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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월요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거리미사'에 참례하고 내려오는 일에 어제(14일)는 새로운 방법을 써보았습니다. 서산까지 차를 가지고 가서 서산문화회관 광장에다 차를 놓고 버스터미널까지 걸어간 다음 버스를 타고 서울에 갔다가 미사 참례 후 오후 9시 50분 마지막 버스를 타고 서산으로 내려와서 내 차를 가지고 집에 돌아오는 방법이었습니다. 어제 처음 시도해본 것인데, 앞으로는 그 방법을 많이 활용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은 승용차를 이용하거나 태안에서부터 버스를 타고 가는 방법을 취하며 '운전고생'과 '시간손실' 때문에 고심을 겪기도 했습니다. 서울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에게 가져다 줄 짐도 없고 또 나 혼자 움직일 경우에는 버스를 이용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버스를 타고 가면 서울에서 일박을 해야 하고, 다음날 오전 7시 10분 첫 버스를 탄다고 해도 한 나절을 소비해야 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3월 14일의 제15차 ‘월요전국사제시국기도회(거리미사)’는 ‘작은형제회’의 유이규 신부가 주례했고, 예수회의 김정대 신부가 강론을 맡았다.
▲ 미사 주례를 한 수도회 사제들 3월 14일의 제15차 ‘월요전국사제시국기도회(거리미사)’는 ‘작은형제회’의 유이규 신부가 주례했고, 예수회의 김정대 신부가 강론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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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가지고 가면 밤중이나 새벽 일찍 돌아올 수 있으므로 아내의 출근도 도와줄 수 있고, 데리고 사는 여중생 조카아이도 학교에 태워다 줄 수 있고, 또 노친의 아침 공복 시에 '회전전자파광합성 녹말'을 복용시켜 드리는 것도 내 손으로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 이점들 때문에 짐이 있다거나 두 명 이상이 함께 움직일 경우에는 내 승용차를 이용하곤 했습니다. 두 명 이상이 움직일 경우엔 승용차를 이용하는 것이 비용 면으로도 이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밤중이나 새벽에 내려올 때는 길이 막히지 않아 문제가 없지만 오후 낮에 서울을 갈 때는 운전고생이 여간 아니었습니다.

거기다가 내 삶과 글에 공감하지 못하는 어떤 사람이 "환경을 말하는 사람이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매연을 내뿜느냐"고 일갈을 해댄 적도 있어서, 그 기상천외한 시비에도 괜스레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래서 좀 더 고심을 한 끝에 서산까지 차를 가지고 간 다음 버스를 이용하기로 한 것입니다.

태안보다 서산에는 강남고속터미널이든 남부시외버스터미널이든 서울 가는 버스가 훨씬 많습니다. 또 태안에는 상이군경(국가유공자)에게 30%를 할인해주는 일반버스보다 할인을 해주지 않는 우등버스가 많은데, 서산에는 일반버스도 많습니다. 그래서 굳이 서산터미널에서 서울 가는 일반버스를 타는 경우도 흔합니다.

할인이 되지 않는 우등버스를 피하고 일반버스를 탈 때마다 비애를 느낍니다. 국가유공자라는 이름이 이상한 모멸감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왜 그런 차등을 두는지 모르겠습니다. 상이군경은 우등버스를 탈 '자격'이 없다는 선언으로도 느껴집니다. 하여간 30% 할인이 되는 일반버스 승차권을 살 때마다 창피하기도 하고, 기분 더럽습니다.  

14일 저녁의 여의도 ‘거리미사’에는 쌍용자동차와 대우자동차판매주식회사 노동자들이 함께 했다.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해 발언하고 기도하는 것이 종교의 주요 덕목이고 본분임을 믿는다는 말도 나왔다. 쌍용자동차 황인석 노조지부장은 무려 14명의 노조원이 목숨을 잃은 그간의 눈물겨운 사연을 들려주었다.
▲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황인석 지부장 14일 저녁의 여의도 ‘거리미사’에는 쌍용자동차와 대우자동차판매주식회사 노동자들이 함께 했다.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해 발언하고 기도하는 것이 종교의 주요 덕목이고 본분임을 믿는다는 말도 나왔다. 쌍용자동차 황인석 노조지부장은 무려 14명의 노조원이 목숨을 잃은 그간의 눈물겨운 사연을 들려주었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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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이 우등버스 승차권을 구입할 경우에는 일반버스보다 몇 천 원 비싼 요금에다가 30% 할인을 포기하는 금액까지 얹어져서 곱빼기로 손해를 보는 느낌입니다. 그래도 월요일 저녁 서울 여의도 거리미사에 갔다가 돌아오려면 우등버스를 이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강남고속터미널에서 서산으로 오는 오후 9시 50분 마지막 버스는 우등버스인데, 태안까지 오는 버스는 8시에 끝이 납니다.

