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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2월 3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예년보다 유난히 긴 설 연휴를 앞두고 많은 직장인들은 고향 찾을 생각에 벌써부터 들뜬 분위기다. 하지만 다가온 설 연휴가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사람이 있다. 바로 11년간 근무해온 버스회사에서 두 번씩이나 해고당한 버스기사 김상진씨다.

 

김씨는 지난 2006년 회사 대표와 다투면서 1차 해고를 당했다. 이후 부당해고 취소를 위한 법적 투쟁 끝에 2년 3개월 만에 복직에 성공했다. 회사로 돌아간 이후 김씨는 서울시에서 시행하는 '시내버스평가'가 버스기사들의 노동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으로 서울시 당국에 수차례 개선을 요구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김씨는 회사 측으로 부터 2차 해고를 통보받았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1월 28일 고양시의 한 당구장에서 김상진씨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를 만난 당구장은 그가 2차 해고를 당한 후 생계수단으로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저 XX 봐라"... 폭언한 대표에 항의한 뒤 '미운털'

 

사건은 5년 전인 지난 2006년부터 시작된다. 당시 서울시 'ㄷ버스운수회사' 소속으로 광역버스를 운행하던 김씨는 회사대표의 호출을 받고 회장실로 불려 올라갔다. 그날 오전 김씨가 운행 중이던 버스가 고장나 길가에 정차해 있던 것을 회사 대표가 목격한 것이 문제가 됐다. 회사 대표는 김씨를 나무라며 당시 버스를 정비했던 정비담당자도 함께 호출했다.

 

"저 XX 봐라 저거, 꼭 일 못하는 XX들이 얼굴에 티를 내고 다니지."

 

회사 대표는 얼굴에 기름때를 묻히고 들어온 정비담당자에게 폭언을 내뱉었다. 당시 김씨는 회사 대표의 이 같은 폭언에 "회장님, 차 밑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온 사람에게 그렇게 말씀하시면 어떡합니까?"라고 항의했다. 이에 회사 대표는 김씨에게 시말서를 요구했지만 그는 응하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회사 측에 미운털이 박힌 김씨는 얼마 후 대물 보상액 80만 원 상당의 접촉사고를 일으켰고, 소명의 기회도 없이 회사 측으로부터 일방 해고당했다.

 

이때부터 김씨는 부인과 함께 포장마차를 운영하며 회사 측의 부당해고에 맞서 법적투쟁을 시작했다. 서울지방 및 중앙노동위원회, 행정법원, 고등법원에서 차례로 김씨의 해고처분이 부당하다는 판결이 내려졌고, 대법원 계류 중 김씨는 복직을 전제로 회사 측과 합의했다. 해고된 지 2년 3개월 만의 일이다.

 

복직한 김씨는 버스기사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특히 지나치게 많은 운행횟수가 사고율을 높인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버스준공영제'(서울시가 모든 시내버스 노선 및 경영을 총괄하는 제도로 2004년 7월1일부로 시행)를 시행하는 서울시에 끊임없이 운행횟수를 낮춰 줄 것을 요구했다.

 

김씨는 버스기사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연차사용불가'와 '대체근무' 문제도 서울시에 제기했다. 턱없이 부족한 기사인력에서 비롯되는 이 문제들의 근본원인을 서울시가 매년 '성과이윤' 지급을 위해 서울시내 전체 버스회사를 대상으로 시행하는 '시내버스 평가'에서 찾은 것이다.

 

"서울시 평가기준, 버스기사 사지로 몰고 있다"

 

실제로 서울시내 66개 버스회사는 버스준공영제를 시행하는 서울시로부터 운행 버스 1대당 일일 2만4980원의 기본이윤을 보장받는다. 그러나 이중 30%에 해당하는 7494원을 '성과이윤'으로 떼어내 서울시가 마련한 평가기준에 맞춰 성적이 좋은 업체들에게 차등지급하고 있다.

 

예를 들어 66개 업체를 성적순으로 3개 그룹으로 묶는다면, 최상위 그룹에는 성과이윤 7494원의 200%인 1만4988원을 지급하고, 중간 그룹에는 100%인 7494원을, 최하위 그룹에는 0원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지급되는 성과이윤은 연간 200억 원 규모다.

 

문제는 이 같은 평가기준에 '운전직 인건비 절감도'라는 항목이 존재한다는 데 있다. 이 항목의 평가는 서울시가 표준운송원가를 기준으로 마련한 '인건비한도' 대비 실제 회사에서 지출한 연간 운전직 인건비가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서 등급이 매겨진다. 버스기사를 적게 고용할수록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이다.

