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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TRACK대표 제인 정 트렌카를 만나 입양과 미혼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난 17일 TRACK대표 제인 정 트렌카를 만나 입양과 미혼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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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 애기."

엄마와 나는 방바닥에 누워 있다. 엄마가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 상상해 보건대, 정신착란 상태에 있는 엄마의 머릿속은 지금 1972년이다. 엄마 나이 마흔, 나는 갓난아이. 엄마는 얼마 전에 나를 낳았다.

제인 정 트렌카의 자전소설 <피의 언어>에서 경아는 그녀의 생모가 암에 걸리자 한국을 방문해 간호한다. 경아는 어머니가 두 번째 결혼에서 얻은 세 번째 딸이었고 바로 위 언니인 미자와 함께 미국으로 보내졌다. 어머니가 재가한 집에는 전처가 낳은 두 딸이 있었고, 경아가 태어났을 때 딸만 다섯이 됐다. 형편이 어려웠고 늘 술에 의지했던 경아의 아버지는 딸 둘을 입양 보내라 윽박질렀고, 어머니는 할 수 없이 생떼 같은 자식을 미국행 비행기에 실어 보내야 했다.

제인 정 트렌카, 진실과 화해를 위한 입양인 모임(TRACK, Truth and Reconciliation for the Adoption Community of Korea) 대표인 그녀를 지난 17일 광화문 미혼모지원네트워크 사무실에서 만났다.

입양특례법이 '입양을 촉진'하고 '절차 간소화'하고 있어

- 반갑습니다. 책을 읽고 뵙고 싶었습니다. 2008년부터 TRACK을 결성해 운영했다고 알고 있는데, 지금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현재 TRACK의 가장 중요한 활동은 뜻을 같이하는 여러 단체 미스 맘마미아(한국미혼모가족협회), 뿌리의 집, 공익변호사 그룹 공감, 애스크(ASK, Adoptee Solidarity Korea ) 해외입양인 연대 등과 협력해 지난 5월에 발의된 입양특례법 개정안을 지원하고 법안 통과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에요."

입양특례법 개정안 이란?
2010년 5월 11일 최영희 의원 외 12인의 국회의원이 공동발의한 것으로,

▲ 입양대상을 아동복지법에 따른 보호를 필요로 하는 아동뿐만 아니라 부모가 경제적 어려움이나 그 밖의 부득이한 사유로 직접 양육할 수 없는 아동 등 모든 아동으로 확대하고 ▲ 국내외 입양 모두 법원의 허가에 의해 이루어지도록 하고 ▲ 친부모에게 양육에 관한 충분한 상담 및 양육정보를 제공하는 등 부모의 직접 양육을 우선 지원하며 ▲ 아동의 출생 후 30일이 경과한 후에 입양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 양자가 된 자에게 자신의 입양정보 접근권을 부여하고, ▲ 국내 입양을 우선 추진하도록 의무화하되 향후에는 국외입양을 금지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현재 국회 계류 중으로 내년 2월 중 법안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트렌카 대표는 미혼모를 돌보는 시설의 대부분이 입양기관이며, 전체 입양기관의 절반 이상이 민간시설이라고 했다. 또 대부분의 시설에서 친부모(대부분 미혼모)가 양육에 대한 의사를 충분히 숙려해 볼 시간적 여유도 주지 않고 갓난아기들을 해외나 국내로 입양 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현행 입양특례법의 본 명칭은 '입양촉진 및 절차에 관한 특례법'으로 그 자체가 아동의 '입양을 촉진'하고, 이를 위하여 '입양절차를 간소화'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일례로 입양인들이 나중에 부모를 찾거나 자신의 출생에 관해 알아보려 해도 정보 접근이 차단되어 있어 힘든 경우가 많다. 그리고 현재와 같이 입양부모의 적절성에 대한 법원의 자격 심사도 없이 가족의 동의와 몇 장의 서류만으로 진행되는 입양 프로세스는 입양 동기가 불순하거나 자격이 없는 부모에게 입양될 경우 입양아의 앞날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미국에서는 '마사 엘런'이라는 아이가 순전히 성적으로 농락되기 위한 목적으로 입양한 것으로 드러나 한동안 시끄럽기도 했었어요."

트렌카 대표가 이끄는 TRACK은 지난 6월 국회 로비에서 작품 전시회를 열었다. 아래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커다란 흰색 터널처럼 보이는 거대한 조형물은 수많은 흰색 티켓으로 만든 것이다.

이 티켓은 해외로 입양될 때 정부에서 아이 개개인에게 발부하는 일종의 꼬리표. 앞면은 나이, 몸무게, 키 같은 신상정보, 뒷면은 여행증명서로 구성되어 있다. 이제까지의 해외 입양아가 무려 20만여 명. 20만이라는 숫자는 손바닥에 놓일 만한 자그마한 티켓으로 몇 명의 사람이 지나가도 될 만한 거대한 터널을 만들기에 충분했다고.


입양인이 일반인보다 자살 5배, 범죄 연루되고 사회 부적응자 많아

그러면, 이 많은 입양아 중 그녀처럼 친부모에 대한 그리움과 입양제도에 대한 분노를 품고 있는 비율은 얼마나 될까? 그녀의 책에는 실제 같이 입양됐던 친언니는 미국에서 결혼해 안정된 가정을 꾸리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이에 대한 질문에 제인은 미국의 경우 입양아에 대한 추적 관리가 되고 있지 않아 통계적인 수치로 대답하기는 힘들다며 스웨덴의 예를 들었다.

