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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고백교회 가족 여러분을 존경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까닭을 딱 하나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담임목사가 자꾸 밖으로 나돌면 교회의 내실이 헐어지고 밖으로부터 오는 불이익도 많아서 세상의 교회와 신도들은 제대로 된 민주화나 자주통일 하는 일에 담임목사가 몸을 던지는 일을 꺼리더군요. 그런데 전주 고백교회 가족들은 내 놓았습니다. 그것도 아주 흔쾌히 온 몸을 들어... 로마제국 식민지의 민족모순과 최하위 계급의 민중모순을 일거에 해소하고 인류의 영원한 해방세상을 열어 가신 예수의 참 제자가 이 땅 이곳에서 함께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눈앞에서 봅니다. 감동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참 자랑스럽습니다."

 

지난 2006년 전주 고백교회 출범 20주년 기념을 맞아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가 전한 축사 내용 중 일부다.

 

독일 교회들이 히틀러를 찬양하며 나치화(化)되어 가고 있을 때, 이를 거부하며 고백교회를 만든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의 정신을 따라 한상렬·이강실 목사가 문을 연 전주 고백교회.

 

한상렬 목사가 지난 6월 12일 당국의 허가 없이 방북해 70일여 일 동안 평양 등지에 머무르면서 우리 정부를 비방하고 북한 주요 인사들과 만나 북한을 찬양한 혐의(국가보안법상 이적동조 등)로 검찰에 9일 구속기소를 당했지만 19일 전주 고백교회 주일 예배에서 만난 교인들은 한 목사를 향한 마음에 변함이 없었다.

 

김일한 장로(67)는 "이번이 네 번째 구속이다. 우리 교인들에게는 일상적인 일"이라고 운을 뗀 뒤 "한 목사님이 북한에 간 것은 당연하다. 6.15 남북공동선언이 이행이 안 되기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가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겨레 하나되기 운동본부 전북본부 공동대표를 맡고 있기도 한 김 장로는 "예수님도 역사에 동참하고 모순된 세상을 바꾸는데 투쟁하셨던 분"이라며 "일부에서 북에 가 얻어 온 것도 없으면서 무엇하러 갔냐고 비판하는 것을 봤는데, 한 목사님은 정치하러 간 것이 아니다. 남쪽에서 6.15행사를 걷어치웠는데, 북에서 6.15행사를 하기에 반가운 마음에 가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면서 자신도 평양에 3번 다녀왔는데 MB 정권이 들어오면서 마지막으로 갔을 때, 북쪽에 있는 안내원이 "문을 너네가 잠그고 우리더러 열라고 하면 어떻게 하냐"고 말했다며 의미심장한 말을 전했다.

 

강신욱 집사(48)는 지난 촛불집회 때 한상렬 목사가 100일 만에 석방되어 나왔을 때, 교회 노(老)권사가 한 목사의 손을 잡고 우셨던 것을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강 집사는 "1989년에 문익환 목사님이 방북하셨을 때, 깜짝 놀랐었다. 당시 진보 진영 안에서도 열에 아홉은 그분을 비난했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지나고 보니까 그분이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하셨다는 것을 발견했다"며 "예수님의 제자의 길은 남들이 가는 잘못된 길을 가지 않는 것이다. 아닌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문제 아니냐"고 반문했다. MB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며 한 말이다.

 

한 목사가 북한에 가서 북의 선군정치와 주체사상을 찬양했다며 보수언론을 비롯해 대다수의 여론은 '매카시 광풍'을 한 목사에게 불어댔다 .

 

이에 대해 진창훈 집사(46)는 "찬양까지는 아니고 그곳도 어찌됐든 체제로 나라가 만들어진 이상 한 목사님은 그저 국가에 대한 예의를 표한 것일 뿐"이라고 역설했다.

 

진 집사는 "방향을 어디에다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MB정부의 통일정책, 북한의 핵 모두 이해하는 차원에서 그렇게 맘 편히 방북 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강실 목사의 강연으로 인연이 되어 이전까지는 교회에 다니지 않다가 고백교회에 출석한지 두 달이 된 최중석 성도(27)도 "아직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한 목사님의 방북 행보를 이해하는 폭이 크지 않을 것이다. 한 목사님은 정당한 길을 가셨다"고 주장했다.

 

나라사랑 청년회에서 활동한 최 씨는 이어 "자신들이 불리하니까 반북감정을 이용해 자리지키기를 하는 것"이라며 최근 고백교회에 와서 강연을 해 준 어느 신부의 강연 중 일부를 전해줬다.

 

"십자군 전쟁에서 기독교인들과 이슬람인들이 한창 싸울 때, 기독교의 한 성인이 이슬람을 방문해 '우리가 잘못했다' 말했다고 한다. 한 목사님도 방북해서 MB정부의 대북정책을 잘못했다고 북에 얘기 한 것 뿐이다. 그것은 바른 일을 한 것이다."

 

전주 고백교회를 가는 택시 안에서 만난 운전기사 소복영(60)씨도 "한 목사님은 이 지역에서 늘 약자를 생각하는 분으로 유명하다. 적어도 택시, 버스, 트럭 등 운수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한 목사님의 방북에 뜻이 있어서 가셨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고 전했다.

 

그는 전주 고백교회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교회가 어느 교단에 속해 있는지, 한 목사의 부인이 이강실 목사라는 것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한 목사가 북에서 내려 올 때,  연일 신문에서 한 목사를 비판하는 기사에 대해서도 본 적이 없는 그였지만 '과잉보도'였다고 딱 잘라 그는 말했다.  

 

보수교단에 속하는 예수교장로회 신자이기도 한 그의 말은 진보세력과 기독교장로회(한상렬 목사가 속해 있는 교단)내에서도 비판이 일고 있는 것과 대비해 많은 생각들을 안겨 주는 대목이다. 

 

한상렬 목사와 공동 목회를 하고 있는 이강실 목사(한상렬 목사 부인)는 이날 주일예배 설교를 통해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모욕과 고난도 능히 감수하는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하나님의 일꾼"이라며 "한 목사님을 거짓예언자라고 하지만 말씀처럼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된 것을 주님이 아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목사는 본회퍼·문익환 목사, 전태일 열사와 전주 고백교회 설립에 큰 가르침을 준 후견인 은명기 목사, 고백교회에서 진정한 섬김의 모습을 보여준 배창선 장로가 고백교회의 뿌리라며 모순된 역사 속에서 전주 고백교회가 다른 교회에 등불이 되자고 교인들에게 당부했다.

 

또 이날 주일예배에선 북한수재민돕기 특별헌금이 진행되기도 했다. 이 목사는 "쌀이 창고에 남아도는 데도 굶주린 북녘 동포를 돕지 못하는 우리의 잔인함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다.

 

한편 전주 고백교회 교인들은 주일 예배를 마치고 식사를 다 같이 함께 한 후,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한상렬 목사의 부탁에 따라 고 배창선 장로 18주기를 맞아 묘소에 참배했다. 이후 이들은 총 네 팀으로 나뉘어 전주 인근에 거주하고 있는 통일 원로들을 찾아 추석인사를 드렸다.

 

비전향 장기수로 32년을 감옥에서 보낸 박용현(91) 할아버지는 교인들의 인사를 받자마자 한 목사의 안부를 걱정했다. 박 할아버지는 한 목사가 재판에서 공소장을 낼 때, 나는 양심에 따라 산 사람이라고 해야 한다고 조언하며 한 목사 면회를 가야 하는데 가지 못해 미안하다고 연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에큐메니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한상렬, #이강실, #고백교회 , #비전향장기수, #문익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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