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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쓸 때 로그인을 하거나 실명인증을 하는 것이 익숙해졌지만 3년 전까지만 해도 굳이 로그인을 하지 않아도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쓰거나 댓글을 달 수 있었다. 2007년 1월 26일 신설된 정보통신망법 44조의 5, 그리고 그것이 규정하고 있는 '제한적 본인확인제'는 일일 이용자수 10만명 이상의 인터넷 사이트에 글쓰기 위해서는 실명 확인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제한적 본인확인제에 대한 엄중한 문제제기가 행해지고 있다. 손아무개씨 등 3명의 누리꾼이 지난 1월 "유튜브, 오마이뉴스, YTN 게시판에 댓글 형식으로 의견 개진을 하려 했으나 실명 인증을 통한 회원가입을 요구해 포기했다"며 제한적 본인확인제는 실질적인 사전 검열로 표현의 자유와 사생활의 자유 및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한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지난 7월 8일, 헌법재판소에서는 제한적 본인확인제의 위헌성과 실효성에 관해 청구인측 대리인과 이해관계인측 대리인의 치열한 공방이 있었다.

공개변론 당일 헌법재판소 풍경
▲ 헌법재판소 공개변론 당일 헌법재판소 풍경
ⓒ 최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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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인측 대리인인 전종원 변호사는 1) 제한적 본인확인제 시행 이후 소위 '악성 댓글' 자체의 비율은 그대로이고, 2) 자신의 개인정보 노출을 우려하여 오히려 주민번호 도용을 부추기며, 3) 내용과 상관없이 표현을 규제하기 때문에 실질적 사전검열이며, 4) 방통심의위에서 정보통신망법 위반 게시물에 대해 임시조치를 행하고 있고 우리나라는 IP를 통합하여 관리하고 있으므로 실명을 확인할 합리적 이유가 없어 결국 과도한 제약이라는 점을 부각하였다.

반면 이해관계인인 방송통신위원회 측 도수철 변호사는 1) 인터넷에서 사이버 폭력 사례가 빈발하여 통제불능의 위험수위이기 때문에 필요성이 높고 2) 풍선효과나 위축효과가 없으며 인식 조사에서도 확대하자는 반응이 다수이고 3) 단순히 본인확인만 하고 실명은 안 쓸 수 있으며 IP추적의 공백을 막아줄 수 있기 때문에 최소한의 침해이고 4) 규제 및 개인정보 수집 목적이 없으며 본인확인정보를 단 6개월간 보관하는 데 비해 자기 성찰의 기회를 확보할 수 있고 신원 파악이 용이하며 인터넷 문화를 건전하게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이익형량도 충족한다고 주장하였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주로 실효성 부분에 관심이 있는 듯했다. 한 헌재 재판관은 "주민번호를 도용하면서 약간의 죄의식을 갖고 (인터넷 활동을) 하는 거랑 전혀 익명이랑 억지력 차이가 있지 않나?"라고 질문하자 전종원 변호사는 "주민번호 도용이 오히려 사회적 폐해가 크다"라고 답했다. 다른 헌재 재판관은 "법 문언에서는 일일 이용자수가 10만명 이상이라고 못박고 있는데 그것을 지켰나?"라고 질문하여 피청구인 측에서 "일일히 센 것은 아니지만 가장 근사한 집계 방법론이다"라고 에두르는 모습도 보였다.

한편 어떤 재판관은 "우리 사회는 공사장 실명제, 금융 실명제, 인터뷰 실명제 등 열린사회를 지향해가고 있는데 의사표시의 익명성을 강조한다면 이같은 사회 실명화 추세와 조화 가능한가?"라는 의미있는 질문을 던졌다. 청구인측은 "직업수행의 신뢰 보장과 별개로 소수자 소통의 통로는 필요하다"라고 답했고 피청구인측은 "이제 인터넷이 성장했으나 책임성 확보가 필요하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청구인측 참고인으로 출석한 박경신 공익법센터 소장은 "소매치기를 예방하려면 사람들에게 명찰을 달면 되고, 성 접대를 예방하려면 유흥숙박업소 실명제를 하면 된다. 그러나 헌법적으로 허용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실명제를 반드시 법률적으로 규제를 하는 것이 당위는 아니라고 지적하였다. 아울러 7건의 연구에서 게시물 감소 효과가 나타나고, 6건의 연구에서 악플 감소 효과가 없었다고 인용하면서 제한적 본인확인제가 실효성이 없음을 통렬하게 지적하였다.

