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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의 마지막 주 월요일, 꽃다지를 만나러 갑니다. 작업장 언덕길에 핀 꽃다지 말고요. 창백한 어린 여공의 얼굴을 닮은 두해살이 들꽃 말고요. 때론 주먹을 불끈 쥐게 하고, 때론 상처받은 가슴을 어루만져 주는 꽃. 때론 달궈진 아스팔트 위에서, 때론 문 닫힌 공장 앞에서, 때론 홍대 앞 클럽에서, 아니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가리지 않고 피어나는 여러 해 살이 들꽃. '희망의 노래 꽃다지'를 만나러 갑니다.

꽃다지의 연습실은 구로동의 한 건물 지하입니다. 층계를 한 계단씩 내려갈 때마다 동굴에 들어가는 것처럼 음습한 기운이 내 몸을 휘감습니다. 수백년 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동굴. 그곳에 들어서면 먼지에 뒤덮인 감춰진 역사가 있을 것 같은 설렘으로 한 발 한 발 내딛습니다. 오랜 연륜이 가득 담긴 낡은 나무간판이 나타납니다.

구로동 한 건물 지하의 꽃다지 연습실
 구로동 한 건물 지하의 꽃다지 연습실
ⓒ 오도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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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저희 지금 구로역으로 가는데?"
"구로역이요? 집회 있나요?"
"아뇨, 결식아동을 돕기 위한 거리공연이요. 모금을 하거든요."

장난기와 호기심 가득한 아이처럼 초롱초롱한 눈을 깜박이며 꽃다지의 기획자 민정연씨가 함께 구로역으로 가자고 합니다. 갑자기 웬 결식아동이냐? 라는 질문을 미처 할 짬도 없이 동굴 안에서 스피커를 비롯한 음향기기가 밀려 나옵니다. 꽃다지의 '핸섬 가수' 이태수는 '짐꾼'으로 변신하였습니다. 스피커를 들고 끙끙대며 계단을 오르는데 영락없이 이삿짐센터 알바입니다. 얼떨결에 구로역으로 향합니다.

헉헉 가쁜 숨이 나올 정도로 후텁지근한 날입니다. 샌들 짝을 바꿔 신은 남자아이가 투덜투덜대며 엄마 손을 잡고 앞서갑니다. 입이 한 자나 나와 있습니다. 아이스크림을 사 달라고 조르는 듯합니다. 엄마는 아들의 투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의연(?)하게 앞만 보고 걷습니다.

"용재야, 왜 그러니?" 민정연씨가 투정하는 아이를 아는 듯 쫓아가 묻습니다. 용재라는 아이는 그녀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습니다. 원망 가득한 눈으로 엄마만을 흘겨봅니다. 용재와 '아이스크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엄마'를 보고 정연씨에게 물었습니다.

"누구예요?"
"정혜윤씨 몰라요? 작년 연말에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귀했어요."

10년째 '신입 가수', 꽃다지의 정혜윤

구로역 광장에 앉아 있는 용재
 구로역 광장에 앉아 있는 용재
ⓒ 오도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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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안면을 트게 된 정혜윤씨를 다시 만난 날은 팔월 첫째 주 월요일. 정혜윤씨는 꽃다지 가수입니다. 1999년에 꽃다지에 들어온 고참. 올해 서른여섯인 그는 딸 한결이와 아들 용재의 엄마이기도 합니다. 그녀의 이력서는 간략합니다. 학력을 제외하면 딱 한 줄. '희망의 노래 꽃다지 가수'

"어렸을 때도 그렇고 커서도 그렇고 제가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어요. 그런 말을 들은 적도 없었고요. 제가 불어과를 들어갔는데 그냥 프랑스에 가서 공부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갖고 있었어요."

대학에 들어간 정혜윤씨는 동아리를 기웃거리다가 "노래 소리가 나는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교회에서 찬송가 부르던 걸 좋아했던 그녀는 동아리 방에서 흘러나온 노래가 가스펠처럼 들렸습니다.