"입양아에 대한 스웨덴의 평생 의료 기록에 근거한 조사 자료를 보면, 입양아들이 보통사람들보다 자살률이 5배 더 높고, 범죄에 연루될 가능성이 더 많고, 교육수준이 더 낮은 경향이 있다고 해요. 또한, 결혼을 못할 가능성이 더 많고, 또 아이를 가지는 확률이 적은 것으로 확인되었지요. 이런 사회적 지표들만 봐도 입양아들이 일반인에 비해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사회적 적응에 취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트렌카 대표는 최근에 들은 슬픈 이야기라며 미국으로 입양된 두 한국인 남자 이야기로 계속 이어갔다.

"한국의 부모를 찾고 싶어하는 한 남자가 있어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미국 감옥에 20년째 복역 중인 사람이죠. 1년 반 전부터 제 남편의 지인을 통해 엄마를 찾고 싶다고 연락이 와서 도와주고 있는데, 여러 단체에 부모 좀 찾게 해 달라고 편지를 보내도 어느 단체에서도 아무런 피드백이 없네요.

그리고 6주 전에는 두 여자를 살해한 죄목으로 수감 중인 사형수가 미국에서 변호사 한 사람을 보내왔어요. 마찬가지로 부모를 찾는다고요. 그 사람은 저와 같은 입양기관을 통해 미국으로 보내졌고, 제가 자라던 미네소타의 마을에서 북쪽으로 불과 8마일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살았던 사람이에요."

친부모와의 재회율은 겨우 2.7%

우리나라의 입양아들은 장성한 후에도 친부모와의 재회율이 상당히 낮은 편이라고 했다. 2007년 통계청 조사 결과에 따르면 친엄마를 찾고자 하는 입양인들 중 불과 2.7%만이 엄마를 찾는다고 했다. 입양인들 모두가 친부모 찾기를 시도하는 것이 아님을 감안하면 친부모와 재회하는 입양인의 수가 얼마나 극소수인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세월이 지나서도 가족끼리의 재회가 힘든 것일까? 그 이유로 제인은 두 가지 요인을 얘기했다.

첫째는 한국과 미국 모두 입양 전후의 기록을 공개하지 않는 정책이 그 원인이고, 둘째는 원치 않는 아이를 두었거나 결혼할 집안에서 모르는 아기를 둔 엄마들이 한국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아이의 존재를 끝까지 숨겨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제인 정 트렌카 TRACK 대표
 제인 정 트렌카 TRACK 대표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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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친엄마가 첫 번째 결혼에서 오빠를 두었는데, 첫 남편이 한국전쟁에서 전사하면서 재가하여 저희 아버지랑 결혼했어요. 아버지는 그 오빠가 있는지도 몰랐죠. 어릴 때 엄마랑 헤어진 오빠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엄마를 만나고 싶어 찾아갔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가 폭력이 심해지더니 결국은 엄마를 때려서 코뼈가 부러지는 일이 생겼어요. 그래서 저는 엄마들이 전화번호를 바꾸고 자기 자식이 엄마를 찾는다는 걸 알면서도 숨어 있는 것이 어떤 심정인지 알 것 같아요."

친부모가 자식을 찾지 않고 외면하려 드는 이유가 자신의 뜻이라기보다 사회와 가정에 의해 강요된 것일 수 있다고 트렌카 대표는 힘주어 강조했다.

이와 유사하게 대부분의 미혼모 역시 아이를 키우기 힘들다는 선입견과 사회의 편견에 대한 두려움, 시설의 입양 권유에 따라 자신의 뜻이 아님에도 입양허가서에 동의를 하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스타와 함께 사진 찍은 영아들, 부모 없는 천사 아니다

인터뷰 말미에 통역으로 도움을 주던 권희정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이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다며 노트북 화면을 켰다. 화면에는 영화배우 이병헌씨가 갓난아기를 안고 있는 흑백사진이 펼쳐졌다.

"얼마 전에 사진작가 조세현씨가 대한사회복지회의 지원으로 '사랑의 사진전'을 개최했어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영아들이죠. 그 아이의 뒷면에는 95%의 미혼모들이 있어요. 이 아이들은 '고아'라고 부르면 안 돼요. 다 부모가 있는 애들이거든요. 그런데 사진을 보는 사람들이 그걸 알까요? 그냥 스타와 함께한 아기들이 이쁘고 애처로워서 입양을 긍정적으로만 생각하게 될까 우려스러워요. "

나 역시 그랬다. 작년에 사랑의 사진전을 보며 아기들이 너무 예쁘고 귀여운데 키워질 가정이 없다는 사실이 안쓰럽기만 했다. 입양 권유 사회 그늘의 뒤에 멀쩡한 그들의 엄마들이 '생모증후군'에 시달리고 가슴 아파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실상 이번 인터뷰에서 나는 '그래도 입양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에 대한 긍정적인 답변을 기대한 면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트렌카 대표의 입장은 확고했다. 입양을 최선으로 여길 수밖에 없도록 만든 작금의 환경을 점검하는 것이 우선이며, 물질적인 혜택으로 입양아 인생의 모든 것이 채워졌다고 보는 시각은 명백한 잘못이라고 말이다. 

그녀의 책 <피의 언어>에 나온 한 단락으로 트렌카 대표의 마음을 전하며 글을 마치고 싶다.

"무엇보다도 엄마에게 당신의 '이쁜 애기'라는 두 마디 말이 내 인생의 나머지 줄거리를 바꿔놓았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 이전까지 누군가가 나를 그토록 간절히 원하거나 사랑한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의 이 말은 앞으로 내 정신력의 깊은 원천이 되리라. 지금 여기, 엄마와 함께 있는 이 순간부터."


태그:#미혼모, #입양, #제인 정 트렌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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