서산 버스터미널 근처에는 공영주차장도 없어서 서산문화회관 광장에다 차를 놓고 터미널까지 걸어보니 15분이 걸리더군요. 정확히 묵주기도 한 꿰미를 하게 되고…. 베트남전쟁 고엽제 후유증과 관련하여 당뇨·고혈압·통풍 등등 '성인병백화점' 신세인 고로, 오전에만 글 짓는 일을 하고 오후에는 무조건 묵주 들고 걷기운동을 하는 늘어진 팔자이기도 한데, 월요일에는 하지 못하는 오후 걷기 운동을 어느 정도 벌충하는 셈이기도 했습니다.

<2>

일찍이 시를 읽고 읊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군대 시절 베트남 전장에서 시를 많이 외웠습니다. 평생 동안 시를 사랑하고 읊으며 살아왔습니다. 어느 정도 풍류를 즐긴 셈이기도 합니다. 지금이야 전국 곳곳에 '시낭송회'가 있고, 크고 작은 시낭송대회도 열리고 하지만, 내가 열심히 시를 외우고 읊던 청년 시절, 나는 그 방면으로는 얼추 선구자 격이었지요.

주석(酒席)이나 적당한 자리에서 취흥에 시흥이 보태져 시를 읊게 되면 이어서 노래를  부르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시낭송 다음에는 노래가 나가야 제 맛이 나지 싶습니다. 또 노래는 가곡이어야 어울리고…. 내가 시낭송 다음에 즐겨 부르는 노래는 '옛 동산에 올라', '동심초' 등입니다.

구렁이 제 몸 추는 소리 같지만, 나는 노래도 제법 부를 줄 압니다. 시낭송 다음에 '옛 동산에 올라'라든가 '동심초'를 부르면 눈을 감고 감상을 하거나 감탄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7일 저녁의 여의도 거리미사에서는 시낭송을 했고, 14일 저녁에는 노래를 불렀다. 참으로 감사한 시간이었고, 영광된 순간이었다.
▲ 감사와 영광 7일 저녁의 여의도 거리미사에서는 시낭송을 했고, 14일 저녁에는 노래를 불렀다. 참으로 감사한 시간이었고, 영광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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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국작가회의 산하인 '충남작가회의(회장 유용주 시인)' 회원 문인들이 태안의 모항 포구에서 1박2일 모임을 가졌을 때 나도 두어 시간 어울린 적이 있습니다. 시를 서너 편 읊고 나서 노래 두 곡을 뽑았더니, 그들 모두 감성에 죽고 사는 사람들인지라 하나같이 감동에 취한 나머지 온 심신이 무르녹는 표정들이었지요.

아무튼 시낭송 이력들을 많이 지닌 나는 웬만한 자리에서는 시를 읊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시를 읊고 나면 노래도 부르고 싶은 욕구를 느끼곤 합니다. 지난 7일 저녁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거리미사'를 지내며 영성체 후에 시를 두 편 읊고 나니 노래도 부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자제를 하였습니다. 사회를 보시는 김인국 신부님과 사전에 약속된 일도 아니고, 전례 분위기에 이바지하는 것이 될지 자신할 수도 없어서 충동을 참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밤중에 딸아이와 함께 야간 운전으로 집에 내려오면서 거리미사에서 읊었던 시들을 다시 한 번 읊조리고 부르고 싶었던 노래들을 흥얼거리다 보니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언제 또다시 거리미사에서 시를 낭송할 기회를 얻게 되면 시낭송 다음에 노래도 부르되, 원 노랫말로 부르지 말고 거리미사의 지향과 능히 어울릴 수 있는 내용으로 가사를 바꾸어 부르자는 생각이었지요.

