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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살아난다고요? 친서민 정책이라고요? 휴…."

 

홍성진(가명·31)씨는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중장비용 유압컨트롤밸브를 만드는 파카한일유압에서 해고된 지 7개월, 이미 그의 삶은 밑바닥으로 떨어진 지 오래다. 월 85만 원의 실업급여는 지난달에 끊겼다. 일자리를 구할 수 없어,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버티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모아둔 돈은 모두 바닥났다"며 "요즘 밤 8시부터 새벽 2시까지 택배트럭 운전을 해서 일주일에 15만 원씩 벌고 있는데, 임신 중인 아내를 데리고 산부인과 가고, 생활비 쓰면 남는 돈이 없다"고 밝혔다.

 

대량해고를 앞둔 지난 3월 이곳을 방문했을 때 많은 노동자들이 "사형수 심정"이라면서도 일자리 나누기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23일 9개월 만에 만난 노동자 상당수는 해고자가 돼 인생에서 가장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크리스마스의 훈훈함도 외면하는 공장 한편

 

 

경기 시흥시 정왕동 시화공단에 위치한 파카한일유압 공장에서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회사는 해고자의 출입을 막았고, 해고자는 실랑이 끝에 노조사무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회사식당을 이용할 수 없는 이들은 직접 밥과 찌개를 만들어 김치와 멸치를 반찬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밤새 아르바이트를 한 몇몇 해고자들은 사무실 한편에서 눈을 감았다.

 

회사는 지난 3월 전체직원 197명의 57.4%인 113명을 해고하겠다고 밝혀 사회적 지탄을 받은 후, 두 달 뒤 당초보다 적은 34명을 해고했다. 당시 노조의 우려대로, 해고자의 상당수는 노조활동에 적극적이던 이들이었다.

 

송태섭 금속노조 파카한일유압분회장은 "지금까지 파업에 참가하거나 회사의 부당한 전환배치를 거부하면 징계를 받거나 나쁜 근태점수를 받았다"며 "해고자 중 21명이 노조 전·현직 간부일 정도로, 노조를 타깃으로 한 대량해고"라고 밝혔다.

 

그는 "해고자 대부분은 현재 실업급여가 끊기면서 알바로 근근이 버티고 있다"며 "해고자뿐 아니라 '살아남은 자'도 임금 체불 등으로 적지 않은 고통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권오진 사무부장은 "회사는 지난해 직원들에게 지급해야할 60만 원을 주지 않고 버티다가 최근 지급하라는 법원의 판결을 받았다"며 "회사는 그밖에도 임금을 부당하게 삭감해 노동부·검찰 등에서 조사받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회사가 단체협약을 위반하며 학자금과 육아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또한 노조원에게 잔업·특근 기회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송 분회장은 "기본급이 90여만 원인 회사에서 잔업·특근을 못하는 노조원의 생계는 그만큼 어렵다"며 "회사는 노조탈퇴자 40여명에게만 잔업·특근을 주고 있다, 사실상 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기도가 정리해고·노조탄압 회사에 막대한 특혜 지원"

 

 

문제는 앞으로다. 회사는 경영상황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면서도 희망퇴직 접수를 받는 등 인건비 줄이기에 혈안이다. 특히 노조는 공장의 축소와 폐쇄를 걱정하고 있다.

 

파카한일유압을 계열사로 두고 있는 미국계 다국적인 기업 파카하니핀이 경기 화성시 장안 외국인투자기업전용단지에 파카한일유압에서 만드는 것과 같은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는 "노조가 없는 회사에서 더 싸게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이 공장은 경기도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설립됐다. 50년간 토지 무상임대, 국세·지방세 전액 감면, 건축비 및 연구소 기자재비 50% 지원, 신입직원 고용보조금 지원 등 그 혜택이 자못 파격적이다.

 

송 분회장은 "경기도는 국민혈세를 퍼부어 노동자를 죽이는 기업을 지원해주고 있는데, 그 기업이 노동자를 대량해고한 곳인지 모르는 등 관리감독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며 "지원이 계속되면 파카한일유압 공장은 문을 닫거나 하청 공장이 될 게 뻔하다"고 밝혔다.

 

"신용불량자 벗어났어요?"

 

이날 만난 파카한일유압 노동자들의 표정은 지쳐보였다. 이들의 얼굴에서는 대량해고에 맞서 싸우자던 호기는 찾기 힘들었다. 특히 해고자의 얼굴에서는 길게는 몇 년이 걸릴 해고 무효소송에 대한 기대보다는 당장의 생계 걱정이 짙게 드러났다.

 

해고자 이진웅(가명·34)씨를 맞는 동료들의 인사는 "신불(신용불량자) 벗어났느냐?"였다. 그는 지난 5월 해고된 후 1000만 원의 빚이 쌓였다. 개인 워크아웃을 통해 상환 시점을 늦춘 게 그나마 다행이다.

 

이씨는 지난 11월 실업급여가 끊긴 후, 낮에는 파카한일유압 노조사무실에서 복직투쟁을 전개하고 새벽에는 인근 공장에서 야간근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일흔의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는 이씨는 "인생에서 가장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고 밝혔다.

 

"한 달에 20만원씩 빚과 이자를 갚아야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공장 야간근무 알바로는 생활비도 부족하죠. 솔직히 대책이 없어요. 경제가 좋아져 당장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명박 정부의 노조탄압 분위기에서 당장 복직이 되는 것도 아닐 테니까요. 일자리 나누기는커녕 일자리 지키기도 못한 이명박 정부 하에서 희망찬 새해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태그:#한일파카유압, #대량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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