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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마이뉴스>는 오늘(2월 22일)로 창간 11돌을 맞았습니다. 그간 오마이뉴스와 함께 시민참여저널리즘을 일궈왔던 독자, 시민기자, 10만인클럽 회원 여러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11살 생일 날, 시민기자들의 소회를 모아 기사로 내보냅니다. [편집자말]
땡겨울에도 하얀 홀씨를 매달고 있는 민들레
▲ 민들레 땡겨울에도 하얀 홀씨를 매달고 있는 민들레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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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19일)가 지나면서 봄기운이 언뜻언뜻 깃들고 있다. 지난해와 올 겨울은 징그러울 정도로 엄청 추웠다. 큰 눈도 엄청 많이 내렸다. 그렇다고 매서운 추위와 큰 눈이 다 물러갔다고 호들갑 떨 수 없다. 지구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변덕을 자주 부리기 때문이다. 이 모두가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구를 노리개쯤으로 여겼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참 빠르다. 흐르는 세월은. 21세기로 접어드는 2000년 그해에 창간한 <오마이뉴스>가 벌써 10년을 훌쩍 지나 2011년인 올해로 11년째에 접어들다니. 나 또한 지난 2002년 5월 허리춤께부터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기 시작해 햇수로 벌써 10년째다. 앞 생에 <오마이뉴스>와 무슨 깊은 인연이 있어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동안 살붙이 피붙이처럼 지내고 있을까.        

2011년 2월 22일(화)은 <오마이뉴스> 창간 11돌이다. 창간 11돌을 맞아 내가 그동안 <오마이뉴스>에서 활동했던 나날들을 곰곰이 되짚는다. <오마이뉴스>와 함께 했던 시간은 내 삶과 이 세상을 잣대로 잰 참으로 행복하고도 뜻 깊은 나날이었다.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쭈욱 그러할 것이지만. 

내가 <오마이뉴스>와 첫 인연을 맺은 뒤 10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내 삶을 둘러싸고 있는 직업강산은 4~5번이나 바뀌었다. 사찰 출판기획실에서 일하다, 인터넷일간지도 2곳이나 떠돌았다. 출판사 기획 및 교열 일을 하다가 또 일자리를 잃었다. 지금은 웹진 <문학in> 일을 맡고 있지만 종자돈이 없어 아등바등 발버둥치고 있다.    

바뀌지 않은 것은 꼭 하나. 나는 언제나 <오마이뉴스> 뉴스게릴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찰에서 일할 때는 그나마 여유가 꽤 있어 기사를 일주일에 4~5꼭지씩 올리곤 했다. 그 뒤 인터넷일간지와 출판사 일을 맡으면서 '돈도 그리 되지 않으면서'(?) 너무 바빠 한 달에 기사 4~5꼭지 올리는 것도 벅찼다.

'명예의 숲'에 오른 나도 첨엔 생나무에 제법 머물렀다

나는 지난 2002년 5월 16일, '배추 흰 나비는 보았습니다'라는 책동네 기사로 <오마이뉴스>란 문을 두드려 지난 2005년 11월 21일, '낙엽비 내리는 계곡에 서서 옛 추억을 그리다'라는 여행기사로 1000꼭지란 금자탑을 세웠다. 꼬박 3년 6개월이 걸렸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1년에 300꼭지쯤 기사를 썼을 정도로 정말 열심히 달렸다. 

그대로 지치고 않고 달렸다면 그해로부터 다시 3년 6개월 뒤인 2009년 허리춤께가 되었을 때 2000꼭지란 더 큰 금자탑을 세울 수도 있었다. 2011년 지금쯤이라면 2300꼭지도 훌쩍 넘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 세상살이가 어디 내 생각처럼 되던가. 1000꼭지 쓴 그 뒤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2000꼭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서글프다. 내 앞에 놓인 식의주 전선이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처럼 얄밉고도 원망스러운 등짝을 보이지만 않았다면 더 큰 금자탑을 세울 수도 있었으련만. 그래도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기사를 쓸 수 있는 <오마이뉴스>가 있어 어렵고 힘든 나날을 견디고 이겨낼 수 있었다. <오마이뉴스>에 쓰는 기사를 통해 나와 이 세상 속내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으니까.   

