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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한 겨울이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고 그 빈자리에 포근한 봄기운이 스며드는 시기, 3월이다. 대학가에도 3월의 봄기운이 완연하다. 파릇파릇한 신입생들이, 취업난 속 우울한 졸업식을 거치며 잔뜩 움츠러든 캠퍼스 곳곳에 청춘의 활기를 불어넣는다.

하지만 대학가의 봄은 오직 3월 한 달뿐이다. 4월이면 신입생, 졸업반 할 것 없이 혹독한 취업난을 이겨내기 위해 마음속에 동굴을 파고 저마다 일용할 '스펙'을 쌓기 시작한다. '예외'는 없다. 모두가 비슷비슷한 동굴 속에서 그렇게 4년을 보낸다.

다른 이들처럼 굴 속에 들어앉아 영어문제집과 씨름을 하고 있던 중 <오마이뉴스>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남과는 조금 다른 선택을 한 20대가 있으니 찾아가 보라'는 것이었다. 지난 12일, 그렇게 찾아간 마포구 강북청년창업센터에서 얼굴에 완연한 청춘(靑春)을 띠고 있는 박연진(27) 사이럽스 대표를 만났다.

'눈물나게' 재미있는 20대 CEO 생활

(주)사이럽스 박연진 대표 지난 12일, (주)사이럽스의 사무실이 위치한 마포구 성산동 강북청년창업센터. 이 회사의 20대 CEO 박연진씨가 <오마이뉴스> 20대 시민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 (주)사이럽스 박연진 대표 지난 12일, (주)사이럽스의 사무실이 위치한 마포구 성산동 강북청년창업센터. 이 회사의 20대 CEO 박연진씨가 <오마이뉴스> 20대 시민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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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표는 긴 생머리에 수수한 옷차림, 꾸밈없는 말투로 어플리케이션 개발회사의 CEO라기보다는 영락없는 동갑내기 친구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한 눈에 보기에도 그녀는 활기 넘치는 사람이었다. 취업을 고민하는 또래들의 '불안'이 그녀에게는 느껴지지 않았다. 심술 반 궁금증 반으로 그녀에게 'CEO생활이 재미있느냐'는 첫 질문을 던졌다.

"한 마디로 말씀 드리자면 '눈물나게' 재미있습니다. 어떤 의미냐 하면, 재미는 있는데 정말 힘들어서 울고 싶은 순간들이 많았다는 거죠. 집에서 혼자 울기도 많이 했고요.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 뛰어들었으니까요. 눈물은 나는데 재미는 있고, 그런 거죠(웃음)!"

박 대표는 또래들과 달리 창업이라는 길을 선택한 자신에게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고 했다. 법인등록·세금·계약·거래처 미팅 등 회사경영의 모든 부분들이 생소하고 어렵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녀는 "첫 계약을 하는데 계약서 양식도 하나 없었다"며 "지인을 통해 양식을 배웠지만 계약서 작성법이나 도장 찍는 법을 몰라 또 허둥댔다"고 지난날을 회상했다.

남성위주 IT업계에서 '어린나이의 여성'이라는 것도 그녀에겐 극복해야 할 점이었다. 박 대표는 "제가 나이도 어리고 사회생활 경력도 없다 보니까 종종 거래처에서 무시하는 게 느껴지더라"며 "옷차림이나 화장도 일부러 나이 들어 보이게끔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아직도 배워야 할 것들이 많다"며 쑥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녀가 이렇게 일궈온 (주)사이럽스는 현재 20대 직원 3명으로 구성된 작은 회사지만, '모자뜨기', '하나은행 모바일학당' 등 다양한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하며 업계에서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다. 회사 사정도 조금씩 좋아져 지난해 2월부터 10개월간 6000여 만 원에 달하는 매출을 달성했다.

"저야말로 정말 평범한, '동굴 속 대학생'이었죠"

스물일곱 CEO, 미국 실리콘벨리라면 모를까 한국사회에서는 평범한 호칭이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도대체 어떤 '특별함'이 있는 것일까.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을 갖고 질문을 이어나갔다.

