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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있는 진보 논쟁, 김규항과 진중권 다시 맞붙다

 

다시 두 사람이 맞붙었다. 시작은 오연호-조국 선생이 낸 <진보집권플랜>을 김규항이 한겨레 지면에서 비판하면서다. 그리고 이에 대해 진중권이 보다못해서인지 김규항의 입장을 보다 화려하고 풍자적인 수사적 문장으로 비판한 글을 한겨레 칼럼에 올렸고, 현재는 이에 대해 김규항이 다시 반론을 올려놓았다.

 

혹자는 이 논쟁에 있어 논점이 무엇이냐며 오히려 두 사람의 논쟁을 진보좌파 논객들 간의 소모적인 논쟁으로 보는 시각도 있긴 하다. 하지만 내가 볼 때 김규항과 진중권 두 사람 간의 입장 차이와 논점은 분명하다고 보여지며, 그렇기에 김규항과 진중권의 논쟁은 결코 소모적이라고 생각지 않을 뿐더러, 매우 뜻깊고 여전히 의미 있는 논쟁이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김규항-진중권 논쟁의 핵심에는 진짜 진보좌파가 뭔지에 대한 고민과 맞물려 적어도 현재 진보정당의 입장에서 앞으로 정권재창출에 대한 방법적 모색을 고민한 논의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재의 민주당과 국참당 그리고 진보좌파정당 일각에서도 논의되는 MB정권 교체를 위한 <선거연합> 구도를 어떻게 볼 것이며, 이에 대해 진보를 자처하는 좌파적 입장으로서 참여할 수 있는가 마는가 하는 게 보다 첨예화된 쟁점인 듯 싶다.

 

이에 대해 최근 김규항의 글에서 보여지고 있는 입장은 선거연합 자체는 찬성할 수 있되, 오연호-조국이 주장하는 그런 식의 <진보집권플랜>이나 일각에서 말하는 <민주대연합> 같은 구도에 대해선 분명한 반대를 하는 걸로 보인다. 왜냐하면 김규항이 보기에 그 같은 선거연합은 진보의 가치와 정체성을 훼손하는 선거연합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근거로서 민주당이 장악한 전주시의 버스 노동자 사례를 든다. 반면에 진중권은 김규항의 입장과 달리 현실적으로 선거연합의 구도가 필요하다고 보는 것 같다. 왜냐하면 진중권이 보기엔 현재의 진보정당은 집권 전망도, 수권 능력도 없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일전에도 이와 연관된 비슷한 문제인 진보좌파 정당의 이해 문제와 행보를 놓고 논쟁한 적이 있다. 솔직히 나 자신이 아직 순진해서인지는 몰라도 내가 보기엔 두 사람의 입장 모두 장기적으로 크게 볼 때 그닥 다른 입장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단지 진보정당으로서의 집권을 창출하기 위한 과정에 있어 현실 타개의 방법으로 현재의 <선거연합>을 내다보는 입장 때문에 서로 나누어져 있는 것일 게다.

 

이에 대해 굳이 어느 한 쪽의 입장을 분명하게 선택해서 미리 말한다면, 나는 MB정권 교체를 위한 진보집권플랜이나 민주세력과의 <선거연합> 구도에 찬성하는 입장에 서 있다. 하지만 진보좌파에 대한 개념 이해는 김규항의 입장에 가깝다. 나의 이런 입장은 단순 절충식의 양비론적인 견해가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양립 가능한 일관된 관점에서 나온 것임을 말씀드리고자 한다.

 

일단 두 사람의 논점 차이를 간략히 도표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민주세력과 진보세력 간의 선거연합 구도가 진보집권 플랜에 도움을 줄 것인가

 

물론 김규항의 말대로 노무현이나 이명박이나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애기도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실제로 그러한 면도 있다. 알다시피 특히 신자유주의에 취약했던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한계를 우리는 너무나 절실히 목격해 오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 영향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경험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반면에 '그 나물에 그 밥'이 아닌 경우 역시 분명하게 현존했다. 내가 볼 땐 MB정권에 이르러 훨씬 더 빈익빈 부익부 같은 계급 문제가 고착화될 뿐더러 경제 문제 뿐만 아니라 알다시피 언론 통제나 대중 표현에 대한 억압의 기제들도 분명하게 강화되었다고 본다.

 

그렇기에 나의 고민은 우리 사회는 정말로 공명정대한 <민주화된 사회>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민주개혁세력들도 여전히 <자유>라는 가치를 끌어오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들에 대해 김규항이 <자유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였듯이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 시대 역시 정치와 경제적인 면에서 민주화된 사회를 이루었다고 말하긴 힘들다고 본다. 다만 현재의 MB정권에 비해서만 그렇다고 볼 수 있을 정도다.

