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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나가사키를 찾은 한국인 여행객이 나가사키의 밤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곳을 알려달라고 한 적이 있다. 나가사키의 밤 문화라면 역시 시안바시(思案橋)다. '시안'이란 일본말로 무언가를 궁리하거나 고민한다는 뜻이며, '바시'는 '하시'의 변형어로서 '다리'를 뜻한다. 일찍이 에도(도쿄의 옛이름)의 요시하라, 교토의 시마바라와 나란히 일본 3대 요정과 유곽의 거리로 번성했던 마루야마로 들어가기 전, 그 입구에 '고민하는 다리'가 있었으니, 과연 마루야마로 들어오기에 앞서 뭇 남성들은 무엇을 고민하고 망설였을까.

지금도 시안바시 부근과 마루야마에는 밤 문화가 남아 있어, 유난히 음식점과 유흥주점 그리고 밤의 놀이문화를 즐길 수 있는 장소들이 집결해 있다. 그리고 나가사키현의 사적으로 지정될 만큼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요정 '카게츠(화월)'가 아직도 영업 중이다. 아직은 무사들이 칼을 차고 돌아다니던 때부터 있었던 이 요정은 막부가 쇠락해가던 시절 의 수많은 '지사'들과 문인, 거물들이 드나들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의 시안바시 거리는 젊은 남녀가 거리에 나와 호객행위를 노골적으로 하고 있는 까닭에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어쨌든 메이지 시대에 제조된 노면전차가 아직도 거리를 달리고 있는 흥미로운 도시 나가사키에서 노면전차 1번 혹은 4번을 타고 시안바시 정류장에 내리면, 걸어서 1분 거리 큰 길가에 반가운 한글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15년째 같은 자리에서 한국 음식을 만들어 지역민들과 유학생들을 맞아온 한인 음식점 '서울'이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나, 그러다 만난 인연

나가사키의 '긴자'라 할 수 있는 시안바시의 밤거리를 걷다보면, 노면전차 정류장 바로 근처에 김치찌개, 오징어볶음, 비빔밥, 삼계탕 등 다양한 한국음식을 즐길 수 있는 한인 식당 '서울'이 있다.
▲ 한국요리점 '서울' 나가사키의 '긴자'라 할 수 있는 시안바시의 밤거리를 걷다보면, 노면전차 정류장 바로 근처에 김치찌개, 오징어볶음, 비빔밥, 삼계탕 등 다양한 한국음식을 즐길 수 있는 한인 식당 '서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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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처음으로 이곳을 알게 된 것은 지난해 5월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 나가사키 대학에서 환경학이나 평화학 등의 수업을 청강하고, 교육학부 세미나에도 게스트로 참석하고 있던 기자는 평소 신세를 지고 있는 교수님이 연구실 이사 준비로 허둥지둥하는 것을 보고 이삿짐 정리 돕기를 자청했다. 그리고 다시 그 노동의 대가랄까, 고마움의 표시로 그 일본인 교수님이 데려가 준 곳이 바로 한인 음식점이었다. "저는 몹시 피곤해지면, 꼭 김치랑 한국 음식이 먹고 싶어져요"라던 말을 아마 잊지 않고 기억해준 덕분이었으리라.

그렇게 처음 발길을 둔 식당 '서울'에서의 첫 맛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메뉴는 김치찌개였다. 돼지고기를 넣고, 한국 김치에 두부와 우동과 양파를 넣고 진하게 끓여낸 맵고 뜨거운 김치찌개는 분명히 맛있었다고 생각된다. 공기밥만 따로 시켰지, 찌개는 1인분을 시켜 둘이 나눠 먹었기 때문에 조금 더 먹고 싶은데 금세 빈 그릇이 되어 버려서 아쉬웠던 듯도 하다. 하긴, 일본 생활 내내 유난히 나는 밥을 먹어도 금세 배가 부르지 않을 때가 많았다.

온돌문화가 없어 한없이 춥고 길게만 느껴졌던 나가사키의 겨울. 이국 땅에서 설날을 맞이하더라도 떡국은 먹고 싶어지는 법이다. 올해 처음으로 외국에서 민족대명절인 설날을 맞은 나는 며칠 전부터 일부러 '서울'의 사장님께 전화를 해 "사장님, 저 설날 저녁 다섯시 반에 친구 둘 데리고 갈테니까, 한국 떡국 좀 만들어 주세요. 네?"라고 졸랐다. 사장님은 "그래, 와"라고 선뜻 받아주었다.

