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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슨 사막이 끝나는 지점에서 솟아나오는 온천은 그간의 피로을 싹 잊게 해준다.
▲ 사막의 온천 달하우지 스프링스 심슨 사막이 끝나는 지점에서 솟아나오는 온천은 그간의 피로을 싹 잊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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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서의 온천욕, '달하우지스프링스(Dalhausie Springs)'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을 가려고 헤드랜턴을 켜는 순간, 느닷없는 늑대 떼의 울음소리가 등골을 훑는다. 높은 음으로 길게 빼어 낮은 음역대의 여운을 강하게 남기는 음울한 공명. 분명 늑대의 울음이지만 호주엔 늑대가 없으니 딩고가 내는 소리일 것이다.

캠핑그라운드로부터 불과 몇 십 미터도 안 될 어둠 속에서 돌림노래처럼 퍼지고 있는 저 음산한 소리. 열대여섯 마리는 족히 넘을 것 같은 소리가 주변을 에워쌌다. 여차하면 숨어들기 위해 차문을 따놨다. 다른 사람들도 이 소리를 듣고 있는 걸까?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저들이 뛰쳐나와 줄까?

이렇게 밝아오기 전 접한 딩고떼의 울음소리는 내 주변에 타인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 달하우지 스프링스 캠핑그라운드의 아침 이렇게 밝아오기 전 접한 딩고떼의 울음소리는 내 주변에 타인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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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저 아일랜드에서 딩고들을 접하고, 사막에서 줄곧 딩고들의 발자국을 보았지만 이렇게 떼로 몰려 있는 기운을 느낀 적은 없었다. 다시 한번 그들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한다. 그들은 '개'인가? 그저 야생 개인가? 아니면 개의 형상을 한 늑대인가?

해변에서 그냥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보았을 땐 그저 한 마리 개였다. 먹이를 찾아 헤매는. 그러나 먹이를 물며 으르렁거리는 그의 이빨을 보았을 땐 분명 맹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오늘 늑대 울음으로 우는 그들의 합창을 들으며 '개의 외모를 빌린 늑대'라 정의했다. 결국, 화장실은 포기했다.

아침이 되니 저쪽에서 수런수런한다.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딩고 발자국을 보여주며 밤사이 텐트 옆까지 왔었음을 설명한다. 나도 울음소릴 들었다며 말을 붙이니 장거리 캠핑여행에 맞게 짐칸을 개조한 자신의 픽업트럭을 구경시켜준다.

골드코스트 근처에서 왔다는 이 분은 71세. 11년 전에 퇴직하고 여름이면 이렇게 떠도는 여행을 해왔단다. 57세 정도로 생각했다는 내 말에 즐거운 표정이다. 할머니도 깔깔깔 웃는다. 빈 말이 아니라 이렇게 캠핑을 하며 손수 개조한 사륜 픽업으로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젊을 거란 선입견을 가졌던 것 같다. 호주 아웃백에서 노인들과 마주칠 때마다 '나이란 어쩌면 숫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굳어지고 있다.

71세지만 은퇴자로서의 여유를 즐길 줄 아는 분이다. 아웃백을 여행하다보면 사륜구동이나 캠핑카로 장기간 움직이는 노인을 많이 보게 되는데 어쩌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 가족과 함께 캠핑 여행을 즐기는 노인 71세지만 은퇴자로서의 여유를 즐길 줄 아는 분이다. 아웃백을 여행하다보면 사륜구동이나 캠핑카로 장기간 움직이는 노인을 많이 보게 되는데 어쩌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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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에 몸담고 있다는 푸짐한 몸매의 호주 아줌마가 큰 수건으로 수영복 차림의 몸을 가리고 놀러왔다. 정말이지 수다스러운 인물이어서 아내에게 전담시키고 내 볼일을 보려는데 문득 스치는 생각, 그래 여긴 온천이지. 그래서 이 여인의 의상이 그러했구나. 물안개라고 생각했던 아침의 부연 것은 온천이 내뿜는 김이었던 게야. 사막에서 만나는 온천이라니…. 알고 찾아왔지만 새삼 가슴이 설렌다.

