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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국제팀 김덕련 기자를 이집트 현지에 파견했습니다. 지난 11일 카이로에 도착한 김 기자는 무바라크 30년 철권통치를 끝낸 이집트의 분위기와 혁명 이후 새롭고 민주화된 미래를 준비하는 이집트 사람들의 열정을 생생하게 전해줄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12일(현지 시각)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무바라크 사임'을 이끌어낸 것을 자축하고 있다.
 12일(현지 시각)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무바라크 사임'을 이끌어낸 것을 자축하고 있다.
ⓒ 김덕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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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현지 시각)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며 '무바라크 사임'을 이끌어낸 것을 자축하고 있다.
 12일(현지 시각)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며 '무바라크 사임'을 이끌어낸 것을 자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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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이집트 역사에도 찬란한 시기가 있었다. 그런데 그건 영웅들이 만든 역사였다. 그렇지만 지금은 다르다. 주변을 둘러봐라. 다 평범한 사람들이다. 각지에서 온 평범한 사람들이 리더 없는 혁명을 한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지금까지 이런 일은 없었다."

무바라크 대통령 사임이 결정된 다음날인 12일(현지 시각)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만난 이헤브는 "당신 나라 사람들에게 꼭 알려달라"며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헤브는 "예전엔 가슴이 무척 아팠지만, 이젠 매우 행복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전날에 이어 이날도 전 광장을 찾았습니다. 독재자를 끌어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타흐리르 광장의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숙소에서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동안, 전날 밤처럼 국기를 내걸고 달리는 차들을 몇 대 볼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택시도 있더군요. 도심의 한 역에서 내려 광장까지 걸어가는 동안에도 전날처럼 국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여럿 만날 수 있었습니다.

시내 한복판에는 "1월 25일 혁명 희생자들"이라는 글귀와 그들의 얼굴 사진을 담은 대형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습니다. 승리의 경적, "띠띠 띠띠띠 띠띠띠띠 띠띠"도 이따금 들려왔고요. 곳곳에 배치된 탱크 옆을 지났지만 저를 붙잡고 검문하는 군인은 없었습니다.

12일(현지 시각)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무바라크 사임'을 이끌어낸 것을 자축하고 있다.
 12일(현지 시각)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무바라크 사임'을 이끌어낸 것을 자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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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를 자축하는 사람들... 독재자 물리친 데 강한 자부심

타흐리르 광장 앞에서 저를 맞아준 건 빗자루, 쓰레기봉투 등을 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동안 자신들이 지켜온 광장과 그 주변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시민들이었습니다. 쓸고 닦고 줍는 이들의 작업은 이날 저녁 제가 광장을 떠날 때까지 계속됐습니다.

광장에 들어가기 위한 통과의례인 신원 확인은 이날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두 차례 몸수색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무바라크 대통령 사임이 결정된 이후여서인지 전날만큼 철저하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신분증 검사 때도 전날과 달리 기자증만 볼 뿐 여권까지 요구하지는 않더군요.

전날만큼은 아니지만, 이날도 광장에는 많은 사람이 모였습니다. 오후 들면서 그 수가 점점 늘어나 수만 명은 돼 보였습니다. 특히 이날 광장에서는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유모차를 끌고 온 여성, 아이를 목말 태운 남성, 양손에 아이 손을 잡고 온 부부 등이 마치 가족 나들이라도 하듯 광장을 찾았습니다.

12일(현지 시각)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한 시민이 무바라크 퇴진 요구 시위 중 희생된 이의 사진을 새겨 넣은 천막에 글을 적고 있다.
 12일(현지 시각)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한 시민이 무바라크 퇴진 요구 시위 중 희생된 이의 사진을 새겨 넣은 천막에 글을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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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앞쪽 무대에서는 연설과 의견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그렇지만 광장에 모인 이들이 모두 그 연단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광장 곳곳에서 삼삼오오 모여 덩실덩실 춤추고 자신들만의 구호를 외치며 축제를 벌였습니다. 한쪽에선 밴드가 공연을 했고, 다른 쪽에는 북소리에 맞춰 손을 높이 치켜들고 뛰어오르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휴대전화와 디지털카메라를 이용해 곳곳에서 사진을 찍는 이들도 넘쳐났습니다. 승리를 자축하는 동시에, 역사의 현장에 자신도 발 딛고 있었음을 기념하려는 '인증샷'을 남기려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광장 한쪽에서는 전날과 마찬가지로 '무바라크 퇴진' 요구 시위 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는 경건한 움직임도 진행되고 있었지만, 사람들의 표정에서는 전반적으로 환희와 기대가 묻어났습니다.