그날 생전 처음 한국의 떡국을 목격하는 일본인 친구들의 신기해하는 표정을 모른 체하며 나는 순식간에 떡국 한 그릇을 비웠다. 배가 고팠던 것인지, 마음이 고팠던 것인지. 또래의 여자친구가 "아, 양이 많다. 이거 꽤 배부르네"라며 한참이나 깨작거리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뭐가 많다는 거야. 난 좀 더 먹었으면 좋겠구만. 아, 배고파. 아직도 배고파. 더 먹고 싶어. 엄마의 떡국이 먹고 싶어'라고 마음 속으로만 궁시렁거렸다. 하지만 이국 땅에서 한국식 떡국을 설날 날짜에 꼭 맞추어 먹을 수 있는 복도 감지덕지였다. 사장님(식당 대표)을 잘 만나서!

배보다 마음이 더 가난하여, 먹어도 먹어도 마음 속은 차오르지 않았던 나가사키의 긴 겨울도 지나고 눈 깜짝할 사이에 태양이 이글거리는 폭염의 여름이 닥치고야 말았다. 겨울보다는 여름이 그래도 낫다고 노래를 부르고 다니던 나에게도, 어느 사막 아래 내가 서있는 것은 아닌가 싶을 만큼 나가사키의 여름은 참으로 뜨겁다. 과장 반, 체감 진실 반이다.

한국에서도 요즘 열대야로 사람들이 잠을 못 이룬다는데, 요즘은 자동차를 타면 멀미를 하고, 잠을 자다가도 더워서 수십 번을 뒤척인다. 그나마 이틀 동안 비가 내려 열기는 식혀주었지만 금세 태양은 찾아들 것이다. 최근 일본에는 열사병으로 쓰러지는 사람들의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사실 요즘의 더위는 이상기온의 영향도 있지만, 특히 일본에서는 그냥 찾아온 폭염이 아니다. 폭염에 앞서 한 달이 넘도록 '지긋지긋한' 장마가 지속됐다. 햇빛은 영영 떠나 버렸는가 싶을 정도로 날마다 장대비가 내리고 안개가 자욱했다. 빨래를 해도 마르지 않고, 집안 에 온통 곰팡이가 피고, 몸도 지쳐왔다. 그런데 장마가 가버리자, 곧바로 폭염이 "곤니치와"라는 인사도 없이 얼굴을 들이 밀었다. 드디어 비가 안 내리는가, 드디어 좀 포송포송한 공기를 만끽할 수 있는가 하고 안도했는데 말이다.

"매워 매워... 맛있게 먹을 만큼 매워"

갈비구이, 비빔밥, 삼계탕, 김치찌개, 해물찌개, 불고기, 냉면, 지짐이 그리고 한국에서 수입해온 막걸리와 소주를 즐길 수 있다.
▲ 식당 앞에 걸린 메뉴판 갈비구이, 비빔밥, 삼계탕, 김치찌개, 해물찌개, 불고기, 냉면, 지짐이 그리고 한국에서 수입해온 막걸리와 소주를 즐길 수 있다.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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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한국인은 삼계탕 등을 먹어 몸을 보양하는 지혜로운 음식문화를 가지고 있다. 삼계탕의 재료 자체도 건강한 영양분이 듬뿍 담겨있기도 하지만, 더운 여름철일수록 몸 속은 냉해지기 쉬운데 그때 따뜻한 성질을 가진 음식을 먹음으로써 건강과 기운을 되살렸던 것이다. 기자의 몸도 긴 장마 끝에 찾아온 살인적 더위에 지쳐 초복을 즈음하여 뜨거운 맛을찾고 있었다. 일본음식도 맛은 있지만 얼큰한 찌개문화가 없는 탓에, 삼계탕은 아니라도 진하고 뜨거운 맛이 그립던 기자는 다시 식당 '서울'을 찾았다.

기자에게 매주 화요일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일본인 변호사와 함께였다. 초복 바로 다음날이었다. 나는 삼계탕 대신 김치찌개를 선택했다. 뜨거운 맛과 맵고 진한 맛이 간절히 그리웠기 때문이다.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일본인 변호사 친구도 땀흘리며 "맵다" 하면서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정도만 매워"라고 덧붙이며 열심히 숟가락을 움직였다. 기자도 역시 "아, 맛있어. 행복해"를 연발했다.

그리고 중복을 앞두고 또다시 '서울'을 찾았다. 마침 '서울'의 왕마담이신 사장님과 2년 전 본격적으로 데뷔한 젊은 요리사(사장님의 친손자)가 함께 있었다. 손님도 꽤나 북적였다. 이번엔 돌솥비빔밥과 오징어볶음, 김치찌개를 시켜서 더 다양한 맛을 즐겼다. 연세대 어학당에서 1년 동안 한국어를 공부하며 한국에 체류한 경험이 있는 일본인 친구는 '이열치열'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설명하는 기자의 이야기를 메모까지 하면서 열심히 들었다.

