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판소리 열두 마당 가운데 실전이 된 여섯 마당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가루지기타령'이라는 '변강쇠타령'이다. 이는 실전이 된 것을 신재효가 정리를 하였다. 이 가루지기타령은 우리의 반가에서는 금기시 되어온 '성'과 '죽음'을 노래로 만든 것으로, 양반사회의 적대시로 실전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 기루지기타령에 보면 남녀 간의 성이 그대로 묘사가 되어있다. 그 중 한 대목을 들어보면

 

이상히도 생겼구나. 맹랑히도 생겼구나

늙은 중의 입일는지 털은 돋고 이는 없다

소나기를 맞았는지 언덕 깊게 패였구나

콩밭 팥밭 지났는지 돔부 꽃이 비치었다

도끼날을 맞았는지 금 바르게 터져있다

생수처 옥답인지 물이 항상 고여 있다.

 

이렇게 성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가루지기타령이, 19세기 후반까지 전승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가루지기타령의 남자 주인공인 변강쇠가 땔감을 한다는 것이, 길가에 서 있는 잘 마른 장승을 패다가 아궁이에 집어넣는다. 전국에 있는 장승들은 모든 장승의 대장장승인 노들장승에게 가서 변강쇠의 죄목을 이야기하고, 그 벌로 변강쇠는 수많은 병을 얻어 죽고 만다.

 

 

장승은 기원은 언제인가?

 

이 변강쇠에게 많은 병을 준 장승은 민간신앙의 대상물이다. 장승은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하는데, 최초로 장승을 세운 것은 사찰의 경계 표시였다는 것이다. 또한 이 장승은 노표장승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노표장승이란 길을 떠난 나그네에게 길 안내를 하는 장승을 말한다. 이렇게 다양한 역할을 하는 장승은 언제부터 민간신앙물이 되었을까?

 

장승은 마을의 입구 양편에 '천하대장군'과 '지하대장군'을 갈라 세운다. 남녀 한 쌍을 세우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지만, 마을에 따라서는 5방에 세우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동방청제축귀대장군' '남방적제축귀대장군' 등의 명호를 복판에 적어 넣는다. 그리고 열 곳이 넘는 곳에 세우기도 한다.

 

 

이렇게 세우는 장승은 언제부터 시작이 되었을까? 최고의 장승은 사찰의 경계표시로 세운 장승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기원은 다양한 학설이 있다. 남근숭배 설에서 기인하였다고도 하고, 솟대나 선돌, 혹은 서낭당에서 유래가 되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어느 학설이 정확한 것인지는 아직도 속 시원히 밝혀진 바는 없다.

 

광주 엄미리 장승과 검복리 장승

 

장승, 장성, 장신 등과 벅수, 벅시, 돌하루방. 혹은 수살이나 수살목 등 다양한 명칭을 갖고 있는 장승은, 오랜 세월 우리 민초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마을의 안녕과 가내의 안과태평을 기원하는 대상물로 자리를 잡아왔다.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 입구에 자리한 엄미리 장승과 검복리 장승은, 모두 마을의 수호장승과 길을 안내하는 노표장승의 복합적인 직능을 갖고 있다.

 

엄미리 장승이 서 있는 곳 가운데로 내가 흐르고, 도로가 나 있다. 지하여장군은 냇가 위에 자리를 하고 있고, 도로 건너편 산자락에는 천하대장군이 집단으로 서 있다. 엄미리 장승제는 벌써 35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엄미리 장승제는 병자호란 때 죽은 원혼들이, 마을에 해를 입혀 처음으로 시작을 했다고 전한다. 그런 점으로 보면 이 장승은 처음 장승을 세운 이유가 마을의 안과태평을 기원하는 수살목으로 세웠음을 알 수 있다.

 

2년에 한 번씩 오리나무로 장승을 깎아 황토물로 얼굴을 칠한다. 엄미리 장승은 전국의 장승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는 평을 받는다. 이와는 달리 검복리 장승은 남한산성으로 오르는 도로가에 천하대장군이 서 있고, 100m 정도 떨어진 건너편에 지하여장군이 서 있다. 검복리 장승 역시 마을의 수호와 노표장승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해학적인 모습의 장승, 우리의 모습

 

검복리의 장승들은 나란히 줄을 맞추어 일렬로 서 있다. 2년 만에 한 번씩 새로 깎아 세우는데, 오래되어 썩어서 쓰러져도 그 자리에 놓아둔다. 이는 장승이 신성한 것이고, 인간을 사악함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검복리의 장승은 사모를 쓰고, 눈은 둥글다. 수염이 있으며 귀는 나발 통이다.

 

 

이런 모습을 장승을 깎는 것은 마을주민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었을까? 아마도 마을에서 섬기는 장승이기에 주민들 스스로가, 나의 아픔을 미리 알아서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눈 크게 뜨고 사악한 것을 막아주고, 귀를 크게 열어 고통을 들어주는 모습. 장승은 우리마음의 바람의 모습이다. 세상을 잘 살고 싶은 우리모습이 그 안에 내재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수백 년을 그렇게 눈이오나 비가오나 마을 입구에서서, 마을을 지켜 낸 장승. 그 장승은 단순히 나무를 깎아 만든 조형물이 아니라. 우리 모습 그대로를 닮은 우리의 속마음이라는 생각이다.


태그:#한국의 풍속, #장승, #광주, #엄미리 검복리, #수호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