- 박 대표께는 뭔가 특별함이 있을 것 같다. 어떤 대학생활을 보내셨나?
"특별함이요? 저야 말로 재미없는 평범한 대학생이었어요. 어떤 분들은 제게 특별한 능력이나 재주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시는데 전혀 아니에요. 그나마 몸 담았던 마술동아리에서도 워낙 손재주가 없어서 무대에 한 번 서보지도 못 했는걸요(웃음)."

- 정말인가요? 그럼 다른 특별한 경험도 없으신지요?
"한 이동통신사에서 '모바일퓨처리스트' 활동을 했어요. 학교를 다니면서 회사에서 내는 미션을 수행하거나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이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휴대폰으로 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을 구상해 봤다는 점에서 도움이 좀 된 것 같네요."

정말 특별할 것이 없었다. 요즘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하나씩 가입해 활동하는 동아리와 기업 활동이 그녀의 대학생활 대부분을 차지했다. 놀라운 마음에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졌다.

- 그럼 3학년, 4학년 때는 어떠셨어요?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진로고민을 많이 하던 시기였죠. 너무 걱정스러워서 중간에 휴학도 1년 했어요. 그 1년 동안은 자격증과 토익공부를 주로 했고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소위 '스펙'이라는 게 이력서에 한 줄 들어가는 것 말고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나 싶어요."

박 대표의 3~4학년 시절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주변의 수많은 친구들이 떠올랐다. 졸업을 미루고 하루 종일 도서관에 앉아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 토익점수에 목을 매고 있는 친구들. 조금 다르다고 해봐야 문이 좁은 공무원이나 각종 국가고시에 매달려 짙은 우울감에  젖어있는 이들의 모습이 바로 이 시대 청춘들의 단상이다.

대학시절 박 대표도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막연하게 대기업에 취업해야 겠다"는 생각으로 "누구나 이름만 들으면 알 법한 50여 개 기업에 입사 원서를 접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또래들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서류전형에서 탈락했고, 패배감과 열등감에 사로잡혀 눈물을 훔쳐야 했다.

"떨어진 50여 개 회사 불매운동... 동굴에서 나오니 '다른 길' 보여"

박연진 대표와 인턴사원 지난 12일, (주)사이럽스의 사무실이 위치한 마포구 성산동 강북청년창업센터. 이 회사의 20대 CEO 박연진씨와 함께 일하는 인턴사원 최얼(우측)씨
▲ 박연진 대표와 인턴사원 지난 12일, (주)사이럽스의 사무실이 위치한 마포구 성산동 강북청년창업센터. 이 회사의 20대 CEO 박연진씨와 함께 일하는 인턴사원 최얼(우측)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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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준비생들은 알겠지만 입사시험에서 탈락하면 '박연진님 아쉽게도 이번에는 저희 회사와 인연이 닿지 않아…' 이런 연락이 오거든요. 분한 마음에 저를 떨어뜨린 기업들을 대상으로 저만의 불매운동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계속 떨어지다 보니 뭐 하나 구입할 수 있는 것이 없더라고요(웃음)."

박 대표는 "계속해서 굴을 파다보니 바닥까지 내려가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었다"고 취업준비생시절을 회상했다. 그녀는 "그러다보니 동굴에서 나와 주변을 둘러보게 됐다"며 비로소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단다.

이때부터 그녀는 '다른 길'을 찾기 시작했다. 중소기업 취업·공무원시험 응시 등도 그녀가 찾은 '다른 길'이었지만 취업에 성공하고도 '불만족'을 입에 달고 사는 친구들을 보면서 '이렇게 흘러가는 청춘이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박 대표는 대학 졸업을 한 달 남겨놓고 '청춘이 아깝지 않을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 즉 창업을 결심했다. 마침 당시는 국내에 아이폰이 보급되기 시작하던 시기였고,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친구와 개인사업자로 등록돼있던 지인이 박 대표의 생각에 공감해 함께 어플리케이션 개발회사를 설립했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개인사업자형태로 운영되던 회사를 법인으로 전환했다.