"민중가요가 있는 줄도 몰랐어요. 찬송 비슷하더라고요. 친근하게 가슴에 확 와 닿아서 그냥 꽂혔죠."

정혜윤씨는 입단한지 10년이 넘었지만 늘 신입 가수입니다. 한결이와 용재의 출산이 그를 늘 꽃다지의 '뉴 페이스'로 만듭니다. "꽃다지에 새로 들어오셨어요? 노래 잘 하시던데" 십년 전에 들어왔다고 말하면 "정말요? 그런데 왜 못 봤지" 고개를 갸웃거린 답니다. 선망 가득한 가수라는 직업도 '여성'이라는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아직 발표하지 않은, 그래서 아직 제목도 정하지 않은 정혜윤씨 작사 작곡의 노랫말 한 토막을 잠깐 볼까요.

늦은 아침 단잠 빠진 너를 깨우며 '일어나! 출근하자' 눈을 뜨라고 / 꿈결인가 생시인가 눈곱 찬 눈을 뜨며 어리둥절 세수하러 끌려가는 너 / 늦은 식사 허둥지둥 입엔 한 가득 '어서 씹어, 빨리 씹어, 그래도 꼭꼭 씹어' / 카시트에 꽁꽁 묶여 답답해 짜증내지만, 짜증낸다(며) 쥐어박는 날 위해 웃는 너

구로역 광장에서 열리는 꽃다지 거리공연 전에 연습을 하고 있는 꽃다지.(맨 오른쪽이 용재, 그 옆이 정혜윤)
 구로역 광장에서 열리는 꽃다지 거리공연 전에 연습을 하고 있는 꽃다지.(맨 오른쪽이 용재, 그 옆이 정혜윤)
ⓒ 오도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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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 시간을 맞추려고 아이를 깨우고 있는 가수, 꾸물대는 아이가 미워 가끔은 볼기짝을 때렸을 가수, 숟가락 가득 밥을 퍼 아이 입에 억지로 쑤셔 넣고 그것도 모자라 빨리 씹으라, 고문(?)했을 가수, 그렇지만 내 아이가 꼭꼭 씹기를 바라는 가수, 아이에게 오랏줄을 묶고서는 큰 소리를 치는 가수, 끝내는 가해자인 자신이 피해자의 웃음에 위로받는 가수. 엄마가 되기 전부터 가수였던 정혜윤씨, 이제는 가수 이전에 엄마였던 것처럼 여겨집니다.

꽃다지 콘서트 <반격> 공연이 열린 2001년, 정혜윤씨의 뱃속엔 딸 한결이가 있었습니다. 임신 육 개월, 유난히 배가 볼록했던 그녀는 그 몸에 장구를 둘러메고 길놀이를 하였습니다. 노래는 물론 깃발을 휘두르며 춤까지 춥니다. 관객들은 경쾌한 장구가락에 흥겹고, 맛깔스런 노래에 감동하고, 힘찬 깃발 춤에 신이 나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그때 무대 뒤편 동료들은 살얼음판에 서 있었습니다. "저러다 큰 일 나는 것 아냐?" 정혜윤씨에게 큰 잘못을 지은 죄인처럼 가슴을 졸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뱃속 아이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었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무대에 섰고, 여느 때처럼 혼신을 다해 공연을 하였습니다.

2005년 꽃다지 콘서트(오른쪽 두 번째가 정혜윤씨).
 2005년 꽃다지 콘서트(오른쪽 두 번째가 정혜윤씨).
ⓒ 오도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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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윤씨는 가수입니다. 무대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출산을 코앞에 둘 때까지 하루 서너 차례 공연을 마다않고 달렸습니다. <민들레처럼>뿐만 아니라 <단결투쟁가>, <가자 노동해방>과 같은 목과 함께 몸을 한껏 질러야 할 노래까지 아낌없이 무대에 토해냈습니다.

"둘째를 낳고는 무척 힘들었어요. 한결이도 용재도 아토피가 굉장히 심했어요. 정말 애들만 좋아질 수 있다면 내 모든 걸, 내 인생을 모조리 포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다시 꽃다지로 돌아가겠다는 마음도 없었어요. 다행히 지금은 괜찮아요."

