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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사랑 회원들이 금오산 정상에서 휴식을 취하며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풀꽃사랑 회원들이 금오산 정상에서 휴식을 취하며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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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허고 사요?"
"꿀따러 댕기요. 아 근디 다리가 두부두분허니 아파서 잘 못댕겨."
"글먼 여수 큰 병원에 가보이다."

설연휴가 끝나가는 토요일(5일), 여수풀꽃사랑회원 30여명이 이른 봄소식을 전한다는 복수초를 보기 위해서 금오산 답사에 나섰다. 겨우내 추웠던 날씨가 풀려서일까? 평소 같으면 텅 비어있을 시내버스가 거의 만원이다.

좌석에 앉은 나이든 할머니들의 대화 속에 알아듣지 못할 내용이 들어있다. '꿀'이 '굴'이라는 걸 짐작했지만 "두분두분"은 도저히 추측할 수 없어 물어보고야 말았다. 그건 '다리를 헝겊 같은 재질로 싸놓은 것처럼 불편할 때' 사용하는 말이란다.

여수와 돌산은 조선시대 최전방 요새였다. 그래서인지 군대와 관련된 지명이 많고, 곳곳에 성과 봉화대가 있다. 둔전은 평시에 군인들이 주둔하며 농사를 지었던 곳이다. 돌산대교를 건너 무슬목해수욕장을 지나 한참을 가면 폐교가 된 중앙초등학교가 나온다. 초등학교 앞에는 반듯하게 정리된 논밭이 나온다. 여기가 바로 둔전이다. 한 아저씨가 혀를 끌끌 차며 한숨을 쉰다. 아저씨한테 혀 차는 이유를 물었다.

"아이 참! 면에서 돌산갓을 심어라고 해서 심었는디 다 얼어 죽어부렀어요! 올 겨울처럼 춥기는 처음이어라우. 인자 저걸 갈아엎어 모를 심든지, 아니면 새로 씨를 뿌려 비닐하우스를 씌워야 제대로 갓농사가 되제. 작년에는 배추파동으로 돌산갓이 재미를 봤는디 올해는 추위 때문에 다 얼어 죽어부렀으니… 새로 대책을 세워야제."

산이 많은 탓일까. 군대 시절 탔던 강원도행 버스처럼 좌우로 흔들리며 간다. 그래도 날씨가 따뜻하고 오랜만에 밖으로 나서는 여행길이라 가벼운 흥분으로 몸을 버스에 맡긴다. 한 시간쯤 달리던 버스가 드디어 목적지인 성두에 도착한다.

작금마을과 성두마을로 이뤄진 금성리는 돌산읍의 가장 남쪽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중 작금마을은 해변이 자갈로 이뤄져 있다고 해서 붙은 지명인데, '자갈 기미(자갈이 많은 바닷가란 뜻)'가 단어가 줄어 생긴 지명이라고 한다. 아직도 이곳 주민들은 '작기미마을'이라 부르고 있다. 이 마을 북동쪽에는 아직도 고인돌 수십기가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조선시대 말을 키우던 목장 터가 있다고 한다.

목장성 터. 조선시대 말을 놓아 기르던 목장성이 있어. 성의 머리란 뜻의 성두란 지명이 탄생했다.
 목장성 터. 조선시대 말을 놓아 기르던 목장성이 있어. 성의 머리란 뜻의 성두란 지명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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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두에서 금오산 정상으로 올라 가는 길 밭두렁 밑에서 말리는 돌김
 성두에서 금오산 정상으로 올라 가는 길 밭두렁 밑에서 말리는 돌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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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두(城頭)마을은 성머리로 부르던 곳이다. 말을 가두어 키우던 목장성이 시작되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성두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목장성의 성은 성두에서 신기마을까지 이어지는데, 길이가 길어 만리성으로도 불렸다.

성두마을에 내려서 각자 소개를 마친 뒤 회장인 최상모씨가 오늘의 일정에 대해 설명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오늘은 복수초를 볼 수 없단다. 올 겨울날씨가 유난히 추워 다음 주쯤에나 복수초가 필 것 같다는 얘기다. 회원들은 꽃은 볼 수 없지만 등산이라도 하자는 데 동의하고 마을을 벗어나 밭길을 따라 산으로 올라간다. 산 중간쯤에 세평이나 됨직한 밭을 만들기 위해 사람 키만큼 쌓아올린 돌담이 나왔다. 그 옆으로 돌김을 만들어 말리는 모습이 보인다.

폐허가 되어 잡초만 우거진 밭둑길을 따라 올라가는 회원들의 입에서 "아! 힘들어"하는 소리가 나온다. 그 농민은 거름을 지고 여기까지 올라왔다가 수확한 농작물을 지고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준 채 집까지 가지고 갔을 텐데, 10㎏도 안 되는 배낭이 이렇게 무거우니….