 

서울시는 '시내버스평가 매뉴얼'을 통해 이 평가항목의 취지를 '운전자 고용 및 효율적인 인력운영을 통한 경영효율성 제고'라고 밝히고 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 관계자도 "우리는 버스 한 대당 최대 2.69명의 최대치를 설정하고 있다"며 "이 최대치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버스회사들의 고용 자율성을 보장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씨는 "성과급으로 지급되는 액수가 연간 수십억 원이다 보니 버스회사에서는 어떻게든 직원을 적게 뽑아 높은 평가를 받으려 한다"고 반박했다. 또 그는 "그러다 보니 기사들은 휴일도 없이 밤낮으로 초과근무를 하고 있다"며 "졸음운전이 대형사고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4월 김씨는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이 같은 문제의 개선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김상진씨의 민원은 허위민원으로 앞으로 별도 분류하겠다'는 답변서와 "사회에 무슨 불만이 그리 많냐"는 담당직원의 폭언뿐이었다.

 

"버스준공영제,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지난해 1월, 김씨는 회사 측으로부터 2차 해고의 발단이 된 징계처분을 받았다. 당시 운행을 마치고 차고지로 들어오던 중 충전소 옆 충격방지펜스를 들이받은 것이 징계 사유였다.

 

이 사고로 김씨는 '10일 정직 및 보조기사 전보' 처분을 받았지만 회사 내규상 이 같은 징계처분은 직원평가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김씨에 따르면 당시 회사 관리자가 "골치 아픈 당신을 처벌하기 위해 내규를 수정했다"고 밝혔다고 한다.

 

"이 사회는 그렇게 도덕적이고 정직하지 않다. 그리고 해고 같은 큰 사안이 아니라면 사용자의 인사권을 폭넓게 인정해주고 있다. 앞으로 이런 문제를 가지고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솔직하게 드리는 말씀이다."

 

김씨는 경기지방노동위원회(당초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제소했지만, 해당 회사 차고지가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해 경기노동위로 이관됐음)에 회사측을 부당징계로 제소했지만 '회사측이 인사권을 남용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패소했다.

 

패소 이후 보조기사(일명 '스페어')로 근무하게 된 김씨는 운행경험이 전혀 없는 노선에 배치됐다. 정류장 위치를 잘 몰라 사고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한 그는 회사 측에 유급 견습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3일간의 승무거부 끝에 동료에게 무급 견습을 받은 김씨는 이후 4개월 동안 무사고로 버스를 운행했다.

 

그러나 징계처분을 받은 지 4개월 만에 회사 측은 또 다른 징계위원회를 열어 김씨의 해고를 결정했다. 당시 김씨가 받은 해고처분의 사유는 '승무거부', '지각 1회', '위계질서 문란'이었다. 김씨는 "서울시 평가를 비판하고 기사들 권리를 얘기하는 나 같은 사람이 얼마나 눈엣가시였겠냐"며 "2차 해고 또한 부당해고"라고 주장했다.

 

지난 3일 김씨는 부당해고로 회사측을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제소한 상태다. 그는 "일단 제소 결과를 지켜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11년간의 버스회사 근무에 두 번의 해고를 당한 김씨는 "버스기사들의 작은 권리를 주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서울시의 버스준공영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해내고 싶다"며 "그것이 시민들과 기사들, 회사에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ㄷ버스운수회사'측은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김씨의 경기지방노동위원회 제소와 관련해 "노동위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별도의 언급을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새우잠 자고 다시 운행... 대형사고 확률 높아

 

다음은 김상진씨와 나눈 일문일답.

 

- 회사대표에게 호출됐을 당시 왜 정비 담당자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나?

"거기서부터 내 인생의 고리가 바뀌었다. 그때는 그런 모욕적인 발언 때문에 마음이 울컥해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왔다. 그 정비기사 굉장히 착하고 나이도 어린 사람이었다. 엔진부에서 일하는 사람들 보면 만날 차 밑바닥에 들어가서 정말 힘들게 일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나?"

 

- 1차 해고의 정확한 사유가 무엇이었나?

"그 전에도 접촉사고가 자주 있었다. 서울시가 늘 자랑처럼 얘기하지만 준공영제 이후로 사고가 많이 줄긴 했다. 그건 사실이다. 그 전에는 업체 간 경쟁이 심해 모든 신호를 위반하면서 운행했다. 그러다 보니 3개월에 한 번씩은 꼭 사고가 있었다. 이렇게 쌓여있던 사고 이력이 당시 발생한 80만 원짜리 대물사고에 더해졌다. 그게 해고의 이유였다."

 

- 1차 해고 이후 복직까지 2년 3개월이 소요됐다. 그동안 생계는 어떻게 해결 했나?

