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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2일 증언대회는 많은 언론에서 내용을 다뤘다. 이틀이 지난 시점에서 이렇게 글을 올리는 이유는 피해자 심정이 가감 없이 전달되도록 그들이 한 이야기 전부를 들려주고 싶어서다. 중복되거나 산재은폐 증언과 관계가 없는 이야기는 필자 주관으로 삭제하거나 줄였다.... 기자 주

 

돈을 줄 테니 산재신청을, 행정소송을 포기하라.

돈을 줄테니 반올림을, 민주노총을, 사회단체를 만나지 마라.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엘시디(LCD) 공장에서 일하다 병에 걸려 사망한 유족과 피해자 가족에게 했던 삼성의 요구다. 돈을 미끼 삼아 치료비로 고생하는 가족을 회유했던 삼성의 행태를 드러낸 '삼성의 산재은폐 규탄 증언대회'가 지난 12일 열렸다.

 

증언대회에는 삼성백혈병 문제를 처음 제기한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 삼성전자 엘시디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뇌종양에 걸린 한혜경, 어머니 김시녀, 삼성전자 엘시디 탕정공장에서 일하다 종격동암으로 사망한 고 연제욱씨 어머니 최술연, 여동생 연미정씨가 나와 삼성이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고 회유를 했는지 자세하게 밝혔다.

 

이들의 증언에 앞서 3월 31일 사망한 고 박지연씨의 어머니 황아무개씨의 동영상 진술이 있었다. 박지연씨는 삼성반도체 온양공장 입사 3년 만에 급성골수성 백혈병에 걸려 투병하다 사망했다. 황씨는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삼성을 고발했다. 

 

장례식날 돈 입금... 개인질병이면 돈 안줬을 것

 

고 박지연: 1987년생, 2004년 12월 삼성반도체 온양공장 입사, 2007년 9월 급성골수성 백혈병 발병, 2010년 3월 31일 사망

 

- 삼성에서 돈을 받고 소송취하를 합의한 이유는?

"힘들고 경제도 어려웠다. 삼성이 산재이상으로 돈을 준다며 쫓아다녔다. 빚이라도 갚을 심정으로 합의했다. 지연이가 죽기 하루 전날, 이 부장이 최대한 어머니 원하는 대로 할 거니까 자기만 믿으라고… 통장에 돈이 입금된 것은 장례식 날이다."

 

- 보상협상 과정을 자세하게 얘기해 달라.

"그이들과 밥 먹는 자리가 있었다. 그 때 얘기를 하더라. 얼마 정도 보상을 원하느냐고. 10억 정도 얘기했다가 회사가 안 된다고 했다. 5억으로 자르니까 그것도 안 된다며 3억8천을 끊더라. 5천은 보험이 들어가 있어 보상금은 3억3천이었다."

 

- 삼성전자는 왜 몰래 보상을 한다고 생각하나?

"그게 궁금하다. 개인 질병이면 다만, 3천만이라도 왜 주냐? 어쨌거나 자기네도 양심이 있으니까 이런 돈을 줘가며 합의를 빨리 보려는 거 아닌가…"

 

- 삼성전자가 합의 후 요구한 사항은 무엇이었나?

"합의하고 나서 요구한 것은 민주노총 만나지 말라고, 어머니 골치 아프니까. 자기들은 (이 문제와) 완전히 끝났다는 식이었다."

 

- 행정소송 취하도 요구했나?

"그렇다."

 

백지 사표 쓰니, 삼성과 관계없다 오리발

 

두 번째 증언자로 나선 황상기씨는 딸 황유미씨가 죽음 전후로 접촉해온 삼성전자의 행보를 소상하게 밝혔다. 그 역시 처음에는 치료비 때문에 삼성이 주는 돈을 거부하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반복되는 삼성의 장난에 삼성 백혈병 문제를 사회에 알리는 첫 제보자가 됐다.

