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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카한일유압에서 쫓겨난 32명의 해고자들이 승소한 이번 판결은 이명박 정부의 친기업 정책 속에서 대량해고가 용인되는 사회 분위기에 경종을 울린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파카한일유압 공장 모습이다.
 파카한일유압에서 쫓겨난 32명의 해고자들이 승소한 이번 판결은 이명박 정부의 친기업 정책 속에서 대량해고가 용인되는 사회 분위기에 경종을 울린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파카한일유압 공장 모습이다.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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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오전 9시 55분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309호 법정. 김명한 재판장이 짤막하게 "해고는 무효"라고 선고하자, 법정 안 수십 명이 "와!"하는 소리를 내질렀다. 어떤 이는 법정 바깥으로 나온 후 주저앉아 흐느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판결이었기에 모두들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주목한 이들이 많지 않았지만, 우리 사회에 중요한 판결이 내려지는 순간이었다. 파카한일유압이란 회사에서 쫓겨난 32명의 해고자들이 승소한 이번 판결은 이명박 정부의 친기업 정책 속에서 대량해고가 용인되는 사회 분위기에 경종을 울렸다는 평가다.

송태섭 금속노조 파카한일유압분회장은 3일 판결문을 보내왔다. 해고 무효 판결을 내린 법원은 판결문에서 "사회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방기하는 결과를 낳는 방향으로, (대량해고 요건인)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송태섭 분회장은 "아직 1심 판결에 불과하고, 최종적으로 해고자들이 회사로 복귀할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면서 "하지만 쌍용자동차 사태 이후 좌절감에 빠진 대량해고 노동자들이 힘을 얻기에 충분한 판결"이었다고 강조했다.

기업의 대량해고, 쫓겨난 노동자, 외면한 MB정부

쌍용자동차 가족대책위 회원들이 2009년 7월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를 기습 항의 방문하여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해 박희태 대표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쌍용자동차 가족대책위 회원들이 2009년 7월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를 기습 항의 방문하여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해 박희태 대표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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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직원 60% 정리해고, 평균 연봉 990만원>(2009. 4. 1), <"'신용불량자 벗어났어요?'가 인사죠">(2009. 12. 24) 등 두 차례에 걸쳐 파카한일유압 대량해고 사태를 보도했다.

사태의 발단은 지난해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압컨트롤밸브(굴착기 등의 작동장치)를 생산하는 외국계 기업 파카한일유압이 전체 직원(197명)의 절반이 넘는 113명을 정리해고하고, 나머지 직원의 연봉을 990만 원으로 낮추겠다고 발표했다. 2008년 8월 24억 원이었던 월매출이 2009년 6억~8억 원 수준으로 급감하는 등 경영환경이 악화됐다는 것이다.

직원들은 반발했다. "회사의 어려움은 일시적인 것으로, 직원의 절반 이상을 해고할 만큼 긴박한 상황이 아니다"라며 "또한 매출이 크게 줄어든 것은 본사가 경기 화성시 장안 외국인투자기업전용단지에 노조 없는 회사를 세워 똑같은 제품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언론보도 등으로 파카한일유압에 대한 비난 여론이 커졌지만, 회사는 2009년 5월 직원 32명을 해고했다. 해고인원이 당초계획보다 줄었지만, 해고자 중 21명이 노조 전·현직 간부였다. 이명박 정부의 노조 탄압 분위기를 틈타 노조를 타깃으로 대량해고를 단행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해고자들에게 '친서민'과 '일자리 나누기'를 강조했던 이명박 정부는 어떤 도움도 되지 못했다. 송태섭 분회장은 "이명박 정부 들어 노동부에서는 기업 쪽에 불리한 부분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대량해고의 부당성을 외치는 우리의 목소리를 외면했다"고 지적했다.

법원 "대량해고로 사회에 대한 기업 책임 방기하면 안돼"

지난해 12월 파카한일유압 해고자들이 조합 사무실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지난해 12월 파카한일유압 해고자들이 조합 사무실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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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자들은 2009년 6월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에 해고 무효 확인 소송을 냈다. 2010년 7월 판결이 나오기까지 그들은 열악한 삶을 살았다. 해고 5~6개월 뒤 실업급여가 끊기자, 해고자들은 아르바이트, 막노동, 대리운전 등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소송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또한 회사 쪽에서는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을 고용한 상황이었다.

법원은 7월 22일 예상을 깨고 해고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단순히 도산의 위험성이나 장래에 막연한 경영상 위기를 이유로 근로자를 해고하고 사회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방기하는 결과를 낳는 방향으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법원은 "사용자 측의 '경영상의 사정'으로 인해 근로자가 직장을 잃고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는 처지에 빠진다"며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을 때만 근로자를 해고할 수 있고, (회사는)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파카한일유압이 해고를 회피할 만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또한 파카한일유압에 대해 "매년 당기 순이익을 유지하고 있던 회사가 짧은 기간에 직원의 절반이 넘는 인원을 정리해고 해야 할 정도로 경영상태가 악화되었다고 믿기 어렵다"며 "2009년 들어 경영상태가 나빠지고 있다는 점만으로, 경영악화가 장래에도 쉽게 해소되지 않을 개연성이 있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해고자들이 법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파카한일유압이 겪은 어려움은 1년 만에 거의 회복됐다. 적자가 지속된 2009년에도 부채비율은 86%로 업계 평균인 179%보다 낮았고, 회사의 월매출과 직결되는 국내 굴착기 생산량은 2009년 10월 2050대로, 2008년 같은 달(2296대)의 89% 수준으로 회복됐다.

법원은 또한 "파카한일유압의 모회사 파카하니핀코퍼레이션이 파견직이 중심인 새로운 회사(파카 코리아)를 만들어 똑같은 제품을 만듦으로써, 노조가 있는 파카한일유압의 매출을 축소시켰다"는 해고자의 주장을 인정하기도 했다.

"대량해고 부추긴 MB정부의 친기업 정책에 제동"

이번 법원의 판결이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는 의견이 많다. 해고자들의 소송 대리인인 육대웅 변호사는 "경제위기를 빌미로 노동자 생존권 함부로 박탈하는 행위에 대해 경종을 울렸다"고 지적했다.

이번 판결에서 이명박 정부는 자유로울 수 없다. 육 변호사는 "이명박 대통령이 노동유연화 강조하면서 대량해고를 사실상 부추겼다"며 "정부는 국민 전반의 복지를 책임지고 향상 시키는 선에서 기업의 이윤을 생각해야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비즈니스 프렌들리'만 외쳤다, 법원이 이에 대해 제동을 걸었다"고 강조했다.


태그:#대량해고, #파카한일유압, #일자리 나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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