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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고을에 한 부부가 살고 있었다. 전답을 많이 부리고 있어 밥술깨나 뜨는 남부러울 것 없는 부유한 살림살이였다. 뜨거운 여름이면 삼계탕에 복 추렴도 너끈히 할 만 하였고 추운 겨울이면 두둑이 식량깨나 곳간에 쟁여놓고 먹었다.

 

 살림살이가 넉넉하다보니 거만해져서 부부가 남 흉보는 일이 많았다. 없이 사는 사람의 꽁보리밥 우적우적 먹는 꼬락서니도 흉보고, 너덜너덜 기워 입은 옷도 거지발싸개 같다고 흉보고, 사는 집도 돼지우리 같다고 흉을 봤다. 거기에서 그친 게 아니라 아이들 기르는 꼴도 흉보기 일쑤였다.

 

 "어쩜! 저렇게 얼굴에 코가 덕지덕지 붙었나, 목에 때는 새까맣게 끼었고 손을 보면 까마귀가 할아버지 하자고 덤비겠네. 옷 입은 꼬락서니하고는 나무다리 밑에 사는 거지가 따로 없네 그랴. 나는 아이를 낳으면 곱게 입혀서 깨끗하게 기르련만 왜 저렇게 모두 다 얼굴에 눈곱이 덕지덕지 붙은 데다 콧물 범벅이냐."

 

 아이를 낳으면 남부럽게 곱게 기르겠다던 부부의 소망이었는데 불행하게도 고대하던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 많던 살림살이도 죄다 잃게 되었다. 재물이란 들고나는 바람처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한데 모이기도 하고 남 모르는 사연을 안고 흩어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부부가 가난하게 된 말년에야 바라던 아이가 생겼다. 낳고 보니 아들이었다.

 

 아이를 낳으면 남들 같잖게 금이야 옥이야 곱게 기르겠다던 마음은 그대로인데 살림살이가 궁핍하다보니 흉을 보았던 그 아이들보다 더 못되게 길렀다. 인생사란 그런 것이었다. 잘 나갈 때 남 못된 것을 흉보았는데 어느 결에는 자신이 남 못된 것보다 더 못되게 되기도 하는 것이었다.

 

 "아이고! 원수 놈의 복 어디 있는가 모르겠다!"

 

 어머니는 말끝마다 '원수 놈의 복 타령'이었다.

 

 그렇게 자나 깨나 말끝마다 '원수 놈의 복 어디 있는가 모르겠다'는 어머니의 복 타령을 듣고 자라던 아들 성구복(아들의 이름도 구복((求福)이었다)이 다섯 살 먹었는데 어느 날 어머니에게 대뜸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어머니께서 밤낮으로 원수 놈의 복 타령만 하는데, 내가 오늘 그 복이 어디 있는가 찾아보고 그 복을 타러 가야겠어요."

 "으응! 그래, 제발 얼른 가서 복 좀 많이 타 와라. 아들아!"

 

 어머니는 철없는 어린 아들의 말에 그냥 말대꾸로 그렇게 말하고 말았다. 그런데 웬걸 다섯 살 난 아들 성구복은 그 즉시 집을 나가 그 복을 찾아 먼 길을 떠나버렸던 것이다. 도대체 인간의 복이란 누가 주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 복을 주는 곳은 도대체 어디 있는 것일까? 어린 성구복은 어머니의 말버릇처럼 그 복이란 것이 누군가 어디선가 인간에게 주는 것으로 알고 무작정 그 복을 찾아 복을 타러 이른 바 구복여행(求福旅行)을 떠났던 것이다.

 

 복 찾아 복 타러 간다고 어린 아들이 집을 나갔는데 정말 멀리 길을 떠났는지 저녁 밥 무렵이 되어도 집에 들어오지 않자 늙은 부부는 아들 이름 구복이를 부르며 온 마을을 뒤졌다. 그래도 도무지 아들이 나타나지 않자 밤에 횃불을 만들어 들고 들이며 산을 뒤졌다. 혹시 연못에 빠져 죽지나 않았는지, 혹시 호랑이가 물어 가지나 않았는지 부부는 노심초사 아들 성구복을 찾았으나 어디에도 없었다. 늙은 부부는 매일 아들을 찾으며 가슴을 태웠다. 그러나 멀리 길 떠난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복 찾아 길 떠난 성구복은 하염없이 길을 걸었다. 도대체 복이란 어떻게 생겨 먹었고 또 어디 있는 것일까? 그 복을 좀 찾아서 복을 많이 가져 와야 행복하게 잘 살 것 같은데 도무지 복이 어디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들길을 걸어 강을 건너고 산을 넘어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을 기웃거려도 보고 또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들을 지나 그 복을 찾아 터덜터덜 성구복은 끝없는 길을 걸었다. 밤이 되면 이슬을 막아주는 헛간이나 민가에 의탁해 잠을 자고 낮이면 얻어먹거나 들나물을 캐 씹고 산열매를 찾아 따 먹으면서 길을 갔다.

