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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서 엄마와 함께!!! 산수유 열매를 보며...
 지리산에서 엄마와 함께!!! 산수유 열매를 보며...
ⓒ 이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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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엿한 중학교 3학년 여학생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인 여동생이 하나 있고요. 저에겐 또 열 아들 부럽지 않다는 엄마와 다정다감하신 아빠도 계십니다.

가끔은 어른들이 엄마께 "예쁜 두 딸도 있으니까 늦둥이 아들 하나 낳으쇼!"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럴 때면 엄마께서는 경악을 하시며 "내가 아들 낳으면 미쳤지!"하십니다. 다른 분들이 보면 '왜 그럴까?' 하시는데, 사실 저와 동생은 아들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죠.

다만, 다른 쪽으로 말이죠. 엄마께서 아들을 원치 않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암벽 등반하는 예슬이... 지금도 부잡하답니다. 그래도 예쁜 내 동생이죠!!!
 암벽 등반하는 예슬이... 지금도 부잡하답니다. 그래도 예쁜 내 동생이죠!!!
ⓒ 이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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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볼랍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저희 아빠는 다정다감하시고 잘 놀아주셔서 서로 허물없이 친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장난도 치고 몸싸움도 가끔(?) 합니다.

저번 주 토요일 저녁밥을 먹기 전, 항상 그렇듯이 동생과 아빠가 장난을 치고 있었습니다. 서로 몸싸움도 하고 또 똥침도 놓았습니다.

그 모습을 본 저는 동생에게 한 마디 했습니다. "예슬아! 그만 해라. 또 지난번처럼 다칠라고 그러냐?" 그럼 언제나 "언니가 무슨 상관이야!!! 안 그래 아빠???"이럽니다.

제가 이렇게 동생이 부잡하게 놀 때면 생각나는 엄청난 사건들이 있죠. 사실, 제 여동생과 아빠는 악연이 깊거든요. 재작년 초가을쯤이었을 거에요. 저희 가족은 전라남도 진도로 놀러갔습니다. 날씨가 쌀쌀했고, 아빠께서는 두꺼운 청바지를 입었었죠. 그날도 동생은 평소처럼 아빠와 신나게 뛰놀았습니다.

맘껏 뛰어놀 나이인 저희들은 아빠와 잡기놀이를 하며 신나게 놀았습니다. 똥침을 놓고 도망가고. 꿀밤도 때리고 도망가고 했습니다. 어릴 때라 똥침 놓고 도망가고 하는 게 민망한 건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아빠의 엉덩이에 똥침을 한 동생이 손가락을 잡고 아프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별 것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죠. 워낙 장난도 잘 하고, 또 자주 다치기도 했으니까요. 아빠께서도 별 걱정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놀다가 집으로 왔죠. 동생은 집에 와서도 손가락이 아프다고 했습니다. 다음날까지도요. 그래서 엄마께서 동생을 병원에 데리고 가보았답니다. 그런데 우리 가족은 병원에서 생각지도 않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세상에.

산수유 열매를 먹는 척 하는 예슬이... 하나 먹더니 바로 퉤퉤 뱉었어요. 맛이 없다고...^.^
 산수유 열매를 먹는 척 하는 예슬이... 하나 먹더니 바로 퉤퉤 뱉었어요. 맛이 없다고...^.^
ⓒ 이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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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침을 놓은 뒤로 손가락이 아프다고 해서 왔다'는 저희의 얘기를 들은 의사선생님께서 "혹시나 하니 엑스레이를 한 번 찍어보게요"라고 하시더라고요.

"손가락이 골절됐네요" "살다 살다 이런 일로, 그것도 여자애가 병원에 온 건 처음이네요"하며 어이없어 하시더라구요.

하긴 제가 의사선생님이었을지라도 어이가 없었을 겁니다. 그날 제 여동생은 손가락 깁스를 했습니다. 그래도 동생이 조준을 잘 했는지. 손가락 하나의 통증은 금방 사라졌지만, 오른손 검지손가락은 깁스를 해야된다더라고요.

그래도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몰라요. 손가락 하나만 다쳤으니까요. 병원에서 나와 돌아다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제 동생의 손가락만 보며 웃는 것 같았습니다. 남들은 그냥 지나가는데 괜스레 제가 다 민망해지더군요.

에이!!!  손가락 하나 깁스한 게 끝이냐고요???
거기서 끝나면 제 동생이 아니죠!!!!

카메라 든 내동생 예슬이. 이럴 땐 정말 귀엽죠!!!
 카메라 든 내동생 예슬이. 이럴 땐 정말 귀엽죠!!!
ⓒ 이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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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아빠께서 잠시 건강에 이상이 있어 병원에 입원을 했다가 퇴원을 한 날이었어요. 오랜만에 아빠를 만난 동생이 무척 반겼습니다. 동생과 아빠는 바로 장난모드로 돌입했습니다. 손뼉을 치며 술래잡기를 하는데, 세상에… 두 눈을 가리는 안대를 끼고 하더라고요. 안대는 동생의 학교준비물이었거든요.

안대를 낀 아빠께서는 동생의 손뼉을 따라 이리저리 쫒아 다니셨습니다. 그 모습에 다시 한 번 '대단한 아빠'라고 생각했죠. 퇴원하자마자 동생과 놀아주고 계셨으니까요. 기력도 없으실 텐데….

한참 동안 동생을 잡지 못한 아빠께서 이번에는 거실에 주저앉아 발로 휘젓기 시작했습니다. 동생은 발길을 이리저리 잘도 피해 다녔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즐겁게 떠드는 소리가 집안을 울렸습니다.

