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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춤> 표지
 <허수아비춤>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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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태백산맥>, <사람의 탈>, <한강> 등으로 일제 치하부터 근현대사까지, 우리네 역사를 소설로 그려냈던 조정래의 신작 <허수아비춤>은 대단히 '직설적'이다. 조정래의 소설이 대부분 직설적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허수아비춤>의 그것은 놀랍다. 지금, 이 시대의 재벌비리를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허수아비춤>은 업계 2위인 일광그룹의 강기준이 업계 1위인 태봉그룹의 주요 정보원이자 대학 선배인 박재우를 스카우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일광그룹은 '대단히' 자존심이 상한 상태다. 비자금 문제로 그룹 총수가 실형을 선고 받았기 때문. 비슷한 시기에 업계 1위인 태봉그룹도 그런 문제로 도마 위에 올랐으나 태봉그룹의 총수는 무죄를 선고 받은 터였다. 그렇다면 일광그룹의 총수는 왜 실형을 선고 받은 걸까? 관계자들은 아주 빠르게 결론을 얻는다. 주요 권력자들을 '로비'하지 못했고 '관리'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것이다.

일광그룹은 사생결단의 정신으로 라이벌 회사의 정보원을 스카우트하고 '문화개척센터'라는 조직을 구성해 사회 각층의 주요 인사들을 로비하기 시작한다. 로비의 방법이란 무엇인가? 아주 간단했다. 돈이다. 문화개척센터의 실무자들은 사회 각층의 인사들에게 돈을 뿌리고 다닌다. 그들은 '감동'을 주겠다는 마음으로 실무자들의 가족들까지 꼼꼼하게 챙겨주기도 한다.

뿐인가. 지식인들과 대학생들을 포섭하기 위해 대학에 건물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남의 시선 의식해 마음 놓고 골프를 칠 수 없는 공무원들을 위해 골프장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혹시라도 시끄러운 소리가 나올까 싶어 노동자들을 포섭하는 건 어떤가. "돈은 귀신도 부린다"는 말을 믿는 그들의 행보는 그렇게 거침이 없다.

그렇게 하여 그들이 얻는 건 무엇인가? 어마어마한 비자금이다. 또한 안전하게 자식들에게 회사를 물려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권력은 더 공고해진다. 국회의원이나 기자들은 건드릴 수 없는, 심지어 법조차도 건드릴 수 없는 장벽을 두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워낙에 생생하게 그렸기 때문인가. <허수아비춤>을 읽다보면 뜨거운 한숨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소설 속의 많은 장면들이 그동안 언론 곳곳에서 봐왔던 것이기에 그렇고 그것이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기에 그런 것일 게다. 동시에 어떤 부끄러움도 느껴진다. <허수아비춤>은 돈에 휘둘리는 대기업과 권력자들의 비리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믿고' 있는 대중 또한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허수아비춤>에서는 대기업과 싸우는 시민단체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대기업에 비해 내세울 수 있는 건 '정의감'뿐이다. 본래 '정의감'이라는 건 아름다운 것이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그들은 대중들에게 철저하게 외면 받는다. 그들이 군부독재와 싸울 때만 하더라도 대중들이 힘을 보탰고 그것이 역사를 바꾸는 커다란 계기가 됐던 터였다. 그런데 대기업과의 싸움에서는 왜 그런 일이 생기지 않는가.

<허수아비춤>은 소설 속 문화개척센터 관계자들의 표현을 빌려 그 이유를 '자발적 복종'으로 설명하고 있다. 대기업이 잘 되면 나라가 잘 되고 국민들도 잘 될 것이라고 믿기에 착하게도 미리 복종한다는 뜻이다. 사실일까? 지나친 과장일까? 작금의 행태를 살펴보면 소설 속의 말들이 '과장'이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인가. <허수아비춤>은 얼굴을 홧홧거리게 만든다. 입으로는 '정의'를 말하지만, 돈을 위해서라면 가족마저 내팽개치게 만드는 세상에서, 소설이 어느 때보다 가슴을 쓰디쓰게 만든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러한 질책이 단지 질책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도록 만들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한 공이 컸고, 잠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국민경제에 더 이상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는 말로 비리를 눈감아주는 시대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허수아비춤>, 가뜩이나 시끄러운 날들이 이어지기에 그런가. 소설이 어느 때보다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것 같다.


허수아비춤

조정래 지음, 해냄(2015)


태그:#조정래, #재벌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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