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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포격을 맞은 연평도에서 가게를 운영했던 한 주민이 26일 오전 간단한 짐만 챙겨 불타버린 상가 골목을 나서고 있다
 북한의 포격을 맞은 연평도에서 가게를 운영했던 한 주민이 26일 오전 간단한 짐만 챙겨 불타버린 상가 골목을 나서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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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언론이 연평도에 행한 북한의 만행을 규탄하고 나섰다. 민간인까지 겨냥한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다는 특보를 접하면서 나는 즉각 "이북이 미쳤구나" 했다. 북한이 20세기 들어 절대왕조를 출발시키더니 그 정지작업을 위해 시대착오적인 만행까지 저지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언론들이 너무 흥분한 듯해 사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으므로 24일 열린 국회 국방위의 생중계를 주시했다. 그런데 여기서는 의외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대부분의 국방위원들이 확전을 경계한 대통령의 초기대응조치를 물고 늘어졌고, 적의 진지를 즉각 포격하지 아니한 우리 국군을 '무용지물'이라고 매섭게 몰아치고 있었던 것. 일부 국방위원들은 대통령의 초기대응에 대하여 거의 능멸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면서 일전불사 결의를 드높이고 있었다.

"이북이 미쳤구나" 했는데, 우리 국회의원들도

국방위원 대부분의 반응은 왜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무기를 왕창 쓰지 않았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문득 4.19 당시 데모 군중에게 발포한 진압책임자가 총이란 쏘라고 있는 것이라며 강변하던 일이 떠올랐다. 그렇지. 무기란 사용해야 그 값을 하는 것이지. 하지만, 그들의 말대로 적의 진지를 쑥대밭으로 만들면 그 다음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그 다음에 올 일을 예상하지 못하고 안락의자에 편히 앉아 눈앞의 일만 가지고 큰소리치는 정치인들. 나는 이들의 흥분을 지켜보면서 그 날 아침에 본 TV 화면의 한 현역사병 현장 인터뷰가 자꾸 눈에 밟혔다. 그는 "무사히 수습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피력하고 있었다.

군대를 안 가거나 못 갈 사람들은 자기들은 전장에 나갈 일 없으니 얼마든지 강한 발언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일선에는 국방의무를 수행 중인 우리의 아들들이 있다. 전쟁 당사자들인 일선의 젊은이들은 안중에도 없이 자기는 손해 볼 일 없다고 함부로 말하는 사람은 공인이 될 자격이 없다.

나는 확전을 예방한 대통령의 초기 대응만큼은 합리적인 판단이었다고 본다(나중에 바뀌긴 했지만). 만일 국방위원의 말대로 공군전투기를 투입해 폭격을 감행하고 미사일을 퍼부었다면 북한이 "아이고, 형님!" 하면서 넙죽 엎드려 빌었을 것 같은가.

도대체 무엇을 믿고 우리가 강하게 나오면 적은 꼼짝 못한다고 떠드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북한군을 '고양이 앞의 쥐'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무책임한 자들의 만용일 뿐이다. 환상은 자유지만 공인이 되면 국민 앞에서의 막말은 삼가야 한다.

나라님과 의원들, 전쟁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24일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와 황진하 의원과 안형환 대변인이 전날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처참하게 부서진 마을에서 피해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24일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와 황진하 의원과 안형환 대변인이 전날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처참하게 부서진 마을에서 피해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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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란 승리를 위해서는 어떤 무모한 일도 자행할 수 있는 극악사태다. 전쟁은 국력이나 무기의 우열로 판가름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단 전쟁이 나면 교전수칙 같은 것은 아예 무시되기 마련이고 전쟁터는 참혹 그 자체가 되고 만다.

월남전, 아프간 전쟁, 이라크 전쟁 모두 미국이 승리했는가. 막강하기 짝이 없는 국력과 무기를 가진 미국도 승전하지 못한 전쟁을 우리는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하찮은 국력과 미국의 '빽'을 저울대에 올려놓고 그 기울기에 현혹돼서 만용을 부리고 있으니 전쟁이 무슨 체급 운동경기인 줄 아는 모양이다.

더구나 북한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고 우라늄 합성도 진행하고 있다 하잖나. 전쟁을 동화나 무용담으로 듣고 자란 부유한 세대, 전쟁의 참상은 외면한 채 겁 없이 전쟁을 입에 올리는 그들의 환상과 착각이 너무 끔찍했다.

이번 연평도 사태를 주목하면서 나는 이 밖에도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연평도를 서해의 조기잡이 섬쯤으로 알고 있었던 나는 이 섬이 행정구역인 인천과는 120㎞ 떨어져 있는 반면 북한진지와는 13㎞의 지척에 있다는 사실에 우선 놀랐다.