 

내가 볼 땐 진정한 진보좌파라면 궁극적으로는 민주, 자유, 민중, 시민 이러한 개념들도 결국엔 양립가능한 차원으로 소통할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필자는 여기서 이런 개념들에 대한 개념 놀이까지 펼칠 생각은 없다. 어차피 그 같은 각각의 개념들도 저마다 자신들이 지닌 철학적 전제의 맥락에서 재개념화되고 있는 것 뿐이기에 정작 본격적으로 진짜 진보좌파 개념이 뭔지를 논의하려면 서로 간의 궁극적 관점인 그 <철학적 프레임>까지 논의되어야 할 터라 이곳 지면상으론 부득이하다.

 

진중권은 아예 좌파개념을 헌납하겠다 식의 조소를 보내기까지 했다. 어찌되었든 현재의 진보정당은 대안 부재라는 것이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진짜 진보가 뭐냐 어느 입장이 진짜 진보냐 하는 구분을 넘어서 도대체 어떤 방법이 좀 더 합리적일 수 있느냐(여기서의 합리란 말은 근대적 의미가 아님) 하는 것이다. 즉, 적어도 이전보다는 좀 더 진보좌파의 집권에 더 가까울 수 있고, 지금보다 더 나을 수 있느냐의 고민에 놓여 있다.

 

고백하건대, 나는 지난 과거 대선에선 김대중을 찍었고, 그가 대통령이 된 지 얼마되지 않아 그 실망을 맛봤다. 그렇기에 노무현을 찍지 않고 진보정당의 정권을 소망했고 이를 지지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김규항의 말대로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물론 한편으로는 노무현을 응원하긴 했으나, 당시 노무현을 찍지 않은 것에 대해서만큼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자, 그런데도 왜 나 자신은 현재의 구도에선 진보집권플랜을 위한 선거대연합을 찬성하는 것인가? 가장 큰 이유는 진보좌파 정당으로서의 정치적 운신이 적어도 MB정권 때와는 분명하게 다르다는 점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한나라당이 재집권하길 정말로 바라지 않는다. 또한 나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한계와 실패들도 결코 잊어선 안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이 한계와 실패는 노사모나 민주개혁 세력진영일수록 결코 망각되어선 안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좌파의 활동은 민주개혁 세력이 설령 집권한다고 해도 적어도 MB와 한나라당이 집권할 때보다는 훨씬 더 운신의 폭이 높다고 보고 있으며, 그러한 시스템에선 진보로서의 가치가 좀 더 빛을 발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김대중 정권을 거치면서 민주노동당은 원내로 진입을 하였고, 노무현 정권때의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활약들은 비록 소수였으나 참으로 눈부신 것이었다. 말 그대로 일당백의 자랑스런 진보좌파정당 의원으로서의 행보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조차도 그리울 정도다.

 

민주세력과 진보좌파 간의 선거연합 구도로서 대선을 치러본 적이 있었나

 

나로선 늘상 얘기하는 거지만, 부처님 말씀에 3층집을 짓고자 할 경우 3층부터 지을 순 없는 노릇이라고 했다. 결국 진보좌파정권의 창출 플랜은 1층부터 차근히 지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적어도 남한 사회에서 이를 일궈내려면 오랜 기간이 필요할 것이며, 어떤 면에서 진보정권 창출 과정에서 선거연합을 통한 그같은 과도 시기를 거치는 것도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행보라고 생각된다.

 

물론 이에 대해 김규항의 입장은 여전히 민주개혁진영과의 선거연합을 반대하는 것이야말로 1층부터 집을 짓는 일이라고 계속 고집스럽게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진보의 가치를 훼손한다고 보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는 역으로 현재의 무기력한 진보좌파 진영이 보여주는 현실적 대안의 부재를 말해줄 뿐이다. 그런데도 현재의 김규항은 오히려 이를 대중성 강박으로 처리해버리고 만다.  

 

만일 그러한 반대를 고수하는 것 자체를 진보의 대안이라고 여긴다면, 이 또한 여전히 공허한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바라는 건 현실을 위해 이상을 버리자는 것도 아니며, 현실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이자는 것도 아니다. 현실은 현실이기에 이상에 도달하기 위하여 한 걸음부터 차근히 목표하는 이상을 향해 함께 나아가자는 것이다. 여기에 진보진영의 창조적 모험 시도도 함께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치적 견해조차 표방하기 힘든 집권 시대와 그나마 이것이 자유롭게 허용되는 집권 사회에서의 정치적 활동이란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사실상 김규항이 근거로 들었던 전주의 사례는 어떤 면에서 일면적이다. 물론 그의 주장을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신자유주의의 문제 역시 결국엔 정치적 운신의 폭이 넓은 상태에서 이를 제기하는 것이 내가 보기엔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된다. MB정권 하에서는 신자유주의 문제는 고사하고 걸핏하면 파쇼적인 언론 대중 매체에 대한 통제 문제로까지 번번히 애먹었잖은가. 군사독재시절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표현의 자유 문제까지 거론되는 것 자체는 대한민국 정치 역사의 퇴보이자 어느 정도는 불필요한 낭비였을 따름이다.