지하철과 광장 바깥에서는 일상의 무게로 인한 무덤덤함 같은 게 느껴지는 표정도 적잖이 봤지만, 광장은 그와 달랐습니다.

이런 질문 받을 줄은 몰랐습니다... "남북한은 왜 대치하지?"

제게 "이번 이집트 혁명에 대해 한국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느냐"고 물어오는 이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광장을 청소하던 아흐메드도 그중 하나입니다. 아흐메드는 한국인들의 눈에 이집트가 어떻게 비치고 있는지 꼬치꼬치 물어왔습니다.

그런 후 마지막에 자신의 생각을 말했습니다. "우리는 존엄을 되찾았다. 그래서 난 이집트가 자랑스럽다." 비닐장갑을 낀 왼손으로 쓰레기봉투를 들고 일어서던 그는 자기 명함을 내밀었습니다. 명함에는 대학원 T.A.(Teaching Assistant)라고 적혀 있더군요.

메프도 아흐메드와 똑같은 질문을 해왔습니다. 더 나아가 메프는 한 가지 더 물어왔습니다. "남북한이 대치하는 이유는 뭔가? 무슨 문제가 있기에 그런 건지 궁금하다." 타흐리르 광장에서 이런 질문을 받을 거라고는 솔직히 예상치 못했습니다. 잠시 당황스러웠습니다.

장난 섞인 물음이 아니라 진지하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메프는 중국 관련 전공을 공부하는 대학생이었습니다. 그래서 한반도 쪽에도 관심이 생겼다더군요. 제가 무바라크를 끌어내린 일에 대해 묻자, 메프는 "매우 행복하다"며 "세계 모든 나라에서 정의와 자유가 실현되길 바란다"고 답했습니다.

메프는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중국 관련 전공을 택했다고 합니다. 중국의 적극적인 아프리카 진출을 상징하는 차이나프리카(China+Africa)라는 말과, 두바이에서 카이로로 들어오는 비행기 탑승장 여기저기에서 중국어가 들려오던 풍경이 떠올랐습니다.

전 이날 아흐메드와 마찬가지로 독재자를 물리친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이들을 여럿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집트 국기를 상체에 두르고 있던 태머르는 "내 조국이 정말로, 정말로 자랑스럽다"고 힘주어 말한 후 "이집트 혁명은 평화적이었고 성별과 정파 등의 차이를 넘어 힘을 모아 독재자를 몰아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아이들 손을 잡고 광장을 찾은 중년 여성 니헬은 "앞으로 민주주의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진전이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습니다.

12일(현지 시각)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 수많은 시민이 모여 '무바라크 사임'을 이끌어낸 것을 자축하고 있는 가운데, 두 사람이 국기를 들고 높은 가로등 위에 올라가 있다.
 12일(현지 시각)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 수많은 시민이 모여 '무바라크 사임'을 이끌어낸 것을 자축하고 있는 가운데, 두 사람이 국기를 들고 높은 가로등 위에 올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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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현지 시각)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무바라크 사임 소식을 다룬 신문들을 펼쳐 보이고 있다.
 12일(현지 시각)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무바라크 사임 소식을 다룬 신문들을 펼쳐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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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여러 장 찍혔습니다

이렇게 승리를 자축하는 이들의 물결 속에 있다 보니, 본의 아니게 저도 관심의 대상이 됐습니다. 슬며시 다가와 휴대전화로 절 찍다가 눈이 마주치자 멋쩍은 듯 브이(V)자를 그려 보이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기념사진을 같이 찍자고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더 많았습니다. 10번 넘게 찍히다 보니, 나중에는 '이집트 사람들 블로그에 내 얼굴이 오르겠구나' 하는 객쩍은 생각마저 들더군요.

