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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21일 부당해고에 맞서 700m 지하 갱에서 단식농성을 벌인 광산노조 조합원들.
 지난 12월 21일 부당해고에 맞서 700m 지하 갱에서 단식농성을 벌인 광산노조 조합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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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월급 콩알만 하네 
아버지 월급 쓸 것도 없네."

"아버지께서는 난 이제 광부가 되었으니 열심히 일해야 되겠지만
너는 커서 농부나 거지가 되었으면 되었지
죽어도 광부는 되지 말라고 하신다."

1980년 사북초등학교에 다니던 광부의 아이들은 그렇게 시를 썼지만 20년 후 그 중 누군가는 아버지의 바람과 달리 광부가 되었다.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의 한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강기석(가명)씨도 그랬다. 강씨는 광부였던 아버지를 규폐증(진폐증의 한 종류)으로 잃고, 역시 규폐증을 앓는 어머니를 모시고, 부인과 두 아이를 광산일로 먹여 살린다.

광산에서 캔 석탄을 출하시키는 과정에서 사람이 땅 밑으로 들어갈 때 타는 엘리베이터와 탄을 실어 나르는 탄차의 줄을 끌어당기는 작업이 그의 일이다. 한 번 실수로 여러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업무라 늘 진땀이 난다. 1주일에 한 번은 사고를 내는 꿈에 놀라서 깬다. 그 일을 17년이 넘도록 해왔다. 그동안 큰 사이렌 소리로 신호를 받은 그의 한쪽 귀는 고장이 났다. 탄가루를 마셔온 폐는 숨 쉬기를 자꾸 힘들어한다. 그런 그의 임금은 88만 원. 17년차 근속 노동자가 한 달에 21일을 일한 액수로도, 네 가족을 먹여 살릴 액수로도 한참 모자란 돈이다. 같은 일을 같은 기간 한 정규직은 384만 원을 받는다.

같은 일 하는 정규직은 384만 원... 하청 노동자는 88만 원

같은 일을 같은 기간 동안 했지만 하청노동자들에게는 88만원이 정규직에게는 384만원이 지급된다. 하청노동자의 월급명세표(왼쪽)와 정규직 월급명세표(오른쪽)의 액수가 확인하게 차이가 난다.
 같은 일을 같은 기간 동안 했지만 하청노동자들에게는 88만원이 정규직에게는 384만원이 지급된다. 하청노동자의 월급명세표(왼쪽)와 정규직 월급명세표(오른쪽)의 액수가 확인하게 차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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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는 연간 생산량을 정해 1년 단위로 도급계약을 한다. 현재 하청업체는 17개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각 하청업체는 또 하청업체를 여럿 두고 있다. 이른바 소사장제다. 석탄공사가 지급하는 인건비는 A업체로 오면서 60%이 되고, 다시 A업체 밑 a, b, c업체로 나뉘어 내려오면서 40%이 된다. 거기서 시간외수당, 주말수당 등이 빠지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급여를 일당으로 계산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까지는 급여명세표조차 주지 않았다.

"임금계산 산정표가 따로 없어요. 그냥 사장이 일급 7만 원 준다, 이러는 거에요. 임금 항목도 마음대로 바꿔요. 연장근로수당비율을 높여서 통상임금을 낮춘다든가 하는 일이 벌어지죠."

정규직의 40%라는 임금은 이렇게 나온다. 기간제보호법을 피하기 위한 사용자들의 편법은 이 외에도 다양하다. 담합입찰을 비롯해 매년 사용자를 변경하거나 위장사업자를 등록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A업체에 소속된 노동자들은 5명, 10명씩 B, C, D업체 소속으로 나눠진다.

"제 소속은 A기업인데 월급은 B기업 사장이 입금해주는 거에요. 둘이 친구예요. 사장들은 서로 다 아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매년 돌아가면서 입찰을 하는 거예요. 담합입찰이죠. 그런데 감사는 한 업체만 받아요. 또 문서로만 대충 감사를 하니까 고쳐지질 않는 거죠."

소속 기업은 A기업이나, 월급 입금은 B기업 사장이 했다.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서로 바지사장을 두고 있다고 노동자들은 말했다.
 소속 기업은 A기업이나, 월급 입금은 B기업 사장이 했다.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서로 바지사장을 두고 있다고 노동자들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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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노동자들은 1년마다 도급계약을 맺는데, 10개월 계약을 하고 2개월 연장고용을 하는 식이다. 퇴직금 누진제를 피하기 위해서다. 근로계약서는 없다. 도장을 사장에게 주면, 사장이 알아서 계약서를 작성한다.

"계약서라도 한 번 보여 달라고 하니까, 사장이 '그럼 보고 앞으로 나오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목표생산량을 채우기 위한 부당노동행위도 빈번하다. 감금 근로를 당하기도 한다고 원정호(49) 태백권광산노조 위원장이 말했다.

