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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잔디광장에서 이군현 한나라당 의원과 최문순 민주당 의원 공동개최로 열린 '전설의 돔 오픈 이벤트'에서 의사당 건물에 입체 영상을 쏘아 로보트 태권브이가 지붕을 열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장면을 선보이고 있다.
 11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잔디광장에서 이군현 한나라당 의원과 최문순 민주당 의원 공동개최로 열린 '전설의 돔 오픈 이벤트'에서 의사당 건물에 입체 영상을 쏘아 로보트 태권브이가 지붕을 열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장면을 선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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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명이 넘는 직원들과 연간 5000억 원의 예산을 사용하는 국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막강한 권한을 가진 행정부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다. '아무리 선한 권력도 견제 받지 않으면 부패하고 남용된다'는 역사적 경험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헌법은 제2장에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고, 바로 다음 장인 제3장에서 국회를, 이어 제4, 5장에 정부, 법원을 규정함으로써, 국회의 행정부 견제기능을 중시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견제 기능 포기한 국회, 존재의 이유 잃어

국회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수단은 법률안제개정권, 예산심의확정권, 국정감사권으로 크게 나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3년 동안 한나라당은 매번 제대로 된 심의 없이 예산안을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헌법에서 보장된 예산심의가 보장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4대강 사업 예산을 비롯한 정부안을 사실상 그대로 통과시킴으로써, 헌법에 규정된 '3권 분립' 정신을 훼손했다. 국민의 세금이 한 푼이라도 소홀히 쓰이지 않도록 정부의 예산 편성과 집행을 감시하는 것이 국회의 역할이란 면에서 보면 지금 우리 국회는 '식물 국회'다.

더 문제인 것은 현실을 보는 국회의장의 문제의식 수준이고 정당 지도자들의 당리당략적 이익 챙기기이다. 이런 국회와 정치가 국민들로부터 외면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과거 우리 국회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대통령중심제 하에서 행정부를 견제하기보다 들러리 서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러나 치열한 민주화 투쟁과 민주정부 10년을 거치면서 국회가 점차 제 기능을 회복해가던 차에 최근 우리 국회는 다시 '행정부의 시녀'로 전락해가고 있다. 예산은 다음 연도 나라 살림을 짜는 것이기 때문에 빨리 처리하는 것보다 꼼꼼하고 치밀하게 심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작금의 사태를 보면 견제를 받아야 할 행정부는 입법부의 권능을 무시하고 있으며 여당은 행정부에 이끌려 다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 낫다고 얘기하면 더 이상 할 말을 잃게 된다.

이제 국회의 예산심의에 있어 무엇이 문제이고 어떤 혁신이 필요한지 본격적으로 논의를 해야 할 때이다.

부실 예산심의, 제도상의 문제-턱없이 짧은 심사 기간

정의화 국회부의장이 지난해 12월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1년 예산안을 재석의원 166인 가운데 찬성 165인 반대 1인으로 가결을 선포하고 있다.
 정의화 국회부의장이 지난해 12월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1년 예산안을 재석의원 166인 가운데 찬성 165인 반대 1인으로 가결을 선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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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헌법에서는 정부가 회계연도(1월 1일~12월 31일)마다 예산안을 편성하여 회계연도 개시 90일 전까지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이를 의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헌법 제54조 제1항). 따라서 국회에서 예산을 심사할 수 있는 기한은 60일에 불과하다. 60일 동안의 국회 예산심의절차를 보면 정부의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 소관 상임위원회의 예비심사,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이하 예결위)의 종합심사, 그리고 본회의의 심의·확정으로 종결된다(국회법 제84조). 국회에서 예산을 심사하는 60일 중 실질적으로 증액과 감액이 이루어지는 심사기간은 현실적으로 2주일에도 미치지 못한다.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이루어지는 예비심사는 길어야 7일 정도 걸리는데, 이 기간 동안 심사된 결과는 대다수가 증액된 것으로 본격적인 예산심의라고 보기 어렵다. 사실상 자기위원회 소속 기관에 대한 배려와 생색내기가 주류를 이룬다.

