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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지진의 강도를 나타내는 단위로 쓰이는 리히터 규모(Richter magnitude scale, ML). 이 단위는 지진계에서 관측되는 가장 큰 진폭으로부터 계산된 로그 값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체감의 강도를 나타내는 척도로 가장 많이 통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리히터 규모 5.0의 지진이 갖는 진폭은 리히터 규모 4.0의 지진보다 진폭이 10배 크다(규모가 1.0차이라면 이는 로그 10에 해당하므로 진폭 차이는 10배다. 규모 차이가 2.0일 때는 진폭 100배의 격차를 보인다).

여기에 지진 발생 시 방출되는 에너지는 지닌 파괴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이때 발생하는 진폭의 3/2배 만큼 커진다. 그래서 리히터 규모가 1.0 만큼 차이 나게 되면, 방출되는 에너지는 31.6(=10의 1.0 제곱 값의 3/2 제곱)배 만큼 커지게 되고, 리히터 규모가 2.0 차이를 보이면 1000(=10의 2.0 제곱 한 값의 3/2 제곱)배의 에너지가 방출된다.

지진과 등록금의 상관관계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등록금넷과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 주최로 열린 '4.2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시민·대학생 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정부의 반값 등록금 공약 이행을 촉구하며 손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지난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등록금넷과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 주최로 열린 '4.2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시민·대학생 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정부의 반값 등록금 공약 이행을 촉구하며 손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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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등록금 연간 1000만 원, 교육비 연간 2000 만 원' 억지를 써서 꿰맞추지 않더라도, '미친 등록금'이라는 강적을 만나 삶과의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 요즘의 현실은 로그 값으로 계산된 지진의 체감척도와 왜 이리도 닮았는지…. 아니,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지진규모와 피해 정도는 이론값과 꼭 일치하지 않는 것처럼, 강산이 한 번 바뀔 때마다 로그 값으로 뛰는 미친 등록금은 우리의 일그러진 초상화 그 자체다.

연간 천만 원에 육박하는 대학등록금에 학생들의 힘겨워하는 외침, 도대체 그 많은 돈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가. 학생들 대부분이 학자금 대출로 수천만 원씩 빚을 지고 있고, 일부 여학생들은 유흥업소로 내몰리고 있단다.

대학등록금 문제를 다룬 최초의 대중서인 <미친 등록금의 나라>가 요즘 대학가와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오죽하면 제목이 '미친 등록금의 나라'가 됐겠느냐"는 공감과 함께, "지금 당장에라도 반값 등록금이 가능한데, 왜 공약까지 내걸고도 그것을 외면하고 있냐"는 분노도 함께 확산되고 있다.

그러니까 벌써 20여 년 전이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었다지만, 대학 4년간 등록금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던 처절한 나의 등록금 분투기는 요즘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등록금 마감일은 다가오고... 나에게 나타난 구세주

88올림픽 열기로 전국이 떠들썩했던 1988년 8월, 당시 대학 2학년이었던 나에게는 가장 잔인한 여름이었다. 새 학기를 한 달 앞두고 잔인한 2학기 등록의 계절이 시작됐다. 시원찮은 벌이에도 등록금 한번 늦추는 법이 없었던 우리 집에도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80여만 원에 달하는 등록금의 마감일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고, 하숙집 방문엔 '학생, 방값 밀렸음'이라는 쪽지가 나붙기 시작했다. 혹시 하늘에서 돈벼락이라도 떨어지면 좋으련만…. 그런데, 정말로 나에게 '키다리 구세주'가 나타나 등록금을 해결해 주었으니, 난생처음으로 세상이 따뜻하다는 것을 느낀 그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 관련기사 : 내게도 등록금을 대신 내주던 스폰서가 있었다)

이후 군대생활을 마친 1991년 2월, 3학년의 시작은 내게 고된 노동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100만 원이 한참 못 되던 한 학기 등록금은 급기야 군대에 다녀오니 두 배 가까이 껑충 뛰고 말았다. 집안 형편도 크게 나아진 것은 없었다. 오히려 동생까지 서울로 대학에 진학을 하게 되었다. 등록금은 둘째 치고라도 생활비부터 무조건 벌어야 했다.

군대 마치고 복학한 3학년... 노동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 레슨2>의 한 장면.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 레슨2>의 한 장면.
ⓒ (주)프라임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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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수학)을 살려 과외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아파트 단지 여기저기 다 돌아다니고 선배들에게 하소연한 끝에 처음 한두 달은 생각보다 쉽게 과외 일을 할 수 있었다. 실력보다는 싼맛(?)이 먹혀든 것이다(보통 일주일에 두 번 2시간씩 수학영어를 가르치는 데 10만 원). 그러나 결국 소위 명문대생들의 영업력(?)을 견디지 못하고, 더 이상 생활비를 마련할 수 없게 되었다. 그나마 생활비를 만들어주던 과외가 끊기니 앞이 막막했다.

