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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청자의 기대와 달리 24일 방영분에서 최인혁 교수는 끝내 수술장면에 등장하지 않았다.
 수술실 (문화방송 드라마 '골든타임'의 한 장면)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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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이 없었다. 눈을 떠보려 해도 떠지지 않았다. 얼마나 용을 썼을까? 주변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어렵게 아주 힘들게 눈을 떴다. 코와 입에는 산소 마스크가 걸려 있고 양 팔에는 여러 줄이 매달려 있다. 여기가 어디일까? 생각을 맞춰본다. 기억의 편린들이 제자리를 잡으면서 하나씩 연결이 된다. '그래 수술실에 들어왔었지.'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생각의 편린들이 제 자리를 잡으면서 되살아난다. 신장암이란 진단을 받고 입원했다. 곧바로 수술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 예상했다. 병을 진단 받고 수술에 필요한 검사는 미리 다했기 때문에 입원을 하면 곧바로 수술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어그러졌다. 내과 진단을 통해 여러 지수들이 수술하기에 적정하지가 못했다. 수술을 받을 수 있는 지수까지 조절을 해야했다.

수술을 받을 수 있는 몸을 만들기 위해 치료를 해야했다. 입원일이 자꾸 늘어났다. 처음에는 일주일이면 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2주일이 지나도 수술 날짜를 잡을 수 없었다. 답답하였다. 어지럽고 통증은 지속되는데, 수술 날짜를 잡을 수 없었다. 의사 선생님을 붙잡고 하소연하였다. 마냥 입원하여 기다릴 수 없으니, 수술 날짜를 하루라도 빨리 잡아달라고 청하였다.

입원한 지 2주기 지나고 나서야 수술 날짜가 잡혔다. 날짜가 잡히니 안심할 수 있었다. 수술 전 준비를 했다. 온 몸에 나 있는 털을 깎고 관장까지 하였다. 수술을 하기 위해서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았다.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물론 병원이 알아서 다 해주기는  하지만 번거로운 일이었다. 수술하기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치고 수술실로 향하였다. 불안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면서 수술실로 들어갔다.

홀로 수술 침대에 누워있으니 '사람은 참 약한 존재구나'

집사람의 손짓을 뒤로 하고 수술실에 들어갔다. 가운 외에는 아무 것도 입지 않은 채로 수술 대기실에 들어갔다. 아무도 없었다. 보호자는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다. 고요가 내려앉은 공간에 홀로 침대 위에 누워있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사람이 약한 존재라는 것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의사 선생님이 나와서 수술실로 침대를 밀고 갔다. 수술실에는 많은 의사 선생님들이 있었다.

마취했으니 그 뒤로는 무엇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눈을 떠 보니, 중환자실이었다. 온 몸에 전해지는 통증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어디가 아픈지 감조차 잡기 힘들었다. 중환자실 분위기는 험악했다. 환자들은 모두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들의 목소리가 왜 그렇게 크게 들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마치 시장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중환자실에서의 하루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고통으로 소리를 지르면 간호사가 느릿느릿 다가왔다. 좀 참지, 왜 그리 요란을 떠느냐는 식이었다.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들의 호소가 하나도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표정이다. 수술하였으니, 아픈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는 표정이다. 통증을 없앨 수 있는 마취제를 놓아달라고 부탁을 한다. 간호사는 자기 소관이 아니라며 딴 짓만 피운다.

외면하는 간호사가 얄밉다. 환자를 두고 저리 못 본 체 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간호사의 본분은 환자를 돌보는 일일진대, 느긋한 표정으로 일관하는 모습이 밉기만 하다. 그러나 어쩌란 말인가? 간호사를 붙잡고 하소연을 할 수밖에 없다. 들어주면 다행이고 들어주지 않아도 할 수 없었다. 수술은 그 자체만으로도 고통이 따르는 법이니, 고통이 사라지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중환자실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입원실로 자리를 옮겼다. 우선 마음부터 가벼워졌다. 통증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금방 나으리란 기대감이 앞섰다. 입원실은 중환자실하고는 확실히 다른 곳이었다. 모든 불편이 지속되고 있었지만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렇게 일주일이 가고 이주일이 되어서 퇴원할 수 있었다. 퇴원하는 기분은 정말 최고였다. 그 무엇과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입원해 있으면서 겪어야 하는 또 하나의 고통은 변비다. 일주일 이상 변을 보지 못하니 죽을 것만 같았다. 변을 보지 않은 것이 얼마는 큰 병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지 온 몸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기관 중에서 소홀히 해야 하는 곳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도 실감했다. 먹고 배출할 수 있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정말 온몸으로 느꼈다.

오줌 만들 기관이 사라졌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다

"소변이 나오지 않는데요?"

퇴원한 지 일주일 만에 수술을 집도한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그동안 소변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소변을 보지 못하니 두려운 마음이 앞섰다. 수술을 해 그렇게 된 것인 줄 알지만 왜 소변이 나오지 않는지 불안하기만 하였다. 의사 선생님을 보자마자 곧바로 그것부터 물었다. 의사 선생님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면서 웃었다. 소변이 나오지 않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신장 두 개를 모두 따 떼어냈으니 오줌을 만들 기관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난감한 일이었다. 소변을 볼 수 없게 되었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어쩌란 말인가? 이미 상황은 끝나 있는 상태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냥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 건강할 때 몸을 함부로 다루면 낭패를 볼 수밖에 없다. 90년에 신장 하나를 떼었을 때부터 건강의 심각성을 알아야 했다.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고 지낸 결과였다. 가장 늦었다고 생각하는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했던가? 이제부터라도 건강에 유의하고 내 몸을 잘 보살펴야 하겠다. 소변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항상 나를 돌아다보면서 살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잊을 수 없는 수술 이야기' 응모글입니다.



태그:#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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