미사를 마칠 즈음 신자들과 함께 세 가지 구호를 크게 외치는 천주교 사제들.
▲ '월요전국사제시국기도회'에 함께 하는 사제들 미사를 마칠 즈음 신자들과 함께 세 가지 구호를 크게 외치는 천주교 사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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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나는 홍난파 작곡 이은상 작시인 가곡 '옛 동산에 올라'를 선택하여 노랫말을 바꾸는 작업을 했습니다. 개사 작업을 마친 다음에는 노랫말이 익숙해지도록 시도 때도 없이 연습을 했습니다. 우선 마누라에게 들려주고 딸아이에게도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12일(토) 저녁 대전 유성의 한 음식점에서 있은 큰처남의 회갑연에 참석하여 시낭송 다음에 '옛 강변에 올라'를 선보였습니다. 수십 명 사람들 앞에서 처음 불러본 것입니다.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14일 저녁의 여의도 거리미사에서 부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3>

그런데 13일부터 감기 기운이 느껴지더니 목이 약간 잠기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14일에는 몸 상태도 좋지 않았습니다. 여의도 거리미사에 참례하지 말고 집에서 푹 쉬어야 옳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거리미사에 가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미사에 참례만 하고 노래는 부르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여의도 거리미사 현장에서 김인국 신부님을 뵙는 순간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영성체 후에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미사가 진행되는 시간 내내 후회도 하면서 제발 내 목소리를 허락해주시기를 하느님께 빌었습니다. 목을 아끼기 위해 성가도 제대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가라앉은 목소리라도 어느 정도 나와 주기만 한다면, 감기에 걸려 가라앉은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가 어쩌면 더욱 절절한 감흥을 갖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생각으로 자신을 위안하며 드디어 영성체 후 시간을 맞았습니다.

먼저 가수 엄광현(기타) 김정은(아코디언) 부부의 노래가 있었습니다. 2009년의 '용산미사'에서는 여러 번 보았지만 여의도 거리미사에서는 오랜만에 보는 부부였습니다. 고맙고 반가운 마음 컸습니다.

2009년의 '용산미사'에서는 자주 보았지만, 여의도 거리미사에서는 오랜만에 보게 되어 반가움이 컸다.
▲ 가수 엄광현 김정은 부부 2009년의 '용산미사'에서는 자주 보았지만, 여의도 거리미사에서는 오랜만에 보게 되어 반가움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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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부부의 노래 두 곡 사이에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황인석 지부장과 GM대우자동차 판매주식회사지부 최경민 조합원이 차례로 나와 가슴 아픈 얘기와 함께 굳은 투쟁결의를 보여 주었습니다. 특히 2009년 77일간의 투쟁 이후 14명이 목숨이 잃은 쌍용자동차의 경우는 너무도 가슴 아팠습니다. 

엄광현 김정은 부부의 노래가 끝난 다음에는 김인국 신부님의 부탁으로 성가 봉사를 전담하는 신상훈씨가 세 가지 구호 선창을 했습니다. 이때쯤 나는 김인국 신부님이 내 노래를 잊었나보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면 프로그램이 넘쳐서 다음 주로 돌렸나보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목소리에 자신이 없는 판에 잘됐다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김 신부님이 돌연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가 낳은 소설가 선생님의 노래 한 곡 듣겠습니다"라는 말로 나를 불러내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하느님, 제 목소리를 허락하소서"라고 기도하며 앞으로 나아가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감기로 제 좋던 목소리가 좀 갔습니다. 4대강의 불행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조금은 안타깝고 불행한 일로 생각됩니다"라고 영양가 없는 농담 한마디 하고, '옛 동산에 올라'가 아닌 '옛 강변에 올라'라는 제목을 소개한 다음 노래를 불렀습니다.

역시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실력발휘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 2절의 중간 노랫말을 순간적으로 깜빡 잊어 2절을 다시 불러야 했습니다. 결국 김인국 신부님의 말씀처럼 완성품이 아닌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1절과 2절을 다 불렀습니다. 노랫말이 모든 분들께 공감을 주었지 싶습니다. 이쯤에서 '옛 강변에 올라'의 노랫말을 소개하면서 글을 맺겠습니다.           

옛 강변에 올라 

내 놀던 모래톱에
오늘 와 다시 서니
곱던 은빛 모래
남김없이 사라지고
예 있던 너른 갈대밭
시멘트로 덮였구려.   

지팡이 도로 집고
강변길 돌아서니
물새 떼 놀던 곳도 
죽은 물 넘쳐나고
그 위에 오락선 떠서
흥청망청 하는구려.

14일 저녁의 거리미사에서는 가곡 ‘옛 동산에 올라’의 노랫말을 바꾼 ‘옛 강변에 올라’를 불렀다. 나는 앞으로 기회가 닿는 대로 이 노래를 계속 부르며 살 것이다.
▲ 감기로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지만... 14일 저녁의 거리미사에서는 가곡 ‘옛 동산에 올라’의 노랫말을 바꾼 ‘옛 강변에 올라’를 불렀다. 나는 앞으로 기회가 닿는 대로 이 노래를 계속 부르며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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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4대강 사업, #정의구현사제단, #월요전국사제시국기도회, #여의도 거리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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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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