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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현대문학의 거장들의 작품들이 차례로 소개됐다.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손꼽히는 필립 로스와 돈 드릴로의 작품이 그 주인공이다. 1998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필립 로스는 미국의 생존 작가 중 유일하게 라이브러리 오브 아메리카, 즉 미국 문학의 고전을 펴내는 비영리 출판사에서 완전 결정판이 출간될 작가다. 돈 드릴로는 미국 작가로는 최초의 예루살렘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다. 국내에서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재 그들은 그들의 이름 하나만으로도 미국 현대문학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 명성을 자랑하고 있다.

그래서인가.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그들의 작품에 기대감이 생긴다. 필립 로스의 <울분>과 돈 드릴로의 <마오 Ⅱ>는 우리가 모르고 있던 거장들을 좀 더 가깝게, 좀 더 친숙하게 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작품은 어떨까? <울분>은 1950년대, 한국전쟁이 벌어지던 어느 날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유대인 가정 출신의 마커스 메스너는 이제 막 대학에 입학했다. 또래가 그렇듯, 그는 좀 더 자유롭고 좀 더 열정적인 날들을 꿈꾸고 있었다.

<울분> 표지
 <울분> 표지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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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람들이 전쟁터로 끌려가 죽음을 당하던 시절이었다. 마커스의 아버지는 아들 또한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아들을 끊임없이 간섭하고 구속하려 든다. 그 때문에 마커스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학교를 옮긴다. 그곳에서 마커스가 꿈꿨던 것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법률가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커스의 꿈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주변의 많은 것들이 청춘의 한복판에 서 있는 마커스를 간섭하고 강제하려 든다. 그 모든 것들에 대해, 마커스는 분노하고 화를 낸다. 치기 어린 모습일 수 있었지만, 마커스는 세상의 어떤 것으로부터도 '강제'당하고 싶어 하지 않아했다. 그래서 마커스의 삶은 끊임없이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아주 심각한, 어쩌면 학교에서 쫓겨나 한국전쟁에 징집되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이를 때까지 말이다.

필립 로스의 글은 섬세하다. 그의 소설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장인정신'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울분>도 마찬가지다. 필립 로스는 <울분>에서 마커스라는 남자를 통해, 그리고 청춘을 통해서 격정과 분노를 대단히 섬세하면서도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 밀도 높은 묘사력은 마커스의 심리상태까지 놓치지 않고 있다.

덕분에 <울분>은 마커스의 분노와 격정들 하나하나를 손끝으로 만지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끼게 해준다. 그 시절, 청춘의 한복판을 지나가던 젊은 영혼의 불안정한 심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인데 그 모든 것들이 필립 로스의 소설답다. 칠십 대에 들어서도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누가 있을까? <울분>은 필립 로스의 소설을 매력을, 나아가 필립 로스라는 작가의 매력까지 만끽하게 해주는 소설이다.

<마오 Ⅱ> 표지
 <마오 Ⅱ> 표지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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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른 묘사력은 돈 드릴로의 <마오 Ⅱ>에서도 눈에 띈다. 하지만 이 작품이 묘사하는 건, 개인의 심리가 아니다. 그보다는 매스미디어, 군중 사이에서 상실된 '개인'에 관한 것이다. <마오 Ⅱ>는 양키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통일교의 집단결혼식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곳에서 캐런이 결혼을 하고 있다. 캐런의 부모는 이 상황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 지시해주는 상대와 결혼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은 그런 것이었다. 딸이 어디에 있는지 찾기도 어려운 그곳에서 부모가 할 수 있는 건 원망하며 다짐하는 것이다. 이 광적인 종교 단체의 실상을 파헤치겠다는 것, 그것이다.

<마오 Ⅱ>에는 이런 대중들과 멀어진 채 살아가는 작가가 등장한다. 세상에서 '전설'로 추앙받는 소설가, '빌 그레이'다. 조수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빌 그레이는 소설을 고치고 또 고치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세상은 빌 그레이를 찾고 그의 소설을 원하고 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빌 그레이의 소설이 그토록 대단했기 때문일까? 그의 소설은 성실한 것이었고 놀라운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빌 그레이는 이 모든 것이 소설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대중적인, 매스미디어가 만들어낸 어떤 현상에 불과했다. 그래서인지 빌 그레이는 세상의 구석 속으로 더 숨으려고 한다. 마치 그래야만 소설가로써의 가치를 지켜낼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마오 Ⅱ>는 두 개의 커다란 줄기로 만들어진 소설이다. 첫 번째는 개인성이 몰살된 집단성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통일교, 호메이니 등으로 표현되고 있다. 두 번째는 개인주의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는 빌 그레이의 삶이다. 빌 그레이는 어째서 그렇게도 자신을 숨기려 했던 걸까? 소설가로서, 그리고 개인으로서 무엇을 그렇게 지키려 했던 걸까? 돈 드릴로는 <마오 Ⅱ>에서 그것을 묵직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그 솜씨가 남다르다. 세상을 풍자하는 이야기와 그것을 그려내는 신랄한 묘사는 <울분>이 그랬듯 작품을 넘어 작가에 대한 매력까지 만끽하게 해주고 있다.

이렇게,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들이 인사를 건네 왔다. 이제라도 그들의 인사를 받아주는 건 어떨까? 장인정신이 느껴지는 소설들이니 반가움을 표시해도 좋을 것이다. 아주 많이.

덧붙이는 글 | <울분> / 필립 로스 / 정영목 / 문학동네 / 2011년 1월 / 1만1000원
<마오 Ⅱ> / 돈 드릴로(지은이) / 유정완(옮긴이) / 창비 / 2011년 1월 / 1만3000원



울분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문학동네(2011)


태그:#필립 로스, #돈 드릴러, #미국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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