취업실패 경험이 '창업'을 결심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을 박 대표도 인정했다. 그러나 그녀는 "중요한 건 취업실패라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극도의 좌절감을 맛보고 주위를 둘러본 뒤 '취업'이란 틀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20대는 틀을 깨고, 사회는 틀 밖으로 나서는 20대 응원해줘야"

어플리케이션 '모자뜨기' 어플리케이션 개발 비용이 부족한 NGO도 모바일에서 다양한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도록 (주)사이럽스가 재능기부를 통해 개발한 세이브더칠드런 신생아 모자뜨기 어플리케이션.
▲ 어플리케이션 '모자뜨기' 어플리케이션 개발 비용이 부족한 NGO도 모바일에서 다양한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도록 (주)사이럽스가 재능기부를 통해 개발한 세이브더칠드런 신생아 모자뜨기 어플리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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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회시스템 자체가 한 번 실패하면 다시 재기할 수 없는 구조예요. 이게 가장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정부나 사회에서 다른 길을 찾는 청년들을 북돋아줘야 해요. 이런 게 있어야 학생들이 '취업'이라는 틀을 깨고 나갈 수 있겠죠. 학생들 보다는 사회가 문제예요."

"취업이란 틀을 벗어나며 여러모로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고 말한 그녀였지만 남들과 '다른 길'을 선택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많은 좌절을 겪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박 대표는 "미국을 포함한 몇몇 나라에는 청년창업 인구가 굉장히 많다"며 "한 번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도와주는 사회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그녀는 미국의 '엔젤투자(창업기업에 담보 및 상환의무 없이 투자하는 방식)' 문화를 언급하며 "한국에서는 벤처캐피탈(벤처기업에 주식투자 형식으로 투자하는 기업 또는 기업의 자본)이 이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초기 지원이나 실패에 대한 안전망 없이 학생들에게만 틀을 깨라고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창업 비용'을 두고서는 "만약 다른 업종을 선택했다면 초기비용문제로 지금까지 이어오지 못했겠지만, 사이럽스같은 IT업체는 노트북과 사람만 있으면 얼마든지 창업이 가능하다"며 큰 돈 없이 창업한 본인의 사례를 설명했다.

그녀가 초기비용으로 지출한 금액은 창업초기 사무실로 사용하던 '1인 창조기업 비즈니스센터' 입주보증금 200만 원(3개월 치 임대료)을 비롯해 개발에 필요한 컴퓨터 구입비용 등 총 460여 만 원이다.

"늘 한 가지 일만 해왔다고 해서 자신의 능력에 선을 긋는 친구들이 많은 것 같아요. 제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다들 취직에만 목을 매는 데에는 물론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있겠지만 '내 능력이 이정도밖에 안 되는데 뭘 하겠어'하는 류의 생각도 있는 것 같아요."

이어 박 대표는 20대 학생들이 비슷한 모습으로 '취업'에만 목을 매는 이유에 대해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럼 일탈을 꿈꾸는 대학생들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고 요청하자 그녀는 한참을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한 마디로 저도 이렇게 하고 있잖아요?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모범생에 특별히 할 줄 아는 것도 없었던 사람입니다. 심지어는 마술동아리에서 마술 하나를 제대로 못 익혀 공연도 한 번 못 올라갔다니까요? 저같이 재주 없는 사람도 사업을 시작해서 잘 해나가고 있어요. '남들과 다른 일을 해보겠다'는 생각을 가지셨다면 그 분은 이미 틀에서, 동굴에서 벗어난 거예요. 능력이나 자질이 별다른 게 아니니 자신감을 가지세요."

