그의 동생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과 겹쳐지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시간에 쫓겨 밥을 채 다 먹지 못하고 친구들과 함께 희망버스 6호 차에 올랐다. 우리 버스는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에서 마련한 버스로, 동아리 선배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는 서부지역 비정규 노동센터 준비모임 회원들과 그 외 여러 개인 참가자들이 45인승 버스를 꽉 메웠다.

우리 버스에는 기획단 깔깔깔이 타지 않아서 동아리 선배가 사회를 맡았다. 부산역의 상황을 간략하게 전해 듣고 문화제에서 함께 부를 '연대송'을 연습했다. 이어 한 명씩 돌아가며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분위기는 무겁지 않으면서도 진지했다.

사회를 본 김희연씨는 "1차 희망버스 때에도 버스 안에서 다른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번에도 버스 안에서부터 희망이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어떤 분은 김진숙 지도의원이 '낙타'를 닮았다며 "185일, 낙타는 오늘도 사막을 걸어간다"라는 시를 낭독해 버스 안이 한바탕 웃음바다가 됐다.

노우정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정리해고에 반대해 노조활동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국민취급을 못 받는 세상이 안타깝다"며 "이 문제를 여론화해준 희망버스가 고맙고 끝까지 싸워 승리하겠다"고 말했다.

노래를 불러 환호를 받은 잠실여고 교사 이바다씨는 "돈이 없어도 대학 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며 "재밌게 지내다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앞서 발언한 어떤 분의 멘트를 빌려 "나도 희망을 받으러 간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버스기사 아저씨의 배려인지 우리는 부산까지 가는 동안 휴게소를 세 번이나 들렀고, 그때마다 이것저것 먹으면서 마치 소풍가는 기분이 든다고 친구와 수다를 떨었다. 가는 길 내내 비가 쏟아져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마음만은 상쾌했다.

"진숙이가 옥탑방인가 크레인인가 위에 있다매?"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186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10일 오전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지인들에게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186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10일 오전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지인들에게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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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들뜬 기분을 안고 부산역 주변으로 들어서자, 제일 먼저 우리를 반긴 건 길에 줄줄이 걸려 있는 한진중공업 지지 플래카드들과 수많은 전경버스들이었다. 저런 플래카드들을 보면서 부산 시민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해졌다.

부산역은 이미 주최 측에서 준비한 콘서트 열기로 뜨거웠다. 나는 같이 버스를 타고 온 일행들과 헤어져 <오마이TV> 중계차 쪽으로 와 선배들을 만났다. 돌아다니며 참가자들을 인터뷰를 하라는 지시를 받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느낀 점은 "다들 신났다"는 것이었다.

제주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올라온 양지호(43)씨, 부산지역 여행을 다니다가 희망버스 일정에 맞춰 들린 안상평(38)씨, 권향미(35)씨, 안지형(3)양 가족, 콘서트를 보며 즐거워하던 황무경(23), 박한나(21), 이지연(21)씨, 휠체어를 타고 참가한 노들야학의 김미정(40)씨 등등….

이 많은 사람들 중에는 본인이 해고를 당해 이번 사건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 참여한 경우도 있었고, 한진중공업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인터넷으로 지켜보다가 참여한 경우도 있었고, 그저 부산에 살기에 친구를 따라 참여한 경우도 있었다. 다만 비단 한진중공업 문제 뿐 아니라 지금 우리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조리들이 이 사람들을 이곳에 끌어들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콘서트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부산역에서는 무장전경들이 셀 수 없이 쏟아져 나왔다. 다가올 밤이 걱정됐다. 콘서트가 끝나고 참가자들은 영도조선소를 향해 행진하기 시작했다. 함께 취재하고 있는 선배에게 '부산 시민들의 반응을 찬성·반대 다양하게 따내라'는 지시를 받았다.

쏟아지는 빗속 행진을 부산 주민들은 거리에서, 빌딩 위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한 아주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조선소? 진숙인가 가가 옥탑방에 크레인 위에 있다매? 시끄러워가지고 나와봤는데, 이 사람들이 다 전국에서 온기라 안카나? 대단하구마."

"집에 있다가 함성 소리가 커서 나와 봤다"는 이홍신(28)씨는 "찾아보니까 한진중공업 때문이라 하던데 잘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나가는 청소년들은 행진을 보며 의아해 하면서도 흥분된 모습이었다.

