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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바이벌 프로그램이 한창 대세인 요즘. 그 중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이 유독 눈길을 잡아끈다. 7명의 가수가 각자의 음악으로 대결을 펼치고 관객이 이를 평가해 꼴찌는 탈락시키는 내용이다. '서바이벌'이란 단어 그대로 '생존'을 위한 필사의 경연은 보는 이에게 축구시합에서의 마지막 승부차기와 같은 긴장감을 준다.
 
혹자는 이 프로그램을 보며 "역시 경쟁이 중요해"라고 말한다. 평가에 따라 서열이 정해지고 그 서열의 마지막 순위를 차지한 가수는 탈락시키는 제도가 경쟁을 강화해 가수들의 실력이 향상됐다는 논리다. 더 나은 평가를 받기 위한 경쟁은 때론 긍정적인 효과를 낳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다. 바로 '무엇을 위한' 평가인지 구성원들 간의 명확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가수다> 프로그램은 실력 있는 가수들이 화려한 외모나 예능감을 지닌 아이돌에게 묻혀버리는 현실 속에서 빛을 발한다. 숨겨진 보석 같은 그들에게 음악을 향한 열정과 실력, 진정성을 내뿜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세대를 넘나드는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가수다>에 출연한 가수들은 주어진 무대에서 최선을 다해 기량을 발휘한다. '서바이벌'은 시청자의 눈길을 끌기 위한 하나의 장치에 불과하다.
 
이들의 무대는 냉철한 관객들의 평가에 따라 서열이 매겨지지만 1등이라고 최고가 아니며 꼴등이라고 최악이 아님을 그들 아니, 우리는 안다. 자신의 음악을 관객과 호흡하며 즐기는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그들에게, 황홀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의 멋진 무대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대중에게 청중평가단이 매긴 순위는 본질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음악을 향한 열정과 실력, 진정성을 다양한 음악적 색깔로 충분히 발산하도록 하는 것 그 자체가 평가의 목표임을 암묵적으로 합의하고 있는 것이다.

개개인의 잠재된 역량을 끌어올리는 평가란

평가는 목표에 따라 평가에 참여한 이들을 성장시키기도 하고 오히려 후퇴시키기도 한다. 개개인의 잠재된 역량을 끌어올리는 것이 평가의 목표임이 명확할 때, 평가에 참여한 이들은 타인과의 경쟁을 넘어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부를 보고자 한다. 그러나 단순히 누군가를 짓밟고 올라서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식의 평가에서는 참여자가 서열 경쟁에만 매몰돼 결국 아무도 성장할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
 
교육에서의 평가제도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2009 개정 교육과정 총론'에서는 평가에 대해 '모든 학생들이 교육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교육의 과정으로 실시한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학교는 다양한 평가 도구와 방법으로 성취도를 평가하여 학생의 목표 도달도를 확인하고, 수업의 질 개선을 위한 자료로 활용한다'고 나와 있다. 곧, 초·중등과정에서의 평가는 교육과정에서 제시하고 있는 교육 목표를 학생 개개인이 얼마나 달성했는지를 알아보고 이를 위한 수업개선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실시한다는 의미다. 평가는 교육의 결과가 아닌 과정의 일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국민들은 초·중등학교에서 행해지는 평가는 같은 학년 학생들과의 비교순위를 위해 치르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평가를 받는 학생이 이를 통해 자신이 어떤 과목에서 취약한지 이해하고, 평가자인 교사 역시 자신의 수업준비에서 무엇이 부족한지 도출하기 위해 평가를 치르지 않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생이 서열의 어느 지점에 위치하는지를 알려주는 '등수'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사회가 왜곡된 학벌구조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학벌사회에서 초·중등교육은 취업에 유리한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과정에 불과하며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치열한 경쟁시스템의 한복판에 노출된다. 학교는 그야말로 내 옆의 친구를 밟고 올라서야 내가 이길 수 있다는 서바이벌 게임의 장과 같다. 학교에서의 평가는 이러한 게임의 결과를 확인시켜주는 도구로 인식된다. 따라서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점수 그 자체가 아니라 등수다.
 
점수 아닌 '등수'가 중요한 사회

교육과정에서 제시한 평가의 본질적인 목표는 입시경쟁의 현실에서 효력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다. 무엇을 위한 평가인지 조차도 구성원들 간의 합의를 보지 못하는 실정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초·중등교육의 평가제도는 획일적인 상대평가 일색이다.
 