하지만 사건은 동생이 술래가 되면서 생겼습니다. 동생이 안대로 눈을 가리고 아빠를 찾아야 했었어요. 동생도 나름 아빠를 따라한다고 거실 바닥에 앉더니 사정없이 발길질을 해대기 시작했습니다. 아빠를 찾기 위해서였죠.

그러던 순간, 갑자기 아빠의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악-. 그 소리와 함께 아빠는 쓰러지셨고, 안대를 벗은 동생은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아빠께서는 코를 움켜쥐고 아픈 표정을 짓고 계셨습니다.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서 가까이 가 봤더니, 세상에… 아빠의 코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어요. 그 피를 닦아내고 보니 코도 움푹 들어가 버렸더군요. 동생이 실수로 아빠의 코를 발로 걷어차 버린 것이었습니다. 아빠도 몸이 정상이 아닌 상태여서 그대로 맞아버린 것 같았어요.

아빠의 코는 시간이 지날수록 부풀어 올랐습니다. 저는 온몸을 다 날려서 동생과 놀아주시는 아빠를 보고 감동을 억수로 했습니다. 동생은 완전히 죄인이 된 것처럼 조용했고요. 엄마께서는 아빠의 코가 어떻게 된 것 같다며 날이 밝으면 병원에 한번 가봐야겠다고 하셨습니다.

국화밭에 선 나와 동생 예슬이. 이젠 숙녀가 다 됐어요...
 국화밭에 선 나와 동생 예슬이. 이젠 숙녀가 다 됐어요...
ⓒ 이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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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엄마는 아빠를 모시고 병원에 가셨습니다. 어느 병원으로 갔냐고요? 물론 전날 퇴원했던 병원의 이비인후과로 갔죠. 아빠를 다시 본 의사선생님과 간호사 이모들은 "엊그제 퇴원하셨는데 무슨 일로 오셨냐?"면서 궁금해 했죠. 내막을 전해들은 의사선생님도 어이가 없어했답니다. 저도 물론 황당했죠.

아빠는 병원에 다시 입원해서 코뼈 봉합수술을 받았답니다. 동생의 '발차기 사건'을 모르고 있던 병실 간호사 이모들은 모두 의아해 했습니다.

"아니! 또 오셨어요? 근데 무슨 일로…."

엄마와 아빠는 간호사 이모들한테 사실을 털어놓지 못했다고 합니다. 물론 간호사 이모들은 다음날 모든 진상을 다 알게 됐죠. 그 일은 병원 내에서 화제가 됐답니다. 간호사 이모들은 "대체, 아빠 얼굴을 그렇게 만든 딸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면서 "딸 얼굴 한번 보고 싶네요!!"하시며 웃으시곤 했죠.

제 동생은 아빠가 다시 퇴원하는 날까지 그 병원에 얼씬도 못했답니다. 창피하다고. 요즘 저희들 말로 '쪽 팔린다'라고 하죠. 코뼈 봉합수술을 마치고 퇴원한 아빠의 코가 더 높아진 것 같았습니다. 물론 저만의 착각이겠지만. 그 일로 한동안 뜸하던 동생과 아빠의 장난도 다시 시작됐습니다. 또 누군가가 다쳐야 정신을 차릴 모양입니다.

귀염둥이 예슬이와 함께 셀카!! F1 대회를 보다가 한 컷!!
 귀염둥이 예슬이와 함께 셀카!! F1 대회를 보다가 한 컷!!
ⓒ 이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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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도 이런 얘기를 할 인물은 아닌 것 같네요. 저의 전적도 화려하거든요. 부잡했죠. 어렸을 때부터 깁스를 밥 먹듯이 했거든요. 소파 등받이에 올라섰다가 미끄러지면서 발목을 다쳐 깁스를 했고요. 초등학교 소풍가는 날 아침에 몸 좀 풀어보겠다며 마당에서 줄넘기를 하다가 하수구 구멍에 걸려 발목을 다친 적도 있답니다. 물론 깁스를 하고 소풍도 못 갔죠.

동생과 장난치다가 혼자 허공에 발길질을 하고 떨어지면서 엎어져 또 깁스하고 목발도 짚었답니다. 제가 자주 다니는 정형외과에선 '단골손님'이라며 돈을 받지 않고 목발을 그냥 빌려준 적도 있었답니다. 응급실에 가서 꿰매기도 여러 번 했죠.

그 때문일까요? 우리 가족은 누가 웬만큼 아프다고 해도 무덤덤한 편이랍니다. 저도 지금은 어엿한 숙녀가 된 것처럼 멋도 부리고 있죠. 동생도 날마다 거울 앞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요.

우리 엄마는 지금도 친구들이 '아들 부잡해서 못 키우겠다'고 하시면 우리들 얘기를 하신답니다. "나는 아들 없어도, 다른 집 아들 키우는 것보다 더 부잡한 애들 키우고 있다. 깁스도 우리 애들만큼 많이 한 사람 있으면 나와 봐라"라고.

이런데, 여기에 남동생이 하나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생각만으로도 아찔하지 않겠습니까?

엄마와 예슬이 그리고 나. 지리산 국화밭에서......
 엄마와 예슬이 그리고 나. 지리산 국화밭에서......
ⓒ 이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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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10월 22일 광주mbc 라디오 '여성시대'에 소개된 사연입니다.
이슬비 기자는 광주동신여자중학교 3학년입니다.



태그:#정형외과, #산수유, #똥침, #이예슬, #딸과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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