 

되려 MB정권 하에서 어쭙잖게 보수 개신교 세력들과 레드 콤플렉스들만 잔뜩 활보하고 있는 현실을 보노라면 참으로 마음이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물론 김규항이 우려하듯이 진보좌파의 정체성 변질을 걱정하는 마음도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하지만 이는 선거연합 과정에 임하는 전략적 태도와 협상의 문제이기도 하다. 정작 현실적으로 볼 때도 민주세력들과의 선거대연합 역시 당장의 현실에선 매우 쉽지 않아 보일 만큼 다소 요원한 점마저 느껴진다.

 

그렇기에 민주당과 국참당 일각에서도 논의되는 선거대연합에 가능하면 현재의 진보세력들도 참여를 시도해 볼 수 있다고 보며, 그러한 선거연합에 임하는 태도와 협상 과정에서 쟁취해야 될 문제와는 또다시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도 선거연합을 바라보는 김규항의 현재 자세는 지나치게 비관적이고 소심한 게 아닐까 싶다. 어떤 면에서 위기를 타개할 기회가 될 수도 있잖은가. 솔직히 말해 본격적으로 시작도 시도도 해보질 않은 상태에서 자꾸 비관적 회의와 비판적 딱지만 늘어놓는다면 아무래도 지금까지 쌓아올린 'B급좌파'의 의미가 그저 '소심한 좌파 냉소주의자'의 의미로 전락될 수도 있다고 여겨진다.

 

물론 김규항의 입장에서 아예 협상의 여지조차 없다고 본다면 할 수 없겠으나, 내가 볼 땐 적어도 지금보다는 정치적 운신의 폭을 높일 수 있는 여지 또한 분명하게 있다고 여겨지며, 진보좌파세력도 제도권 정치로 들어올 경우 보다 철저한 정치적 카드를 꺼내들 필요가 있겠다. 정말이지 지난 선거 때 흘린 심상정의 눈물과 고뇌는 현재의 진보세력들이 당면한 뼈아픈 현실적인 고민들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 아니었나. 지금 생각해봐도 당시 심상정에 대한 김규항의 비판에 어느 정도 수긍은 할 수 있으나 다소 지나친 점도 있었다고 본다.

 

만일 현재의 민주당 세력이 다음 정권을 창출하기 위해 반한나라당 선거대연합으로 진보정당에게도 손을 내민다고 했을 때 그럴 경우 민주당의 집권시 진보정당에게도 국무총리나 혹은 내각의 참여를 보장받을 수 있을지는 누가 알랴. 그렇기에 현재의 진보좌파의 입장에선 다소 현실적인 정치적 카드를 키워보는 게 낫지 시작부터 염려해서 이를 아예 버릴 필요까지는 없잖은가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현재 김규항의 입장에 대해선 좀 더 유연하고 장기적인 안목과 비전으로서의 플랜을 권하고 싶은 거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그때 당시엔 노무현을 왜 안 찍었으며, 왜 이를 지금도 후회하지 않고 있는지, 그러면서도 이제와선 어떻게 신자유주의 문제를 간과하고 있는 기존 민주개혁우파세력과의 선거대연합에 찬성할 수 있느냐고 물어볼지도 모르겠다. 이에 대한 나의 대답은 간단하다. 당시 민주당의 노무현도 그렇고 진보진영도 그렇고 정작 준비가 되어 있질 않았다는 것이다. 그때 당시의 노무현이 내민 정치적 연합 카드는 어이없게도 정몽준이었다는 점과 그리고 어떤 의미로 남한 사회의 근대화 이후 본격적인 차원에서는 아직 단 한 번도 진보좌파세력과 민주개혁세력 간의 선거연합 구도로서 대선을 치른 적이 없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그래서 이제 한 번 시도해보자는 것이다. 어떤 의미론 선택의 카드가 별로 없을 땐 진보진영도 충분히 모험을 걸 수 있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민주세력들과 진보좌파세력들과의 선거연합의 기회가 온다면 내가 볼 땐 진보좌파정당들은 그러한 선거연합 협상에 보다 적극적으로 응했으면 한다. 진보도 벽을 만나면 창조적 모험을 걸어야 할 타이밍이 있는 거다.

