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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대우 해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부평공장 정문 아치 위 고공농성이 56일째 이어지고 있는 지난 25일 신현창 GM대우차비정규직지회 지회장을 만났다. 신 지회장의 단식농성은 이날로 37일째였다. 서너 차례의 요청 끝에 인터뷰를 허락한 신 지회장은 인터뷰에 앞서 "조심스러운 상황"이라며 인터뷰를 거절했던 이유를 나지막하게 말했다.

 

신 지회장이 머물고 있는 텐트 안에는 이불과 전기장판이 있었지만, 영하 10도를 밑도는 한파로 인해 냉기가 돌았다. 책과 잡지 서너 권 가운데 '사람을 살리는 단식'이라는 제목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신 지회장의 건강을 걱정해 누군가 가져다준 책이리라.

 

GM대우는 3년 동안 자사와 무관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복직 등을 논의할 대상이 아니라며 이들의 투쟁에 무응답으로 일관해왔다. 하지만 인천지역 야5당과 종교계, 시민사회와 노동계 등이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송영길 인천시장과 인천시의회 등이 나서서 문제 해결을 요구하자 변화된 모양새를 보였다.

 

사측은 지난 2010년 12월 23일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과 전국금속노조 GM대우자동차지부(=정규직 노조)가 참석한 1차면담에서 '(하청)업체 폐업으로 인한 정리해고자 9명은 2011년 내에 단계적으로 복직하고, 나머지 6명은 1년 6개월 후 재논의하자'는 안을 제시했다. 그러다 2차면담에선 1차면담에서 제시했던 안에서 9명에 포함된 2명(=2008년 복직 포기), 6명에 포함된 1명을 복직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이어 지난 18일 실시된 3차면담에선 2차면담에서 제시했던 2명에 대해선 전향적으로 검토하겠지만 2차 (하청)업체에서 해고된 1명은 제외하겠다며, 제안이 받아들여지면 복직 시기는 추가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하지만 결국 제외된 1명 때문에 협상은 결렬됐다.

 

한 달 넘게 진행되는 단식농성... "부모님 떡국 드시는 모습 보고 싶어"

 

인천지역 각계 인사들은 24일 GM대우의 결단을 촉구하며 집단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혹독한 한파를 맨몸으로 버티고 있는 고공농성 노동자들과 40일 가까이 단식농성하고 있는 신 지회장의 고통을 함께 하기 위함이다.

 

72kg 나갔던 몸무게가 58kg로 준 신 지회장은 "육체적이나 정신적으로 힘든 건 사실이다. 하루하루 상태가 다르다. 활동시간이 줄기 시작했다. 몸 상태가 좋으면 하루 5시간 정도는 집회 등 행사에 참여할 수 있으나, 상태가 좋지 않으면 그마저도 어렵다. 저녁 촛불집회와 중식집회 등에 참석하고 있다"고 현재 상태를 전했다.

 

신 지회장은 설 명절이 코앞인데, 협상에 진척이 없어 답답하다며 "농성하는 우리나, 연대오는 분들, 회사 관계자, 경찰 등 모두다 명절 전에 문제가 해결되기를 희망할 것"이라며 "설 명절 내가 떡국은 못 먹어도 부모님 떡국 드시는 것은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서 신 지회장은 "회사가 처음엔 무관하다고 하더니 '9+6'을 제시하고 다시 '12+3'을 제시했다. 15명을 정규직도 아닌 하청업체에 복직시키겠다는 큰 합의를 해놓고 한 명이 2차 (하청)업체에서 해고된 사람이기 때문에 협상을 결렬시키는 것은 회사가 교섭을 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끝으로 신 지회장은 한 평 남짓한 정문 아치 위에서 농성 중인 황호인씨와 이준삼씨가 폐쇄 공간에서 장기간 노출돼 있어 육체적으로 힘들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힘들 것 같고, 투쟁이 끝나면 치료가 필요하다고 걱정했다.