이날 따라 하필이면 한국어를 공부하는 일본인 손님이 우리 옆에 앉아서, 내가 한국인이라는 소리를 듣고는 한국어로 말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길이 없어, 한 시간 넘도록 옆에서 말을 걸어 왔다. 좋은 분이었지만, "한국의 글자 중 받침 'ㅁ, ㅇ, ㄴ'의 뚜렷한 차이에 비해, 일본 받침 'ん'은  'ㅁ, ㅇ, ㄴ'의 발음 구분없이 거의 비슷하게 사용되는데, 한국어를 배우면서 오히려 역으로 그런 점을 알게 되었다"는 '학습담'을 한 시간 동안 집요하게 반복했다. 이 손님과의 대화에 살짝 지쳐 열심히 밥만 먹고 빨리 나가 버릴까 하는 잠시 잠깐의 유혹도 있었다. 결국은 가장 나중까지 남아서 사장님한테서 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서울' 식당에 휴일이 없는 까닭

각자 따로 왔다가 어느새 말을 뒤섞으며 한 팀이 되어 버리는 식당. 한국어, 한국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침튀기며 꽃피우다가 술을 나누고 명함을 나누고 뱃속도 마음 속도 가득 부풀어올라 돌아가게 된다.
▲ 북적거리는 식당 각자 따로 왔다가 어느새 말을 뒤섞으며 한 팀이 되어 버리는 식당. 한국어, 한국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침튀기며 꽃피우다가 술을 나누고 명함을 나누고 뱃속도 마음 속도 가득 부풀어올라 돌아가게 된다.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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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15년째 한국 음식점을 운영해온 사장님은 사실 35년 전에는 명동에서 18년 동안 큰 옷 가게를 했다고 한다. 서울에서 3번째로 큰 식당을 운영하기도 했다. 당시 한일관, 진고개 다음으로 명동고개 하면 다 알아줬다고 하는 사장님은 "이런 이야기 일본 사람들한테는 안 해. 오늘 처음 하는 거야"라면서 흘러간 옛시절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명동고개'에서는 설렁탕, 곰탕을 비롯해서 한식을 취급했고, 당시 영화배우나 유명한 사람들도 많이 찾아왔다고 한다. 근처의 명동성당과 성모병원, YMCA 직원이나 세무서, 공무원, 근처 호텔에서 머무르는 손님 등 다양한 이들의 발길로 북적였던 시절이다.

여행을 좋아해서 유럽과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기도 했던 '서울'의 사장님은 나가사키 시안바시에 식당을 열기 전에는 옷 장사도 했다고 한다. 수완이 좋아 뭘 해도 금세 돈을 벌었다고 하지만, 수완 못지 않게 연중무휴로 일을 하는 부지런함도 빼놓을 수 없는 비결일 것이다. 그녀는 이날도 "이 식당은 언제가 휴일이에요?"라는 질문에 "그런 거 없어. 연중 무휴야. 한 번 쉬면 일하는 리듬을 잃어 버려"라고 응수했다.

옷 장사를 하다가 음식점을 연 것은 역시 외국 생활을 하다보니, 한국음식이 너무 먹고 싶어져서 자신이 음식점을 하자는 데서 비롯되었다. 과거 식당을 크게 운영했던 경험과 노하우도 있고 워낙에 생활력이 있는 그녀였기에 가능한 도전이었다. 처음부터 온 가족이 함께 나가사키에 이주한 것은 아니다. 그녀가 먼저 홀로 나가사키에서 고생하면서 터를 다져놓고 수년 뒤 가족을 불려들였다. 그게 벌써 이십 년 정도 전의 일이다.

사장님의 손자이고 나가사키에서 태어나고 자란 조현제 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이곳에 출입하다가, 중고등학교 시절 아르바이트와 견습을 거쳐 2년 전부터 정식으로 요리를 허락받았다. 한국 말을 할 줄을 모르지만, 한국이 참 좋고, 모든 요리는 젊은 할머니인 사장님으로부터 배웠다고 한다.
▲ 식당 서울의 젊은 요리사 사장님의 손자이고 나가사키에서 태어나고 자란 조현제 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이곳에 출입하다가, 중고등학교 시절 아르바이트와 견습을 거쳐 2년 전부터 정식으로 요리를 허락받았다. 한국 말을 할 줄을 모르지만, 한국이 참 좋고, 모든 요리는 젊은 할머니인 사장님으로부터 배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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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나가사키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아예 한국말을 하지 못하는 스물 한 살의 손자가 할머니의 뒤를 잇겠다고 이곳에서 요리를 하고 있다. 일본 이름과 한국식 이름을 다 가지고 있는 이 젊은 요리사의 이름은 조현제란다. 내가 "아주 멋있게 생긴 한국의 젊은 남자 탤런트와 이름이 똑같군요"라고 말하니,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신기해 한다.

