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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안에 고압 송전탑이 서 있는 인천 부평구 십정동 목화연립. 재건축을 하기 위해서는 송전탑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 송전탑 아래 연립 주택 입주자들은 송전탑 인근 옹벽이 붕괴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단지 안에 고압 송전탑이 서 있는 인천 부평구 십정동 목화연립. 재건축을 하기 위해서는 송전탑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 송전탑 아래 연립 주택 입주자들은 송전탑 인근 옹벽이 붕괴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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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성 폭우로 인한 피해가 전국적으로 끊이지 않고 있다. 각종 건물과 다리 등이 폭우로 인해 붕괴되고 있다는 소식이 연일 언론을 통해 보도된다. 이러한 소식을 들을 때마다 인천 부평구 십정동 백운역 근처에 있는 목화연립 주민들은 조마조마한 맘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부평구 십정동 182-95번지 일대의 목화연립은 전체 162세대 중 절반 가량이 주인 없이 방치돼 있다. 경비원 한 명 없어, 일부 빈 집은 노숙자들이 드나들고, 일부 세대는 수돗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방치된 빈 집들엔 곰팡이가 피고 술병들이 널려 있다.

주민들은 위험에 무방비 상태인데, 한국전력은 예산 타령만

목화연립 4동과 6동 인근에 위치한 빌라와 축대의 균열이 심각한 수준이다. 폭우 등으로 인한 축대 붕괴 위험이 상당한 수준이다.
 목화연립 4동과 6동 인근에 위치한 빌라와 축대의 균열이 심각한 수준이다. 폭우 등으로 인한 축대 붕괴 위험이 상당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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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연립은 1984년에 준공됐다. 하지만 준공된 지 20년도 안 된 2000년 6월 안전진단 D등급 판정을 받았다. 특히 단지를 지지하는 옹벽 등에는 금이 가는 등 붕괴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16세대가 거주하는 6동(송전탑 바로 밑) 바로 옆에는 축대(옹벽)가 있는데, 균열이 심각하다. 폭우 등으로 인해 축대가 붕괴될 경우 축대 위에 있는 빌라가 무너져 7m 아래 다른 동을 덮칠 수 있다.

게다가 단지 한 가운데에는 345킬로볼트(KV)나 되는 송전선로를 받치고 있는 철탑이 서 있다. 축대와 송전탑이 연결돼 있어, 축대가 붕괴되면 송전탑도 붕괴될 수 있다. 축대 보강공사를 고려했지만, 자칫 보강공사로 인해 축대가 붕괴될 수 있다는 전문가의 진단이 나와 이마저도 요원하다.

목화연립은 2001년에 주택건설사업계획을 승인 받아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먼저 철탑과 송전선로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 폭우 등으로 인해 축대 등이 붕괴될 수 있는 상황이라, 고압 송전선로 이설이나 송전선로를 땅에 묻는 지중화 사업이 빠르게 추진돼야한다는 목소리가 주민들로부터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송전선로 이설 예정지 주민들이 이설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고, 지중화를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400억원 추정)이 들어 지자체와 한국전력은 예산 타령만 하고 있는 모습이다.

재건축조합에서 수년 전부터 송전선로 이설공사를 추진했지만, 인근 주민들의 반대 민원에 부딪혀 중단됐고, 그로 인해 재건축 사업 또한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이로 인해 주민의 40%가 각자 대출을 받아 다른 곳에 전세를 얻어 살고 있으며, 80세대 정도는 전세를 얻을 돈이 없어 그냥 머물고 있다. 재건축이 장기간 방치 돼 최근 다시 입주하는 집주인들도 종종 생기고 있다.

재건축조합은 철탑 이전을 위해 군부대, 한전, 대체부지 소유자인 교육부 등과 협의해 이전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전 부지 주변에 있는 초등학교 학부모들이 고압 송전선로의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며 2005년 집단 반발해 중단됐다.

"물도 안 나와 인근 역에서 세면...왜 우리만 피해"

목화연립 4동과 6동 뒷 편 옹벽.
 목화연립 4동과 6동 뒷 편 옹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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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들을 설득해 다시 이전을 추진했다. 하지만 2009년 10월, 이번에는 다른 지역 주민들이 집단 민원을 제출하면서 송전탑 이전은 또 다시 중단됐다.

송전탑 이설 반대 주민들은 대책위를 꾸려 릴레이 농성을 벌이기도 했으며, 법원에 공사 중지 가처분을 신청하기도 했다. 법원은 '공사 중지 가처분'을 기각했다. 그 사이 조합은 이설 공사 대금 수 억 원을 날렸다.

고지상 재건축조합 조합장은 "10년간 사업이 지연돼 송전탑 이설 비용이 최초에는 10억원이 들 것으로 예상했는데, 현재는 40억원으로 증가해 재건축을 해도 조합원 분담금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재건축 사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조합원 모두가 수천 만원씩 빚을 진 상태가 됐는데, 여전히 사업 추진이 불투명해 답답한 심정"이라고 털어놓았다.

목화연립에서 만난 6동 한 주민은(72)씨는 "이 더운 날 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 백운역(경인전철)에서 세면을 했다. 송전탑 때문에 하루하루 살기도 버겁다"며 "송전탑은 모두를 위해 있는데, 왜 우리만 그 피해를 입어야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한쪽에선 붕괴위험이 있는 연립주택을 재건축하기 위해 송전탑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는 상황이고, 한쪽에선 송전선로가 가까워져 피해가 예상되고 불안하다며 이설을 반대하는 상황에서, 근본적 해결방안은 지중화 사업이다.

고지상 조합장은 "지방선거 직전에 민주당에서 송전탑 지중화 사업을 우선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고 밝혔으니, 송영길 시장이 이 사업에 관심을 가져주기만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인천시와 부평구는 지중화 사업 예산 분담 문제로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중화 사업을 할 경우 한전과 지자체가 절반씩 분담하도록 돼있다. 하지만 한전이 경영악화로 당장 지중화 사업을 추진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고, 이에 지자체가 먼저 400억 원을 투입하고 한전이 차후에 상환하는 방식으로 추진하자는 안이 나왔다.

그러나 시는 자체적으로 400억원을 투자할 수 없는 만큼, '매칭펀드(=일정한 비율로 자금을 부담)'로 부평구도 예산을 투자해야 한다며 한 발 빼고 있고, 부평구는 열악한 재정 여건으로 인해 엄두를 못내는 상황이다.

결국 시가 팔을 걷지 않고서는 지중화 사업은 요원해 보인다. 시가 적극 나서지 않는 이상 한전 또한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목화연립 주민들은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으며, 이설 반대 주민들과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게릴라성 집중 호우로 인한 피해가 전국적으로 끊이지 않고 있어, 관계 기관의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목화연립 3동 지하는 비만 오면 빗물이 고여, 모기 등이 번식하고 있다.
 목화연립 3동 지하는 비만 오면 빗물이 고여, 모기 등이 번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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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부평신문(http://bpnews.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목화연립, #재건축, #고압 송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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