 

아래는 신 지회장과의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 일주일 있으면 민족 최대 명절인 설이다. 그 전에 해결되길 간곡히 바랄 것 같다.

"당연하다. 식구들하고 설 명절을 보내고 싶은 맘은 농성하는 해고 비정규직들이나 연대 투쟁을 하는 분들, 회사, 경찰 관계자 모두의 마음일 것이다. 부모님이 계신 곳은 서울이다. 비정규직 투쟁하는 것은 알지만 이렇게 단식하고 있다는 사실 모를 것이다.

 

나도 설 명절엔 집에서 가족과 있고 싶다. 단식하는 모습 부모님에게 보여드리고 싶지도 않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집에 갈 수도 없는 처지다. 이 상태로 계속가면 투쟁하는 설 명절을 맞을 것 같다."

 

- 경찰이 21일 농성장에 설치한 천막을 철거했는데.

"회사가 경찰을 압박했을 것이다. (회사가) 용역 직원 300~400명 동원하면 사실 막을 방법도 없다. 농성자가 몇 명 되지도 않는데, 농성장 쑥대밭 되고, 나 같은 사람은 크게 다칠 거다. 경찰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철거를 대신 한 것으로 믿고 싶다."

 

- GM대우 비정규직 문제가 전국적인 사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GM대우 비정규직 투쟁은 대표적 비정규직 투쟁사업장이었던 기륭전자, 동희오토, 현대차의 모순을 모두 가지고 있다. 기륭과 동희는 노조를 만드는 과정에서 투쟁이 촉발됐다. 지난해 말 기륭전자에 이어 간접고용 문제를 놓고 장기투쟁을 벌여온 동희오토에서도 해고자를 복직시켰다. GM대우 비정규직 문제는 현대차 비정규직 문제처럼 동일한 환경에서 동일노동을 했음에도, 비정규직을 차별한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이 두 가지가 현재 비정규직 투쟁의 가장 큰 쟁점이다. "

 

- GM대우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인천지역 시민사회, 종교계, 야5당, 그리고 송영길 시장과 시의회도 나섰다.

"트위터 보고, 뉴스 보고 오시는 분들이 종종 있다. 젊은 나도 놀랍다. 촛불문화제는 벌써 55일째인데, 매일 100여 명씩 꾸준히 연대해주시고 있다. 시민단체 회원이나 현장 활동가들도 있지만, 종종 일반 시민들이나 대학생 등이 서울 등지에서 온다. 비정규직 문제가 공감대가 넓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연대하는 동지들에게 빚진 이 맘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짐을 어떻게 갚을까가 고민이다. 복직을 한다면 조금씩 그 빚을 갚겠지만, 너무 많은 분들의 연대와 그 맘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아직 모르겠다."

 

"사측, 2차 하청업체 해고자 이유로 협상 결렬... 이해 안 되는 행동"

 

- GM대우차비정규직지회가 비정규직 투쟁을 선도한다는 느낌인데?

"그건 아니다.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을 보면 알 수 있다.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냐. 사학은 정부보조금 받으면서도 대학 등록금을 계속 올린다. 그러면서도 사학은 계속 돈을 벌고 있다. 그런데 정작 대학에서 가장 어려운 일을 하는 청소노동자들은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있다. 얼마나 모순된 것이냐. 저를 비롯한 투쟁을 함께 하는 비정규직 친구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 우리가 상징적 투쟁을 이끌고 있다는 것은 지나친 확대 해석이다."

