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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단도직입적으로 털어놓을게요. 남자친구가 바이섹슈얼(양성애자)이래요. 아니, 이건 제 표현이고 그는 '군대에서 남자랑 한 적이 있다'고만 말하고 싶어했어요. 이것도 꽤 오래 고민하다가 털어놓은 것 같았구요. 말하고 나서도 괜히 말한 것 같다며, 힘들어하는 모습이었어요. 그래서 제3자에게 이런 상담을 한다는 게 죄책감이 들기도 하네요.

남자친구는 그 문제를 일시적인 실수 정도로 생각하더라고요. 그런데 남자친구는 정작 원나잇이라든가 하는 것들에는 치를 떠는 타입이거든요. 사랑없는 섹스는 부정하면서 자신이 했던 남자와의 섹스(혹은 연애, 군대에서 5개월 정도면 짧은 기간이 아니잖아요? 제대 후에도 만났었다고 하고…)는 인정하려들지 않아요.

평소 모습에서 때때론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자)처럼 보이기도 했고, '바이(양성애자) 성향'이 있네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깊은 정도인 것 같아요. 본인의 성향을 인정하려들지 않으니 저는 더 어찌할 바를 모르겠고요.

한동안 제 자신도 혼란스럽고, 자꾸 상상하게 되고 그래서 힘들었거든요. 이제 그 단계는 지났지만, 여전히 그 생각을 떠올리면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은 것 같아서 힘들어요.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방법도 잘 모르겠고… 누군가가 해결해줄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상담해주시면 좀 나아질 것 같단 생각도 들어요.

 동성애를 다룬 영화 <친구사이?>
 동성애를 다룬 영화 <친구사이?>
ⓒ 청년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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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님의 고민을 듣고 나니 새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에 대해 솔직하게 묻고 답하지 못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선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이 뭔가 부담스럽고, 그런 질문을 하면 질문하는 사람이 비정상인 것처럼 보이는 게 현실이죠.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경험에 대해 누구와 이야기를 해야 할지 고민했을 님의 남자친구와 이런 어려운 고민을 접하고 많이 난처했을 님의 모습이 그려져 안타깝습니다.

저 역시 연애 상대가 그러한 고민을 털어놨다면 많이 난처했을 것 같아요.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오랫동안 고민했던 문제를 털어놨는데 그 내용이 남자친구의 가장 깊숙한 내면에 있던, 예상치도 못한 이야기였으니 무척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이 친구의 마음을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이 친구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등등이 머릿속을 맴돌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제3자와 남자친구의 고민을 상담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신다고요? 혹여나 조금이라도 죄책감이나 부담을 느끼셨다면 모두 내려놓으시고, 차분하고 객관적인 관점으로 접근하시길 바랍니다. 저도 최대한 실질적인 도움을 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님이 보내주신 내용을 보면 '남자친구가 양성애자인 것 같다, 괜찮은가?', '남자친구가 남자와 (그것도 꽤 긴 기간) 잔 적이 있으면서도 자신의 양성애적 성향을 인정하지 않는데, 괜찮은가?' 두 가지 고민을 갖고 계신 것으로 파악됩니다.
  
먼저 님은 남자친구의 고백에 혼란스러워하면서도 한 편으론 남자친구가 '바이섹슈얼(양성애자)'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남자친구의 성 정체성이 복잡한 마음과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하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성 정체성은 단순히 한 경험으로 해석하는 문제가 아니라 당사자 스스로 종합적인 경험 및 인식을 통해 내리는 결정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은 오직 본인만이 알 수 있습니다. 님을 혼란스럽게 했던 '남성과 잤다'라는 행동은 '동성애'의 한 모습으로 볼 수는 있지만 이것이 꼭 동성애자나 양성애자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친구가 바이섹슈얼이 아니라고 한다면 아니라고 받아들이시는 것이 좋습니다. 혹 바이섹슈얼이라고 해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시면 됩니다.

물론 님이 평소 '바이 성향이 있네' 정도로 생각했던 남자친구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혀 온다면 혼란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남자친구가 "나 이성애자야"라고 고백하는 것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남자친구가 이성애자인가, 양성애자인가 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남자친구가 지금 님을 사랑하고, 현재 님에게 가장 충실하냐는 것입니다. 옆에서 고민을 나누는 입장에서 봤을 때 만약 남자친구가 그렇다면 님이 남자친구의 성정체성을 두고 고민하는 점은 이해가 되나 그것을 연애문제와 결부지어 본인의 탓으로 돌리거나 과도하게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혹시나 '나보다 남자가 더 좋은 거 아냐?'라는 생각을 하고 계신다면, 그건 '혹시 나보다 다른 사람이 더 좋은 거 아냐?'의 문제와 같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뒤의 질문에 님이 자신 있고,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 앞의 질문 역시 걱정 안 하셔도 된다는 말입니다.

'성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남자친구, 괜찮을까'하는 님의 두 번째 고민은 남자친구의 몫으로 남겨두세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성정체성은 자신만 알 수 있기에' 본인에게 직접 얘기를 들어봐야 확실히 알 수 있으며 본인이 정리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엔 남자친구의 성정체성이 님과 남자친구의 관계를 결정짓는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님에게 남자친구 옛 연애 대상의 성별이 다르다는 점은 혼란일 수 있지만 따지고 보면 이 문제는 그 대상의 성별이 남자냐 여자냐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다스리기 쉽지 않으시겠지만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실 필요 없습니다. 남자친구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상대가 바로 님인지 여부만 주의 깊게 살펴보시면 됩니다. 제가 보기엔 남자친구분이 지금 님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고민(이러한 고민을 들어줄 상대는 사실 많지 않죠)을 솔직하게 님에게 털어놓은 것으로 보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님과 남자친구, 두 분 모두 어떤 편견을 갖지 않고 이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를 나눠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님이 오늘의 고민을 훌훌 털고 좀 더 행복하게 연애하시길 바라겠습니다.

※ 덧붙이는 말 : 님 못지 않게 남자친구 역시 머릿속이 복잡할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남자친구분이 남자와 잤던 경험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거나 수치심을 갖고 있다면, 그럴 필요 없다고 전해주세요. 참고로 말씀드리면 최근 미국 성의학저널 연구에 따르면 미국 50대 남성의 15%가 '남성과 잔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고 합니다.

[상담가] 이종걸  친구사이 사무국장
▲ [상담가] 이종걸 친구사이 사무국장
ⓒ 이종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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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활동하는 이종걸 입니다. 성소수자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이 공간에서 나누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