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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6일(토)

오늘 아침은 산책 삼아 완도항 부둣가를 거닌다. 완도항은 전체가 하나의 공원이다. 자전거를 타고 그냥 휙 지나치기엔 너무 아까운 곳이다. 부둣가를 천천히 걸어 다니다 보면, 바닷가 철제 난간에 문어를 널어놓은 광경도 구경할 수 있다.

완도항 앞바다, 해안에서 100여 미터쯤 떨어진 곳에 호빵 모양의 작은 섬이 있다. 섬 전체가 작고 둥근 숲이다. 나무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특이하다 싶었는데, 천연기념물 제28호란다. 섬 이름은 주도. 진주 같이 동그랗게 생겨서 붙은 이름이다. 조선시대 나무 벌채가 금지되면서,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문 상록수림을 이루게 됐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주도라는 이름이 진주처럼 귀한 섬이라는 뜻으로도 읽힌다.

완도항 왼쪽 끝에는 독특한 모양의 등대가 있다. 꽈배기 모양으로 몸을 비틀고 있는 데다 몸통이 온통 붉은 색이어서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안내문에 한국 최초의 '노래하는 등대'라는 설명이 적혀 있다. 평소 등대로서 고유 기능을 수행하면서, 등대를 찾아온 사람들에게는 노래도 들려준다. 바다 한가운데 등대 아래에서 듣는 노래가 가슴을 울린다. 장소 때문인지 노래가 한결 감미롭게 들린다.

완도항, 노래하는 등대
 완도항, 노래하는 등대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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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항, 죽도
 완도항, 죽도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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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완도항을 출발해 완도와 연결되어 있는 또 다른 섬인 신지도까지 들어갈 예정이다. 완도항을 떠난 지 채 30분도 되지 않아 신지도로 넘어가는 다리가 눈앞에 나타난다. 신지대교다. 신지대교까지 가는 길에 갓길이 거의 없다. 그래서 신지대교 역시 사람이나 자전거가 다닐 만한 길이 없을 거라 지레짐작했는데, 요행히 반대 차선으로 차 한 대는 충분히 지나가고도 남을 만한 넓이의 인도가 있다.

신지도는 유난히 언덕이 가파르다. 그리고 최근에 공사를 끝낸 도로가 아닌 경우에는 거의 예외 없이 갓길이 보이지 않는다. 신지대교가 개통이 된 이후로 차량 소통이 많아졌다. 갓길이 없는 도로 위를 덩치 큰 차들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한마디로 신지도는 자전거 타기에 만만치 않은 섬이다.

신지도의 허리 부분을 길게 잇고 있는 명사십리해수욕장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모래사장만 3km가 넘는 해수욕장이다. 육지에서도 보기 드문 크기와 넓이다. 해수욕장 크기에 맞게 주변 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 해수욕장을 꽤 공들여 가꾼 흔적이 엿보인다. 완도에는 이렇다 할 해수욕장이 없다. 그 점을 신지도가 훌륭하게 보완해주고 있다.

신지도 명사십리해수욕장
 신지도 명사십리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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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십리해수욕장, 모래사장 위의 조개 껍데기
 명사십리해수욕장, 모래사장 위의 조개 껍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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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십리해수욕장을 나오면 바로 독계령이라는 이름의 가파른 고개가 기다리고 있다. 이름에서 아주 독한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나 역시 독한 마음을 먹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그나마 산이 낮아서 다행이다.

고개를 넘어가서 한참 평지를 달리다 보면, 섬 끝 동쪽해안에 동고해수욕장이 나온다. 백사장은 별다른 특색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해수욕장 뒤편의 해송 숲을 눈여겨볼 만하다.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이 나무들이 세월을 더하고 더하면, 언젠가는 기념비적인 숲으로 남을 것이다.

신지도는 해안으로 양식장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양식 산업을 위해 바닷가를 빙 돌아가며 도로를 만들었다. 도로 밖으로 날선 바위들이 비죽비죽 튀어나와 있다. 그 바위들을 보면, 도로가 들어서기 이전의 바닷가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상상해볼 수 있다. 얼핏 보기에도 꽤 아름다운 바위들이다. 해송 숲을 보존하듯이 바닷가 바위를 보존하지 못한 게 너무 아쉽다.

동쪽 해안 끝을 돌아서는 다시 독계령을 넘어 명사십리해수욕장으로 향한다. 땅끝을 지난 이후로 좀처럼 피로가 가시질 않는다. 잠시나마 쉬어가고 싶다. 오후 3시, 오늘은 명사십리해수욕장에서 일찍 여행을 마친다. 오늘 달린 거리는 45km, 총 누적거리는 2252km다.

동고해수욕장 해송 숲
 동고해수욕장 해송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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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7일(일)

신지도를 나와서 다시 완도 땅으로 들어선다. 신지대교를 넘어 동쪽 해안을 마저 돌아야 완도 일주가 끝난다. 완도의 동쪽 해안에서 절대 빠뜨릴 수 없는 유적지가 '장도'다. 해상왕 장보고가 828년(신라 흥덕왕 3년) 이곳에 청해진을 설치했다. 그리고는 당시 극성을 부리던 해적을 일제히 소탕하면서 장도를 중국, 일본 등을 상대로 한 해상 무역을 장악하는 근거지로 삼았다.

장도는 장좌리에서 약 180여 미터 떨어져 있는 섬이다. 장도는 원래 하루에 두 번 물길이 열려야만 건너갈 수 있는 섬이었다. 최근 유적지 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완도를 찾는 사람들이 청해진 유적지에 좀 더 쉽고 편하게 다가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장좌리와 장도 사이에 나무 다리를 놓았다.