또한 표현의 자유는 헌법상 보장되는 자유이자 사전검열금지의 특별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에, 자동차나 금융거래와는 달리 구체적 위험이 없다고 추정되어야 하며, "불법정보의 절대적 숫자는 감소할 수 있으나 보복, 편견, 두려움 속에서 글쓰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라고 제한적 실명확인제의 위헌성을 강조하였다. 반면 이해관계인측 참고인으로 나선 김주환 홍익대 법대 교수는 여론형성이 왜곡되고 지재권이 침해되는 상황에서 스스로 인터넷의 폐해로부터 자기 방어가 힘든 피해자의 기본권적 보호의무를 국가가 수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여 인터넷 표현의 민주주의적 역할보다는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음을 드러내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법대 위에서 다소 피곤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매우 실질적인 수준으로 쟁점을 포착하고 질문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 재판관은 박 소장에게 "본인확인을 거친 게시물과 안 거친 게시물을 구분하는 표시를 하는 경우 이는 위헌인가?"라고 질문하여 매우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는 답을 받았고, 명예훼손은 어떻게 구제할 것이냐는 질문에 박 소장은 "사실적 주장이 보다 파괴력이 있으므로 강하게 처벌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고 대답하였다. 또한 박 소장은 외국에는 모욕죄 규정이 없으므로 '악성댓글'에 대해 상대적인 평가만 이루어지며 'Notice and Take Down' 제도로 대부분의 문제되는 게시물들이 게시자가 다시 올려달라고 하면 올려주는 반면 우리나라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직권적 시정조치까지 행해지므로 본인확인제의 필요가 없음을 지적하였다.

한편 헌법재판소 이강국 소장은 "실명방을 따로 만드면 효과는 어떨 것이라고 보는가?"라고 질문하였고 김주환 교수는 "아마 익명방을 택하지 않을까 본다"고 답했다. 이 소장이 다시 "읽는 사람의 경우 익명 댓글보다 실명방 글을 보지 않을까?"라고 묻자 "꼭 그렇지 않고 (익명방에서) 외부정보에 의한 제보와 비판의 폭이 오히려 더 넓어질 것"이라고 답하여 익명 표현의 필요성을 긍정하는 듯한 모습도 보여주었다.

필자로서는 헌법재판소 방문도, 공개변론 방청도 처음이었지만 분위기가 청구인측에 우호적인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재판관들은 주로 제한적 본인확인제가 실효성이 없고 외국 사이트에 강제하지 못하는 차별성에 주목하는 듯했다. 특히 이강국 소장은 2007년 10월 방통위에서 악성댓글이 2.2% 감소하였다는 보도자료 이후 효과 면에서 최신의 유의미한 자료를 재판부에 제출해달라는 요구를 이해관계인 측에 하기까지 했다. 그에 반해 박경신 소장은 "개똥녀, 최진실 사건도 본인확인제 실시 하에 발생"했다면서 이는 본인확인제가 단순히 신용정보회사의 데이터 비교로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누구나 명의를 도용할 수 있으므로 당연한 결과라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익명표현의 엄연한 폐해와 '자기 이름을 걸고 표현하는 당당함'에 관한 다소간의 동경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다. 익명게시판과 실명게시판이 공존하는 커뮤니티에서는 실명게시판에 질문하거나 문제제기할 수 있는 글도 익명게시판에 올림으로써 익명게시판으로 '쏠리는' 현상도 생기고, 실명이었다면 쉽게 제기하지 못했을 개인 비위에 관한 의혹도 제기됨으로써 사람들이 오해하고 당사자가 상처를 입는 것도 목격된다. 정부와 시민사회 등 이른바 '공적 영역'에서 익명표현이 민주주의를 살찌운다면, 사적 색채가 강한 영역에서는 익명표현은 결국 현대사회의 단절성을 심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제한적 본인확인제를 국가가 획일적으로 '강제'하는 것과 자율적으로 시행하는 것은 박경신 소장의 말대로 엄연히 다른 문제이고, 전자는 기본권 보장의 관점에서 엄연히 위헌적인 효과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익명게시판이 고깝게 느껴지고 '다들 실명이 확 드러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유년기의 교육과정에서 강요된 실명성과 그로 인해 위축된 의사표현의 경험, 그리고 익명표현의 경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또한 무슨 문제가 생기면 '규제'를 통해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국가주의적 사고관이 내 안에 잔뿌리를 내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번 헌법재판소 공개변론은 시민들이 각자의 불편한 속마음을 들여다 보고, 표현의 자유가 실질적으로 보장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된 좋은 계기였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실명제, #본인확인제, #인터넷, #헌법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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