신선대 부근의 바위손 군락지. 여기서부터는 태평양이 보이는 망망대해다
 신선대 부근의 바위손 군락지. 여기서부터는 태평양이 보이는 망망대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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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등성이로 올라서니 탁 트인 태평양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신선대가 나온다. 신선대 주변에서 땀을 닦으며 간단한 음료와 과일로 요기를 한 일행은 주변의 섬들을 둘러보며 한 마디씩 한다. "정말 아름다운나라다." 여기가 바로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이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은 우리나라 서남해상권의 여수 부근에서부터 홍도, 흑산도까지 5개군 8개지구의 방대한 지역에 걸쳐 있으며 1981년 12월 23일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면적은 2344.9㎢로서 우리나라 국립공원 중 최대다. 공원지역의 지형은 세계에서 유례가 드문 전형적인 리아스식 해안이며 홍도, 흑산도, 백도 등 기암괴석의 절경이 해상과 조화를 이룬다.

계곡과 나무 사이를 끼고 돌며 맞이하는 절벽과 기암괴석. 끝없는 수평선위를 한가롭게 달리는 무역선과 고깃배를 바라보다 갑자기 몇 년 전 울릉도 내수전 길을 걸었던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성두에서 금오산 정상을 거쳐 향일암으로 가는 길은 어림짐작으로 4㎞쯤 되는데 울창한 나무 사이와 평탄한 길, 옛 절이 있었다는 절터, 커다란 바위와 바위를 연결해 주는 급경사 철계단이 장관이다. 다만 울창한 숲이나 아기자기한 길이 조금  짧아 아쉽지만 정말 울릉도 내수전 옛길 같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금오산(金鰲山)의  '오'는 거북이 '오(鰲)'를 사용한다. 산 정상에 있는 곳곳의 바위가 거북이 등처럼 격자무늬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섭리는 참 오묘하기도 하다. 금오산 정상에서 향일암쪽으로 바라보면 돌출된 부분이 영락없는 거북이 머리 모습이다.

향일암에서 금오산 정상에 오르는 길은 가파른 철제 난간으로 이어져 있다. 그러나 정상에 올라가 바다의 장관을 보면. 땀의 가치를 느낀다
 향일암에서 금오산 정상에 오르는 길은 가파른 철제 난간으로 이어져 있다. 그러나 정상에 올라가 바다의 장관을 보면. 땀의 가치를 느낀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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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산 정상의 많은 바위들이 거북등처럼 격자무늬를 띄고 있다.
 금오산 정상의 많은 바위들이 거북등처럼 격자무늬를 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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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삼림이 울창하여 검게 보였기 때문에 거무산이라고 불렀고 그 명칭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금오산이 되었다. 금오산에 있는 우리나라 4대 기도처의 하나로 꼽히는 향일암이 풍수지리상 금거북이 경전을 등에 업고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여수시 돌산읍 율림리 임포 산7번지에 있는 향일암은 644년 (신라 선덕여왕 13년)에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창건 당시에는 원통암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950년 (고려 광종 9년)에는 이곳에서 수도하던 윤필거사가 금오산의 이름을 따서 금오암이라 하였고, 이후 풍수지리상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거북의 모습을 하고 있어 거북'구'자를 써서 '영구암'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이곳은 1715년 (숙종 41년) 인묵대사가 '향일암'이라는 이름으로 명명하였다.

향일암 대웅전 모습. 2009년 12월 원인모를 화재로 불탔다. 올 10월말이면 복원할 예정으로 공사가 한창이다.
 향일암 대웅전 모습. 2009년 12월 원인모를 화재로 불탔다. 올 10월말이면 복원할 예정으로 공사가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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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안녕과 향일암의 중창을 기리는 촛불들. 대웅전 앞에 모셔져 있다.
 가족의 안녕과 향일암의 중창을 기리는 촛불들. 대웅전 앞에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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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당시 함께 불타버린 범종각. 종만 뎅그러니 남았다. 범종은 지하의 중생을 깨우는데--- 지하의 중생들이 화 안 낼까?
 화재 당시 함께 불타버린 범종각. 종만 뎅그러니 남았다. 범종은 지하의 중생을 깨우는데--- 지하의 중생들이 화 안 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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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당시 고온에 달구어진 돌 일부가 떨어져 나가고 검게 그을린 흔적이 있는 주춧돌. 뒤에 보이는 천막은 복원공사가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화재 당시 고온에 달구어진 돌 일부가 떨어져 나가고 검게 그을린 흔적이 있는 주춧돌. 뒤에 보이는 천막은 복원공사가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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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일암은 일출 조망지로 전국적으로 이름난 곳이다. 국내 최고의 해맞이 명소로 매년 12월31일부터 1월 1일까지 일출제가 열려 전국 각지의 해맞이 관광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다. 2009년 12월 화재로 대웅전이 불타 없어진 향일암은 신도와 관광객의 감소로 여수와 인근 상가 경기에 막대한 피해를 끼쳤다. 시내버스 종점에서 장사를 한 지 50년이 됐다는 81세의 할머니의 얘기다.

"향일암화재 이후 손님이 많이 줄었어요. 어쩔 때는 하루에 담배 한 갑 팔 때도 있었어요. 토요일이나 일요일이면 손님이 좀 있지요. 다행이 올 10월말이면 불탔던 대웅전 복원 공사를 마칠 예정이랍니다."

우리나라 곳곳에 널려있는 강산의 아름다움에 젖어본다. 

덧붙이는 글 | '희망제작소'와 '문화촌뉴스' 및 '네통'에도 송고합니다



태그:#금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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