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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는 모든 고등학생들이 필수로 거치는 코스가 있다면?

 

제주를 거쳐간 고등학생들에게 가장 인상적인 제주의 풍경이 뭐냐고 물으니 너도나도 성산일출봉을 최고로 꼽는다. 그 기원과 모양새가 워낙 독특해서 그럴 것이란 생각도 든다.

 

어떤 학생들은 한참 깎여 없어져 이제는 그 이름이 무색한 용두암을 내세운다. 도대체 그동안 사진 속에서 보아온 웅장한 형태의 용머리는 어디로 가고(아쉽게도 파도의 침식작용으로 다 깎여 버렸다고 한다) 커다란 검은 돌만 바닷가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지 의심스럽지만 말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토록 많은 수학여행 버스가 이곳에 주차됨도 불구하고, 고등학생들에게 이곳은 그저 '시시하고 지루한' 박물관일 뿐이다. 아니 누가 이 고리타분한 곳을 떡하니 고교생의 수학여행의 필수 코스로 지정해 버렸을까? 어떤 학생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지 못하는 이런 장소를 말이다.

 

가족 여행으로 1년에 한 번씩은 꼭 제주를 방문하지만, 민속자연사박물관은 역시 우리에게도 큰 매력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제주에는 성산일출봉과 바다와 멋진 돌길들이 있는데, 뭐하러 이 근사한 곳까지 와서 박물관을 찾아야 한단 말인가! 늘 이런 마음으로 관광 대상에서 제외되었던 이곳을 정말 우연히 찾게 되었다.


인기 없는 그곳, '민속역사박물관'을 찾다

 

그 계기는 바로 8월 초 제주의 뜨거운 햇살 때문.

 

제주의 여름은 엄청 덥다. 특히 나무 그늘이 별로 없는 해안가를 중심으로 여행하다 보면 제주의 뜨거운 햇살에 온몸이 지글지글 익는 느낌이다. 아무리 양산과 모자로 가려 보려 하지만 오염이 전혀 없는 공기 때문인지 유독 서울의 햇살보다 더 강한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세 살 머루와 여섯 살 해님 공주에게 이 햇살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결국 우리는 '어디 시원한고 직사광선을 피할 곳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제주시에 위치한 민속자연사박물관을 낙점하게 되었다. 위치도 딱 좋다. 제주시 중심부에 턱하니 자리잡고 박물관 옆에는 나무 그늘이 시원한 삼성혈도 있으니 한꺼번에 두 곳을 보는 일석이조의 여행 코스다.

 

자연 경치가 뛰어난 제주에서 무슨 박물관이냐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모르시는 말씀이다. 제주에는 김영갑 사진갤러리, 소리섬 박물관, 테디베어 박물관 등 소문난 박물관들도 꽤 많다. 어떤 박물관은 사설 건물이라 입장료가 만 원을 훌쩍 넘기도 하지만, 민속자연사 박물관은 어른이 1000원, 아이가 600원인 아주 저렴한 입장료를 자랑한다.

 

입구부터 커다란 돌하르방들이 우리를 맞이한다. 제주에서는 어딜 가나 이 할아버지들이 손님을 맞는다. 할머니들은 모두 바다와 밭에서 일을 하셔서 바쁘고 돌하르방만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집을 지키는 것이다. 잘 정돈된 길을 따라 들어가니 물 허벅을 진 아낙네 모양의 조각에서 물이 나오는 수도가 있다.

 

제주에서는 옛날에 제주 처녀, 비바리들이 이 물 허벅에 물을 지고 날랐다고 한다. 시원하게 물이 쏟아져 내리는 조각상을 보니 나도 아이들과 함께 자연스레 물장난을 하게 된다. 구실은 아이 손을 씻긴다는 거지만 그 핑계로 서로의 얼굴에 물을 뿌리니 더위가 금방 잊혀진다. 잘 꾸며진 정원에 말 방아도 있고 진짜 허벅도 있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호기심쟁이 해님공주가 얼른 허벅을 져 보려 하지만, 보기보다 훨씬 무거워 몸이 휘청거린다. 생각해 보니 허벅이 항아리 하나인데 이제 여섯 살 아이가 어찌 가뿐히 질 수 있으랴. 그래도 아이는 마냥 신이 난다. 제주도 옛날 사람처럼 자기도 그걸 메 보니 재미가 있나 보다. 더불어 옆에 있는 조각상 수도꼭지에서 물장난도 실컷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엄마, 제주도는 한국이야? 근데 왜 비행기 타고 가?"