 

진보정당의 현실적 타개, 정당 역사에 모험적인 첫 시도가 필요할 때

 

결론적으로 나의 입장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나는 진보의 정체성과 개념 이해만큼은 김규항이 말하는 진보 좌파 개념 정의 쪽에 좀 더 동의하는 입장이다. 진중권이 볼 때는 그러한 김규항의 진보좌파 이해가 플라톤스러운 이상으로서 보일는지 모르나 적어도 김규항은 진보의 중요한 가치를 놓치지 않으려는 그 중심만큼은 분명하게 잡아주고 있다고 여겨진다. 물론 진보좌파라는 개념도 획일적으로 정의될 순 없겠고 그 역시 언제나 개념 형성 과정에 놓여있다고 보긴 해도 김규항의 경우는 사실상 여전히 희망으로서 현존하려는 진보좌파를 말하고 있기에 우리에겐 분명하게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한 이상과 희망조차도 없다면 현재의 일을 꾸려나갈 수 없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러한 희망을 실천하기 위한 오늘 현 시점의 행보에 있어서만큼은 나는 진중권의 선택카드가 김규항의 입장보다 훨씬 더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즉, 제아무리 김규항으로선 순혈 진보좌파를 자처한다고 해도 현재의 구도를 타파하기 위해선 나름대로 선거대연합 구도에 참여해보는 시도가 더 낫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진중권의 논의 중에 진보정당에 대한 이해를 '제 취향의 문제'로서 보는 입장에 대해선 그닥 동의하진 않지만(현재의 진중권은 김규항 글에 대한 반감인지는 몰라도 진보좌파 개념이 어떻든 간에 별관심 없어 보이기도 함), 현재의 현실 정치 상황에서 진보집권 플랜을 위해 나름대로 뚫고 나가려는 진중권의 입장만큼은 분명하게 고려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점에 있어 김규항에게는 보다 유연성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김규항에게는 대중성 강박이 아니라 오히려 순혈 진보에 대한 강박이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진보정당의 정체성 훼손을 염려하는 것도 이해하지만 대안 부재에다 제대로 시도마저 해보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는 과잉 염려가 아닐까 싶다. 김규항으로서도 오연호-조국의 <진보집권플랜>에 대한 비판을 하면서도 정작 그 자신에게선 현재 진보정당의 암울한 현실을 타파할 뾰족한 대안 플랜 같은 건 아직 없어보인다. 기껏해야 한나라당과 민주당 동시 비판 정도다.

 

한 쪽은 진보좌파 개념에 대한 이상과 희망을 말하고 있다. 다른 한 쪽은 진보좌파에 대한 딱지치기는 그만하라며 좀 더 현실적인 행보를 역설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장기적으로 본다면 어느 정도 둘 다 양립 가능한 입장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즉, 한 쪽은 진보좌파에 대한 이상적 가치와 개념 정의로서 이를 받아들여주면 될 것이고, 다른 한 쪽은 보다 유연하게 현재 진보좌파의 현실적 고려를 양보한다면 어떻겠는가.

 

궁극적으로 현실을 바꾸는 것은 이상주의자겠지만, 그 이상의 실현에는 보다 장기적인 비전과 인내어린 전망도 함께 요구되고 있다. 게다가 그 같은 이상도 어디까지나 현실 변혁 가능성으로서의 이상이었잖은가. 당연히 진짜 진보좌파라면 적어도 이상과 현실에 대한 그 긴장만큼은 잃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긴장 속에서 보다 적절하고 유연한 행보를 얼마든지 취해보는 모험과 시도들이야말로 보다 이상적인 진짜 명품 진보좌파의 행보가 아닐까 싶다. 적어도 그 자신이 <진보좌파>에 대한 원리주의자나 근본주의자가 아니라면 부디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 덧붙여 좋은 논쟁을 보여준 두 분께 감사드린다. 두 사람 모두 내가 좋아하는 분들이며, 진보 진영에서 결코 잃고 싶지 않은 분들이다. 서로 간의 감정 문제만 잘 통제한다면야 내가 볼 땐 앞으로도 두 분의 논쟁과 토론은 더욱더 활발하게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만큼 두 사람의 글 모두 한국 사회 진보좌파 형성의 고민에 커다란 유익함을 던져주고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를 진보 간의 분열로 볼지 모르나 내가 볼 땐 이러한 논쟁과 토론이 더욱더 활발히 일어난다면, 오히려 진보좌파 행보를 놓고 고민하는 담론 형성 자체가 매우 긍정적일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도 두 분께 거듭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다. 또한 미천한 나의 주장에도 오류와 반론이 있다면 얼마든지 환영하는 바이다.


태그:#김규항, #진중권, #진보정당, #선거연합, #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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