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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면 피서를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 고민이다. 널리 이름이 나 있는 피서 명승지는 언감생심 접근하기가 어렵다. 사전에 예약하는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피서갈 곳을 정하기가 어렵다고 하여 피서를 포기하는 일은 더욱 더 안 될 일이다. 알 수 없는 자괴감을 주체하기가 어렵다. 기를 써서라도 꼭 가고 싶다. 그래서 인터넷 이 곳 저 곳을 살펴본다. 세밀하게 찾아본다. 우리 가족이 편안하게 여름을 피할 수 있는 곳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본다.

 

피서지를 찾기가 어려운 것은 장소 때문이 아니다. 우리 식구는 모두 다섯이다. 집사람과 딸 아이 셋이다. 큰 아이는 직장에 다니고 있고 막내는 고등학생이다. 고등학교 2학년인 막내가 시간을 내기가 어렵단다. 학원에 가야 하는데, 수업을 빼 먹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거기에다 큰 아이도 일직이 겹쳐서 날짜 잡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니 예약할 수가 없다. 날짜가 정해져야 예약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가족 모두가 공통된 날짜를 잡기가 어려우니, 설왕설래할 뿐이다.

 

집사람의 입이 나왔다. 막내를 포기하고 나머지 식구만 가자는 큰 아이의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막내를 빼놓고 가는 피서는 상상할 수가 없다고 우겼다. 그러니 의견 일치를 보기가 더욱 더 어려웠다. 피서 경비는 결국 집사람이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집사람의 기분이 좋지가 않으면 곤란하다. 예산 없이 무슨 피서를 갈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더욱 더 꼬이기만 하다. 피서를 포기하자는 말까지 나왔다. 그런데 큰 아이와 둘째가 펄쩍 뛴다. 피서는 가야 한다고 우겼다.

 

유년 시절이 떠오른다. 그 때에는 피서는 생각도 하지 못하였다. 여름 방학이 되면 시원한 그늘 밑으로 가는 것이 피서였다. 바구니를 들고서 냇가로 물고기를 잡으러 가는 것이 최상이 피서였다. 경비를 들여서 다른 곳으로 피서를 간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였다. 그래도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어머니의 사랑이 듬뿍 넘쳐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다. 여름 그 자체만으로 충분하였다.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여름이니, 여름을 누리는 것이 바로 피서였다.

 

어린 시절에 대해서 말하면 집사람은 핀잔을 준다. 그 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란다. 세상이 달라졌으니, 당연 생활도 달라져야 한다고 하였다. 달라진 세상에서 왜 옛날이야기를 꺼내서 비교하려고 하느냐고 항변한다.

 

지금 세상에 피서 가지 않는 가족이 어디에 있느냐며 반문하면 할 말이 없다. 집사람의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으니, 반박할 수가 없다. 맞는 말이다. 세상이 달라졌으니, 달라진 세상의 흐름에 맞추어서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다. 시대조류에 맞추어서 피서를 가려고 하는데 걸림돌을 만났을 뿐이다.

 

집사람이 불만부터 제거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가족 모두가 피서를 가기 위해서는 집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순서였다. 심사가 뒤틀리게 되면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 없다.

 

행복이란 결코 먼 곳에 있지 않다. 뒤로 미룰 일이 아니다.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곧바로 해소시키는 것이 현명하다. 자구 미루게 되면 일이 복잡해질 뿐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한 일인지 살펴보았다. 아이들은 할 일이 있어서 모두가 바쁘다. 그러나 우선 집사람과 함께 간이 피서를 가는 것도 방법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무작정 출발하였다. 가다 보면 시원한 계곡을 만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출발하였다. 딱히 할 일도 없는 집사람도 군소리 없이 따라 나섰다. 옥정호 옆을 지나갔다. 호수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다른 지방에서는 물난리가 나서 피해가 심각한데, 전주 지방에는 비가 많이 오지 않았다. 호수가 말라버린 모습을 바라보면서 걱정이 되었다. 사람의 힘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진인사대천명이라고 하였던가? 하늘이 해결해주어야 만사형통이다.

 

가면서 기웃거렸다. 적당한 곳이라고 생각하고 바라보면 어김없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니 기웃거릴 필요도 없었다. 길가에 자동차들이 즐비하게 주차하고 있었다. 그러니 더위를 피할 곳을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마음은 모두 다 같다는 점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바라보는 눈도 마찬가지다. 좋겠다고 생각하는 곳은 다른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러니 적당한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난감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하여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달리다 보니, 강진을 지났다. 회문산을 지나 순창으로 접어들었다. 굽이굽이 휘어진 도로를 따라 달리다보니, 많은 계곡들을 지나갔다. 피서하기에 적당한 곳은 어김없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지쳤다. 시계를 보니, 점심때가 되었다.

 

더는 미룰 수가 없었다. 다급한 생각이 마음을 조급하게 하였다. 그 때 눈에 들어오는 이정표가 있었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곳으로 방향을 잡았다. 돌아서 얼마를 달렸을까? 얼마 되지 않아 음식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막골(전라북도 순창군).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 옆에서 먹을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백숙 한 마리를 시키고서 흐르고 있는 물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우선 시원하고, 편안하였다.

 

북적이는 사람들의 소리가 조금은 소란스러웠지만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었다. 일상의 복잡한 일들은 모두 다 내려놓고 물소리에 취하니, 신선이 된 기분이었다.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었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었다. 그냥 이대로 좋았다. 최상의 피서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녹두 넣고 삶은 백숙의 맛도 기가 막혔다. 집사람의 입에서도 웃음꽃이 피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였다고 생각하니, 느긋해졌다. 아이들과 함께 이런 곳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햇볕이 내리쬐는 바닷가보다는 백번 좋았다.

 

집사람도 동의는 하였으나, 단서가 있었다. 아이들은 바다로 가고 싶다고 하였단다. 어떻게 하는 것이 아름다운 피서인지 많은 것을 생각하였다. 느긋하게 맛에 취하고 시원함을 만끽하니, 부러울 것이 없었다. 마음이 편하면 그 것이 바로 피서가 아닌가?<春城>

덧붙이는 글 | 단독


태그:#가막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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