처음에는 '왜 사장님이 아니고, 저 알바생이 음식을 하지? 맛있을까? 음식 맛이 사장님 거랑은 다를 텐데 오늘 날짜 잘못 잡은 거 아냐?'라는 괜한 의구심도 가졌지만, 모든 요리를 할머니에게서 배웠다는 현제씨는 식당의 모든 메뉴를 능숙하게 만들 수 있다면서 내가 먹을 찌개도 비빔밥도, 오징어볶음도 전부 만들어 주었다. 식당의 영업시간은 원칙적으로는 오후 5시~밤 12인데, 현제씨는 거의 매일 오후 5시에 문을 열어서 밤 10시까지는 근무를 하고 돌아간다고 한다.

초등학교 6학년 무렵부터 할머니의 식당에 드나들기 시작해 중학생 때는 단순 심부름 등의 아르바이트, 고교시절의 견습생활을 거쳐, 2년 전부터 직접 요리를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냈다. 그는 이제는 요리도 손님 접대도 척척이다. 손님과 주인 사이의 거리가 워낙 좁은 식당의 인테리어 구조상(바 형태) 손님과 마주보며 끝없이 대화를 나누는 그는, 손님에 맞춰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소화해 내는 붙임성 좋은 친구였다.

내가 한국 뉴스를 보다가 체벌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자 일본의 현실에 대해서 현지인으로서, 가장 최근에 고교를 졸업한 파릇파릇한 청춘으로서 생생한 현장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난주에는 홀로 온 젊은 샐러리맨 남성 손님과 야구 이야기로 꽃을 피우기도 했다.

그들과 나 사이의 '뜨거운 맛'이 좋다

35년 전 명동에서 크게 옷가게와 식당을 했던 수완 좋은 살림꾼 사장님은 나가사키에서도 옷 장사를 거쳐 지금은 15년동안 한국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 시안바시의 밤거리를 행복하게 하는 맛집의 기둥이다.
▲ 개업 15년째인 한국음식점 '서울'의 사장님 35년 전 명동에서 크게 옷가게와 식당을 했던 수완 좋은 살림꾼 사장님은 나가사키에서도 옷 장사를 거쳐 지금은 15년동안 한국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 시안바시의 밤거리를 행복하게 하는 맛집의 기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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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째 나가사키의 번화가에서 맛있는 음식과 함께, 맛있는 이야기와 행복한 만남을 짓는 한국 음식점 '서울'. 이곳에는 20대의 젊은 층부터 유학생과 샐러리맨, 퇴직자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손님들이 찾아든다. 한국인 유학생이나 여행객보다는 나가사키 시민이 더 주된 고객이다. 혼자 온 손님도 눈치 보지 않고 오래도록 앉아서 사장님이나 요리사와 "진로는 참 맛있다"라든가, 야구와 스포츠, 자신의 일, 자잘한 일상, 뉴스를 보면서 그때 그때 느끼는 것 등 다양한 주제를 종횡무진하면서 나눈다. 그리고 옆자리나 몇 자리 건너 앉은 다른 손님에게도 말을 걸며 인사를 나눈다.

나도 겨울에 불고기를 먹으러 갔다가, 자신에게는 이미 다른 일행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히로시마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는 사장님의 외국인 친구와 인사를 나누고 금세 친해졌다.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에 내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니 화장실이 밖에 있는데 찾기 어려우니 자신이 안내를 하겠다고, 파란 눈의 손님이 열쇠를 내 손에 지워주며 앞장서기도 했다. 내가 기념으로 얼굴을 사진기에 담고 싶다고 했더니 장난스러운 포즈까지 취했던 기억도 남아 있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하루를 보내고 어깨가 무거워진 한여름의 저녁 무렵, 뜨겁고 매운 그리움의 그 맛을 찾아 시안바시로 가면 그렇게 처음 만나도 즐거운 그들이 있고, 다시 만나서 더욱 반가운 동포 사장님과 젊은 오빠가 있다. 주변에는 일본 요리집, 중화요리집은 물론이고 오키나와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요리집들도 있다.

더워서 견딜 수 없는 여름에도, 추워서 마음 속까지 찬 바람이 불어오는 겨울에도, 시안바시에 가면 몸도 마음도 한국의 맛과 일본인 친구들과의 정으로 차오르는 그곳이 있다. 뜨거운 여름을 지혜롭게 건너는 방법은 역시 '이열치열 뜨거운 맛'이다. 국경을 넘은 서로의 땀이고 웃음이고 눈물이다. 그리고 이국땅에서 만난 동포가 만들어준 그 손 맛이기도 하다.


태그:#한인 식당, #한국 음식, #나가사키, #중복,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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