 

추운 겨울에는 누더기를 걸치고 추위에 떨며 굶주림에 허덕이며 길을 갔다. 맑은 날, 바람 부는 날,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을 가리지 않고 길을 걸었다. 이제 보니 그 복을 찾아 가는 길은 참혹한 고행의 길이었다. 그러더라도 반드시 이 고통을 극복해 내고 '원수 놈의 복 어디 있는가 모르겠다.'고 매일 복 타령만 하는 어머니를 위해 그 복을 찾아 많은 복을 가지고 집에 돌아가야만 했다.

 

 그새 성구복이 복 찾아 길을 떠난 지 몇 해나 흘렀을까. 성구복은 어느새 어엿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그러도록 그 복이란 복의 그림자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도 길을 그치지 않고 그 복을 찾아 나아갔다.

 

 어느 봄날 무릉도원처럼 복숭아꽃이 만발한 첩첩이 깊은 산길을 굽이굽이 접어 걸어 들어가던 저녁 무렵 성구복은 골짜기에 있는 대궐 같은 집 앞에 이르렀다. 방안에 사람이 있는지 불빛이 오롯이 켜져 있었다. 오늘 밤은 이곳에서 묵어가야 했다.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성구복은 집안사람을 불렀다.

 

 "누구신가요?"

 잠시 후 아리따운 여인 하나가 다가와 대문을 열었다.

 

 "길가는 나그네인데 하룻밤 묵어갈까 하고 왔소이다."

 "그래요. 어서 들어오세요."

 

 성구복은 여인을 따라 방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여인이 저녁을 차려왔다. 맛있게 저녁을 먹고 잠을 청하려는데 여인이 부엌으로 나가더니 큰 사발을 열 개가 넘게 들고 들어왔다. 무엇을 하나 지켜보니 그 사발에 물을 가득 담아 방 가운데 일렬로 나열하는 것이었다.

 

 "손님은 저 윗목에서 주무세요. 나는 이곳에서 자겠어요."

 여인이 말했다. 성구복은 윗목에서 잠을 청했다.

 

 아침이 되어 여인이 조반을 해 들고 왔다. 아침을 먹고 길을 떠나려는데 여인이 말했다.

 

 "도대체 당신은 어디를 가시는 뉘신가요?"

 "사실 저는 성구복이라고 하는데 복을 찾아 복 타러 길을 가는 사람이라오."

 "아! 그래요. 그렇다면 혹시 복 주는 사람을 만나거들랑 제 사연도 좀 물어보시면 어떻겠어요?"

 

 여인이 말했다.

 

 "좋소. 무슨 사연이요?"

 "나는 어떻게 해서 이 첩첩 산중 대궐 같은 집에서 혼자 사는지 그 사연을 좀 물어봐다 주시오."

 "내 그러리다. 잘 머물다 갑니다."

 

 성구복은 여인과 작별을 하고 다시 길을 재촉했다. 과연 복이라는 것이 어디 있을까? 성구복은 찾을 길 없는 먼 길을 또 기꺼이 재촉하는 것이었다. 산 넘고 강을 건너고 들을 지나 성구복은 하염없이 나아갔다.

 

 그렇게 또 얼마를 갔을까. 파란 호수가 나타났다. 거기 물가 가장자리에 물안개가 가물가물 피어오르는데 가만 보니 커다란 이무기 한 마리가 하늘로 곧추 솟구쳐 오르는 것이었다.

 

 '아아! 이무기가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하려는 순간이란 말인가!'

 성구복은 다가가 자세히 보았다. 그런데 이무기는 하늘로 오르지 못하고 그렇게 몸을 곧추세우고만 있는 것이었다.

 

 "당신은 어디로 가는 뉘시오?"

 이무기가 성구복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성구복이라는 사람인데 지금 복 찾아 복 타러 가는 길이라오."