각 상임위에서 예산안 예비심사를 마치면 예결위로 회부되어 증액과 감액에 대한 최종심사가 이루어진다. 예결위에서는 통상 전체회의로 공청회 1일, 정부에 대한 종합정책질의 2일, 부별 심사 4일, 그 이후 계수조정소위에서 1~2주일 동안 진행된다. 우리 국회는 본회의 질의, 상임위 질의, 국정감사시 질의, 예결위질의간에 차별화가 별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어 이에 대한 개선도 시급한 실정이다. 결국 예결위 계수조정소위에서 이루어지는 예산심사가 본격적인 심사이며, 그 결과에 대해 예결위 전체회의 의결을 거쳐 본회의에서 최종 의결되는 것이다.

이 2주일 동안 예결위 계수조정소위에 참여하는 15인의 소위 위원들이 행정부의 3만6000여 개에 달하는 사업예산 중 삭감할 것을 골라낸 후, 삭감한 총량을 고려하여 증액이 이루어진다. 슈퍼맨이라도 감당하기 어려운 업무량이다. 상임위에서 예비심사를 거치고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예산 논의가 있었다고 하여도, 최종적인 실질심사가 길어야 2주일이니 국회의 예산심사기간이 너무나 부족한 것은 자명하다. 우리의 법정 예산심사기간 60일은 앞서 살핀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짧은 기간이다.

더 큰 문제는 정기국회가 예산국회에 중점을 두어야 함에도 국정감사와 병행하다 보니 예산심사를 할 수 있는 기한은 법에서 정한 60일보다도 크게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매년 국정감사가 빠르면 10월 중순, 늦으면 11월 초에 끝나고 나서 국회에서 예산 심의를 하다 보니 예산을 심사할 수 있는 기간은 한 달 남짓 남게 된다. 헌법에서 규정한 예산심의기한(12월 2일)을 넘어서 12월 31일까지 낭비 없이 꼬박 예산을 심사하더라도 국회가 예산심의에 쓸 수 있는 기한은 두 달 남짓에 불과하다. 게다가 여야간에 첨예한 사안 등으로 심사일정이 연기되거나 희의가 공전되면 이 두 달마저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게 된다. 1998년부터 지금까지 예결위에서 실제 심사한 일수를 계산해 보면 평균 32일에 불과하다.

300조가 넘는 국가예산을 심도 있게 심의하기에 30여 일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기간이다. 2010년 예산 기준으로 정부 부처의 사업개수는 약 3만6000개에 이른다. 50명의 예결위 위원들이 모두 참여해 약 30일 동안 주말도 거르지 않고 예산을 심사한다고 가정하여도 하루에 한 사람이 24개 사업을 마쳐야 하는 과도한 업무량이다.

부실 예산심의, 대화·타협 실종된 국회... 권위 버린 무능한 국회지도부

지난해 12월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의화 국회부의장이 2011년 예산안을 강행처리를 시도하자, 홍영표 민주당 의원이 예산안 표결 처리를 막기 위해 의장석으로 뛰어오르고 있다.
 지난해 12월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의화 국회부의장이 2011년 예산안을 강행처리를 시도하자, 홍영표 민주당 의원이 예산안 표결 처리를 막기 위해 의장석으로 뛰어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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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심의기간이 짧더라도 국회에서 여야가 대화와 타협을 통해 주어진 시간을 최대로 효율적으로 활용한다면 부실 예산심의라는 논란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짧은 예산심의 기간도 모자라 여야가 이해관계에 따라 의사일정에 합의하지 못하면서 상당 시간을 허송해 왔다. 예산은 그 특성상 국민 각계각층의 권익이 보장되도록 우선순위에 따라 적정 금액이 배정되어야 하므로 소수라 하더라도 국민을 대변하는 야당과의 대화를 통해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 여당은 조금 불편하면 수적 우세를 이용하여 단독으로 예산안을 상정하여 심의 통과시키는 것을 일상화하고 있고, 또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3권분립의 원칙이 무너지고 여야 간에 갈등과 불신이 깊어지며, 나아가서는 국회에 대한 국민불신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8일 한나라당이 단독으로 통과시킨 내년도 예산이 대표적 사례이다. 국회는 정부를 견제하고 민심을 반영하는 대의민주주의의 산실이어야 함에도 여당은 행정부를 견제하기는커녕 행정부의 독주와 독선을 뒷받침해준 것이다. 근본적인 원인은 막강한 권한을 가진 대통령으로부터 찾을 수밖에 없다. 행정 각부는 대통령을 그대로 닮는다. 대통령이 국회를 무시하면 각 부처 장관들도 국회를 존중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헌법상의 삼권분립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국회를 존중해주면 거의 대부분의 국회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편한 길만을 택하여 독주하게 되면 국회는 파행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

