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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을 즐기고, 저 언덕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은 갈망......
어딘가로 떠나고자 하는 갈망은 마음 뒤편에서 울리는 메아리와 같다.
이 메아리에 귀기울여야 한다.
기회를 만들어 나를 부르는 소리를 따라 길을 나서자
아주 잠깐이라도 나그네의 삶을 살자.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을 만나고, 상상하지 못했던 풍경과 마주친다.
마침내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온다.

-켄트 너번, <작은 유산>중에서  

일탈을 꿈꾸며

비행기는 이동 수단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시간의 지경을 건너 뛰고 공간을 순간이동하게 한다.
▲ 타임머신 비행기는 이동 수단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시간의 지경을 건너 뛰고 공간을 순간이동하게 한다.
ⓒ 오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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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시드니(Sydney)로 향하는 비행기 안. 구름이 존재하지 않는 하늘에서의 비행은 진행이 아닌 체공처럼 느껴졌다. 그저 300톤이 넘는 기계가 웅웅거리며 허공 어디에 떠있기만 하는 것 같은 느낌. 그래서 내가 탄 이 기계가 교통수단이 아니라 타임머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비행기는 시간의 지경을 넘나들고 대륙을 넘겨 공간을 이동하게 하는 수단이니 그런 대접을 받아 마땅하다.

비행기 안에서 두 끼를 제공받는 사이 이미 1시간의 시간대를 역류했으며 여름에서 겨울로 계절을 옮겼을 뿐 아니라 내가 속했던 대륙을 벗어나 다른 대륙을 발아래 두고 있지 않은가. 비행기가 주는 판타지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지금 시간과 공간을 거슬러 내 일상과 거리를 둔 다른 세계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공항은 나니아 연대기의 옷장 속이고, 해리포터의 기차역 벽이다.
 
일상에 발을 딛고 사는 이 중, 일탈을 꿈꾸지 않는 자 어디 있으랴. 산다는 것이 켜켜이 벽돌을 쌓아 담장을 올리는 일은 아닌가. 똑같은 규격의 벽돌을 같은 동작으로 한참을 쌓다가 문득 굽어진 허리를 폈을 때, 나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단단한 담장과 마주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일터에 선 사람의 모습에서 보이는 건강함과, 굳건한 일상의 고수(固守)가 주는 안정감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가끔은, 아니 너무도 자주 내가 쌓은 담장이 어느새 감옥이 되어 있음을 목도한다. 나를 둘러싼 울타리가 감옥이 아닌 보호벽이 될 수 있기 위해서는 내 의지로 그 담장의 밖에 설 수 있어야 한다.

길떠남의 의미는 내게 그런 것이다. 탈일상. 일상을 벗어나 내가 친 담장 밖에 서는 행위. 하여 내가 쌓은 담장을 먼발치에서 응시하며 그 곳이 감옥이 아닌 안식처였음을 확인하게 하는, 내 벽돌 쌓는 행위가 무용(無用)의 것이 아님을 확인하는 도전이다. 이로써 자기 의지로 담장 밖을 출입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여행'은 '자유'의 이름과 동가의 가치를 나누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호주여야 했다.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를 출간하고 한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이미 호주편은 예고된 것이었다. 내 사륜구동으로 고비와 타클라마칸 사막을 넘어 중국 구간 실크로드 1만4000Km를 달리고 돌아와 아직 사막의 먼지 내음이 가시지 않았을 때부터, 머릿속에 호주 아웃백의 황량한 풍경과 '심슨'과 '그레이트 빅토리아' 같은 낯설고도 다감한 사막의 이름들이 떠돌았다.

700Km에 연해 끝없이 펼쳐진 모래의 파도. 보급없는 5박 6일의 외로운 항해가 필요한 곳이다.
▲ 심슨 사막 700Km에 연해 끝없이 펼쳐진 모래의 파도. 보급없는 5박 6일의 외로운 항해가 필요한 곳이다.
ⓒ 오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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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 사막
▲ 호주 스턱턴 비치 내 마음속 사막
ⓒ 오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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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백? 식당엘 왜 가?

흔히 5대양 6대주라 말할 때 호주 대륙이 이에 포함된다. 지구상 가장 큰 섬이면서 가장 작은 대륙, 하나의 국가가 대륙 전체를 점유하는 유일한 곳, 남한의 78배 면적에 인구는 2000만이 겨우 넘는 곳, 그 국토 대부분이 사막과 황무지여서 아직도 거친 야성이 숨을 몰아쉬며 나를 기다려 줄 것 같은 곳.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이름 아웃백(Outback)이 있는 곳이 바로 호주였다.