 "그렇다면 내 사연도 좀 물어봐 주오. 어째서 이렇게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하지 못하고 곧추 몸만 세우고 있는가 말이오."

 "알았소이다. 내 그렇게 하리다."

 

 

 성구복은 그렇게 대답을 하고 다시 가던 길을 재촉했다.

 

 또 얼마를 더 걸어갔을까. 셀 수 없는 날들이 길 위에 더해졌다. 성구복은 목이 말라 마을의 어느 대궐 같은 집으로 물을 마시러 들어갔다. 물을 청하자 그 집 아낙이 한 대접 물을 들고 왔다. 성구복은 꿀꺽꿀꺽 물을 달게 마셨다. 물을 마시고 대접을 건네려니 아낙이 말했다.

 

 "당신은 어디로 가는 뉘시오?"

 "나는 지금 복을 찾아 복을 구하러 가는 사람이오."

 "그래요. 그렇다면 혹시 내 사연도 좀 알아볼 수 있겠소?"

 

 아낙이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좋소. 말해 보시오."

 "아이고! 나는 자식을 낳으면 발바닥에 흙 묻힐 만 하면 죽어 버리고 죽어 버리고 그런다오. 이 무슨 조화인지 좀 알아봐다 주시오."

 "내 꼭 그리하리다."

 

 성구복은 그렇게 말하고 집을 나와 다시 길을 걸었다. 아! 어디로 가야 그 복을 찾을 수 있을까? 어려 복 타러 간다고 집을 떠나 이제껏 하염없이 걸었건만 도무지 그 복을 주는 곳은 없었다. 성구복은 산길 옆 산모롱이 바위 위에 앉아 푸념을 하며 지친 다리를 토닥거리며 파란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하늘을 뒤덮으며 커다란 차알 같은 날개를 가진 호랑나비 한 마리가 성구복에게 달려들었다. 성구복은 '아악!' 하고 비명을 지르며 정신을 잃어 버렸다. 얼마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호랑나비를 타고 날아가고 있었다. 까마득히 밑에는 첩첩이 산이었다. 펄렁펄렁 날개를 휘저으며 하늘을 날던 호랑나비가 어느 산속 깊은 계곡 커다란 궁전 대문 앞에 앉았다. 성구복은 얼른 그곳으로 내려갔다. 호랑나비는 다시 하늘로 펄렁 날개를 열고 사라져 버렸다.

 

 도대체 이곳이 어디란 말인가? 성구복은 그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길가로 천도복숭아가 주렁주렁 열린 길을 따라갔다. 끝에 시내가 지나고 커다란 집이 나타났다. 거기 들창문이 열려있었는데 머리카락이며 늘어뜨린 수염이 새하얀 노인하나가 성구복을 보고 말했다.

 

 "너는 누구냐?"

 "저는 복 찾아 복 타러 온 성구복이라는 사람이오."

 

 성구복이 말했다.

 

 "그래, 그럼 이 방으로 들어오너라."

 

 노인이 말했다. 성구복은 그 방문 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에는 아름다운 선녀 같은 아가씨들이 얼핏 보아도 열 명이 넘게 있었는데 두서넛씩 모여 앉아 글을 쓰고 있거나 배우거나 외우고 있었다. 성구복은 방안에 앉아있는 노인 앞으로 갔다.

 

 "네가 바로 다섯 살 때 복 타러 떠나온 성구복이로구나."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보니 너는 네 복이나 타러 오지 왜 다른 이들 복까지 타러 온 것이냐?"

 

 아마도 그것은 여인과 이무기와 아낙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어떻게 저 노인이 다 알고 있단 말인가? 성구복은 노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복을 타러 간다니까 자기들 복도 좀 물어 봐 달라고 해서 그렇습니다."

 "허허! 그래, 좋다. 내 다 일러 주마. 자 주위를 둘러 보거라 저것이 다 복주머니들이다."

 

 노인이 웃으면서 말했다. 성구복이 노인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사위를 둘러보니 이름이 써진 오색의 주머니가 수없이 천장이며 벽에 걸려있었다. 저게 각각의 인간들의 복을 담은 주머니란 말인가. 보아하니 선녀 같은 아가씨들은 복주머니를 만들어 거기 이름을 써서 걸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네 복주머니는 어디 있는가? 아! 여기 있구나."