더 놀란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전 이후 반세기 동안 이런 국지전은 단 한 차례도 없었고 주민들 모두 평화롭게 생업에 종사해 왔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번 북한의 연평도 공격은 이유가 무엇이었든 간에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가 분명하다. 하지만, '전쟁의 달인'이라는 군인이 정권을 쥐고 있을 때도 아무런 교전이 없었는데 군대도 못 간 대통령 시대에 들어와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군사분규가 더 격화되고 있다는 점 또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치밀했던 북한군, 안일했던 우리 군

우리는 북한이 '호전성의 괴뢰'라고 배워왔다. 그렇다면 우리 군은 그들의 호전성을 감안한 대응책을 미리 강구하고 대비해야 했다. 그런데 우리 정치지도자(?)들은 스타크래프트 같은 상상 속의 액션을 즐기는 환상적 호전성으로 무장되어 있음을 보여 주었을 뿐, 현실 감각은 턱없이 부족함을 드러냈다.

우리나라 국방위원들의 인식이 이러하니 우리의 국방은 환상 속에서 유지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가까운 시기에 전쟁이 꼭 일어날 것 같다는 예감마저 든다. 특히 최근 언론을 통해 알려진 군의 불량 장비나 무기류의 오작동은 우리의 우려를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이 날도 반격무기의 상당수는 고장이었다고 하잖나.

군사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이번 연평도 사태는 북한이 '치밀하게 준비한 도발'인 것이 분명하다. 북한의 공격이 1차에서는 전면의 군부대를, 그리고 2차에서는 이전에 방첩대와 헌병대가 사용하던 건물과 신축중인 군시설에 정확히 조준되었다고 한다.

이런 정밀도라면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하지 않고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렇게 공격의 정밀도가 높아졌다면 앞으로의 전쟁은 더욱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는 일.

또 연평도사태에서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이번 사태가 이미 '예고된 도발'이었다는 점이다. 사건 당일 북한은 몇 차례에 걸쳐 사격중지 요구를 해왔고 사격훈련을 실시할 경우 그로 인한 이후의 사태는 우리 측의 책임이라는 것을 우리 군에 통보해 왔다고 한다. 그 뿐이 아니었다. 이 날 북한군의 심상찮은 움직임이 분명히 감지되었으나 이를 무시해 화를 키웠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사병 죽음 위에 쌓아올린 화랑무공훈장 '치욕'

2009년 3월 10일 경기도 포천 영평 미8군 로드리게스 사격장에서 한미연합전시증원 연습인 '키 리졸브' 연습에 참가한 한-미 해병대가 시가전 훈련을 하고 있다.
 2009년 3월 10일 경기도 포천 영평 미8군 로드리게스 사격장에서 한미연합전시증원 연습인 '키 리졸브' 연습에 참가한 한-미 해병대가 시가전 훈련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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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600리 240여㎞의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대치하고 있다. 그런데 육군이 이렇게 적의 면전에서 호국훈련이나 한미 합동훈련 등 민감한 훈련을 한 적이 있었는가. 육군도 분명히 훈련을 하고 있지만 GOP가 있는 일선에서는 사격훈련 등 실전훈련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공군 역시 후방 먼 곳에서 비행훈련과 사격훈련을 하고 있고.

그런데 왜 해군과 해병은 그들의 바로 면전에서 번번이 민감한 훈련을 하는가. 꼭 그렇게 그들의 면전에서 훈련을 해야 전투능력이 향상되는가. 이런 사태를 유발해 국민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인가. 자만인가, 오기인가.

우리 해군은 우리 국군 중에서 금년에 가장 많은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화랑무공훈장은 급이 높은 무공훈장이므로 그렇다면 금년에 수여한 훈장만큼 우리 해군은 무공이나 전과를 올리고 있었다는 말이 되는데 정말 그런가. 뼈아프게 반성해야 한다.

우리 지도층에는 사병의 죽음 위에 쌓아 올린 훈장을 군의 치욕이라고 생각하는 지도자가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 지금처럼 한반도에 전쟁위기를 불러오지 않고도, 국민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제대로 남북문제를 풀어갈 지도자는 정녕 없단 말인가.

매스컴의 떠들썩한 보복 광풍 속에서 이 70대 민초는 마음이 아프다 못해 슬프다.


태그:#연평도, #호국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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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70에 세상 돌아가는 것을 느끼는 것이 각별해 졌다. 뭔가 세상에 대고 할 말이 많아졌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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