당장 반바지를 챙겨 입고 우르르 몰려갔다. 이건 강이라기엔 좀 작고 내라고 하기엔 좀 큰 애매한 규모인데 깊이가 꼭 어른 목만큼이다. 호주 사람들에게 그러하니 내겐 까치발이, 아내에겐 튜브가 필요하다.

나무에 둘러싸인 천혜의 수영장에서 어린아이처럼 잠수도 하며 한참을 퐁당거렸다. 그러다 38도의 수온이 주는 나른함에 몸을 맡기니 금세 온천 본연의 안정과 회복의 기운이 퍼진다. 닥터피시들이 기분 좋게 몸을 뜯었다. 퀸즐랜드와 노던테리토리에서 발원한 물이 지하암반을 통해 예까지 흘러와 내 몸을 데우고 있다니…. 평화롭다. 모든 것들이. 닥터피시를 노리는 물오리의 날랜 자맥질마저도.

옆의 사내들이 잔잔한 수면을 헤치고 다가와 묻는다.

"심슨 사막을 건넜나?"
"건넜지!."
"빅 레드도 넘었나?"
"넘었지!"
"빅 레드 넘기는 어렵지 않았나?"
"괜찮아. 넘을 만해."

그제야 두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이들은 달하우지 스프링스에서 진입해 버즈빌로 가려나 보다. 그들 앞에서 과정을 넘긴 자의 여유를 부려봤다. 연료를 보급할 수 있는 마운트 데어에 도착하기 전까진 진정 사막을 벗어났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닷새 만에 물에 잠기는 감회는 여정을 모두 끝낸 자의 그것이다.

이때 물오리 옆으로 원앙을 방불케 할 닭살 백인 커플이 유영(遊泳)하며 지나간다. 어젯밤엔 토라져 있는 여인을 한참이나 남자가 달래던데(스토커라서가 아니라 바로 옆에 텐트를 쳤으니 안 보려 해도 안 볼 수가 있나) 오늘은 수영을 하며 서로 정겹다.

그래, 그런 날들이 우리에게도 있었지. 좀처럼 세사(世事)에 동요하지 않는 나를 단 한 번에 좌절시키는 이도, 천하를 손에 쥔 양 고무시키는 이도 모두 아내였으니까. 저 친구에게도 조(躁)와 울(鬱)을 넘나들게 할 단 한 사람, 지극한 슬픔과 행복의 근원이 모두 그녀였기에 그토록 쩔쩔매지 않았을까.

동병상련의, 그러면서도 젊은 연인의 풋풋함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사막에서 만나는 풍부한 온천처럼 세상은 온통 경이롭고 신비한 일로 가득하다. 우리네 인생이 그러하듯이.

독수리 요새, '마운트 데어'

냉장고에 고인 고기 핏물도 닦아내고 예비 연료도 다 부어넣고 짐을 재정비 한 후 71Km 떨어진 마운트 데어로 출발했다. 언제나처럼 강렬한 태양에 저항해 오른쪽 창문에 끈을 걸고 빨래를 커튼처럼 널었지만 그 사이로 스며드는 태양은 따끔따끔하다. 달하우지스프링스에서 젖었던 옷들은 일찌감치 바삭바삭하게 말랐다.

뾰족한 자갈이 많이 깔려 타이어 펑크에 주의해야 한다.
▲ 달하우지 스프링스에서 마운트 데어 가는 길 뾰족한 자갈이 많이 깔려 타이어 펑크에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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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장일지라도 길이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인데 온통 뾰족한 자갈로 가득하다. 잘못 밟으면 타이어에 구멍을 내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고 찢어낼 형상이어서 심히 조심스럽다. 너무 노면 상태에 신경을 곤두세웠기 때문일까? 아니면 가림막을 뚫고 쏟아지는 태양에 노출된 탓일까? 정신이 혼미해지고 몸이 다 녹아내린다.

