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문화재 답사를 하다가 보면 재미있는 일들도 많다. 가끔은 교통사정이 안 좋은 곳을 들렀다가 본의 아니게 마을회관 신세를 지기도 한다. 그런 날은 용케 술 한잔을 얻어 마실 수 있는 횡재를 하기도 했다. 요즈음이야 차편이 좋아져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세상이 각박해져서 그런 것인지 그런 호사를 누릴 기회는 영 사라진 듯하다.

 

그렇게 마을회관에서 하룻밤을 지새우다가 보면 참 많은 이야기들을 듣게 된다. 그중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는, 역시 남녀 간에 정분난 이야기다. 그런 이야기를 듣다가 보면 날이 밝는 줄도 모른다. 3월 12일 아침 일찍 진주성을 한 바퀴 돌았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아침 운동을 하는 사람들만 성 안길을 열심히 걷고 있다. 그러나 정작 내가 들어가보고 싶었던 의암으로 들어가는 촉석루 입구는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진주성 공북문으로 들어가 북장대 방향으로 걸어가면 암문이 있다. 그 암문 위편에 보면 석재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석재는 화강암으로 되어 있으며, 그중에는 용머리와 같은 것들도 보인다. 도대체 성 안에 이런 석재들이 왜 있는 것일까? 그 의문은 곧 풀렸다. 안내판을 보니, 그 석재들은 '용다리'의 석재들이라는 것이다.

 

 

눈물겨운 사랑 이야기가 깃든 용다리

 

용다리는 경남 진주시 동성동 212-1번지, 지금 삼성생명 건물이 있는 곳 부근에 있었다고 한다. 다리의 양편에는 용머리를 조각해 놓아, 이 다리를 '용다리'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용다리에는 아주 슬픈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루지 못한 사랑의 이야기다.

 

전설은 늘 흥미진진하다. 아마도 이런 내용이라면 '전설의 고향'의 메뉴가 됨직도 하다. 슬픈 전설의 내용은 이렇다.

 

고려 초에 진주의 어느 마을 군수인 이씨에게는 딸이 셋 있었다. 그런데 그중 둘째 딸은 출가를 하자마자 남편이 죽고 말았다. 시집을 가자마자 신랑이 죽었으니, 둘째 딸은 그대로 친정으로 돌아와 사는 수밖에. 그런 아씨의 슬픈 모습을 볼 때마다 군수 집 머슴인 돌쇠는 마음 아파했고, 그 연민은 곧 짝사랑으로 변해버렸다.              

 

둘째 딸도 우직한 돌쇠에게 마음이 끌릴 수밖에. 그러나 신분의 차이를 넘어설 수 없었는지라, 아씨는 그만 말을 못하고 상사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 그런 아씨를 묻으러 가야 하는 돌쇠의 마음은 오죽하였으랴.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듯했을 것이다. 그렇게 아씨의 장사를 지내러 가던 돌쇠가 용다리 위에서 물을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그 물속에 아씨가 보였다는 것이다. 돌쇠는 "아씨!" 하고 소리쳐 부르다가 그만 미쳐버렸단다. 장사를 마친 군수 이씨는 딸이 죽은 마을을 떠나려고, 용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그러나 뒤따라오던 돌쇠가 보이지를 않는 것이다. 군수가 돌쇠를 찾아보니, 돌쇠는 다리 옆 고목에 목을 매고 죽어 있었다. 신분의 차이로 이루지 못한 아씨와 돌쇠는, 그렇게 슬픈 이야기만을 남겨놓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런데 그 뒤로 이 용다리에는 유난히 많은 개구리들이 모여들어 울었다. 사람들은 그 개구리 울음소리가 돌쇠의 한 맺힌 울음이라고 했단다. 그런데 이 용다리를 부부가 건너거나 남녀가 함께 건너면 개구리가 울지를 않았다. 그리고 상사병에 걸린 사람이 두 번만 다리를 왕복하면 씻은 듯이 병이 나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죽은 돌쇠가 이루지 못한 사랑을, 남에게라도 이루게 해주려는 마음이 있어서 그렇다고 믿었다.

 

용다리, 다시 볼 수 없을까

 

6·25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도 아들을 낳지 못하는 사람들이 돌쇠가 목을 매 죽은 고목에 와서 빌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부서진 용다리의 조각만이 쓸쓸하게 진주성 안에 자리하고 있다. 다리를 구성했던 돌들의 양은 꽤 된다. 그 중에는 돌다리의 양편에 조각을 했다는 용의 조각도 보인다. 그런가하면 용의 몸체 부분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문양들도 눈에 띈다.

 

지금은 거리가 들어서면서 다리가 놓였던 개울도 사라지고, 다리를 이루었던 돌들만 진주성 안에 놓여 있다. 성 앞 어느 곳에 남은 석재를 이용해 용다리를 다시 꾸밀 수만 있다면 좋은 구경거리가 될 텐데. 북장대로 오르면서 내내 아쉬움만 커진다.


태그:#용다리, #전설, #진주성, #고려 초, #석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