<오마이뉴스>에 있는 나를 되돌아본다. 정확하게 말해 2011년 2월 20일 현재 모두 1747꼭지다. 오름이 53꼭지, 으뜸이 24꼭지, 버금이 941꼭지, 잉걸이 719꼭지다. 여기에 생나무도 10꼭지나 있다. 지금은 '명예의 숲'에 올라 있는 나이지만. 그러니까 생나무 10꼭지를 빼고 나면 지금까지 10여 년 동안 독자들에게 선보인 기사는 1737꼭지다.

나는 내가 <오마이뉴스> 1년차에 갓 접어들었을 때 쓴 기사 가운데 왜 10꼭지가 생나무에 걸렸는지 잘 안다. 처음엔 기사쓰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기자 이름은 '이종찬'으로 하고, 그 기사내용을 쓴 사람은 내 필명인 '이소리'로 썼기 때문이었다. 사찰에서 <오마이뉴스>에 글을 올리라며 내게 건넨 그 스님이 쓴 '산상일기'도 그랬다.

그 생나무 때문에 나는 <오마이뉴스> 편집방침을 제대로 꿰뚫을 수 있었고, 그 다음부턴 생나무에 머무는 기사가 없었다. 아니, 두어 개 더 있었던가. 너무 개인적이고 예민한 기사를 썼다가 편집부 연락을 받고 생나무에서 지워달라고 했었지, 아마. 하여튼 그랬다. 그 뒤부터 나는 내가 쓴 기사가 잉걸을 거쳐 버금 혹은 메인톱으로 오르길 학수고대하곤 했다.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는 뉴스게릴라들은 다들 알 것이다. 잉걸과 버금, 메인톱 기사인 으뜸과 오름에 오른 기사는 우선 조회 수에서 엄청나게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을. 누구나 찾기 쉬운 곳에 기사가 올라 있으니 당연할 수밖에. 그렇다고 잉걸에 올랐다 메인면에서 서브면으로 옮겨지는 기사는 무조건 조회 수가 떨어진다는 뜻은 아니다.

잉걸에 오른 기사도 으뜸이나 오름에 오른 기사 못지않게 조회 수가 많을 때도 더러 있다. 그 기사에 맞는 서브면으로 들어가면 그 잉걸기사가 ('사는이야기' 빼고) 오름이나 으뜸, 버금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마이뉴스> 장점이 바로 이것이다. 잉걸에 오른 기사가 조회 수가 적다는 것은 해당 기사가 많을수록 좀 빨리 서브면으로 옮겨져 독자들 눈에 빨리 띄지 않기 때문이라는 그 얘기다.

지난해 봄 창원 비음산 들녘에서 찍은 사진이다
▲ 매화 지난해 봄 창원 비음산 들녘에서 찍은 사진이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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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사와 에세이는 분명 다르다

내가 <오마이뉴스>에 기자등록을 하고 한창 기사를 올리던 첫 해였던가, 두 번째 해였던가. 아무튼 편집부 기자 전화를 받고 불만을 터뜨린 때도 몇 번 있었다. 여행기사 때문이었다. 편집부에서는 이번에 올린 기사가 언제 다녀온 여행기인지 물었다. 여행을 다녀온 날짜를 그 여행기사에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편집부 기자에게 지난 해 다녀온 여행기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여행기사에 꼭 날짜를 밝힐 필요가 있겠느냐고 오히려 거꾸로 물었다. 기사 곳곳에 그때가 언제쯤인지, 어느 계절인지 읽는 사람들이 충분히 알 수 있지 않느냐는 투였다. 편집부 기자는 그때 "날짜를 정확하게 밝히는 게 좋겠다. 앞으로는 될 수 있는 한 묵은 여행기보다 최근 여행기를 올리는 것이 좋겠다"고 귀띔했다.