 

 노인이 수없이 많은 복주머니를 헤아려 성구복의 복주머니를 찾아 주었다. 노인은 성구복의 복 주머니를 싣고 갈 수레를 금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천도복숭아 두 개를 주며 여인과 이무기와 아낙의 사연도 들려주었다. 성구복은 드디어 금수레를 끌고 집으로 향했다.

 

 산 넘고 강을 건너 길을 따라 헤일 수 없이 가다보니 마침내 물을 얻어 마셨던 아낙의 집이 나타났다. 성구복은 금수레를 그 집 대문 앞에 세워두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아이구! 복은 타서 오시는가요?"

 성구복을 아낙이 먼저 보고 반가워서 말했다.

 

 "복을 타서 이렇게 집으로 가는 길이라오."

 "그렇다면 내 사연도 물어 봤나요?"

 "물론이지요. 당신은 돈이 많아 그 돈이 악귀가 되어 자식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는 거였소. 돈을 벌어 대청 밑에도 마루 밑에도 부엌 밑에도 모조리 파헤쳐 돈을 숨겨 놓았는데 그 돈을 파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조리 나누어 주면 자식들이 잘 자랄 거라 했소."

 "어허! 귀신이 따로 없네 그랴. 잠시만 기다리시오."

 

 아낙이 성구복의 말을 듣더니 괭이를 가져와 숨겨 놓은 돈을 모두 파서 금수레에 가득 실어 주며 말했다.

 

 "돈보다도 먼저 자식이라고 했소. 당신이 마음대로 이 돈을 처분해 주시구려."

 

 성구복은 그 돈을 싣고 또 길을 재촉해 집으로 향했다. 몇날 며칠을 길을 가다보니 이제 호수가 나타났다. 거기 커다란 이무기가 곧추 서 있다가 성구복을 알아보고 말했다.

 

 "복을 타서 오는 길이오?"

 "그렇다오."

 "그럼, 나는 왜 이렇게 하늘로 승천을 하지 못하고 있는지 그 까닭을 물어 보았나요?"

 "그렇지요. 다름이 아니라 당신은 여의주를 하나만 가졌으면 승천을 했을 텐데 둘을 가져서 승천을 못한다고 했소."

 "아! 그렇단 말이오. 그럼, 여기 있소. 이 여의주 하나 가지시오."

 

 이무기가 입안에 문 여의주 하나를 대뜸 성구복에게 빼주었다. 그리고는 호수에 자욱한 안개를 가득 피워 올리더니 하늘로 번쩍 용이 되어 구름을 타고 승천하는 것이었다.

 

 성구복은 이무기가 준 그 여의주를 금수레에 싣고 다시 길을 재촉했다. 어서어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들길을 지나 강을 건너고 산을 넘어 수많은 날들을 지나다 보니 그 첩첩 산중의 대궐 같은 드디어 여인의 집 앞에 당도했다.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성구복이 소리쳤다. 잠시 후 대문이 덜컹 열리면서 이내 그 여인이 나타났다.

 

 "아니! 누구신가 했더니 그 복 타러간다는 사람이군요. 그럼 내 사연도 물어보았나요?"

 "그렇지요. 당신은 처음 만난 사람이 바로 당신의 천생연분이라고 했다오."

 

 성구복이 말했다.

 

 "그래요, 처음 만난 사람이라고요?"

 여인이 무슨 생각에라도 잠긴 듯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다가 어린아이처럼 팔짝 뛰며 말했다.

 

 "그렇다면 바로 당신이 제 낭군님 아닌가요. 이제부터 나 당신하고 살겠어요! 아이 좋아라!"

 "그래요. 그럼 나랑 같이 우리 집으로 갑시다."

 

 성구복도 그 여인이 좋았다. 성구복은 그 여인을 금수레에 싣고 집으로 가는 길을 재촉했다. 끝없이 이어진 길을 걷고 걸어 마침내 다섯 살 때 떠났던 집 앞 산마루 바위 앞에 당도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성구복을 애타게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구복아! 어디 있니? 내 아들 구복아!"

 성구복이 소리 나는 쪽으로 가보니 거기 허리가 구부정한 백발의 깡마른 늙은 노인 하나가 서있었다. 자세히 보니 아버지였다. 그런데 눈을 꾹 감은 것이 앞을 못 보는 장님이 되어 있었다.

 

 "아이고! 아버지, 아들 구복이가 돌아왔네요."

 성구복이 아버지를 끌어안으며 소리쳤다.

 

 "시방 뭐라! 내 아들 구복이가 돌아왔다고!"

