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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8일(월)

강진읍에서는 바로 23번 국도를 타고 마량 방향으로 향한다. 어제보다는 덜하지만 안개가 채 가시지 않았다. 오른쪽으로 어제 강진읍을 향해 달려 올라온 해안이 보인다. 마치 같은 길을 가고 있는 느낌이다. 강진만은 강진읍을 정점으로 아주 좁고 긴 깔때기 모양을 하고 있다.

강진만의 이쪽 해안에서 저쪽 해안까지 폭이 최대 7km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이 끝에서 저 끝이 빤히 바라다보인다. 그런데 그 사이를 건너뛰기 위해서는 무려 70km 이상을 달려야 한다. 이것이 요즘 내가 매일 낮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일이다.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아 딴 생각을 하지 않으려 계속 마음을 다잡고 있다.

강진만의 칠량면 쪽 해안은 경사가 조금 있는 편이다. 건너편 도안면의 해안이 거의 평지에 가까웠던 것과는 다르다. 같은 만을 끼고 있는 땅이라고 해도 엄연히 다른 땅이라는 걸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23번 국도와 해안도로를 번갈아 달린다. 해안도로가 좀 더 길었으면 좋겠는데 해안선이 복잡한 탓인지 중간 중간 끊어지는 부분이 많다. 해안도로로 들어가고 나오는 부분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뭐 그게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서 해결이 될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23번 국도 위로 트럭들이 상당히 많이 지나간다. 집중해서 핸들을 조정해야 한다.

강진만 풍경
 강진만 풍경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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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만 바다 위에 홀로 떠 있는 섬
 강진만 바다 위에 홀로 떠 있는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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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곡선을 그리고 있는 해안도로
 우아한 곡선을 그리고 있는 해안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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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면 저두리에서 수령 210년의 푸조나무가 서 있는 정자와 마주친다. 마을마다 이렇게 천연기념물에 가까운 정자나무들이 한 그루씩 서 있는 게 신기하다. 정자나무로 보통 느티나무나 팽나무를 많이 보는데 푸조나무가 서 있는 정자는 처음이다.

그 푸조나무 아래에서 고개를 바짝 쳐들고 있는 할아버지 두 분을 만난다. 까치발을 하고 서서는 나무에서 무언가를 따서 연신 입으로 가져가고 있다. 열매를 따먹고 있는 게 분명하다. 가까이 다가가서 무엇을 드시고 있냐고 물었다. '검탱이'란다. 검고 동그랗게 생겨 그런 이름이 붙은 게 아닌가 싶다. 생긴 모양으로는 앵두를 닮았다.

달큼하면서도 시큼한 맛이 난다. 먹을 만하다. 크기가 너무 작아 먹고 먹어도 양이 차지 않는 게 흠이다. 할아버지가 어렸을 땐 나무 위에까지 올라가 따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가지 끝에 늘어진 걸 겨우 붙잡아 따먹고 있다. 두 분이 가지를 붙잡고 서 있는 게 꼭 어린아이들 같다.

여행을 하면서 참 많은 걸 얻어먹고 다녔다. 그런데, 이렇게 길가에 선 푸조나무 열매까지 따먹을 줄은 몰랐다. 내 평생 이런 일이 또 있을까?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저두리 푸조나무 정자
 저두리 푸조나무 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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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조나무 열매. 검은 게 익은 것.
 푸조나무 열매. 검은 게 익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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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중어촌체험마을 앞에 바다로 들어가는 시멘트길이 반쯤 물에 잠겨 있다. 이런 길은 그냥 무심히 지나치기 어렵다. 바다 속으로 들어가지는 못해도, 그 바다 위로 길이 나 있는데 걸어 들어가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몇 발자국 들어가지 못해 몸이 기우뚱한다. 시멘트 바닥 위로 얕게 깔린 펄을 밟고 미끄러진 것이다.

다행히 왼쪽 다리로 버티고 서서 오른손으로 바닥을 짚고는 겨우 중심을 잡는다. 갯벌에서 그 모습을 본 할머니 한 분이 '조심하라'고 고함을 지른다. 할머니 말이 그곳에서 미끄러져 다친 사람이 한둘이 아니란다. 자전거를 타고 그 시멘트 길을 달려 내려가다 자전거 따로 사람 따로 나뒹구는 걸 본 적도 있단다.

충분히 상상이 가는 일이다. 이런 길을 보고 맘껏 내달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 않는 여행자가 몇이나 될까? 바다 밑에 잠겼다 드러나는 길은 매우 미끄럽다. 그 길이 갯벌 위에 있을 때는 더욱 더 위험하다. 바닷물이 빠져나가면서 길 위에 얕게 펄을 깔아놓기 때문이다.

서중마을 앞 갯바닥에서 할머니 한 분이 손톱 크기만한 작은 고동을 줍고 있다. 강진만의 갯벌은 자갈과 돌들이 뒤섞여 있다. 그 돌 밑에 고동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그리고 그 돌에 자잘한 굴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반찬을 할 수 있을 정도로는 넉넉히 잡힌단다. 갯벌 위의 돌 하나, 쓸모없는 게 없다.

서중마을 바닷가. 바다를 향한 길.
 서중마을 바닷가. 바다를 향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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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12시가 조금 넘어 마량항에 도착했다. 미항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 항구다. 항구를 미항이라는 수식어에 어울리게 꾸미려 애쓴 흔적이 보인다. 하지만 방파제 위에 산만하게 늘어놓은 인공 구조물로는 미항이 되는 데 한계가 있어 보인다.

항구 앞 바다 위에 떠 있는 '까막섬'이 눈길을 끈다. 완도항 앞에서 본 주도와 마찬가지로 섬 전체가 검은 숲을 형성하고 있다. 까막섬 역시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되어 있다. 상당히 기품이 있어 보이는 섬이다. 물론, 미항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 중 하나다.

오늘은 일찌감치 마량항에 닻을 내린다. 지금 마음 같아선 이곳에서 단 하루라도 푹 쉬어가고 싶다. 하지만 내일 아침 또 그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오늘 달린 거리는 41km, 총 누적거리는 2373km다.

마량항 앞 까막섬
 마량항 앞 까막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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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량항
 마량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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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9일(화)

결국 마량항에서 하루를 쉬어 간다. 온몸에 피로가 누적된 데다, 허리 통증이 심상치 않다.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른쪽 등이 결리던 현상이 사라지더니 그 다음부터는 오른쪽 허리에 통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이후로 이런 통증은 처음이다. 원인이 무언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자전거를 타면서 30일 이상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게 문제일 수도 있고, 오른쪽 팔과 허리를 이용해 자전거를 수시로 들었다 놨다 하는 행위에서 근육에 무리가 생겼을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서중마을에서 몸이 기우뚱하며 넘어질 뻔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 허리를 삐끗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하여튼 쉬어갈 이유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러다 달리고 싶어도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상황이 오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마량항. 관광객과 어부 사이의 선상 거래 장면.
 마량항. 관광객과 어부 사이의 선상 거래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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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량항 수협위판장 경매 장면
 마량항 수협위판장 경매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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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마량항, #까막섬, #강진만, #푸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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