 

고 황유미 : 1985년생, 2003년 10월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입사, 2005년 6월 급성골수성 백혈병 발병, 2007년 3월 6일 사망

 

"2006년 10월경, 유미가 골수이식 수술 후 회복기였을 때 삼성전자에서 집으로 찾아왔다. 휴직 기간이 다 끝나서 사표를 써야 한다고. 그 때 산재신청을 내게 해달라고 했다. 김○○ 과장이 "삼성을 상대로 이길 수 있습니까? 이길 수 있으면 해보라"며 다른 것을 요구하라고 했다. 치료비로 8천만원 정도가 나왔는데 회사에서 3천만원을 대줬다. 치료비 차액을 주면 유미 병 치료에 쓰고 병이 재발하면 재발 치료로 쓰겠다며 어떤 이유도 달지 않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준다며 당장 사표 쓸 것을 요구했다. 사표를 하얀 백지에 주민번호, 이름만 쓰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며칠 후 유미 병이 재발해 아주대병원에 입원했다. 11월 중순경에 김 과장이 돈을 5백 갖고 찾아왔다. 이것으로 해결하자며. 치료비로 막막했던 상황이었다. 치료할 돈이 있었으면 뺨을 때리고 싶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받았다. 김○○ 차장, 김 과장, 박모 과장이 속초로 찾아와 다방에서 만났다. 그 자리에서 유미는 사표를 써 이제 삼성 사람이 아니라며 윽박을 했다. 삼성과 이렇게 싸우는 과정에서 2007년 3월 6일 치료받고 돌아오는 길에 유미가 사망했다.

 

장례식장으로 회사 사람이 전화하고 찾아왔다. 김 차장이 장례식을 잘 치르면 보상을 깔끔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3월 15일에 김 차장이 저녁 무렵에 찾아와 바닷가에서 소주를 마셨다. "유미 병은 삼성과 관계없다. 산재가 아니다. 아버님 마음대로 하라"며 오리발을 내밀더라.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죽은 유미를 데리고 회사에서 횡포를 부릴까봐, 장례식에서 그랬던 것 같다.

 

2007년 9월 1일, 산업안전관리공단에서 역학조사를 해 기흥공장에 갔다. 그때는 나 혼자 산재신청을 한 상태였다. 기흥공장 안전그룹장이 회의실에서 아버님이 가만있으면 10억쯤 해주겠으니 사회단체 사람들, 민주노총 사람들 만나지 말라고 얘기했다. 거짓말에 속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 자리에서 나와 수원 민주노총 경기본부에 가서 이종란 노무사를 만나 얘기했다.

 

2008년 5월 정도, 봄이었다. 김○○ 차장과 다른 사람이 속초로 찾아와 "보상을 다 해줄 테니 만나자"고 해 싫다고 했다. 계속 속을 수 없었다. 한 달 뒤에 저녁에 또 찾아왔지만 완강하게 거부했다."

 

 

노동자 목숨 갖고 왜 장난치나?

 

피해자로 자리를 찾은 한혜경씨와 어머니는 길지 않은 말로 삼성을 질타했다. 뼈가 빨래를 쥐어 짜듯이 아프다는 한혜경씨는 어머니의 증언 뒤로 꼭 할 말이 있다며 또박또박 외쳤다.

 

"삼성이 원인을 제공한 거잖아요. 원인을 제공했으면 어떻게든 해야지 이게 뭐예요. 나 같은 사람이 또 나올 수 있어요. 죽은 사람들도 있잖아요. 삼성이 원인을 제공했으면 책임을 져야 해요. 이러면 안돼요, 삼성. 삼성이 이러면 안돼요"

 

다음은 한혜경씨의 어머니 진술이다.