"포장마차도 하고, 퀵 서비스도 했다. 사실은 빚잔치를 한 거다. 빚내서 살아갔다. 당시에 노동위원회, 행정법원, 고등법원에서까지 전부다 승소했지만, 금전적으로 너무 어려워서 대법원 계류 중에 합의를 한 것이다. 포장마차는 정말 힘들었다. 그때는 주말도 기쁘지 않았다. 이틀 쉬면 또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웃음) 고생한 부인에게 지금도 너무나 미안하다."

 

- 서울시와 직접 접촉해 운행횟수를 기존 7회에서 6회로 줄였다. 어떤 의미가 있나?

"일단 신호위반을 덜 하게 됐다. 심리적으로 덜 쫓기게 됐고. 그때까지는 회사 측 관리자들도 '운행에 대한 정비비 등 사고 처리비, 민원이 모든 것들이 다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동료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 연차사용불가, 대체근무가 버스기사들에게 가장 힘든 일이라고 했다.

"근본적인 이유는 서울시에 있다. 서울시에서 업체평가를 하면서 인건비를 줄일 목적으로 사람을 적게 쓰도록 유도한다. 준공영제 운영적자를 줄이기 위해서다. 사람을 적게 쓰면, 연차사용이나 대체근무 문제는 불거질 수밖에 없다. 직원 입장에서 눈치 보이게 누가 연차를 쓰나? 대부분 기사들이 연차사용을 못한다. 대체근무로 오후반, 오전반을 연속근무하면 하루에 1~2시간 새우잠을 잔다. 이런 경우 대형사고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하루에 한두 명은 꼭 이런 식으로 근무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 보조기사(스페어기사)라고 하셨는데, 주로 어떤 분들인가?

"버스기사들은 정규직과 촉탁직으로 나뉜다. 촉탁직은 정년 지난 사람들 위주인데, 보통 1년 계약직이다. 그리고 늦게 들어온 신입 기사들. 보통 이 사람들로 보조기사를 꾸린다. 요즘은 촉탁직 외에는 인원 충원이 없다보니 근무평가를 통해 하위에 있는 기사들을 보조기사로 내려 보내기도 한다. 보조기사들은 고정된 버스가 없이 대체근무 위주로 운행을 한다. 쉬는 날이나 운행시간이 대중없다."

 

"상당수 버스노조들, 이른바 '어용노조'라 생각"

 

- 서울시에서 성과급을 지급한다고 알고 있다. 성과급을 타면 기사들 보수에도 반영되나?

"우리 회사에서도 한 번은 받은 적이 있다. 천연가스버스 도입으로 평가점수가 높아진 것인데, 그들이 하는 말은 '기사들의 노력이 없었기 때문에 줄 수 없다'였다. 기사들 임금에 반영할 의무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 왜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성과이윤'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냈나?

"처음에 홈페이지를 통해 민원을 제기하니 담당자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로는 설명이 어려우니 직접 찾아오라고 말했다. 그래서 찾아갔더니 '자신이 해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 이후 담당자가 교체됐고, 교체된 담당자는 만나기를 거부했다. 그래서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내용증명을 보냈다."

 

- 서울시 개선요구나 사측과의 불화 문제를 왜 노조를 통해 해결하려 하지 않았나?

"솔직하게 이야기하겠다. 1차 해고 후 복직하면서 나름대로는 노동 환경을 바꿀 자신이 있었다. 처음에는 노조에 들어가서 버스기사들 복지문제를 상의했다. 임금체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상의였지만 노조에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노동조합에서 징계를 받았다. '무기정권'이라고 해서 조합원으로써의 권리를 무기한 정지당한 것이다. 회사에서의 징계도 노조 징계와 동시에 시작됐다. 열심히 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상당수 버스노조들이 이른바 '어용노조'라고 생각한다."

 

- 당시 동료들의 반응은 어땠나?

"동료들이 격려전화도 많이 걸어줬고, 여러모로 큰 도움을 줬다. 보조기사로 배치됐을때, 아무래도 노선을 잘 모르니 차가 많이 밀렸다. 그때 앞차들이 내가 너무 벌어질까봐 일부러 쳐져줬고, 뒤차들은 기다려줬다. 그렇게 되면 배차시간에 불만을 가지고 욕하는 승객이 많기 때문에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 부분을 감수하면서 대부분이 많이 도와줬다."

 

- 앞으로 특별한 계획이 있나?

"지난번 복직했을 때부터 꿈꿔오기는 했는데,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버스준공영제의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개선을 이끌어내고 싶다. 버스기사들의 작은 권리주장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시민들이나 기사들, 그리고 회사에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제소한 경과를 지켜볼 생각이다."

덧붙이는 글 | 김재민 기자는 <오마이뉴스> 13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해고, #김상진, #버스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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