아내가 자주 쓰는 표현으로 '숭구리당당' 상태다. 온천에서 너무 오래 논 탓인 것 같다. 나 뿐 아니라 경숙과 최 감독도 같은 상황이다. 긴급히 아내와 운전을 교대하고 잠에 빠졌다. 일선에서 물러난 오른쪽 뒷좌석은 안락과 평온의 공간이다.

얼마를 털럭거리다 차가 멈춰 단잠을 깨니 이제는 터로 남은 농장이 눈앞에 있다. 날개가 상한 펌프용 바람개비탑만이 홀로 쓸쓸하다. 이제는 용도를 잃은 가축용 울타리들과 바싹 말라버린 저수조가 한때 이곳이 축사였음을 보여준다. 이 농장도 가뭄을 이기지 못하고 버려진 것 같다.

달하우지 스프링스에서 마운트 데어 가는 길에 만난 바람개비. 호주는 처절한 물과의 싸움이 한창이다. 너무 부족하거나 너무 한꺼번에 쏟아 붓는다. 이 버려진 농장은 자연과의 대결에서 패배한 인간의 흔적이다.
▲ 아웃백의 버려진 농장 달하우지 스프링스에서 마운트 데어 가는 길에 만난 바람개비. 호주는 처절한 물과의 싸움이 한창이다. 너무 부족하거나 너무 한꺼번에 쏟아 붓는다. 이 버려진 농장은 자연과의 대결에서 패배한 인간의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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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간 계속된 가뭄을 혹자는 1백 년, 또 누구는 1천 년 만의 호주대륙 최대 가뭄이라 했다. 잔디에 물을 주는 거나 집에서 세차하는 것을 제한하는 등 온갖 물 절약 방안을 시도했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는 없었다. 지속적인 가뭄과 이따금 쏟아붓는 극단의 홍수는 과연 지구온난화가 주는 재앙의 서곡일까, 단순히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자연의 현상일까? 무엇이 되었든 지구는 물이 부족하며, 호주 역시 대표 주자다.

버려진 이 농장 또한 물을 두고 다툰 자연과의 싸움에서 인간이 패배한 흔적일 것이다. 상상할 수 없는 영역까지 자연에 저항하는 것도 인간이고 끝내 그 자연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것도 인간이다. 오늘 이 폐허의 자리에서 나약한 인간의 단면을 읽는다.

달하우지스프링스를 떠나 달린 지 두 시간 반, 드디어 마운트 데어(Mt. Dare)에 도착했다. 사막 한가운데서 375Km 남았다는 표지를 보았을 땐 장난인 듯, 현실이 아닌 듯싶었는데 지금은 목전에 마운트 데어의 모습이 펼쳐져 있다.

마운트 데어는 버즈빌을 떠나며 꿈꾸었던 심슨사막의 서쪽 종착역이다. 그런데… 그런데… 내가 나름으로 상상했던 그런 모습은 아니다. 뭔가 그럴 듯한 풍경을 상상했는데 황무지 한가운데 울타리 속에 들어앉은 펍과 컨테이너 숙소, 그리고 주유기, 양철 건물의 정비소만이 우뚝한 실용의 공간이다.

 든든한 요새처럼 나그네를 품어주는 아웃백의 전초 기지. 앨리스 스프링스와 오드나다타, 심슨 사막 일대의 나그네에게 중요한 기착지이다.
▲ 아웃백의 요새, 마운트 데어 든든한 요새처럼 나그네를 품어주는 아웃백의 전초 기지. 앨리스 스프링스와 오드나다타, 심슨 사막 일대의 나그네에게 중요한 기착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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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실망했다는 것은 아니고 상상과 다르다는 말이다. 마을 혹은 휴게소를 상상했던 것인데 그냥 실용적인 목적을 위한 요새의 면모를 느꼈다고나 할까. 한마디로 영화에서 보는 서부개척시대의 '독수리 요새' 같은 모습이다. 인디언 대신 거친 자연을 방어하기 위한 전초기지라는 점이 차이랄까. 그냥 철조망 두어 개로 엮은 울타리이건만 안에 들어서는 순간 안도의 숨이 내쉬어지는 그런 공간, 독수리 요새다.

