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경남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에 소재한 마을로, 옛 담이 남아있는 남사 예담촌. 3월 12일 찾아간 예담촌 여기저기를 돌다가 보니, 사수천 옆에 자리를 하고 있는 '사효제(思孝齊)'가 있다. 이 사효제 대문 앞 벽에는 '예담촌 맛집'이라는 간판이 걸려있다. 예담촌에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집들이 여러 채가 있으나, 모두 문이 잠겨있어 들어갈 수가 없다.

 

사효제의 옆집은 보물 제1294호인 '이제 개국공신교서'를 보관하고 있는 집이다. 그러나 수리를 하고 난 뒤라 그런지 대문이 잠겨있고, 안에는 기척조차 없다. 할 수 없이 돌아 나오려다가 사효제를 보니 상당히 오랜 건물인 듯하다. 안으로 들어가 살펴보니, 대문 안에 수령이 520년이나 된 향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마을에서 제를 올릴 때 사용하던 향나무

 

'사효제(思孝齊)'란 '효를 생각하는 마음을 늘 같이 한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 사효제는 영모당 이윤현의 효심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지은 집이다. 숙종 32년인 1706년 아버지를 해치려는 화적의 칼을 자신의 몸으로 막아 낸, 이윤현의 효심을 기리기 위해 나라에서 효자비를 내렸으나 후손들이 사효재를 지었다는 것이다.

 

이 사효재 앞에 심어진 향나무는 2010년 국립산림과학원 측정으로 520년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상나무, 노층나무 등의 다른 이름을 갖고 있는 이 향나무는, 성주이씨 집안과 마을에서 제례를 올릴 때 향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나무 앞에 세운 안내판에는, 이 향나무는 이윤현의 효심을 후손들에게 전하기 위해 심었다고 적고 있다.

 

연대가 맞지 않는 향나무의 진실

 

그런데 이 안내판대로라면 조금은 연대가 맞지가 않는다. 나무의 수령이 520년 정도라면 1490년대에 심어졌어야 맞는다. 그리고 이윤현의 효심을 기리기 위해 심었다면, 1706년에 나라에서 효자비를 내렸을 때이니, 나무의 수령이 315년 정도라야 맞는다. 후손들이 잘 못 알고 있는 것인지, 산림과학원의 측정이 잘못 된 것인지 모르겠다.

 

적어도 이렇게 귀한 뜻을 갖고 있는 나무라면, 그 안내판을 적는데도 정확을 기해야 옳다. 향나무의 크기나 생긴 모습으로 보아도 500년은 지났을 것 같다. 위로 오른 향나무의 키도 상당하려니와, 줄기가 마치 넝쿨로 감아 올라간 듯하다. 이런 모습으로 볼 때 이 향나무의 식재는 영모당 이윤현의 효심을 기리는 일보다 훨씬 이전에 심어졌을 것만 같다.

 

또 하나의 특별함은 대문에 있다

 

사효제에서 또 하나의 특별함은 바로 대문에 있다. ― 자 세 칸으로 지어진 대문은 중앙에 출입구를 두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서 우측에는 광으로 사용한 듯하다. 그런데 좌측에 한 칸은 계단을 담벼락까지 잇대놓고 있다. 그 계단 위로 출입구를 두고, 주변은 모두 토담으로 처리를 하였다.

 

대문 밖에서 보면 담장으로 연결된 대문의 좌측이 이층의 구조 같아 보인다. 반은 돌담으로 연결이 되고, 남은 반에 아랫부분은 판자로 막고 판문을 달아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면 계단을 통해 올라가 역시 윗부분에 문이 있다. 그 안에 궁금해 문을 열어보니, 세상에 이럴 수가. 바로 측간이 대문 윗부분에 자리를 하고 있다.

 

만일 정말 이런 뜻이었다면

 

밖의 담장과 연결된 아랫부분의 판자문은 분뇨를 퍼내기 위한 문이었다. 대문에 달린 측간, 아마도 옆으로 흐르는 사수천으로 침출수가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일부러 땅을 파서 측간을 짓지 않고 높은 대문을 이용한 측간을 만든 것이 아니었을까? 땅을 깊게 파고 측간을 지으면 침출수가 바로 사수천으로 흘러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대문을 이용해 측간을 높게 만들었는지에 대해 설명을 들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측간을 꾸밀 공간이 없는 것도 아니다. 더구나 사효제와 마주하고 있는 대문에 측간을 낼 이유란 없다. 그건데도 대문을 높이고 그곳에 측간을 마련했다는 것은, 시수천으로 흘러들어가는 분뇨의 침출수를 막기 위한 방법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다.

 

효심이 지극한 집안이다. 효심은 모든 것의 근본이다. 그런 근본 안에 자연사랑은 없었을 것인가? 향나무를 정성껏 키운 것만 보아도, 이 집안이 자연에 대해 남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런 집안이니 당연히 사수천으로 흘러들어갈 침출수를 먼저 생각하지 않았을까? 예전에 냇물이란 생활에서 중요하게 사용이 되는 수자원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런 생각을 하였기에, 대문을 이용해 높게 측간을 꾸몄을 것이다. 남사 예담촌을 돌아보면서, 그 어느 것보다도 소중한 마음 하나를 들고 간다. 요즈음 사람들 하는 행동거지를 보면, 더 없이 소중한 사효제의 마음이다.


태그:#사효제, #남사마을 에담촌, #산청군, #향나무, #측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