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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의 기술경영 컨설팅을 진행하면서 가장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기업부설연구소(또는 연구개발전담부서) 설립신고 시 연구원 학력 요건을 따지는 부분이 그렇다. 현행 기술개발촉진법(제7조 제1항 제2호) 및 동법 시행령(제15조)에 따르면 연구전담요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은 '대학설립·운영 규정에 따른 자연과학계열·공학계열 및 의학계열의 학사 이상의 학위를 가졌거나 국가기술자격법에 따른 기술·기능분야의 기사 이상의 기술자격을 가진 자'여야 한다. (단, 정보처리분야 또는 산업디자인 분야의 연구전담요원의 경우에는 자연계분야가 아닌 분야의 학사학위를 가진 자로 할 수 있으며, 중소기업의 기업부설연구소 및 전담부서의 경우에는 전문대학 자연계분야 졸업자, 또는 국가기술자격법에 따른 기술·기능분야의 산업기사 이상의 기술자격을 가진 자로서 해당 연구분야에 2년 이상 근무한 자도 가능.) 

기업부설연구소의 연구전담요원은 대학 졸업자 기준 요건만 가능

즉, 기업의 연구개발 활동을 전담할 수 있는 자격요건을 대졸자 또는 전문대 졸업자로 제한하고 있다. 따라서 고졸 학력에 기사 또는 산업기사 자격이 없는 사람은 연구개발 활동을 하더라도 연구전담요원으로 등록할 수 없으며, 이에 따라 해당기업은 연구개발 수행에 따른 각종 세제혜택을 받을 수 없다.

조세특례제한법상 연구개발비 항목은 연구소 또는 연구전담부서 보유 기업만 회계처리할 수 있으며, 이들 기업에 대해서는 연구인력개발비, 설비투자 등에 대한 세액공제 등 각종 세제혜택을 부여한다.

연구전담요원은 자연계 학사이거나 기사자격 소지자로 중소기업은 전문학사나 산업기사로 해당 연구경력 2년 이상인 자도 포함한다.
▲ 기업부설연구소의 연구전담요원 자격요건 <출처 :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연구전담요원은 자연계 학사이거나 기사자격 소지자로 중소기업은 전문학사나 산업기사로 해당 연구경력 2년 이상인 자도 포함한다.
ⓒ 박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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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규정에 따르면 중소기업은 이러한 요건을 충족한 연구인력이 5명 이상이어야 기업부설연구소를 설립할 수 있으며, 그 이하이면 요건을 충족하는 인력이 단 한 명이라도 있어야 연구개발전담부서라도 만들 수 있다. 자격이 안되면 연구보조원으로 등록할 수 있지만 연구보조원만으로는 전담부서 설립도 불가능하다. 

이러한 규정은 기업의 기술개발을 촉진하고 이에 대한 혜택을 부여하겠다는 법 취지에 반하며 중소기업의 연구개발 활동을 위축시키는 결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중소기업에서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고졸 인력으로 구성된 개발팀을 운영하거나 고졸 경력자들의 핵심기술 개발 능력에 의존함에도 이를 연구개발 활동으로 인정하지 않아 학력 차별의 제도적 사례로 꼽힐 소지가 있다.

A회사에서는 핵심기술 개발은 그 회사에 오랜동안 근무해온 고졸 연구원이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연구인력 요건에 맞지 않아 연구소장과 연구원은 한참 후배 뻘인 직원이 맡고 정작 본인은 연구관리직원(관리직원은 연구개발 활동과 직접 관련이 없는 관리활동만 담당)이나 연구보조원으로 등록하는 웃지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바로 연구원의 학력제한 규정 때문이다.

기업의 기술개발활동은 속성상 그 기업이 보유하고 생산, 판매하는 핵심기술에 대한 개발활동에 국한된다. 이러한 기술은 반드시 대졸, 또는 기사 자격 등의 요건을 충족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은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인력을 줄이거나 저학력의 인력을 활용하고 있으며 이들만으로 필요한만큼 충분히 기술개발을 수행할 수 있지만 이에 대한 연구개발비 비용은 세법상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벤처기업 확인 시에도 경영주 학력평가 받아야

제도적으로 인정되는 학력 차별의 사례는 벤처기업에서도 드러난다. 

벤처기업은 일반적으로 다른 기업에 비해 기술성이나 성장성이 상대적으로 높아 정부에서 지원할 필요가 있는 기업으로서 벤처기업으로 확인되면 법인세 감면을 비롯하여 다양한 세제혜택과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벤처기업 인증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현행 '벤처기업육성에관한특별조치법'에 의해 3가지 유형(벤처투자기업, 연구개발기업, 기술평가보증기업) 중 하나에 해당해야 하며, 심사과정에서 대표자의 학력이 주요한 평가자료가 된다.

즉, 벤처투자기업을 제외한 연구개발기업이나 기술평가보증기업의 경우 전자는 사업성평가, 후자는 기술성평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연구개발기업은 앞에서 말한 기업부설연구소가 있어야만 신청 가능하며 인증심사에 해당하는 사업성평가 과정에서 경영주의 기술능력(지식, 경험 수준 및 경영능력) 평가가 전체의 44%를 차지한다. 또한 기술평가보증기업 역시 기술성평가 항목 중 경영주의 기술능력이 25%를 차지한다. 

비록 '학력'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지만 평가과정에서 대졸자와 고졸자의 평가점수는 확연히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고졸 경영주는 꽤 오랜 기간 해당 분야에 종사한 이력이 없는 한 갓 창업한 대졸 경영주에 비해 훨씬 낮은 평가를 받게 되므로 그만큼 벤처인증의 기회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벤처인증 심사시 경영주의 기술능력이 44점으로 학력에 따라 크게 좌우한다.
▲ 벤처기업(연구개발기업)의 사업성평가표 벤처인증 심사시 경영주의 기술능력이 44점으로 학력에 따라 크게 좌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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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언급한 두 사례 외에도 각종 정부지원사업, 또는 기술개발사업 참여시 경영주나 참여 연구원의 학력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관행이 남아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최근 대학 반값 등록금 투쟁을 비롯해, 70% 넘는 대학진학률과 고학력 실업문제, 대학입시를 위한 사교육 열풍 등 대학을 둘러싼 문제들이 해결되려면 무엇보다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아 인생을 풍요롭게 가꿀 수 있는 사회적 기회균등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 도처에 남아있는 학력차별의 요소부터 하루빨리 사라져야 하며, 더욱이 국가가 관리하는 시스템 안에서는 이를 완전히 폐기하여야 선진국이라는 허명이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태그:#연구인력, #벤처인증, #학력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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