태생은 목장에 속한 캐틀 스테이션(Cattle Station)이었으나 지금은 1988년 이후로 나그네들을 위한 보급 공간으로 전환되었다. 애초에 홈스테드(Homestead)란 것이 개척지의 전초기지였음을 생각하면 여전히 아웃백 전초기지로의 임무는 승계하고 있는 것이다.

숙소, 마켓, 펍, 주유, 정비, 구난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 마운트 데어의 시설들 숙소, 마켓, 펍, 주유, 정비, 구난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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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출신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5개월 전 정착했다는 매니저 제프 브라운(Jeff Brown)은 시설 곳곳을 친절히 소개했다. 컨테이너로 된 객실과 정비소, 이곳의 내력, 주유저장용량과 발전기 연료소모량 등. 시설 자체의 궁금증도 궁금증이었지만 이 외딴 곳에 사는 그의 삶이 더 궁금했다.

"이런 외진 곳에서 심심하진 않나?"
"요즘 같은 성수기(겨울철)엔 매우 바빠. 하루 40대 이상의 차량이 들르고 견인 서비스도 자주 나가니깐."
"그럼 비가 많이 오는 여름엔 뭐하는지?"
"그저 여기 곳곳을 손보며 지내지. 그땐 할 일이 없어. 여기 인원이 보통 4~5명인데 내 아내도 여기서 일하고 12살 된 아들도 같이 살고 있어. 물론 아들의 공부는 방송 수업으로 대신하고. 가까운 곳에 친구가 살고 있어서 자주 놀러가지. 여기서 17km만 가면 돼."

그래, 가족이 함께하고 '겨우' 17Km 거리에 친구가 있다면 이렇게 나그네들을 벗하며 삶의 한때를 지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종종 '자발적 유폐'를 상상하는 내게 마운트 데어의 삶은 고행이라기 보단 부러움이었다.

우릴 친절히 맞아주고 세심하게 이곳저곳을 소개해 준 마운트 데어의 매니저. 타지의 그가 여기 머물게 된 것처럼, 다음엔 다른 매니저가 근무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 마운트 데어의 매니저 제프 브라운 우릴 친절히 맞아주고 세심하게 이곳저곳을 소개해 준 마운트 데어의 매니저. 타지의 그가 여기 머물게 된 것처럼, 다음엔 다른 매니저가 근무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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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백의 어딘가에 들르면 습관처럼 기름값부터 확인한다. 얼마나 오지인가를 가늠하는 척도니까. 경유 가격이 버즈빌보다 30센트나 비싸다. 역시 이곳이야 말로 오지 중의 오지인 셈이다.

일단 메인탱크에 가득 채웠는데 60리터밖에 들어가질 않는다. 668km의 사막을 넘는데 겨우 120리터의 연료밖에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정말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두 통의 물을 터뜨려 그냥 잃었음에도 식수에 대한 부담은 없었다. 맥주와 포도주, 그리고 우유와 음료수가 물을 대신하기도 했고 물이 많이 들어가는 한국식 요리 탓에 생수를 비운 것도 많지는 않았다.

아웃백의 추억은 맥주를 타고 내리고

탈 없이 사막을 건넌 것을 자축하며 마운트 데어 펍에서 맥주와 요깃거리를 시켰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맥주에 '환장(환호, 혹은 열광이란 표현으로는 분명 한계가 있다)'한다. 이들에게 아웃백 여행의 첫째 인상을 꼽으라면 캥거루나 대자연이 아니라 맥주를 떠올릴 것이다. 아내는 항상 오전 운전을 자원했다. 오로지 일찌감치 자기할당량을 채우고 맥주를 마시기 위해서다.