 

- 회사 입장에선 비정규직지회의 요구를 전부 수용할 수는 없는 거 아니냐며 노조가 양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처음 우리의 주장은 해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복직과 정규직화였다. 우리가 직접 교섭에 나서지 못한 상황이라 강성노조 이미지만 부각되는 듯하다. 핵심인 정규직화 요구는 거론도 안 된다. 교섭이 중재자에 의해서 진행되다 보니 쓸 수 있는 협상 카드가 없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게 됐고, 한 발도 양보하지 않는 모습으로 비치고 있다. 3년 동안 동고동락하면서 함께 투쟁해온 15명의 복직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선별적으로 복직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회사는 처음엔 우리와 무관하다고 하더니 '9+6'을 제시하고 전원 복직에 합의하더니 이젠 '14+1' 등으로 자꾸 우리 내부를 갈라놓고 있다. 타협할 의향이 없어 보인다. 처음엔 문제 제기도 하지 않았던 2차 하청업체 해고자를 이유로 협상을 결렬시키는 회사의 의도는 합리적 대화상대로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이다."

 

- 황호인씨와 이준삼씨가 고공에서 농성한 지 56일째인데, 건강이 걱정된다.

"12월 1일 올라갔다.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 새벽엔 체감온도가 영하 20도에 이르는 혹한에도 투쟁하고 있다. 그래도 현재까지는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괜찮아 보인다. 하지만 몸이 많이 망가졌을 것이다. 특히 정신적으로 피폐해질 것이다. 그들을 극한적 상황으로 내몰아서는 안 된다고 본다.

 

사람이 공격적으로 변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들었다. 폐쇄적 공간이 주는 압박감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가 해결돼 내려오면 건강검진을 받아야하지만, 정신적으로 치료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생각이다."

 

- 터무니없는 질문이지만, 만약 타결이 돼 내일 당장 출근한다면 어떤 심정이겠냐?

"평범한 노동자로 살고 싶다. 현장에서 근무하고 노동조합에서 활동도 하고, 돈 벌어 전세로 옮기는 등의 소시민적 고민을 할 것이다. 그런 것이 일반 노동자의 삶이고, 저도 그렇게 살고 싶다."

 

- 많은 정치인이 농성장을 왔다갔다. 누가 기억에 남느냐?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비정규직 투쟁하면서 두 번 만났다. 첫 번째는 지난해 8월이었고, 최근 이곳을 방문했다. 두 번째는 친근감마저 들었다. 얼마 전에는 유시민 전 의원도 다녀갔다. 감사하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와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에게도 감사하다. 안효상 사회당 대표와 창조한국당 지도부들에게 감사한 맘이다. 그만큼 이 투쟁이 상징적이라고 생각한다.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미래연대 빼고는 다 왔다간 셈이다. 그만큼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돼야한다는 시각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고 본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 없이는 한국사회의 미래는 없다. 양극화 심화는 비정규직 양산 때문 아니겠냐.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당이 차기에 수권정당이 되지 않겠냐."

 

- GM대우 회사 측에 하고 싶은 말은?

"최근 GM대우는 회사명을 바꾸고 '쉐보레'를 전면 도입하기로 결정하고 기자회견도 했다.

우리도 힘들지만 회사도 비정규직 문제로 인해 손해를 많이 입고 있을 것이다. 수천억원을 투입해 회사명도 알리고 쉐보레도 홍보해야 하는데, 비정규직 문제를 외면하는 회사로 비칠 까봐 걱정도 있을 것으로 안다. 오히려 이미지를 반감시킬 수 있으니 말이다. 내가 경영자라면 수백 수천명도 아닌 15명을, 그것도 정규직이 아닌 하청업체 복직인데,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는 회사로 이미지를 심어주는 이 문제를 왜 방기하겠나. 참 답답한 모습이다."

 

- 참 얄궂은 질문이지만, 오늘 25일로 단식 37일째인데 상상이 가지 않는다. 지금도 허기지냐. 혹 먹고 싶은 음식이 있나?

"허기지다는 느낌은 단식 10일 이후부터 없어졌다. 먹고 싶은 음식을 물어보니 (잠시 생각하다) 쇠고기를 종류별로 먹고 싶다. 돼지고기도 부위별로 먹고 싶다. 통닭에 생맥주도 한 잔 하고 싶다. 날이 추워서 그런지 생선구이도 먹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부평신문(http://bpnews.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비정규직, #GM대우, #신현창, #GM대우 비정규직, #쉐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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