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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아침 하도 춥기에 난로를 사왔다. 이왕이면 난로 위에도 열이 펄펄 나서 고구마 감자도 구워 먹을 수 있는 그런 난로를 거금 육만 원이나 주고 사왔다. 오는 길에 슈퍼에 들려 삼천 원짜리 고구마 한 봉지 들고 와 난로 위에 얹어 놓으니 잠시 후 고구마 구워지는 구수한 냄새가 사진관을 가득 채운다. 넉넉잡아 30분이면 구워지는가 보다.

고구마를 내려놓고 보리차 주전자를 올려놓으니 사진관 한쪽에 달려있는 방향제가 보리차의 구수한 냄새를 방해한다. 망설일 것도 없이 방향제를 떼어내고 보리차 한잔에 군고구마를 먹는데 혓바닥을 살살 녹인다. 눈 덮인 겨울 산, 도토리고 밤이고 저만 아는 몹쓸 사람들이 모두 주워가 다람쥐고 곰이고 먹을 게 없다던데 이만하면 나는 올 겨울 살림살이 넉넉하지 싶다.

주역(周易)에 있는'큰 과실을 다 먹지 아니한다'라는 말은 독식하지 않고 뒷사람 혹은 날짐승을 위하여 남겨둔다는 말이다. 예전에 할머니께서는 감이나 다른 과일을 딸 때도 맨꼭대기의 과일은 새들의 먹이로 남겨 두었다. 우리가 까치밥이라 알고 있는 게 바로 그것인데 옛 어른들께서는 가을 들판에 벼도 끝 부분은 베지 않고 남겨두어 가난한 이들의 식량이 되도록 하는 아량이 있었다. 벼를 베고 나서도 벼 이삭을 일부러 남겨 두지는 않았지만 악착같이 모두 주워가지는 않았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더불어 사는 지혜가 아쉬운 요즈음이다.

부모님의 만수무강을 빌며...
▲ 고희연 부모님의 만수무강을 빌며...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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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할머니 오래오래 사세요.
▲ 큰절. 할아버지 할머니 오래오래 사세요.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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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고향에서의 일이다. 지금은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회갑잔치 날 면에서 사진사가 오셨다. 사진을 다 찍으신 다음 어머니는 사진사 두 분을 상석에 앉히시고는 상을 내오시는데 다른 손님들의 상차림과는 확연히 차이 나게 차려오셨다. 아무리 돈 주고 찍는 사진이지만 사진사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인 것이다.

위의 글과 같은 풍경은 그리 오래전의 일도 아니다. 불과 30년 전의 일이다. 한 세대도 바뀌지 않은 시절의 얘기다. 옛 어른들께서는 과일 하나를 따먹어도 뒷동산에 밤낮으로 지저귀는 새들을 생각했고 벼이삭 하나를 베어도 없이 사는 이웃을 생각했다.

직업이 사진사인 내가 얼마 전 칠순잔치를 촬영했는데 예전에 받을 만큼 받고 그 집 손자의 돌 사진을 촬영해 준 적이 있었다. 며느리가 시아버지 칠순인데 촬영 좀 해달란다. 그래서 비용은 얼마가 듭니다했더니 깜짝 놀라며 그럴 필요 없고 아주 간단하게만 찍어달란다. 자기 자식 사진에는 백만 원이란 큰돈도 아낌없이 쓰면서 시아버지 칠순 잔치에 십만 원도 아까워서 길길이 뛰는 모습이 안쓰럽다. 약속한 촬영 날, 촬영 장비를 어깨에 메고 들어서려는 순간 입구에서 며느리 하는 말이 저 아저씨는 사진만 찍고 갈 테니 뷔페 표는 안 붙여도 된단다. 쉽게 얘기하면 밥 한 끼에 몇 만 원이니 사진만 찍고 가라는 얘기다.

연회장인 프라자호텔 22층에서 내려다 본 풍경.
▲ . 연회장인 프라자호텔 22층에서 내려다 본 풍경.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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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굶고 사는 사람도 아니요, 사진 촬영을 하다보면 밥 먹을 사이도 없다. 어떤 때는 뷔페 입구에서 "사진만 찍고 갈 겁니다"하며 뷔페 표를 거절하기도 한다. 나는 지금 돈 받고 촬영해주는 잔치 집에서 밥 한 끼니 못 얻어먹었다고 투정을 부리자는 게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인정이 아쉬워서 하는 말이다. 산에 들판에 사는 짐승들 먹이까지 걱정해 주시던 어르신들의 나누고 베푸는 미덕은 어디로 갔을까? 그냥 여기까지만 하고 말란다.


태그:#잔치, #고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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