 

민속자연사박물관에서 가장 인상적인 걸 꼽으라면 박물관내로 들어가는 계단이 아닐까 싶다. 이곳에 수학여행을 오는 모든 고등학교는 필수적으로 여기서 단체 사진이란 걸 찍는다. 계단의 폭이 엄청 넓기 때문에 많은 학생이 한꺼번에 올라 설 수 있고 계단이라 자연적으로 층이 져서 사진을 찍으면 모두의 얼굴이 다 잘 나온다.

 

안에 들어가니 엄청 시원하다. 쨍쨍한 제주의 햇살을 피하기에 딱 좋은 피서지가 아닌가! 아이와 나는 신나게 관람을 시작했다. 맨 처음 전시실에는 제주에 살고 있는 동물과 식물들을 보여 준다. 아이는 특히 새를 전시해 놓은 특별관과 족제비, 잠자리 등의 박제가 많은 자연 전시실을 좋아했다.

 

예쁜 조개를 발견하면 엄마를 불러 보여주기도 하고, '흰머리도요새'와 같은 독특한 이름의 새를 찾아내어 동식물의 이름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이야기한다. 아이 덕분에 나도 공부가 되는 느낌이랄까. 잊고 있던 동물들의 이름과 실물을 연결지어가며 전시실을 휘익 둘러보니 제주에는 참 다양한 생물들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다음 전시실은 제주의 형성과정을 보여 준다. 여섯살이 되면서 부쩍 과학 상식에 관심이 많아진 해님공주. 제주도가 용암이 분출해서 생긴 섬이라는 사실을 이 전시실을 통해 알게 되고는 무척 재미 있어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제주도에 살고 있어서 언제나 이곳에 대해 궁금한 게 많은데 보통 질문은 이런 식이다.

 

"엄마, 제주도는 한국이야? 그런데 왜 비행기를 타고 가?"

"제주도는 바다를 건너야 갈 수 있는 곳이지? 그럼 외국이야? 그런데 왜 한국 사람들이 살아?"

 

민속자연사박물관에 다녀오고 나서는 제법 유식한 척을 한다.

 

"제주도는 바닷속 땅 깊은 곳에 있던 용암이 폭발해서 바깥으로 튀어나와 굳어서 생긴 섬이야, 섬. 그래서 비행기를 타고 가야 되는 거야. 섬이 생겨나니까 원래 한국에 있던 사람들이 제주도로 배타고 가서 살게 된 거래. 그러니까 제주도도 한국이야, 알았지?"

 

자기 나름대로 논리를 세운 것이다. 좀 웃기긴 하지만 그래도 기특한 마음이 든다. 어쨌거나 대충 맞는 사실 아닌가.

 

제주 햇살이 너무 따갑다면, 한 번 방문해 보길

 

민속자연사박물관에는 이외에도 바다생물관이 있어서 아시아에서는 가장 큰 고래 뼈를 볼 수 있다. 두 시간 넘게 관람을 하느라 그때에는 잊었는데,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고래 뼈와 관련해서 아이에게 이야기해 줄게 많이 생각났다. 전래 동화 중에 <고래뱃속에 들어간 소금장수 기름장수> 이야기도 있고, 고래는 포유류이기 때문에 새끼에게 젖을 먹여 준다는 과학 상식도 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는 고등학생들은 이 전시실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여섯살부터 초등학생 수준의 아이라면 즐겁게 관람할 수 있는 전시물들이 고등학생들에게는 조금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일까? 나도 이곳을 방문했었지만 어떤 느낌이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그 폭이 넓은 계단에서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 밖에는….

 

고등학생보다는 초등학생들에게 보여주면 좋은 제주 민속자연사박물관 홈페이지 주소는 'http://museum.jeju.go.kr/new/index.jsp'다. 미리 시간을 알고 가면 제주 형성에 관한 영화도 상영하고, 갈옷 만들기 등과 같은 체험도 할 수 있다. 한여름 무더위에 제주의 햇빛이 너무 덥다고 느껴지는 여행객이라면 한번쯤 꼭 방문해 보시길 권한다.

덧붙이는 글 | 세 살 머루와 여섯 살 햇님 공주의 여행기 : 두 아이와 두 어른이 함께 보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태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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