정말 안 해본 게 없었다. 주유소 아르바이트, 커피숍 서빙, 교통량조사, 국가자격증 시험감독, 청소부, 고층 아파트 페인트칠 등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닥치는 대로 다했다. 하지만, 일의 종류와 투입시간이 벌이와 비례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푼돈으로 등록금을 마련한다는 건 참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일은 고되고 시급은 터무니없었다. 이것저것 시간이 많이 들다 보니 정작 공부가 소홀해지는 것도 문제였다.

역시,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꾸준히 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었다. 등록금 마련을 위해선 좀 더 파격적인 일당의 일이 필요했다. 드디어 3학년 여름방학,

'좋아! 짧고 굵게 하는 거야, 짧고 굵게….'

돈 앞에서 누구도 나의 의지를 가로막지 못했다. 오죽하면 이런 각오를 했겠는가. 어떤 일이든 불법 탈법만 저지르지 않는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고소득 직종을 알아보던 중, 얼마 전 친구가 지나가는 말로 툭 던진 '시체 닦기 알바'가 문득 떠오른다.

참기 힘든 고소득의 유혹... '시체 닦기 알바' 들어는 봤나?

시체 닦기 알바는 한번(?)에 10만 원 이상 준다는 소문과 '꼭 술을 먹고 해야 한다' '밖에서 문을 잠근다' 등 괴담을 함께 달고 다녔지만 그것 역시 문제되지 않았다. 몇 날 며칠을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민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그래, 만만한 일은 아니지만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 깨끗하게 닦아 드리고 혼백을 위로한다면 보람 있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거야. 그리 힘든 일도 아닐 거야. 그래 결심했어. 군대까지 갔다 왔는데 뭘 못하겠어?'

겁은 났지만 한 번에 10만 원 이상 준다는 소문은 정말 참기 힘든 유혹이었다. 돈에 눈이 멀어 버린 나의 슬픈 자화상이었다. 그런데 그 일을 어디서 한단 말인가? 일자리를 알아보는 것도 큰 문제였다. 과연 '시체 닦기 알바'를 어디 가서 누구에게 물어볼 것인가?

용기를 내어 동작구에 있는 한 병원의 영안실을 찾았다. 입구에서부터 풍기는 향냄새가 코를 찌른다. 사무실로 쭈뼛하며 들어서자 중년의 아저씨가 퉁명스럽게 맞이한다.

"뭔데?"
"저기…, 아르바이트 문의하러 왔는데요."
"여기 사람 안 뽑아, 그리고 젊은 사람들은 할 일도 없어…."
"아는데요, 저…, 시… 체… 닦…는… 일을 하고 싶어서요"
"뭐? 시체??"
"네…."
"야, 이 녀석아! 어떤 유족들이 이름도 모르는 새파란 녀석에게 시신을 맡기냐? 누가 그러던? 여기 가면 그런 일 준다고?"
"아니…, 누가 그런 건 아니고요, 궁금해서 찾아왔어요."
"허허허, 별 미친 녀석 다 보겠네. 요즘 그렇게 일하기가 힘드나? 너 정말 시체 한번 보여줄까? 내가 알기론 그런 일은 일절 없으니, 쇼크 받고 정신과 치료 안 받으려면 공부나 열심히 해, 이 녀석아!"

15일에 100만 원 준다는 고소득 알바 '탱크청소'

결국 '시체 닦기 알바'는 미친놈 소리까지 들으며 시도해 보지도 못했지만, 파격적인 일당 욕구는 계속해서 나를 괴롭혔다. 서울에서 고소득 알바를 구하지 못한 나는 방학이 되어 고향(여수)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또다시 '짧고 굵은' 알바를 구하기 시작했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지역 생활정보지에 내 눈을 번쩍 뜨게 한 줄광고가 하나 있었으니,

"탱크청소, 15일 100만원, 대학생 단기알바 환영, 여천공단 내 OO정유"

오로지 고액의 알바를 필요로 했던 나로서는 작업환경이나 난이도 등은 이미 관심 밖이었다. 바로 업체에 연락을 하자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이었을까?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아파트 물탱크 청소쯤이라 몸으로 때우면 될 것이라 얕봤는데, 난이도는 둘째 치더라도 목숨까지 담보로 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현장을 확인한 나는 "생각 좀 해보고 다시 오겠다"라고 말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여기서 나가면 쪽팔림은 둘째 치더라도 2학기 등록금을 어떻게 감당한단 말인가?