최 감독은 카메라 전담이어서 자주 운전에서 열외 되었고, 경숙은 운전을 하고 싶어 하지만 모두의 안전을 위해 늘 제지되었다. 그러니 비음주자인 나를 앞세워 끼니 때마다 휴식할 때마다 맥주가 손에서 떠나질 않았다. 따가운 햇살과 탁한 먼지를 뚫고 달려와 마시는 맥주는 그냥 맥주가 아니란다. 영혼과 몸이 함께 젖는 성수(聖水)에 비견하지만 그저 머리로 이해할 밖에.

호주는 가히 맥주의 나라다. 와인도 유명하지만 호주인의 맥주 사랑은 다양한 종류에서 체감할 수 있다. 입을 즐겁게 하는 다양한 맥주를 섭렵하는 것도 즐거운 체험이 될 것 같다. 알코올을 분해하지 못하는 내겐 그림의 떡.
▲ 호주에서 접하는 다양한 맥주들 호주는 가히 맥주의 나라다. 와인도 유명하지만 호주인의 맥주 사랑은 다양한 종류에서 체감할 수 있다. 입을 즐겁게 하는 다양한 맥주를 섭렵하는 것도 즐거운 체험이 될 것 같다. 알코올을 분해하지 못하는 내겐 그림의 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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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비 다음으로 엥겔지수 비중이 가장 높은데 그중에서도 '주류비(酒類費)'가 단연 으뜸이다. 1인당 맥주 소비량이 세계 3위인 나라에 와서 맥주를 접하지 못하는 것도 여행의 큰 즐거움 하나를 놓치는 것임이 분명하다. 게다가 펍 중심의 아웃백 문화와 자동차마다 냉장고를 싣고 다니며 차가운 맥주에 집착을 보이던 호주인들의 모습을 보면 여기서만큼은 그들의 맥주 열정에 동화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어디 아웃백에서 뿐이랴. 각 주를 대표하는 맥주브랜드가 따로 있는 것만 봐도 맥주에 대한 호주인들의 애착을 짐작할 수 있다. 뉴사우스웨일즈주는 투헤이(Toohey), 빅토리아주에는 브이비(VB:Victoria Bitter),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는 스완라거(Swan Lager), 퀸즈랜드주는 포엑스(XXXX)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는 쿠퍼스(Coopers) 등.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포엑스는 특이한 이름만큼 그 배경도 재미있다. 마땅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붙였다는 설도 있고, 백인의 맥주 맛에 길들여진 원주민들이 맥주라는 단어를 몰라 주문할 때 X표 네 개로 표현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찌되었든 주를 대표하는 메이저급 맥주가 아니더라도 지역마다 각양각색의 맥주가 있는데, 일행은 호주의 모든 맥주를 섭렵하기로 작정한 듯 매번 달려들었다. 덕분에 주머니는 가벼워졌으며 그 빈 공간을 추억으로 채웠다.

원주민 마을 '핀케'의 어두운 인상

마운트 데어를 떠나 핀케(Finke)로 향했다. 점심은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에서 먹고 저녁은 노던테리토리에서 먹게 되는 셈이다. 그러고 보니 심슨사막의 초입 버즈빌은 퀸즐랜드에 속했던 것이니 며칠 사이 세 개 주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점점이 노는 소들을 헤치고 비포장길 105Km를 달려 핀케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6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기우는 해를 배경으로 늘어선 전선 위 새들이 왜 이토록 을씨년스럽게 느껴지는 것일까? 마을 어귀부터 마음이 우울하다. 허름한 가옥과 철망울타리, 방치된 쓰레기들, 두서없는 새들의 울음에도 깨지지 않는 이상한 적막, 그 침묵에 무겁게 어깨를 움츠린 검은 피부의 보행자들.