이렇게 아웃백에 대한 내 열망을 토로하면 사람들은 열이면 열 모두 이런 반응이었다.

"아웃백? 식당엘 왜 가?"

인식이 경험의 고정관념에 갇힌 단적인 예다. 아웃백이란 해안의 인구밀집지대로부터 멀리 떨어진 호주의 오지를 일컫는 말로 말 그대로 '오지', '미개척지'로 해석해도 될 것인데, 여기에는 호주만의 독특한 오지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영화 <오스트레일리아>의 배경으로 펼쳐졌던 그 황량한 풍경이 바로 바로 아웃백이다.

태양에 타 버린 땅. 끝도 없는 붉은 흙의 향연.
▲ 그레이트 빅토리아 사막을 향하던 중 태양에 타 버린 땅. 끝도 없는 붉은 흙의 향연.
ⓒ 오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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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길게 말할 것 없이 동서 4000Km, 남북 3700Km에 달하는 거대한 나라에서 해안으로부터 50Km 이내에 인구의 80% 이상이 거주하고 그 외 지역은 황무지로 목축업과 광산업에 의지해 생활하니 국토의 전역이 다 아웃백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진짜 호주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우리가 흔히 아는 유명 대도시를 벗어나 아웃백을 여행해야 한다는 말이 있는지도 모른다.

사물이 형체로만 남는 공간. 모래와 바람. 키 작은 나무의 황량한 공간이 아웃백이다.
▲ 아웃백의 여명 사물이 형체로만 남는 공간. 모래와 바람. 키 작은 나무의 황량한 공간이 아웃백이다.
ⓒ 오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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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내 차를 싣고 가지 않고 호주에서 사륜구동 자동차 한 대를 임대하여 돌아보기로 했다. 싣고 가면 아무래도 내게 익숙한 차라 조작과 정비가 쉽고 오지 탐험에 필요한 부대장비와 시설이 다 갖추어진 상태이니 편리한 점이 있겠지만 한국에서 호주까지의 막대한 운송물류비와 운송시간, 까다로운 통관절차(차에 흙 한 알만 있어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때문에 망설이다가 결국은 임대를 선택했다. 사륜구동의 임대비는 일반승용차에 비해 월등히 비싸고 보험비에 보증금까지 합하면 내 차를 운송해 온 것보다 비용이 싼 편은 아니지만 시간을 절약하는 장점이 있다. 

호주 아웃백 여행의 경로

시드니를 출발하여 심슨과 그레이트 빅토리아 사막을 횡단하여 다시 시드니로 돌아오는 1만3000km의 여정
▲ 네 바퀴로 가는 호주 아웃백 경로 시드니를 출발하여 심슨과 그레이트 빅토리아 사막을 횡단하여 다시 시드니로 돌아오는 1만3000km의 여정
ⓒ 오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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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은 2009년 7~8월에 걸친 37일.

함께하는 이는 필자와 아내 외에 후배 부부가 합류해 총 4명.

여정은 시드니를 출발 -스턱턴 비치(Stockton Beach)-브리즈번(Brisbane)-프레이저 아일랜드(Fraser Island)까지 동부 해안을 끼고 북상한 후 서쪽 아웃백 지대로 들어가 찰빌(Charleville)과 버즈빌(Birdsville) 거쳐 심슨 사막(Simpson Desert)을 횡단하여 앨리스 스프링스(Alice Springs) 도착, 다시 앨리스 스프링스에서 쿠버 페디(Coober Pedy)로 남하한 후 그레이트 빅토리아 사막(Great Victoria Desert)을 횡단하여 라버튼(Laverton)-캘굴리(kalgoolie)-하이든(Hyden)을 거쳐 퍼스(Pearth)에 이른 후 퍼스에서 애들레이드(Adelaide)와 멜번(Melbourne) 캔버라(Canberra)를 거쳐 온로드로 이동하여 다시 시드니로 돌아오는 루트로 13,000Km에 달한다.

요약하면 호주 대륙의 중부지대를 동에서 서로 횡단하여 남부지대를 통해 복귀하는 계획이다. 긴장 되는 점은 700Km의 모래언덕으로 이루어진 심슨 사막과 1350Km의 그레이트 빅토리아 사막을 중간보급 없이 차 한 대로 넘어야 하는 여정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두 사막이 나를 호주로 인도한 것이니 차가 한 대뿐이라 하여 우회하는 루트를 짠다면 이 길은 애초 나설 필요도 없었다.