 탱크청소는 결코 초보 대학생이 해 낼만한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원형탱크 내부의 새로운 코팅작업을 위해 기존 코팅제를 벗겨내는 일이었다. 사람 두 명이 들어가 그라인더를 이용하여 예전의 코팅제를 벗겨내고 긁어내는 작업이었지만 공기가 공급되지 않고 분진으로 앞이 보이지 않아 쉽게 진척이 되지 않았다.(당시 작업한 탱크와 유사한 탱크)
 탱크청소는 결코 초보 대학생이 해 낼만한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원형탱크 내부의 새로운 코팅작업을 위해 기존 코팅제를 벗겨내는 일이었다. 사람 두 명이 들어가 그라인더를 이용하여 예전의 코팅제를 벗겨내고 긁어내는 작업이었지만 공기가 공급되지 않고 분진으로 앞이 보이지 않아 쉽게 진척이 되지 않았다.(당시 작업한 탱크와 유사한 탱크)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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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탱크는 결코 우리가 생각하는 만만한 물탱크가 아니었다. 난생처음 보는 금속의 원형탱크였다. 말이 청소지, 금속으로 만들어진 원형탱크 내부의 새로운 코팅작업을 위해 기존 코팅제를 벗겨 내는 일이었다. 사람 두 명이 들어가 그라인더를 이용하여 예전의 코팅제를 벗겨 내고 긁어내는 작업이었다. 

8월의 폭염, 상단의 뚜껑을 열고 몸을 겨우 집어넣고 나면 일단 숨쉬기도 곤란했다. 상단에서 환풍기를 통해 그라인더로 벗겨 낸 분진을 배출시키고 있었지만, 새로운 공기가 공급되지 않아 5분 이상 작업하기란 위험한 일이었다. 질식사고는 물론 그라인더 파편으로 인한 위험이 도사리는 목숨을 건 작업이었다.

분진이 가득한 탱크 속에서 마스크와 보안경까지 착용하고 희미한 전등 하나에 의지하여 팔을 뻗어 벽을 문지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작업이 된 부분과 작업을 해야 할 부분이 분간도 되지 않는 것이었다.

15년처럼 느껴진 15일... 코와 입에서는 시커먼 분진 이물질 '줄줄'

높이는 사람 키의 두 배 정도니 그 안을 말끔히 청소하기는 생각보다 힘들다. 1차로 묵은 때 코팅을 벗겨 내면 흡입기를 동원해 뒷마무리를 한다. 말은 쉽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물탱크의 내부가 휑한 것이 아니라 칸막이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15년보다 더 길었던 15일. 탱크에서도 차에서도 집에서도 심지어는 꿈속에서까지 그놈의 그라인더가 나를 따라다녔다. 이윽고 세수를 할 때마다 코와 입은 물론 귀에서까지 분진이 섞인 시커먼 이물질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무리 코를 풀어내도 계속 나오는 것이었다. 일을 마치면 십장(감독)이 매일 삼겹살을 사주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알고 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 이틀 해보다 돈도 받지 않고 나오지 않은 경우가 흔했다.

어디 이뿐이었으랴. 10여 일이 지나니 탱크청소 마무리 작업으로 용접작업이 기다리고 있었다. 초보인지라 용접봉 심부름이나 사포 작업 등 마무리 처리가 주어졌는데, 그만 '용접 아다리'에 걸리고 말았다(정체불명 용어 '아다리'는 현장에서는 일반적인 눈의 이상을 뜻하는 용어로 쓴다).

'용접 아다리'란 자외선 각막염(UV keratitis)을 이르는 것으로, 용접을 처음 하는 사람들이 다음날 눈을 잘 못 뜨는 현상을 말하는데,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괴로운 증상이다.

눈 안에 돌이 굴러다니며 번쩍번쩍... '용접 아다리'까지 날 괴롭혀

강렬한 용접 불꽃을 별생각 없이 바라본 것이 화근이었다. 퇴근할 때부터 눈이 화끈거리기 시작한 것이 그날 밤 잠자기는 포기하고 말았다. 눈을 감고 있어도 섬광이 번쩍번쩍하는 것이, 눈 안에서 돌이 굴러다니는 것 같다. 눈이 까끌까끌하고 눈물이 자꾸 흐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용접을 오래 한 사람들은 잘 안 걸리지만, 초보자들은 잠시만 그 빛을 보아도 바로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았을 리가 없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직접 용접작업을 한 것도 아니고 옆에서 심부름한 녀석이 아다리가 되었으니….

결국 보름 동안 생사를 오가며 처절하게 고생한 후 등록금을 마련했지만, 폭염 아래 탱크 속에서의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고생과 수모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무슨 일이든 돈만 된다면 마다지 않고 달려들었던 나의 20대, 20여 년 전의 경험을 분투기로 쓰는 자체가 호강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당시만 해도 이발소에 가면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는 푸시킨의 시가 우리를 위로했지만, 이젠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젊은 영혼의 울음을 위로하고 있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이런 대학 가려고 고교시절 쉬는 시간도 없이 자리에 앉아 엉덩이가 그토록 짓물러가며 공부했을까?

돈이 없어 공부를 못 하는 일이 없어야 하지만, 등록금 때문에 사람이 목숨을 잃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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