여기서 상대평가란 개인의 학업성과를 다른 학생의 성적과 비교해 집단 내에서의 상대적 위치로 평가받는 방법이다. 반면, 절대평가란 어떤 절대적 기준에 의해 개인의 학업성취도를 평가하는 방법이다. 즉, 상대평가와 절대평가는 평가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상대평가는 같은 반, 혹은 같은 학년 친구들의 성적을 기준으로 순위를 비교하고, 절대평가는 달성해야 할 교육목표를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대학이 서열화돼 다른 학생들과의 성적을 비교해 순위가 높은 학생이 상위권 대학에 가는 구조 속에서 상대평가를 선호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대평가는 집단 내에서의 상대적 위치를 알려줄 뿐, 학생 개개인이 교육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했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또한, 학생들을 점수로 한 줄을 세우는 격이어서 학생 간의 경쟁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상대평가는 문민정부부터 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교육정책의 핵심가치로 강조되고 있는 다양성, 창의성, 자율성을 학교현장에서 실현하는 것도 가로막는다. 각 학교의 여건이나 학생의 적성과 소질에 따라 다양하고 창의적인 교육을 실시하려해도 순위로 비교 가능해야 하는 획일적인 평가의 벽 앞에 무릎 꿇게 되기 때문이다. 단순한 예를 들어보자. 어떤 학급의 교사가 국어과목의 한 단원을 현장탐방이라는 학습방법이나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다양한 학습자료로 수업을 했다고 상상해보자.
 
학교의 중간고사 기간, 해당 학년 담당 교사들은 시험에 대한 합의과정을 거쳐야 한다. 교사들이 수업시간에 공통적으로 가르친 내용을 토대로 시험문제를 출제하고 해당 학년에서 학생들의 성적이 고르게 분포되도록 결과를 도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통적인 수업내용과 방법을 따르지 않은 학급의 교사와 학생은 부정적인 시험결과를 받을 수밖에 없다. 새로운 시도가 애초에 가로막히는 것이다.

다양하고 창의적인 교육 가로막는 상대평가

물론 우리나라에도 상대평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95년에 발표된 5·31 교육개혁에 따라 1996년부터는 종합생활기록부가 도입돼 절대평가 방식으로 성적이 기록됐고(석차는 그대로 기재됐음), 학생들의 다양한 적성과 소질을 기록하기 위한 '수행평가' 방식이 점차 정착됐다. 그러나 '학교교육 정상화를 위한 2008학년도 이후 대학입시제도 개선안'에 따라 2005년부터는 상대평가 방식으로 다시 전환됐다.
 
이유는 각 학교에서 입시에서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한 '성적 부풀리기'가 성행하고 이에 따라 내신에 대한 신뢰도가 저하되면서 대학이 입시에서 내신 반영률을 낮췄기 때문이다. 입시에서 수능의 비중이 높아져 공교육이 황폐화되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수능 비중을 낮추고 내신 비중을 늘리고자 했던 상황에서 내신을 상대평가 방식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결국, 서열화 된 대학구조, 입시경쟁이 문제다.
 
이런 와중에 얼마 전, 한국교육개발원은 '중·고등학교 학사관리 선진화를 위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 내용의 골자는 2005년부터 시행돼 온 현행 상대평가 방식의 중·고교 내신제도를 2014학년도부터 6단계 절대평가 방식으로 바꾼다는 것이었다.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한 연구진의 최종안으로 올해 안에 정부 방침을 확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수능시험 당일 출근시간을 조정할 정도로 전 국민적 관심사인 대학입시와 관련된 것이기에 각 언론은 앞다투어 이를 보도했다. 
 