"구글처럼 자유분방하면서 힘있는 회사로 키우고 싶어요"

2시간여를 쉬지 않고 달린 인터뷰도 어느새 마무리 지을 시간이 다 됐다. 마지막으로 박 대표에게 '10년 후의 사이럽스가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겠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녀는 머릿속에 그 모습을 그리는 듯 행복한 표정으로 힘있게 답했다.

"외부에 휘둘리지 않고,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독립적으로 자유롭게 펼쳐나갈 수 있는 그런 회사로 만들고 싶어요. 기업들의 외주작업을 하면서 '이렇게는 정말 힘들겠구나'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돈이야 벌 수 있겠지만 그건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은 아니잖아요. 10년 뒤에는 작더라도 사람들의 삶을 좀 더 풍족하게 만들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로 키울 겁니다."

박 대표는 '모델이 될 만한 구체적인 기업이 있느냐'는 질문에 수줍은 듯 웃었다. 이어 "워낙에 크고 좋은 기업이라 말씀드리기 쑥스럽다"며 "구글처럼 자유롭고 힘 있는 젊은 기업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일문일답] "3~4월 정부 지원 사업, 20대 창업자에게 도움"
- 박 대표께서는 20대, 혹은 27살이 어떤 나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인생에서 가장 예쁘고, 좋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뭐가 좋은가', '갈 길도 모르겠고 불안하다'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아름다운 시절임에 틀림이 없어요. 20대 중반까지 배워온 경험을 바탕으로 뭐든지 새롭게 시작해 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지금의 제 나이가 참 좋아요."

- 창업을 할 때 도움이 될 만한 국가정책이나 지원 사업이 있다면?
"일단은 저희가 속해있는 '서울시 청년창업 1000프로젝트'가 있어요. 이 밖에도 매년 3~4월에 정부 지원 사업이 많이 나오는데 금전적으로 부족한 20대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사업들입니다. 보통 사업계획서를 제출해 선정이 되면 지원금을 받는 방식이에요. 이 밖에도 각종 창업지원센터나 대학들에서 창업보육사업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무상으로 사무실을 임대할 수 있어 잘 활용하면 좋습니다."

- 회사 슬로건이 'life is what we make it'인데 무슨 의미인지?
"글자 그대로예요. 요즘은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어플리케이션이 많은데요, 저희도 어떻게 하면 소프트웨어를 통해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인지에 대해 고민했어요. '우리가 여러분들의 삶을 조금 더 재미있고 윤택하게 만들어 드리겠다!' 그런 의미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 대학시절 박 대표의 원래 꿈은 무엇이었나요?
"사실은 제가 어렸을 때부터 누군가를 가르치는 걸 좋아했어요. 그래서 꿈은 선생님이었습니다. 저는 대입 재수를 했어요. 노량진에 일 년 동안 다니면서 공부를 했는데, 그 때 수학을 포기한 단짝 친구에게 제가 일 년 동안 수학을 가르쳤어요. 덕분에 그 해 수능에서 그 친구가 6등급 받던 수학을 3등급을 받았죠(웃음). 재능은 조금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교대에 가기를 원했지만 성적문제로 경영학과에 진학했어요. 사람 사는 게 참 재미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웃음)."

- 창업을 결심했을 때 부모님 반응은 어땠나요?
"많이 걱정하셨죠. 지금도 여전히 걱정이 많으시고요. 늘 '회사는 잘 되냐', '돈은 좀 벌고 있는 거냐'며 매일 물어보세요. 처음에 별다른 반대는 안하셨어요. '안 돼! 무조건 취직해!' 하지 않으셨어요. 기왕 하는 거 '열심히 하라'고 응원해 주셔서 힘이 됐습니다."

- 지인들 반응은 어땠나요?
"처음에는 부모님을 제외하고 누구에게도 창업 사실을 말하지 않았어요. 취업 준비 중이라고 말했죠. 그때만 해도 두려운 마음이 커서 '괜히 말했다가 망하면 어떻게 하나?'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웃음). 작년 가을부터 친구들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는데, 놀랍다는 반응이 많아요.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던 모양이에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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