설령 대통령이 국회를 거추장스러워하고 존중하지 않더라도 훌륭한 국회의장이 있다면 상당 부분 국회는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국회의장은 본회의를 사회 보는 것이 주 역할이 아니다. 국회의장은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국회의 권위와 존엄성을 지키고 국민을 대신해서 행정부를 감시하는 견제자 역할을 할 수 있는 능력과 철학, 그리고 시대적 사명감을 갖추어야 한다. 국회의장은 당적을 버리도록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어떤가? 국회의장이 앞장서서 행정부 하수인 역할을 하고 있다. 국회의 입법권과 예산심의 확정권이 침해되는 법안과 예산의 직권상정을 밥 먹듯이 하고 여당 단독처리를 지원해주고 있다. 대한민국 국회지도부의 한심한 현실이다. 국회의 권위를 세워야 할 의장이 앞장서서 권위를 실추시키고 있는데도 임기가 보장되는 대한민국은 참으로 좋은 나라이다.

무엇이 바뀌어야 하나? 제도개선에 앞서 '상생의 문화' 정착돼야

영국과 미국 의회의 예산심의 과정은 우리나라 국회의 제도개선을 위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 국회의 예산심의 기간이 60일임에 반해 미국과 영국은 각각 240일, 120일을 예산심의에 배정하고 있다. 이를 위해 두 국가 모두 회기를 1년으로 규정하여 상시국회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도 예산심의 기간을 현재보다 더 연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예산결산위원회를 상설 위원회로 두어 연중 필요한 심의를 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이들 두 국가는 예산심의과정에서 정부예산안을 이중으로 검토하고 있다. 정부가 이중으로 예산안을 제출하면 그만큼 행정효율이 떨어진다는 반론도 있겠지만, 국민의 세금이 한 푼이라도 소홀히 쓰이지 않도록 예산안을 철저하게 심의하겠다는 의지를 읽어야 할 것이다.

영국과 미국에서 세입과 세출을 분리하여 심의하는 것도 의미 있는 과정과 절차라고 생각된다. 영국의회는 시간차를 두어 세입과 지출을 심사한 후 세부세출내역을 심사하고, 미국 연방의회는 세출위원회와 세입위원회를 분리하여 예산심의를 병행하고 있다. 세입과 세출은 그 특성이 상이하고 상호 독립성과 견제도 필요한 만큼 분리하여 심사토록 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총괄적으로 예산을 심사하는 예결위에서 세입이나 세출 모두 조율하고 있다.

여러 가지 제도개선을 제시하였지만 여야가 대화를 통해 심의하고 합의하는 '상생의 문화'가 정착되지 않으면 설령 제도개선을 한다 하더라도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아무리 심의기간을 확대하고 이중 검토 제도 등이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여당이 불편하면 현재처럼 수적 우세를 바탕으로 단독 상정하여 날치기 통과시켜버린다면 큰 의미가 없다. 국회가 정신 차리는 것이 제도개선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얘기이다. 대통령이 정신 차리고 국회의장이 정신 차리고, 다수당이 국민 무서운 줄 알고 소수당도 국민 무서운 줄 아는 길밖에 다른 지름길은 없는 듯하다.

덧붙이는 글 | 이용섭 의원은 재정경제부 세제실장, 국세심판원장, 관세청장을 거쳐, 참여정부 초대 국세청장으로서 노무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이후 참여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혁신수석, 행정자치부장관, 건설교통부장관을 지냈으며 33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정치인으로 변모하여 제18대 국회의원으로서 의정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용섭, #국회 , #예산 심의, #대화와 타협, #상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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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정치에 뛰어들었습니다. 재정경제부 세제실장, 국세심판원장을 거쳐 관세청장, 국세청장, 대통령비서실 혁신수석, 행정자치부장관, 건설교통부장관, 18, 19대 국회의원을 역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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