한결이를 낳고는 1년의 육아휴직 기간을 다 채우지 않고 8개월 만에 복귀합니다. 하지만 용재를 낳고서는 삼년 육 개월을 쉬다가 2009년 12월에야 꽃다지로 돌아왔습니다.

"즐거울 때도, 힘들 때도 꽃다지 노래를 들었으면 좋겠어요"

가수 정혜윤씨도 어떤 날은 무대에 서기 싫습니다. "오늘은 노래가 귀찮네" 이런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막상 무대에 서면 잠겼던 목소리도, 무겁던 몸도, 귀찮던 감정도 깡그리 사라집니다. 무대에 선 그녀는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사라지고 오로지 자신의 목소리만 남습니다. 자신이 부르는 노래만이 마이크 앞에 서 있습니다.

수원이 집인 정혜윤씨가 서울 구로에 있는 연습실까지 오려면 한 시간 삼십 분. 하루에 세 시간을 오로지 출퇴근하는데 바칩니다. 아침에 일어나 큰 애 학교 보내고, 작은 애 어린이집 보내고, 연습실에 오고, 공연 나가고, 수원으로 돌아가 어린이집에서 둘째 찾고,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아이들 나무라고, 어느새 그녀의 몸무게는 천근이 됩니다. 아니 만근입니다.

처음 내 마음을 잃지 않으려 해 / 좀 더 나은 무언갈 찾으려해 / 꿈꾸던 걸 조금씩 이루려고 해 /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사랑하려고 해 [꽃다지 3집 음반 <진주> 실린 '이런 마음으로' 가운데서]

"꽃다지요? 힘든 사람들 옆에서 그냥 편한 노래를 들려주었으면 좋겠어요. 힘든 사람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노래를 더 많이 불렀으면 좋겠어요. 즐거울 때도 꽃다지 노래, 힘들 때도 꽃다지 노래, 싸울 때도 꽃다지 노래, 이렇게요. 꽃다지는 이런 노래만을 해야 해. 꽃다지는 여기서만 노래해야 돼,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언덕길에 무리지어 피어난 들꽃처럼 아픔과 서러움을 가진 이의 곁에, 사랑이 그리운 사람 곁에, 때론 싸움터에, 때론 거리에, 때론 공장에, 때론 결식아동에게 따스한 밥 한공기를 건네는 곳에 꽃다지가 있기를 가수 정혜윤은 꿈꿉니다.

"목소리 높여 지르는 노래보다 중간 음역 대에서 편하게, 맛깔스럽게 부르는 노래가 좋아요. 좀 투박해도 맛있게 부르는 노래요."

그녀는 노래를 듣고 있는 이들이 나를 바라보는 관객이 아니라 내 가족처럼 여겨집니다. 꽃다지 십년, 가수 정혜윤씨에게 노래는 삶이자 철학이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며 뜨거운 사랑입니다. 꽃다지는 그녀의 일터이자, 삶터, 그녀의 우주이자 미치도록 사랑하는 애인입니다.

구로역 광장에서 공연 중인 꽃다지(오른쪽 두번째가 정혜윤)
 구로역 광장에서 공연 중인 꽃다지(오른쪽 두번째가 정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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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 걸어온 우리에겐 언제나 / 변함없이 곁에 있던 노래있어 / 땀과 눈물어린 오선지 위엔 // 아직은 못다 이룬 꿈과 사랑이 // 하지만 슬플 때 흘렸던 나의 눈물과 / 기쁠 때 보여준 너의 환한 웃음 싣고 / 굳게 손잡아준 모든 이의 꿈을 새겨 / 이제 들꽃처럼 끝없이 피어나리니 [꽃다지 1집 음반 <민들레처럼> 실린 '노래여! 우리의 삶이여' 가운데서]

"꽃다지에서 저한테 많은 배려를 해요. 2009년 12월에 복귀할 때, 이랬어요. 일주일에 두세 번만 출근해도 된다. 웬만한 공연은 오빠(십년지기 동료가수인 이태수 조성일)들만 가고 저는 제가 꼭 가고 싶은 공연만 가라고 했어요. 막상 있다 보면 그게 아니잖아요. 요즘은 공연 있으면 웬만하면 다 가요. 궁시렁 궁시렁 거리면서. '어, 씨이. 뭐야. 또 다 가는 거야' 이리 말하면서 따라 나서요."