솔직히 좀 짜증이 났다. 문인들은 대부분 직접체험이든 간접체험이든 곧바로 글로 옮기지 않고 한동안 묵혀두는 습관이 있다. 그때 느낀 감정이나 정서를 다시 한번 폭삭 발효시키기 위해서였다. 나 또한 그랬다. 어딘가 여행을 다녀오면 곧바로 기사를 쓰지 않고 한동안 묵혀두었다가 다시 꺼내 느긋하게 글을 쓰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 <오마이뉴스> 뉴스게릴라 새내기들에게 한 마디 귀띔하고 싶다. 시나 에세이, 소설과 기사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이다. 창작품은 그 어떤 사실을 이리저리 뒤틀기도 하고, 이리 저리 배배 꼴 수도 있지만 기사는 분명히 그 어떤 사실과 그 어떤 시점이 아주 중요하다. 왜? 기사는 그때그때 보았던 그 어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발 빠르게 독자들에게 알려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마이뉴스> 새내기들 몇몇이 요즘 자신이 쓴 기사가 생나무에 계속 걸려 불만이 꽤 많은 줄로 안다. <오마이뉴스> 생나무 클리닉에 들어가면 그런 글들이 꽤 쌓여 있다. 새내기들이여. <오마이뉴스> 뉴스게릴라 10년차가 귀띔하는 말을 곰곰이 잘 새겨보라. 왜 내가 쓴 기사가 생나무에 걸리는지 힌트가 번쩍이는가.

힌트가 되지 않는다면 생나무에 걸리지 않는 비법을 몇 가지 귀띔한다. 첫째, 그 어떤 사실이 있다면 날짜와 시간, 장소, 내용을 정확하게 밝혀라. 둘째, 문장을 길게(3줄이 넘도록) 쓰지 말고 짧게(1~2줄) 쓰라. 셋째, 자신만이 드러낼 수 있는 독특하고도 새로운 낱말(조어 등)을 쓰라. 넷째, 기사에 나오는 사람 나이와 이력을 정확히 밝혀라. 다섯째, 기사 중복, 내용 중복을 피하라.

이쯤하면 내가 가진 기사 노하우 70%를 끄집어냈다. 그 다음으로 기사를 잘 쓰기 위해서는 메인톱이나 버금에 오른 기사를 많이 읽는 것이 좋다. 중국 송나라 때 정치가이자 뛰어난 문인이었던 구양수(1007~1072)는 삼다(三多)를 말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많이 읽고(多讀), 많이 쓰고(多作), 많이 생각하라(多思)는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나를 기쁘게 했던 일, 나를 쓸쓸하게 했던 일

나는 지난 10년 동안 책과 문학, 여행, 음식, 공연, 전시 등에 따른 기사를 주로 썼다. 가끔 정치, 경제, 사회에 따른 기사를 쓸 때도 있었다. <오마이뉴스>에 이러한 기사를 올린 뒤 아주 기뻤던 일도 있었고, 쓸쓸하거나 슬프고 마음이 많이 상할 때도 더러 있었다. 특히 내가 쓴 음식 기사 땜에 갑자기 장사가 아주 잘 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슴이 뿌듯했다.

전라도 곳곳에 있는 맛집과 여행지를 기사로 자주 올린 덕분에 경상도 창원에서 태어난 내가 '2008년 전라남도 홍보유공자'로 뽑혔을 때 너무 기뻤다. <오마이뉴스>에 올린 막걸리 기사에 살을 보태고, 보충취재를 조금 더 한 뒤 2010년 5월 <막걸리>라는 책을 냈을 때 수많은 독자들이 좋은 반응을 보여 한동안 막걸리에 포옥 빠져 있기도 했다. 
  
