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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답사를 하고 난 후 자료정리를 하다가 보면, 가끔은 답사 시기가 너무 지나버려 올리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거의 매주 답사를 나가기 때문에, 늘 새로운 문화재 소개를 먼저 하기 때문이다. 가끔은 그렇게 새로운 것을 소개하다가, 정말로 꼭 소개를 하고 싶은 문화재가 누락되는 경우도 있다.

 

답사를 하는 입장에서는 그렇게 누락된 문화재 하나가 참 마음이 아프다. 고생을 많이 했다거나, 그것이 보물급으로 소중하거나 그래서만은 아니다. 그저 단순한 문화재라고 해도 '이런 것은 꼭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문화재가 있기 때문이다. 전남 구례군 토지면 구산리에 있는,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15호인 '구산리 입석'이 바로 그중 하나이다.

 

3월 2일 구례군을 답사하면서 구산리 입석에 들렀으니, 꽤 여러 날이 지났다. 입석은 '선돌'이라고도 하며 거석(巨石)문화의 일종이다. 입석은 태양숭배 사상과 같이 원시신앙과 관련되는 유적으로 알려져 있다. 역사시대에 들어서는 입석이 마을의 종교적인 숭배 대상이 되거나, 신령한 지역을 알리는 경계 표시로도 사용되었다. 또한 액막이 역할을 하거나, 이정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다양하게 사용되어 온 입석이지만, 주로는 마을의 수호신으로 마을 입구에 세워놓아 신표의 역할을 하게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구산리 입석은 도로변에서 조금 안으로 들어가 있다. 지리산에서 섬진강으로 흘러드는 내 가까이 자리하고 있는 이 입석은, 묘표석의 역할을 했던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고 안내판에 적혀 있다.

 

 

묘표석이라니요? 입석은 신석기시대 유적인데

 

구산리 입석은 높이가 2,4m에, 둘레가 2,6m 정도이다. 이런 크기라면 현재 전하는 입석 중에서는 규모가 큰 편이다. 구산리 입석 바로 옆에는 묘가 하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구산리 입석이 묘를 표시하는 묘표석이 아닐까 하는 추정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구산리 입석이 서 있는 주변을 본다고 하면, 아마도 이 입석이 먼저 서 있는 곳에 묘를 쓴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선돌(입석)은 신석기시대의 유적이다. 신석기시대의 묘는 대개 고인돌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옆에 마련한 묘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봉분이기 때문에 묘표석이 될 수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구산리 입석이 서 있는 곳 가까이에, 도로로 나가는 곳에는 큰 돌무더기가 있다. 주변에는 나무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서낭당 숲이었을 것이다. 그 앞이 구례에서 하동으로 나가는 길목이라는 점을 보면, 이 돌무지는 행인들의 안녕을 위해 돌을 쌓고 비손을 하는 곳으로 보인다.

 

지금도 이 돌무지 앞에는 커다란 돌이 있고, 그곳에는 음각된 글이 있지만 정확한 것을 읽을 수가 없다. 돌무지와 입석의 거리가 불과 몇 십 미터 정도라는 것을 보면, 아마도 이 돌무더기는 행인의 안녕을 빌던 서낭이었고, 입석은 마을 초입에 서 있던 수호신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해질녘 찾아간 구산리 입석에는 석화(石花)가 가득 피어나 있었다. 입석은 위가 약간 둥그스레하고, 거의 일직선으로 생겼다. 선돌 옆에는 묘가 1기 있는데, 주변을 철책으로 묘와 함께 둘러놓았다. 마치 이 묘를 지키고 있는 보초라도 되는 듯, 입석이 서 있다.

 

묘와 입석을 보면서 '그 묘 정말 제대로 된 명당일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어느 묘를 입석이 지키고 있을 것인가? 마치 평생 시묘살이라도 하듯 서 있는 입석 한 기. 그 묘가 정말로 부러웠다.


태그:#구산리입석, #구례군, #문화재자료, #토지면, #신석기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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