예전처럼 대학 축제에서 꽃다지를 찾는 일은 많이 줄었습니다. 대신 어렵고 힘들게 싸우는 이들을 만나는 자리는 더욱 늘었습니다. 정혜윤씨는 화려한 무대를 꿈꾸지 않습니다. 자신보다 어렵게 사는 이들 곁에서 노래할 때가 행복합니다. 그곳에서 되레 자신이 위안을 받고 돌아옵니다. 정혜윤씨가 노래로 듣는 이의 마음을 치유할 때, 그녀 자신의 가슴에 난 상처도 아뭅니다.

십년 째 신입 가수인 정혜윤
 십년 째 신입 가수인 정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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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너무 바빠 가지고 애를 어린이집에서 누가 찾아오냐, 뭐 이런 문제로 신랑이랑 다투기도 했어요. 제가 짜증을 냈죠. 그러니까 신랑이 '너 이번에 복귀하면 일주일에 두세 번만 나간다 하더니 요즘 맨날 나가더라?' 이러는 거예요.

제 신랑이 말도 없고 착하거든요. 제 든든한 후원자예요. 늘 제가 잔소리를 하죠. 그런데 '맨날 나가더라?', 이러는데 '어, 이거 뭐지? 그럼 나보고 꽃다지 하지 말라는 이야기야!'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사람은 항상 나를 믿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며칠 지나고 진지하게 물었어요. '내가 꽃다지 가는 게 싫어?' 아니래요. 하도 제가 잔소리를 하기에 얼떨결에 짜증이 나서 한 소리래요. 그게 (잠시 짜증이 나서 한 말이) 진심이래도 제가 받아들일 때는 약간 다르잖아요. 제가 제발이 저려서 민감하게 느낀 건지도 모르죠."

웬만한 일에는 전혀 무덤덤할 것 같은 그녀. 더워서일까, 유독 눈가에 땀이 송골송골 맺힙니다. 아이들이 아토피를 앓던 시절을 말할 때도 그러더니. 인터뷰 내내 흥분도 그렇다고 자신을 굳이 감추려고도 하지 않던 정혜윤. 그의 눈가의 땀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습니다.

합주실에서 콘서트 연습 중인 꽃다지
 합주실에서 콘서트 연습 중인 꽃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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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남에게 살갑거나 애교가 있는 편은 아니에요" 정혜윤씨가 말하는 정혜윤입니다. "혜윤이요? 애교는 없죠. 자신을 표현하지 않고, 남의 말을 담아두지 않은 것처럼 보여요. 그래서 무디다고 여기죠. 주로 홀로 삭이는 편이에요. 그런데 나중에 툭 던져요. 꼬치꼬치 따지고 그러지는 않지만은. 어쩌면 다른 사람보다 상처를 많이 받는 편일수도 있어요" 꽃다지 식구가 말하는 정혜윤씨 입니다.

살갑지 않다는 그녀도 애교가 넘치는 날이 가뭄에 콩 나듯 있습니다. 동료의 뺨에 뽀뽀도 하고, 사랑한다는 고백(?)도 합니다. 물론 '필'을 받은 술자리에서만, 분명한 것은 술주정이 아니라는 것.