"부산 영도가 지금 실시간 검색어 1위 된 거 아니가?"
"저게 뭐하는 건데?"
"부산역 광장에서 영도 사거리까지 전국의 비정규직들이 다 모였다카네"

반대 의견을 찾아야 하는데 다들 말을 걸어 보면 특별히 반대를 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행진 때문에 횡단보도를 건너지 못해 찌푸린 얼굴로 기다리고 있던 이윤경(27)씨도 "프랑스에서만 하는 줄 알았던 이런 대규모 시위가 부산에서 열려서 소름이 돋고 희열을 느낀다"고 말했다.

얼른 찬성·반대 인터뷰를 해서 그 내용을 편집국으로 넘겨야 하는 나로서는 애가 탔지만, 한편으로는 부산 시민들이 이번 집회에 부정적이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는 길에 행진을 지켜보고 있던 외국인들도 만났다. 대체 무슨 일이냐며 설명해 달라는 그들에게 기업에서 노동자들을 해고해 한 여성노동자가 크레인에서 여섯 달째 농성을 하고 있어 그 사람을 방문 지지하러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였다고 설명하니 "Outstanding!(멋지다!)"이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러시아에서는 이런 광경은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왠지 모르게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는 길에 한 고깃집 사장님이 커피를 종이컵에 담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화장실 좀 써도 되냐고 묻자 흔쾌히 "쓰세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사장님은 인터뷰 좀 해도 되냐고 묻자 "에이, 무슨 인터뷰. 비 오는데 고생하니까"라며 인터뷰를 거절하셨다.

최루액을 맞아 다들 파랗고 빨개진 사람들


10일 오전 2시 40분경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186일째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을 만나러가는 '희망 버스' 참가자들을 향해 경찰이 최루액과 색소를 섞은 물대포(살수차)를 발사하며 해산작전에 나서고 있다.
 10일 오전 2시 40분경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186일째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을 만나러가는 '희망 버스' 참가자들을 향해 경찰이 최루액과 색소를 섞은 물대포(살수차)를 발사하며 해산작전에 나서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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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한 전경 수백 명과 버스들로 가로막혀 더 이상 아무런 진전이 없는 가운데, 영도조선소로 통하는 대교초등학교 쪽 다른 길로 함께 취재를 하던 유진 언니(강유진 인턴기자)와 가 봤다. 그 쪽에는 희망버스 참가자는 한 명도 없고 영도 시민들만 있었음에도 무장전경들이 통행을 가로막고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이 막혀버린 시민들과 경찰들이 실랑이를 벌이는 가운데 한 할머니가 "사거리에 다른 길이 있다"고 귀띔해줬다.

스마트폰 지도로 찾아보니 오르막길을 올라 영도조선소 반대편에서 내려오는 대장정이었다. 유진 언니와 나는 희망버스 참가자임을 단번에 드러내는 비옷을 벗고 할머니가 알려주신 길을 따라 가기 시작했다. 가정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길을 쭉 올라가는데 그 곳마저 골목골목 무장전경들과 전경버스들이 배치돼 있었다.

심지어 영도주민들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옷속에 무전기를 숨겨 놓은 사복경찰들이었다. 다행히 집 앞에 나온 듯한 복장으로 걸어다니는 두 여학생들은 의심스럽게 쳐다보기는 해도 참가자라는 생각은 안했는지 가로막지 않았다.

꼭대기까지 올라가 영도조선소 쪽을 바라보니 영도조선소를 중심으로 전경버스가 말 그대로 '산성'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신도브랜드뉴 아파트까지 시민들은 한 명도 없이 전부 전경들로 가득 차 있었다. 특히 영도조선소 정문 앞과 신도브랜드뉴 아파트 105동 사이는 전경들이 개미떼처럼 몰려 있었다. 유진 언니와 나는 어차피 다시 내려가도 전경들에게 의심을 받을 것이니 영도조선소 정문 앞 쪽으로 내려가 보기로 했다.