마음 같아선 호주 서북부의 깁슨 사막과 그레이트 샌디 사막, 북부의 다윈과 그 주변의 카카두 국립공원, 케언즈와 열대우림의 케이프 요크, 걸프 사반나, 동북부 해안의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 등을 다 둘러보고 싶지만 자동차로 그 정도 여행을 하려면 최소 90일 이상(이동하고 둘러보는 데에만)의 시간이 필요하기에 중북부 지대와 남부의 테즈매니아 여행은 눈물을 머금고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호주, 네발로, 그리고 나

드디어 시드니 공항. 까다로운 짐검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서니 알싸한 한기가 가득했다. 어제까지 여름에 살다가 오늘은 겨울로 날아와 있다니… 시차는 한 시간 뿐이어서 적응이랄 것도 없지만 북반구와 정반대인 계절은 참 낯설다. 이제야 내가 두고 온 직장과 가족이 있음을 체감한다. 그래 나는 개수대의 물소용돌이마저 다르게 일고, 별자리의 이름마저 알아볼 수 없는 먼 행성에 나와 있는 것이다.

시드니 '네발로' 클럽의 회장 캡틴님이 우리 부부를 위해 마중을 나오셨다. 그립고도 반가운 얼굴. 그러나 실제 대면은 이번이 처음이다. '네발로(www.nebalro.com)'는 호주를 가슴에 둔 후 알게 된 시드니의 교민 오프로드 클럽이다. 근 2년 가량 얼굴도 못 본 채 인터넷상으로만 교류하였음에도 늘 일정을 함께하는 동호인 같은 친밀감이 있다.

이번 아웃백 여행의 준비에도 네발로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위성전화기, 무전기, 차량 수리를 위한 공구류, 통관이 까다로운 텐트류와 각종 야영장비, 취사도구류 등의 하드웨어뿐 아니라 아웃백 여행의 정보나 호주에서의 운전 정보 등 소프트웨어적인 부분까지 신세진 바가 크다. 이 여정의 계획은 내가 하였으나 실행은 네발로가 한 셈이나 마찬가지다. 명목상으로는 네발로 클럽의 한국지부장(자청해서 겨우 만들어낸 직함)이 장도에 오르니 클럽 차원에서 지원을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나서주신 것이지만 모험이, 넓은 세계를 향한 도전이 무엇인지를 아는 이들의 끈끈한 교감이고 연대였을 것이다.

네발로에서 돌쇠(필자의 대화명) 환영을 위한 바비큐 모임을 준비했다 한다. 하버브리지와 오페라 하우스가 건너 보이는 헌터스 힐 파크(Hunter's hill Park)로 향했다. 사냥꾼의 언덕이라니… 대개 '신대륙'의 지명은 이렇게 빈약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다. 그곳을 찾은 아무개의 이름을 붙이거나 두고 온 고국의 지명이나 인명을 복제하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왕(King)이나 왕비(Queen)를 넣어 명명하면 그만이다. 그나마 극한의 단조로움을 피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애초에 이 땅에 자리를 잡았던 원주민들의 표현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반신반의로 시작한 건축물이 호주의 상징이 되었다. 마주 보이는 곳에 헌터스 힐이 있다.
▲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반신반의로 시작한 건축물이 호주의 상징이 되었다. 마주 보이는 곳에 헌터스 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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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발로의 회원들이 부부동반으로 속속 도착하고 점심 바비큐 파티가 시작되었다. 고국을 방문한 두 분의 회원을 제외하면 모두가 모니터 화면으로만 접했을 뿐 일면식도 없는 이들이었건만 십년지기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한국과 호주에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서로의 꿈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피의 뜨거움. 거처는 다르나 같은 나라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으며 같은 언어를 나누는 이들끼리만 느낄 수 있는 유대였다.

헌터스 힐 파크에서 열린 시드니 교민 오프로드 클럽 네발로의 환영식. 회원들이 부부동반하여 점심 바비큐 파티 모임을 가졌다.
▲ 클럽 '네발로'의 환영식 헌터스 힐 파크에서 열린 시드니 교민 오프로드 클럽 네발로의 환영식. 회원들이 부부동반하여 점심 바비큐 파티 모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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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호주, #아웃백, #자동차 여행, #대륙횡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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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화에 능하고 길떠남에 두려움이 없는 생활인. 자동차 지구 여행의 꿈을 안고 산다. 2006년 자신의 사륜구동으로 중국구간 14000Km를 답사한 바 있다. 저서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랜덤하우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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