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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남원시 주천면 고기리 737번 도로변에는 선녀들이 노닐던 곳이 있다. '선유폭포(仙遊瀑布)', 지리산 폭포 중에서는 그리 높지 않은 폭포이다. 이곳은 남원에서 지리산 정령치로 오르는 도로변에 자리 하고 있다. 신경을 써서 길을 가지 않으면, 자칫 한눈을 팔다가는 그냥 지나치기 십상인 곳이다.

 

남원에서 주천을 지나 60번 지방도를 이용해 운봉을 향하다가 보면, 좌측으로는 춘향묘를 오르는 계단이 나오고 우측으로는 육모정이 있다. 그 앞을 지나면 용호서원 앞을 지나게 된다. 이때부터 도로는 지리산 도로답게 구불거리며 마냥 하늘을 향해 오른다. 다시 평지로 내려 내기삼거리를 지나고 나면 고기삼거리가 나온다.

 

정령치로 오르는 길에는 봄이 오고 있다

 

고기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길을 들어서면 737번 도로가 된다. 3월 27일 봄기운이 밀려오는 지리산 자락을 따라 차가 오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여기저기 눈이 남아 있고, 그늘진 곳에는 아직도 얼음이 채 녹지가 않았다. 그렇게 길을 따라 오르면서 미리 맡아보는 지리산의 봄 냄새에 취하다가 보면, 우측 구부러진 곳에 '선유폭포'라는 간판을 보게 된다.

 

매년 음력 칠월 칠일, 칠석이 되면 천상에서 꽃같이 아름다운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하고 간다는 선유폭포. 물소리가 나는 곳으로 길을 따라 10m 정도만 들어가면, 높지 않은 폭포를 만나게 된다. 폭포는 2단으로 되어 있다. 길에서 들어가는 곳에 7~8m 정도의 폭포와 밑에 소가 있다.

 

그리고 소를 만들며 맴돌던 물이 다시 아래로 떨어져, 또 하나의 소를 만든다. 밑에서 보면 이단으로 형성되어 있는 폭포지만, 길에서 들어가면 그냥 하나의 폭포처럼 착각을 일으켜, 정작 아름다운 모습을 놓칠 수가 있다. 지금이야 이 앞으로 도로가 나 있지만, 예전에는 아마도 지리산 깊은 골에 꼭꼭 숨은 폭포였을 것이다.

 

선유폭포에는 얼음덩이가 그대로

 

역시 지리산이다. 폭포물이 떨어지는 좌우에는 얼음으로 변한 물기둥이 서 있다. 얼마나 깨끗한 물이기에 이렇게 아름답게 얼음조각을 만들 수가 있는 것일까? 눈을 감고 칠석을 그려본다. 손목에 찬 복대를 바람에 나부끼고, 하늘 가득 옷자락을 날리며 내려올 선녀들. 이곳 숨은 폭포에서 그들은 무엇을 망설였을까? 그저 알몸이 되어도 하나도 부끄러울 것이 없었을 것이다.

 

거기다가 지리산의 산신은 '여산신(女山神)'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지리산 골골을 둘러본다고 해도, 같은 여자이니 부끄러움을 탈 필요가 없다. 그래서 이곳에 내려와 마음껏 주변을 둘러보고 그 아름다움에 취한 것이 아니었을까?

 

선녀만 놀았을까? 선경이니 신선도 있었을 텐데

 

시리도록 맑은 물, 그리고 아직도 얼음이 녹지를 않아 또 다른 멋을 보여주고 있는 폭포. 그야말로 선경이다. 이곳은 선녀들이 놀았다고 하여 '선유폭포'라고 한다지만, 아마도 그 아름다운 경치에 반한 신선들이 즐기는 '선경(仙境)'이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난 이 선유폭포를 오히려 신선들이 노닐던 곳으로 보고 싶다. 그래서 선녀와 신선들의 멋진 사랑이야기 한 토막이 전하고 있을 법도 하다.

 

오늘 나도 신선이 되어 이 지리산의 골짝 선유폭포에서 하루를 보내고 싶다. 흐르는 물에 손을 담가본다. 내장까지 얼어붙는 듯하다. 손으로 떠 목에 넘겨본다. 가슴이 시리다. 한여름에도 냉기가 감돈다는 곳이니, 3월 말에 물이야 오죽할까? 세속에 더럽혀진 내 손으로 인해, 이 시리도록 맑은 물이 오염이라도 될까 봐 얼른 손을 빼낸다.

 

오늘 이 맑은 물에 몸을 담그면, 그동안 더럽혀진 몸과 마음이 이 물처럼 맑아질까? 폭포를 떠나면서도 내내 길가에 자리하고 있음이 아쉽다. 사람들의 눈이 없다면, 그저 망설임 없이 '텀벙' 뛰어들고 싶은 그런 마음인데.


태그:#선유폭포, #지리산, #남원, #선녀, #칠월 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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