영도조선소 정문 앞 또다시 무장전경들에 의해 통행이 가로막혀 있었다. 심지어 집에 간다는 할머니 세 분도 겨우 들어갈 정도였다. 지나다니는 모든 시민들에게 신분증을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 우리도 "슈퍼에 간다"고 하자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고, 없다고 하자 옆에서 다른 전경이 "학생인데 그냥 보내주지, 뭘"이라고 해 겨우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영도조선소 정문 앞은 의외로 평화로웠다. 전경들은 길바닥에 누워 잠들어 있었고, 신도브랜드뉴 1층 상가 편의점은 간식을 사먹으러 온 전경들로 붐볐다. "영도조선소 정문 앞을 찍어오라"는 편집국의 지시에 나는 문자를 하는 척 하며 몰래 사진까지 찍었지만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졸음에 눈이 거의 감겨 보초를 서고 있는 한 전경에게 "언제까지 여기 있냐"고 묻자 "모른다. 1박 2일로 철야 나왔다"고 답했다. "이거 왜 하는 거냐"라고 물었더니 "모른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거다"라고 귀찮은 듯이 말했다. 내 친구들 대부분은 지금 군대에 가 있다. 이렇게 많이 올 필요도 없었는데, 왜 이렇게 많이 보내서 고생을 시키는지.

3시 반쯤 대치현장으로 돌아오자 현장은 아수라장이 돼 있고 매캐한 냄새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물었더니 방금 물대포를 엄청 뿌렸다고 한다. 둘러보니 사람들이 온통 푸른빛으로 살이 물들어 있다. 사방에 흥건한 최루액 섞인 물 때문에 계속 기침이 나고 살이 따가웠다. 전경들은 <오마이TV> 중계차가 있던 뒤쪽까지 내려와 있었다.

친구들 역시 최루액을 맞아 다들 파랗고 빨갰다. "왼쪽에 있을 때 여자들만 한 명씩 잡아 빼가 연행해가기에 오른쪽으로 갔는데 거기서 최루액을 맞아 우유를 사다 뿌렸는데 아직도 따갑다"고 말했다. 봉래사거리 근처 해동병원은 최루액을 씻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붐볐다. 마치 희망버스 참가자들의 '베이스 캠프'가 돼 버린 듯 했지만 병원 관계자들은 "우비는 벗고 들어오라"고 말할 뿐 사람들을 내쫓지 않았다.

해동병원 화장실을 이용하기 줄을 서 있는 희망버스 참가자들.
 해동병원 화장실을 이용하기 줄을 서 있는 희망버스 참가자들.
ⓒ 문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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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있어 내가 웃을 수 있었다

결국 그렇게 동이 텄다. 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폴리스라인 앞에서 구호를 외칠 뿐 더 이상의 움직임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들 지친 상태였다. 아이들은 엄마 품에 안겨, 서로의 등에 기대 그렇게 쉬고 있었다.

엄마 품에 안겨 잠든 어린이 희망버스 참가자.
 엄마 품에 안겨 잠든 어린이 희망버스 참가자.
ⓒ 문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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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사복경찰을 피해 돌아다니던 골목길들을 낮에 가 다시 보니 아주 달랐다. 이렇게 사람 냄새 나는 평범한 주택가일 뿐인데, 그렇게 무서웠다니.

풍물패의 공연이 시작되자 다시 봉래사거리는 활기를 되찾았다.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가족들에게 보낼 엽서를 쓸 때에는 숙연함이 감돌았다. 눈시울이 붉어진 사람들도 많았다.

오후 3시, 꼬박 하루 만에 다시 본 희망버스 6호차의 얼굴들이 왜 이리 반갑던지. 다들 전날 밤의 비와 최루액, 그리고 당일 낮부터 내리쬔 햇빛으로 몸은 만신창이었지만 얼굴만은 환했다. 다른 참가자들에게 전날 못했던 인터뷰를 마무리하자 한 선배가 "그래도 너, 즐겁게 취재하는 것 같네"라고 말을 건넸다.

그래, 난생 처음 온 부산 그것도 영도에서 나는 무섭고 충격적인 모습들을 목격했다. 최루액을 맞아 비명을 지르며 눈을 뜨지 못하는 내 또래 여학생들, 아무도 없는 골목길에서 저 멀리에서부터 걸어오는 나를 째려보던 사복경찰, 영도조선소 앞의 전경버스 '산성'과 수많은 무장전경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즐겁게 취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곳에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녀들에게 행진의 취지를 설명해주던 부모님들, 길거리에서 선잠을 자고 일어나서도 또박또박 엽서를 쓰던 아이들, "많이 못 가져와서 미안하다"면서도 먹을거리를 가져와 나눠주던 영도 주민들….

그들이 있어 내가 웃을 수 있었던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문해인 기자는 <오마이뉴스> 14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태그:#희망버스, #한진중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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