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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시 연산면 연산리 송불암에 자리하고 있는 고려시대의 미륵입상
▲ 미륵불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 송불암에 자리하고 있는 고려시대의 미륵입상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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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 75번지에는, 충남 문화재자료 제83호로 지정된 석조미륵입상 한 기가 서 있다. 앞으로는 노송 한 그루가 자리를 하고 있어, 이 미륵입상과 어우러져 또 다른 풍취를 보이고 있다. '송불암 미륵불'로 명명된 이 미륵불은 고려시대의 거대불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원래 이 미륵불은 소나무의 가지 아래 있었다고 한다. 2000년까지도 소나무 가지 아래 미륵불이 자리하고 있어, 마치 소나무가 미륵불을 덮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소나무가 자라 가지가 밑으로 쳐지면서, 마치 미륵불을 보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고. 그런데 소나무가 커지자 가지로 인해 미륵불이 해를 입을 것 같아, 미륵불을 뒤로 조금 물려 놓았다고 한다.

송불암 미륵불은 머리에는 사각의 보관을 쓰고 있다. 얼둘은 통통한 편이며 선이 뚜렷하다.
▲ 얼굴 송불암 미륵불은 머리에는 사각의 보관을 쓰고 있다. 얼둘은 통통한 편이며 선이 뚜렷하다.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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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는 좌편견단이며 왼손은 가슴께로 올리고 있다
▲ 가슴 법의는 좌편견단이며 왼손은 가슴께로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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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당을 잡아준 지관이 '왕퉁이'에 쏘여죽다

'왕퉁이'는 말벌을 말하는 것이다. 이 송불암 미륵불에는 왕퉁이와 지관에 대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고정리에 조선조 초기까지 마을을 이루고 살았던, 김씨 가문의 허씨 부인과 관계가 있는 전설이다. 허씨 부인이 세상을 떠나자 횡령고개 너머 벌곡 쪽에 사는 풍수를 잘 보는 스님이, 부인의 묘 자리를 잡아 주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부인을 묻으라고 잡아준 묘 자리가 '왕퉁이혈'이라, 지관은 자신이 황령재를 넘은 다음에 하관을 하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몇 번이고 당부를 한 지관은 부지런히 황령재를 넘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이곳 송불암 밖에 오지를 못했는데, 유족들이 지관이 황령재를 넘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하관을 시작했다. 하관을 하려고 묘 자리를 파자, 왕퉁이 한 마리가 땅속에서 날아올라 지관을 뒤쫓았다. 

하단의 치마의 선은 부드럽게 표현을 하였으며, 이중의 치마로 꾸며졌다
▲ 치마 하단의 치마의 선은 부드럽게 표현을 하였으며, 이중의 치마로 꾸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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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침돌인 대석은 연꽃을 새겼으며, 그 위에 발을 따로 조성하였다
▲ 대석 받침돌인 대석은 연꽃을 새겼으며, 그 위에 발을 따로 조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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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령재는 논산시 연산면에서 벌곡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이 고개를 넘을 때까지는 하관을 하지 말라고 당부를 한 지관은 부지런히 걸었지만, 황령재를 넘지 못하고 뒤 쫓아온 왕퉁이에 쏘여 죽고 말았다. 허씨 부인의 유족들은 그 자리에 지관인 스님을 묻고, 미륵불을 세웠다. 바로 그 미륵불이 현재 '송불암 미륵불'이라는 것이다.       

고려시대에 조성된 거대석불입상

미륵은 미래에 이 땅에 오셔서 중생을 구제할 부처님을 말한다. 이 송불암 미륵불은 고려시대에 조성된 거대불로 '제문석불'이라고도 부른다. 이 송불암 석조미륵입상의 머리에는 커다란 사각형의 보관이 얹혀 있다. 얼굴은 둥글고 인자한 편이다. 그런데 석불의 눈이 이상하다. 눈이 지나치게 강조가 되었는데, 그 눈에 눈동자를 인위적으로 붙여 우스꽝스런 모습이 되었다.

오른팔은 밑으로 내려 붙였는데, 손 모양을 보면 무엇인가를 잡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 팔 오른팔은 밑으로 내려 붙였는데, 손 모양을 보면 무엇인가를 잡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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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불암 미륵불의 발은 몸에서 떨어져 따로 조각이 되어있다
▲ 발 송불암 미륵불의 발은 몸에서 떨어져 따로 조각이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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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과 코 등의 선이 뚜렷하고, 볼에 살이 올라 통통한 편이다. 목에는 삼도가 표현되어 있으며, 목은 몸체에 비해 조금은 굵은 편이다. 법의는 왼쪽 어깨에 걸쳐 아래로 내려트렸다. 법의의 선은 부드럽게 표현을 하였으며, 허리 밑으로 내려가면 안과 밖의 치마를 따로 입은 듯하다. 이런 표현은 고려 초기에 조성된 거대석불에서 많이 나타나는 법의의 형태이다.

따로 떼어내 조각한 발, 여유로운 표현

손은 왼손은 가슴께로 끌어올리고, 오른손은 아래로 곧게 내려 옆에 붙였다. 미륵입상의 발은 따로 떼어 조각을 해 받침돌 위에 놓여있다. 미륵입상을 받치고 있는 받침돌인 대석은 둥근 모양으로 조성을 하였으며, 연꽃문양을 겹으로 조각하였다. 주변에는 주춧돌이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이 미륵입상이 전각 안에 모셔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송불암 미륵불은 원래 앞에 서 있는 소나무 가지아래 있었다고 한다
▲ 미륵불 송불암 미륵불은 원래 앞에 서 있는 소나무 가지아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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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을 간직 한 채 서 있는 송불암 미륵입상. 천년 세월을 그렇게 눈을 크게 뜨고 서 있는 것은, 왕퉁이에게 다시는 쏘이지 않으려는 것인지. 아니면 주변에 마음 아픈 중생들을 지키려는 것인지. 천년 세월을 서 있는 그 모습에, 고개를 숙이고 마음속으로 빌어본다. 눈을 더 크게 뜨시고, 이 땅에 못된 인간들에게서 여린 중생들을 지켜달라고.

덧붙이는 글 | 논산 연산에 소재한 송불암 미륵불의 답사는 3월 13일에 다녀왔습니다.



태그:#송불암 미륵불, #논산 연산, #문화재자료, #고려,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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