'거주'가 아니라 어쩐지 '수용'을 전제로 형성된 공간처럼 여겨진다. 애보리진 마을(Aborigine Community)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을 뿐 사전정보 없이 들이닥친 핀케는 그렇게 음습한 모습으로 나를 맞았다. 아니 내가 그렇게 인식했다. 내심 오늘의 야영지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폐가를 방불케 하는 음침한 캠핑그라운드는 마음을 접게 했다.

무척 음울한 인상을 받았던 원주민들의 마을.
▲ 애보리진(호주 원주민) 마을 핀케의 입구 무척 음울한 인상을 받았던 원주민들의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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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검은 피부의 원주민들이 무표정하게 우릴 바라보는데 이곳에서 감히 텐트를 칠 엄두가 나질 않는다. 소유에 대한 관념이 우리와 달라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질 수 있으니 애보리진들을 주의하라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왜곡과 편견이라고 치부하기엔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심란하다. 마을 입구의 술 반입 금지(No Liquer) 표지가 상징하는 실업과 알코올, 그리고 무기력의 흔적은 마을 곳곳에 역력하다. 북미대륙의 인디언 보호구역이 처한 현실과 오버랩 된다.

호주대륙에 백인 중심의 국가가 성립된 이래 원주민은 언제나 첨예한 문제의 대상이었다. 인간 모양의 동물로 간주하던 정착 초기나 원주민 말살의 일환으로 동화정책을 펴던 1940~1960년대에도, 관계정상화를 꾀하던 1975년 이후에도 원주민 문제는 늘 진행형이다.

2000만이 넘는 호주 인구 중 원주민은 16만 명이니 얼마 되지 않는 비율일 수 있다. 더구나 이들의 상당수가 이렇게 깊은 오지에 모여 살고, 밖으로 나간 사람들도 주로 내륙지역의 마을과 도시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아 애써 이들의 문제를 외면하자면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숫자가 어떠하든 이들은 존재하며 그 존재의 양상은 이렇게 척박하다. 이 상태로라면 분명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빨리 찾아올 수도 있을 것 같다. 

황량하고 지저분한 캠핑그라운드에서 원주민들이 기웃거리는 것을 감내하며 단독 캠핑을 감행할 수 없어 자리를 떠야 했다.
▲ 폐허를 방불케 하는 핀케의 캠핑그라운드 황량하고 지저분한 캠핑그라운드에서 원주민들이 기웃거리는 것을 감내하며 단독 캠핑을 감행할 수 없어 자리를 떠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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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들보다 거의 4만 년 가까이 먼저 이 땅에 도래해 뿌리를 내렸지만 그들에 의해 방외인으로 전락하고, 여전히 이 땅의 주변인으로 존재하는 그들은 잠깐 스치는 동양의 나그네에게조차 백안시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단지 그들의 피부색과 어려운 살림이 자아내는 곤궁의 티를 위험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 아닐까 의심하면서도, 굳이 오늘, 내가 실험 대상이 되고 싶지 않아 마을을 나섰다.

150Km나 떨어진 먼 비포장길을 야간에 달려야 다음 마을인 쿨게라(Kulgera)가 나오지만 그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래 앨리스스프링스를 향해 한 발이라도 더 가는 거야 '하고 위안을 했지만 실은 이 황폐한(내가 보기에) 마을과 매섭고 퀭한(역시 내가 보기에) 원주민이 마음의 부담으로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쿨게라까지 소와 캥거루를 피해 달리는 길이 무척이나 어둡다. 핀케의 인상만큼이나.


태그:#호주 , #아웃백, #대륙횡단, #자동차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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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화에 능하고 길떠남에 두려움이 없는 생활인. 자동차 지구 여행의 꿈을 안고 산다. 2006년 자신의 사륜구동으로 중국구간 14000Km를 답사한 바 있다. 저서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랜덤하우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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