"웰컴(Welcome, 환영한다)"이라며 악수를 청하는 이들은 그보다 더 많았고,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사람도 몇 명 있었습니다(반가웠습니다만, 아는 한국어는 그게 전부라고 해 아쉬웠습니다).

한 중년 여성은 조용히 다가와 제 손등에 향수를 뿌려준 후 미소를 짓고 갔습니다. 멀리 동아시아에서 온 기자가 기특해 보인 건지, 광장에 아시안이 거의 없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환대한다는 느낌은 들더군요.

12일(현지 시각)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 수많은 시민이 모여 '무바라크 사임'을 이끌어낸 것을 자축하고 있는 가운데, 목말을 탄 한 어린이가 디지털카메라로 현장을 촬영하고 있다.
 12일(현지 시각)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 수많은 시민이 모여 '무바라크 사임'을 이끌어낸 것을 자축하고 있는 가운데, 목말을 탄 한 어린이가 디지털카메라로 현장을 촬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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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 나뉜 시위대

이날 광장에서는 노숙 농성 천막을 접고 담요를 걷어가는 작업도 계속됐습니다. 무바라크가 물러났으니 타흐리르 광장의 시위를 마무리하겠다는 뜻이지요. 그러나 이는 모든 시위대의 일치된 의견은 아닙니다. 권력을 넘겨받은 군의 행보를 더 지켜봐야 한다며 농성을 계속하겠다는 이들도 있습니다.

시위대의 의견이 나뉜 것입니다. 첫 번째 기사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무바라크 이후' 어떤 세력이 주도권을 쥘 것인지가 매우 중요한 상황에서 시위대의 분화는 군의 움직임, 미국의 동향과 함께 주목해야 할 요소입니다.

12일(현지 시각)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일부 시위대가 농성 때 사용한 담요들을 걷어내고 있다.
 12일(현지 시각)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일부 시위대가 농성 때 사용한 담요들을 걷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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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시위대의 분화는 어느 정도 예상된 것이기도 합니다. 중산층부터 실업자까지 무바라크 퇴진을 위해 한자리에 모여 연합전선을 구축했다는 것은 곧 무바라크 퇴진 후엔 세력별로 각기 다른 그림에 따라 나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었으니까요.

한편 이날 오후 5시 무렵 군이 대오를 갖춰 광장 쪽으로 행진해왔습니다. '설마?' 하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만, 알고 보니 광장으로 들어가는 길목 등에 설치돼 있던 바리케이드를 철거하기 위해 온 것이었습니다. 평시로 돌아가자는 취지이지요.

12일(현지 시각)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 주변에서 군대가 바리케이드를 철거하고 있다.
 12일(현지 시각)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 주변에서 군대가 바리케이드를 철거하고 있다.
ⓒ 김덕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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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광장에서 나와 대로를 걷던 중, 벽화 작업을 하는 이들을 발견했습니다. 무바라크 퇴진 시위 성공을 기념하는 벽화였습니다. 다시 지하철역을 향해 걷던 저를 군인이 불러 세웠습니다. 카이로 도착 후 처음으로 군인에게 당한 검문이었습니다. 제 옆에 있던 다른 이집트 사람들은 모두 무사통과했고, 일부는 탱크 위에 올라가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신분증을 보여준 후 별일 없이 지나오긴 했지만, 현지 교민들이 타흐리르 주변에 오지 않으려 하는 이유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숙소에 돌아와 이웃나라 알제리와 예멘에서도 다시 민주화 시위가 벌어졌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튀니지와 이집트에 이어 독재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데 성공하는 사례가 아랍에서 이어질지 주목됩니다.

12일(현지 시각)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으로 향하는 길가에서 시민들이 독재자 무바라크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1월 25일 혁명'을 기념하는 벽화를 그리고 있다. 시민들은 영어와 프랑스어 등으로 '나는 이집트를 사랑한다'는 문구 등도 적어 넣었다.
 12일(현지 시각)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으로 향하는 길가에서 시민들이 독재자 무바라크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1월 25일 혁명'을 기념하는 벽화를 그리고 있다. 시민들은 영어와 프랑스어 등으로 '나는 이집트를 사랑한다'는 문구 등도 적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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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이집트, #무바라크, #시민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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