저 놈의 언덕길 가파르긴 해도 / 못 오를 나무처럼 높기만 해도 / 작고도 안락한 저 너머 내 집으로 / 따뜻한 언덕길 따라 돌아오는 길 // 하늘에서 더 가까운지 / 유난히 밝게 보이는 / 저 별빛에 하루의 삶을 / 비춰 보면서 / 큰 한숨보다는 넉넉함의 미소로 / 오늘을 조용히 정리하는 언덕길 [꽃다지 2집 음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에 실린 '언덕길' 가운데서]

세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가수 정혜윤

8월 13일 콘서트 준비 중인 꽃다지 (맨 오른쪽이 정혜윤)
 8월 13일 콘서트 준비 중인 꽃다지 (맨 오른쪽이 정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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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3일에 있을 꽃다지 여름 콘서트 준비에 정신이 없을 때라 묻고 싶은 말은 넘쳤지만 인터뷰를 멈췄습니다. 정혜윤씨가 합주실로 들어가자 신입가수 홍소영씨의 약간은 '성악 틱'한 목소리가 흐릅니다.

"그래, 소영이는 그런 식으로 계속 가. '쟤는 성악 같은 거 공부했나봐', 관객들이 이리 느끼게."
"(성악을) 많이 배운 것처럼 말이죠?"

음악감독 정윤경씨가 기타 줄을 퉁기며 무덤덤하게 말합니다. "니가 그런다고 그렇게 보이지는 않을 거야" 순간, 합주실에서 웃음이 쏟아집니다. 소영씨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오르고. 노래 중간 중간 음악감독의 지적은 계속됩니다.

"태수한테 당부하고 싶은 말은 니가 느낌을 집어넣어서 펌프질 하겠다 그럴 때 약간 된소리가 나오거든. 고거를 좀 감안해라"

이태수씨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네에" 합니다.

"성일이는 컨디션 안 좋니?"
"주말에 천안에 갔다 와서 그래요."
"걸어서 한 시간이면 천안 가잖아?"
"휴가철이라 여섯 시간 걸려서, 잠을 못 잤어요."

조성일씨가 머리를 긁적입니다.

"그래, 너무 힘들면 어쩔 수 없지만 흉하지만 않게 해라."

단원들은 중국집에서 배달시킨 우동을 후딱 비웁니다. 다시 합주실에 노래가 흐릅니다. 이번에는 <브레멘 음악대>입니다. 그림동화인 '브레멘 음악대'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든 노래입니다.

"죽음으로 내몰리는 현실을 전복하고 삶의 희망을 찾아가다 마침내 '꿈'을 이루는 판타지예요. 경쾌하게 쭉쭉 뻗어나가는 후렴구가 인상적이거든요. 요건 꼭 듣고 가세요."

기획자 민정연씨의 당부가 있었던 노래였습니다. 오로지 반주라고는 음악감독의 찰랑 찰랑거리는 기타 하나. 하지만 어떤 합주에서도 쉽게 접할 수 없는 경쾌함이 내 귀를 속 끄집어 당깁니다.

그만 가야지, 가방을 챙기려하면 또 다시 내 발길을 잡는 새 노래가 연습실에서 흘러나옵니다. 그러기를 수차례, 아쉬움을 뒤로 하고 마을버스 정류장으로 갑니다. 지하 연습실을 빠져나온 순간부터 무엇인가를 놓고 나온 것 같아 자꾸 가방을 뒤집니다. 수첩도 사진기도 녹음기도, 모두 제자리에 있습니다. 마을버스를 탄 순간, 뒤늦게 두고 온 것을 깨닫습니다. 마음입니다. 제 마음을 훌러덩 놓고 나왔습니다. 아픈 이웃들의 영원한 벗 꽃다지의 품에, 그리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가수 정혜윤씨의 예쁜 삶 위에.

오는 8월 13일 열리는 꽃다지 여름 콘서트
 오는 8월 13일 열리는 꽃다지 여름 콘서트
ⓒ 오도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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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8월 13일 금요일 밤 8시, 홍익대학교 앞 KT@G 상상마당으로 오세요. 꽃다지가 피우는 맛난 노래 밥상을 마주하실 겁니다. (예매 : http://hopesong.com, 문의 : 010_4190_6600 민정연)
격월간 <삶이보이는창> 7, 8월호에서 인터뷰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



태그:#꽃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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