 아버지는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아버지! 제가 구복입니다."

 "오메! 우리 아들 구복이라고! 이놈아! 이거 몇 년 만이냐!"

 

 금이냐 옥이야 길렀던 어린 아들이 떠나고 아버지는 진날 갠날 없이 매일 바위에 나와서 아들이름을 외며 기다렸던 것이다. 그 세월이 이십 년이 흘러 초로의 노인이 되어 있었고 성구복은 스물다섯 어엿한 청년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성구복은 아버지를 금수레에 싣고 집으로 향했다. 집 앞에 당도하여 '어머니!' 하고 부르면서 집안으로 들어서는데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성구복은 금수레를 마당에 세워놓고 방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어머니는 방안에 반듯이 누워있었다. 숨이 넘어갈 듯 꼴깍 죽어가고 있는 찰나였다.

 

 성구복은 부리나케 마당으로 나가 금수레에 실린 천도복숭아를 가져왔다. 그 절반을 쪼개 어머니 입안으로 넣었다. 그것을 삼킨 어머니가 금세 화색이 돌더니 젊은 날의 모습을 회복하더니 눈을 번쩍 뜨고 바라보는 것이었다.

 

 "어머니, 제가 아들 구복입니다. 이제 돌아왔습니다."

 성구복이 말했다.

 

 "네가 우리 아들 구복이라고! 내 아들 구복아!"

 어머니가 성구복을 얼싸안고 소리치며 반가움의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 내가 복을 찾아 복 타러 떠났다가 복을 타가지고 이제 돌아왔소. 이제 우리 행복하게 삽시다."

 성구복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성구복은 천도복숭아 반쪽을 아버지에게 그리고 또 반쪽은 아내가 된 여인에게 그리고 남은 반쪽은 자신이 먹었다. 그리하여 복을 찾으러 떠난 성구복은 대복을 타와 가난한 이웃들에게 돈도 나누어 주고, 부모와 여인과 함께 아들 낳고 딸 낳고 오래오래 늙지도 않고 건강하게 잘살았고 한다.

<전라북도 전설지 - 전라북도 옥구군 전설>

 

 

 

이야기 들여다보기

 

 우리는 새해가 되면 흔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서로 인사를 한다. 또한 설날 웃어른에게 절을 올리면 '새해 복 많이 받아라.'는 덕담을 듣는다. 도대체 인간의 복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이 전해오는 이야기에서 옛날 우리 조상들이 인간의 복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엿볼 수 있다.

 

 성구복이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원수 놈의 복 어디가 있는가 모르겠다?' 라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매일 듣고 자라난다. 이러한 상황은 현대에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삶에서 복이 넘쳐 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렇다면 과연 성구복이 찾아 헤맸던 복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렵지 않게 그것을 알 수 있다. 먼저 성구복의 어머니가 추구한 복은 재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재물 다음이 바로 자식이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재물과 자식이 곧 성구복의 어머니가 추구한 복에 해당된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야기는 재물이 있었을 때는 자식이 없었고, 재물이 없었을 때는 자식이 있었다. 복의 속성이 상호 모순이라는 것이다. 성구복의 어머니가 재물과 자식을 함께 가지고 누릴 수 있었다면 이 이야기는 성립될 수 없음을 우리는 직감 할 수 있다.

 

 자식은 있는데 재물이 없어 원수 놈의 복 타령을 하던 끝에 자식마저 결국 복 찾으러 어머니 곁을 떠나게 된다.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고 타박하다보면 갖고 있는 것조차 다 놓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새로운 도전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성구복이 추구한 복은 무엇인가? 우리는 성구복이 추구한 복을 여인과 이무기와 아낙에게서 엿볼 수 있다. 여인은 결혼하지도 못하고 혼자 산다. 이 여인이 바라는 복은 배우자 복이다. 그렇다면 이무기는 무엇인가? 이무기는 용이 되지 못한 구렁이다. 용은 여의주를 물고 하늘을 날며 천하를 희롱한다. 여기서 이무기는 권력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아낙이 추구한 복은 무엇인가? 자식복이다.

 

 지금까지 열거한 복들을 정리해 보면 재물복, 자식복, 배우자복, 권력복 이렇게 네 가지로 정리된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성구복이 차례대로 이 복들을 성취한다는 결말로 이어진다. 물론 성구복 뿐만 아니라 여인과 이무기와 아낙도 자신들이 추구하는 복들을 성취한다.