다양한 논쟁이 오갔다. 쟁점은 과거에도 있었던 '내신 부풀리기' 문제와 같은 평가의 객관성, '고교등급제' 부활의 우려 등이었다. 중등교육의 평가를 대입 선발체제로만 이해하는데서 오는 해묵은 논란이다. 이러한 오류는 토론회에서 발표된 내용에도 담겨있다. 절대평가로의 전환을 추진하는 이유로 '입학사정관제 및 수시모집 확대 등 대입전형 선발기준이 잠재력, 창의력, 인성 등을 고려한 학교 교육과정 중심으로 변화'되고 있으므로 평가방법을 질적으로 혁신해야 한다고 밝힌 것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진단이기도 하거니와, 마찬가지로 대입 선발체제로서 중등교육의 평가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평가의 본질적인 목표에 관한 논의다. 학생 개개인이 자신의 부족한 지점을 깨닫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노력하도록 하는 것, 교사가 자신의 수업을 반성적으로 성찰하고 개선하도록 하는 것. 교육과정에 명시된 바와 같이 이것이 평가의 목표라면 성적표에 기재되는 '등수'만을 위한 현재의 상대평가는 존속될 이유가 없다. 또한 이러한 상대평가는 다양하고 창의적인 교육을 실현해야 한다는 목표에도 적합하지 않다.
 
그렇다면 오히려 우리는 중등교육의 평가를 절대평가 방식으로 전환하되 앞선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정부의 평가제도 개선안의 한계를 뛰어넘어 우리가 원하는 평가제도를 만들고 이를 보편화시킬 방안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대안적 내신평가제

그런 의미에서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에서 진행하는 '새 내신기록운동'은 주목할 만하다. '새 내신기록운동'은 지난 2008 대학입시제도 개선안 발표 때 혁신위가 제시했다가 물거품이 된 '교사별 학생평가제'를 토대로 한다. 이는 각각의 교사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을 평가하는 시스템으로, 성적표에 등수를 표기하지 않는 대신 학생의 학업성취 정도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해주는 방식이다. 
 
내신기록 방식은 다양하게 취할 수 있다. 어떤 교과를 평가한 한 예를 보면, 교과 지적 발달사항, 학습태도나 성취의욕 및 잠재성을 측정할 수 있는 세부항목을 정해 그에 대한 5단계 평가 및 구체적 서술이 있고, 학생의 자기 평가, 교사의 종합 평가도 따로 서술한다. 여기에는 환자가 치료하는 의사에게 환자 차트와 검사 도구, 처방전 이 세 가지가 있듯이, 교사도 개별 학생의 지적 성장에 대한 전문가적 판단을 위해 '개별 학생들의 교과학습 과정 관찰 자료 포트폴리오'와 '최종적인 평가소감서'를 평가에 필수적으로 포함시킨다.
 
우리가 비교하기 좋아하는 유럽, 미국 등 선진국의 평가제도 역시 학생과 교사의 긴밀한 상호작용 속에서 평가를 하고 등수가 아닌 각 학생의 교육적 성취에 대한 구체적인 서술을 바탕으로 한다. 학벌사회의 틀에 갇혀 유독 상대평가를 고집하는 것이 우리나라인 것이다.
얼마 전 카이스트 학생들의 잇단 죽음은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 원인으로는 서남표 총장의 과도한 경쟁체제와 징벌적 수업료 등이 꼽힌다. 결국 다양한 능력을 가진 학생들을 뽑아 획일적인 평가로 재단하는 시스템이 문제였다. 여기서 낙오된 이들의 절망감은 스스로 목숨을 버릴 정도로 우리의 상상 이상이다. 
 
비단 카이스트만의 문제가 아니다. 초·중·고교 시절부터 살벌한 입시경쟁 속에서 꿈도 희망도 자아정체성도 잃어버린 채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은 또 다른 생존경쟁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직시해야 한다. 이러한 경쟁시스템을 다소 줄일 수 있는 방법의 하나로 평가제도의 개선 즉, 다양성을 인정하는 서열 없는 평가가 필요하다. 
 
물론, 평가제도의 개선만으로 입시경쟁이 사라진다는 말은 아니다. 초·중등 전반의 교육과정과 대입제도, 그리고 궁극적으로 대학체제 개편과 학벌구조 등의 문제가 함께 도모되지 않고서는 절대평가 방식 역시 설 자리가 없다. 그러나 학생들을 경쟁의 극단으로 내모는 평가제도를 학생 개개인의 성취를 높일 수 있도록 교사와 학생이 상호협력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것은 왜곡된 우리 교육을 바로잡을 수 있는 작은 돌파구가 될 수 있다. <나는 가수다>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평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모든 개개인이 자신의 열정과 실력을 발산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평가가 공교육에서 실현될 날을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노동세상 6월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교육, #경쟁교육, #상대평가, #평가, #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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