장도에 가보면 알겠지만, 완도에서 장보고처럼 지배적인 인물도 없다. 완도에 들어서면서 장보고와 관련한 각종 선전물과 이정표들이 자주 눈에 띄는 것을 알 수 있다. 완도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완도에서 가장 흥미를 느끼는 곳 중에 하나가 서쪽 해안에 있는 드라마 <해신> 세트장이다. 하지만 이곳은 단순히 드라마 세트장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한마디로 역사적인 의미가 부족하다.

장보고가 살았던 시대의 역사적인 배경과 그의 업적 등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동쪽 해안의 장보고 관련 시설과 유적지들을 돌아보는 수밖에 없다. 동쪽 해안에는 청해진을 설치했던 장도를 비롯해 장보고 기념관, 장보고 공원, 장보고 동상 등이 거의 한 군데에 밀집해 있다. 거기에 드라마 <해신>의 신라방 세트장까지 있어,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기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

장도의 청해진 토성 위에 올라서서 내려다보는 바다와 완도의 마을 풍경이 무척 아름답다. 장도 정상의 누각에 올라서면, 세상을 발아래에 두고 내려다본 장보고의 기상이 느껴진다. 장도는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바다를 내려다보면서 장보고가 꿈꾸었던 세상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되새겨볼 수 있는 장소다.

장보고 동상
 장보고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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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도, 청해진 유적지
 장도, 청해진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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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도에서 자전거를 타고 나들이를 나온 한 부자를 만났다. 나를 보더니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서울이 아닌 곳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자전거를 타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두 사람이 함께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참 다정해 보인다. 장도에서 바로 건너다보이는 마을에 사는데 이렇게 가끔 장도로 자전거를 타러 온단다.

서로 몇 마디 인사가 오가지 않았는데, 아버지 되는 사람이 내게 바나나를 하나 건넨다. 바나나는 자전거 타는 사람들의 비상식이다. 자전거를 타는 도중에 에너지가 필요하다 싶을 때, 열량을 보충하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음식 중에 하나다. 그걸 나눠 먹는 데는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든 여러 가지 의미가 함축돼 있다. 그 음식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서 먹는다.

얼마 만에 먹어보는 바나나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늘 먹던 바나나와 다를 게 없을 텐데, 이전에 먹어본 바나나와 달리 단맛이 진하다. 서울에 돌아가서는 다시 이 맛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장도 청해진유적지를 나와서 그들 부자와 헤어진다. 아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멀어져가는 아버지를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본다.

완도를 나오면 다시 해남군이다. 해남군에 들어선 지 며칠 짼데 아직도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비록 전체 땅 면적은 크게 내세울 만한 것이 아니어도, 해안선만 놓고 보면 다른 나라의 넓은 땅이 부럽지 않은 곳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덕분에 아무리 열심히 돌고 돌아도 여전히 제자리다. 손오공이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놀던 기분이 이랬을까?

해남군에 들어서서는 바로 55번 지방도로로 올라선다. 원래는 해안 길로 들어설 생각이었는데, 그만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들어 내륙의 번잡한 도로를 자동차들과 함께 달리게 됐다. 그 바람에 쇄노재라는 제법 높은 고개를 넘는다. 그런데 그동안 해안 절벽 길을 숱하게 오르내리면서 단련이 된 까닭인지 그 높은 고개를 크게 힘들이지 않고 넘어간다.

내륙으로 북일면 깊숙이 들어갔다가 다시 해안 길을 찾아 내동리 쪽으로 방향으로 꺾는다. 내동리를 지나 사내방조제를 넘으면 거기서부터는 강진군이다. 비로소 해남군을 벗어나게 된다. 다소 홀가분한 기분이다. 홀가분한 마음을 갖게 만든 것은 단지 해남군의 경계를 벗어난 데에만 있지 않다.

사내방조제를 넘어 강진만을 따라 만의 끝까지 올라가는 해안도로는 지금까지의 해안도로와는 완전히 다르다. 만의 끝에 위치한 강진읍까지 곧고 평탄한 길의 연속이다. 게다가 자동차들도 거의 다니지 않는다.

강진읍 가는 길의 해안도로
 강진읍 가는 길의 해안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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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도로 자전거도로 표시
 해안도로 자전거도로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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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안선인데도 이렇게까지 다를 수 있다는 게 의아하게 여겨질 정도다. 지금까지 이 길처럼 편안한 길은 없었다. 갓길에 자전거도로 표시가 그려져 있다. 굳이 자전거도로 표시를 하지 않았어도 될 법했다. 강진읍을 코앞에 두고 잠시 길을 잃고 헤매는 바람에 여행을 끝까지 완벽하게 마무리를 짓지 못한 게 아쉽다.

강진만에 안개가 짙게 내려앉아 있다. 안개가 며칠째 계속 시야를 가리고 있다. 바다 위에 뜬 섬은 물론이고, 바다 건너편 칠량면의 높은 산들마저 안개에 가려 윤곽만 희미하게 드러나 있다. 햇볕 맑게 쏟아지는 날의 풍경이 어땠을지 궁금하다. 강진만의 해안도로는 언제고 꼭, 다시 한 번 더 다녀가야 할 길로 남겨둔다. 오늘 달린 거리는 80km, 총 누적거리는 2332km다.

해안도로에서 바라본 바닷가 풍경
 해안도로에서 바라본 바닷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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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장보고, #완도, #명사십리해수욕장, #신지도, #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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