 

 이야기의 결말에서 우리는 새로운 복이 추가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무병장수의 천도복숭아가 그 단서다. 건강과 장수 그것이 인간이 추구하는 또 하나의 복이라는 것을 성구복의 아버지가 장님이 되고 어머니가 죽음에 이를 지경에 이르렀는데 천도복숭아를 먹고 건강을 회복해 새로 젊음을 회복했다는 것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위 복을 성취함에 있어서 이 이야기는 중요한 가르침을 준다. 이무기에게서 우리는 과욕을 금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만 가져도 될 여의주를 두 개나 가졌다면 그것이 더 좋을 것 같으나 결국 그것으로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음을 말하고 있음은 소중한 가르침이다. 작금의 각계의 지도자라는 위인들의 인맥이나 재력, 학력 등의 면면과 주변을 살펴보면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은 다가지고 있는데 정작 하늘을 승천하는 용처럼 큰일은 도무지 해내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제 가진 것에 얽매어 참된 것을 보지 못하는 소인배들의 작태를 우리는 읽을 수 있다. 좋은 것은 절대 내놓으려하지 않고 오로지 긁어 담으려고만 하니 대의(大義)가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작금의 용꿈을 꾸고 있는 자들이 새겨야할 대목이다. 버려라! 그래야 비상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버려야 한단 말인가? 각자 생각해볼 일이다.

 

 아낙은 또 어떤가? 자식을 가지고 싶으나 많은 재물 때문에 얻은 자식이 일찍 죽는다. 세상을 살다보면 남부러울 것 없이 가졌는데 그 안을 들여다보면 자식이 일찍 죽은 사연이 있거나 그에 맞먹는 부모 형제 자식 간의 다툼 같은 흉한 일을 안고 있는 집안 내력이 종종 있음을 들을 때가 있다. 재물이란 산 생명의 목으로 넘어가야할 생명과 같은 것이다. 그 생명과 같은 것을 혼자만 잔뜩 가졌으니 모두의 공물인 자연이 준 그것이 없어 죽거나 사고를 당한 여러 원한서린 목숨의 사연이 숨어있는 것이다. 그 생명과 같은 재물은 뭇 생명과 함께 나누어야한다는 것을 주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인은 무엇인가? 대궐 같은 집을 가지고 있어도 세상 사람과 더불어 살지 않고 더더욱 젊은 여인이 혼자 살아간다는 것은 의미가 없음을 말하고 있다. 반드시 배필을 만나 함께 살아가야만 인생의 진정한 가치가 있음을 말하고 있음이다. 그리고 그 여인은 까다롭게 배필을 저울질해 구하는 등의 행위를 하지 않는다. 운명을 순응하고 기꺼이 즐거워한다. 어쩌면 이것이 곧 참다운 사랑의 길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이 모든 좋은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는 사실을 조상들이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을 넌지시 깨닫게 된다. 우리는 인생에서 다 가진 자는 언젠가는 다 잃을 날이 반드시 있고, 하나를 가지면 반드시 하나를 잃게 된다는 엄연한 섭리를 깨닫는 것이다.

 

 성구복이 20년이 넘게 고생을 해 어렵게 복을 구해 돌아온다는 것은 결국 복이라는 것은 결코 쉽게 구할 수 없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조상들은 복이 하늘에서 어느 날 뚝 떨어진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음이다. 누구처럼 좋은 부모 만나 온갖 복을 누리고 살아간다는 것은 그것이 참된 복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끝으로 이야기는 효행을 강조한다. 성구복이 복을 구해 돌아와 봉사가 된 아버지가 눈을 뜨고 죽어가는 어머니를 살려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았다는 것은 효도야말로 복의 근원이고 또 부모와 함께 누리는 복이 진짜 참된 복이라는 것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설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덕담을 하는데 이는 복을 많이 받아 그 복을 혼자만 잔뜩 누리라는 것이 아니라 '복을 함께 나눠 누리자'라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겠다. 나눌 복이 없는 사람들은 따뜻한 마음이라도 나눠야겠다. 정작 함께 나눠 누릴 마음의 자세가 전혀 없다고 한다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는 말이 얼마나 가치 없는 허언이고 망언인가를 깊이 생각해 보는 설날이 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새로 쓰는 한국의 전설을 오마이뉴스 블로그(http://blog.ohmynews.com/koldstory)에서 연재하고 있으니 많은 관심 바랍니다.


태그:#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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