마음이 퍽 상했을 때도 더러 있었다. 내가 낸 오탈자 때문에 성이나 이름, 지명 등이 틀렸을 때 언짢았다. 그 누군가를 어쩔 수 없이 기사로 비판해야 할 때 참 씁쓸했다. 그 어떤  기사를 나름대로 열심히 썼는데도 고맙다는 말보다 오히려 엉뚱한 트집을 잡을 때 기분이 몹시 상했다. 어떤 이가 사적인 감정으로 나를 통해 <오마이뉴스> 기사란 힘을 빌리려 했을 때 가래침을 칵 내뱉기도 했다.

<오마이뉴스>와 함께 한 지난 10년 동안 내게는 새로운 닉네임도 많이 생겼다. 책 기사를 많이 쓴 탓에 문인들은 여러 모임에서 나를 <오마이뉴스 대기자>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나는 그때마다 <오마이뉴스 대기자>가 아니라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기 위해 늘 대기하고 있는 자라고 능청을 떨기도 했다.

나더러 <오마이뉴스 부고 전문기자>라고 부르는 문인들도 꽤 있었다. 시인 박영근, 박찬, 이선관, 최명학, 심호택, ET할아버지 채규철, 소설가 박경리, 박완서 등 수많은 문인들이 이 세상을 떠날 때마다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기사를 줄기차게 썼기 때문이었다. 오죽했으면 문단에서 '오마이뉴스=이종찬 기자=이소리 시인'으로 여기며 책을 내거나 무슨 행사가 있을 때마다 나를 줄기차게 찾겠는가.

2009년 경남 의령에서 찍은 사진
▲ 산모퉁이와 들녘을 가로지러 달려오는 기차 2009년 경남 의령에서 찍은 사진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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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초심으로 다시 돌아가자

나는 올해 <오마이뉴스> 10년차다. 이제 초심으로 다시 돌아가자. 2011년 올해 내 꿈은 제법 크다. 1737꼭지에 이르는 기사를 더욱 열심히 써서 2000꼭지를 채우는 것이다. 내 꿈이 이루어질지는 나도 모르겠다. 뜻을 세우면 길이 보인다고 했다. 올해 큰 뜻을 세웠으니 내가 걸어가는 길이 지름길이 되리라 굳게 믿을 수밖에.

지난 설날 연휴 때, 창원 고향집 앞에 있는 텃밭에 나갔다가 양지 바른 곳에 민들레가 하얀 홀씨를 매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동안 날씨가 너무 추웠던 탓인지 매화는 몽오리만 몽글몽글 말고 있었다. 활짝 핀 매화가 너무나 보고 싶어 지난해 찍은 사진을 찾다가 야트막한 산모퉁이와 들녘을 가로질러 달려오는 기차 사진이 눈에 확 들어왔다.  

그래. <오마이뉴스>가 11년차를 맞아 다시 한번 땡겨울에도 홀씨를 매달고 있는 민들레처럼 이 세상 곳곳에 <오마이뉴스>라는 새로운 생명을 담은 홀씨를 훨훨 날렸으면 좋겠다. <오마이뉴스> 10년차에 들어선 나도 어서 몽오리를 부풀려 하얗게 터지는 저 예쁜 매화꽃처럼 환한 날을 맞고 싶다.

2011년을 맞아 <오마이뉴스>와 내 희망처럼 힘차게 달려오는 저 기차처럼 이 세상을 새롭게 달리고 싶다. <오마이뉴스>여! 새로운 희망을 품고 거듭나라. 거듭나는 <오마이뉴스>, 그 포근한 둥지가 나와 우리에게, 이 세상 사람들과 지구촌 곳곳에, 삼라만상에게 새롭고도 더욱 큰 희망을 듬뿍 안겨 주리라.


태그:#오마이뉴스 11년, #뉴스게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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