"갑반, 을반, 병반이 있어서 교대근무를 하는데, 요즘은 석탄공사 보안규정상 병반근로(야간근로)를 제한하고 있어요. 위험하니까. 1075m 지하에 작업구역이 있어요. 사갱인차를 타고 오르내리는데, 인차를 운행하는 운전공은 오전 7시부터 오후11시 30분까지 2교대로 일하고 퇴근해요. 그런데 오후 11시에 노동자들을 내려 보내서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일을 시키는 거에요. 그 동안은 사고가 나든 다쳐서 피를 흘리든 거기서 나올 방법이 없어요. 그렇게 일 시켜놓고서 야간근무수당이나 시간외수당은 안 주는 거죠."

진정 낸 이들에게 강제로 받은 '계약해지 동의서'

지난 2010년
7월 23일 장성, 도계광업소 하청노동자 256명은 '법정수당 미지급 청구 진정서'를 노동지청에 제출했다. 체불된 야간근로수당과 주휴수당, 연월차수당 등 법정수당을 제대로 지급해 달라는 것이다. 광산노조에 따르면 실제 진정사건 해당 노동자는 1000명이 넘는다고 했다. 이로 인해 이들은 해고 위협과 '밤길 조심하라'는 협박에 시달렸다. 강기석씨가 종이 한 장을 들어보였다. '계약해지 동의서'라는 글자 아래 몇 명의 서명이 쓰여 있었다.

"여기 사인한 분들은 광업소에서 돌 고르고 부수는 고된 일 하는 50~60대 어머님들이에요. 남편들이 일하다 산업재해로 돌아가시고 자녀들 먹여 살리느라 이 험한 데 와서 20~30년씩 일해 온 분들인데 규폐증에 안 걸린 분들이 없어요. 그런 분들한테 사측이 이번에 진정사건을 냈다는 이유로 이걸 강제로 받은 거에요. 사인 안 하면 내년에 일 안 시킨다면서. 억지로 사인을 하고 나서 어머님들이 주저앉아서 통곡을 했어요. 나중에 이걸 근거로 재계약을 안 해도 할 말이 없잖아요."

결국 40여 명이 진정을 취하했다. 남은 이들은 위협을 이기고자 10월 6일 민주노총 강원본부 태백권광산노동조합(위원장 원정호)을 결성했다. 광산지역에서 30년 만에 탄생한 첫 민주노조다.

하청노동자들의 이러한 용기를 법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태백노동청은 7월에 낸 진정사건에 대한 판결을 12월이 되도록 내지 않았다. 지난 11월 노조측이 이유를 묻자 노동지청은 "사안의 중대성과 법리해석의 파급효과를 고려해 노동부본부에 질의했고, 본부에서 검토 중이라 지연되고 있다"는 공문을 보내왔다.

"너무 어이가 없죠. 명확히 체불임금이 있는 걸 법리해석상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건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안 가죠." (원정호 위원장)

사건 처리를 맡은 선임노무사는 11월 말부터 연락이 끊겼다고 했다. 노무법인 태일의 김학진 노무사는 "진정서 처리기한은 원래 30일이다.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라며 지역사회의 이해관계가 작용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을 표명했다.

"힘들지 않냐고요? 우리는 더 이상 몰릴 곳이 없습니다"

지난 2010년 12월 19일, 노동청은 "임금체계를 포괄임금으로 볼 수 있다"며 진정을 사실상 기각했다. 사용자가 임금을 체불했음에도 이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12월 21일 원정호 위원장을 비롯한 노동자 4명은 출근한 자리에서 해고통보를 받았다.

그러나 귀중한 승리도 있었다. 12월 21~23일 750m 채탄막장에 들어가 30도를 웃도는 고열과 습기, 석탄가루로 점철된 어둠 속에서 콜록대며 단식농성을 벌이기를 사흘, 신규 하청업체로의 재고용을 합의한 것이다.

노조를 지원하는 민주노총 강원본부의 조한경 사무국장은 "하청노동자들이 행동하기 어려운 상황임에도 벌써 500여 명이 조합에 가입하는 등 의지를 보이고 있다"며 상황을 고무적으로 평가했다. 원 위원장은 "기쁘다"고 하면서도 "노동조건이 개선되지 않으면 이런 일은 여전히 반복될 것"임을 강조했다.

그의 말대로 달라진 건 없다. 노조는 체불임금에 대한 민사소송을 준비하는 동시에 각 하청업체들에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하고 있다. "힘들지 않느냐"는 물음에 "우리는 더 이상 몰릴 곳이 없다"고, 노동자들은 말했다.

덧붙이는 글 | 2010년 12월 8, 21일 이틀 동안 취재한 내용입니다.



태그:#탄광, #광산노조, #하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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