 

한혜경 : 1978년생, 1995년 삼성전자 LCD 기흥공장 입사, 2005년 10월 소뇌부 뇌종양 진단 투병 중

 

"수술 후 정상인 몸이 아니라, 또 수술이 필요했다. 우리도 생활이 좋지 않아 입원치료는 못 받고 외래치료를 받았다. 삼성에서 전화가 왔는데 혜경이가 있을 때부터 인사과에 있었다며 근황을 알고 싶다고 하더라. 혜경이가 그만두고 이사를 몇 번했는데 이사한 주소까지 알더라. 혼자 판단할 수 없어 40분 뒤에 통화하자고 했다. 그 사이에 이종란 노무사와 연락했다.

 

정확히 40분 뒤에 전화해 만나고 싶다더라. 혼자는 안 만나겠다고 하고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위로금을 주고 싶다고 하더라. 왜 주냐? 조건이 뭐냐고 물었다. 산재에서 빠져달라고 했다. 이종란 노무사에게 다 위임했다고 얘기했는데 계속 물고 늘어졌다. 집이 전세냐 월세냐 등 별걸 다 묻더라. 6월 3일에 두 번 통화했다. 월요일에 전화해 춘천으로 오겠다고 하더라. 오라고 했다. 내가 피해자 기자, 다 부르겠다고 했더니 이후 연락이 안 왔다.

 

(병이) 삼성 직업병이라고 3살짜리도 안다. 한두 명도 아니고 한 라인에서는 2명이 죽었다. 혜경이도 별의별 화공약품을 취급했다. 이제 아픈 것을 겁낸다. 뼈가 빨래를 쥐어 짜듯이 아프다고 한다. 너무 아픔을 호소한다. 수술을 해야 하는데, 겁을 낸다. 자기들이 뭐가 있길래 위로금에 조건을 걸고… 삼성의 (직업병) 은폐는 정말 사회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한다. 어떻게 해서라도.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제일이라는 기업 삼성에서 노동자 목숨을 갖고 장난을 하고."

 

초일류라서 돈 주는 것, 위협적인 눈빛 잊을 수 없어

 

고 연제욱씨 어머니는 증언대회 시작부터 내내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서른도 안 된 아들을 잃고 가슴에 묻었지만 삼성은 정당한 보상 과정을 방해했다. 동생 연미정씨는 "(삼성의) 사상 최대의 실적 뒤에는 묵묵히 땀 흘린 노동자들의 희생이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며 투명한 역사조사 실시와 산재 인정, 더 이상의 죽음을 막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머니 황금숙씨도 "피해자가 안 되면 이 심정을 모른다"며 "회사에서 피해노동자를 끝까지 책임지고, 하루빨리 유해물질을 없애고 좋은 환경으로 바꿀 것"을 요구했다.

 

고 연제욱 : 1982년생, 2004년 6월 삼성전자 LCD 탕정공장, 2008년 2월 종격동암 진단, 2009년 7월 23일 사망

 

"오빠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난다. 담배는 입에도 대지 않고 술은 마시지 않으며 몸 관리 신경 쓴 오빠였다. 항암치료 전에 무정자 판정이 났다. 이피에이(EPA) 물질은 생식능력에 손상을 준다. 산재가 틀림없었다. 삼성전자 차장에게 일하다 병에 걸린 것이 확실하니 산재를 신청하겠다고 했다. 차장은 회사에 산재를 대행하는 사람이 있으니 회사를 통해 하라고 했다. 관련 서류를 준비했고 집 앞까지 찾아와 서류를 받아갔다. 그렇게 회사가 대신 산재신청을 한 지 3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불승인이 났다. 개별 역학조사도 하지 않고 회사가 제출한 자료만 갖고 불승인을 내렸다. 열심히 일만했던 죄 없는 노동자가 젊은 나이에 죽었는데, 어떻게 종이 몇 장으로 산재가 아니라고 단정을 지을 수 있나?

 

공단의 어이없는 태도에 충격을 받았다. 환경안전팀 차장에게 전화해서 왜 불승인이 났느냐며 억울해서 재심사청구를 하겠다고 말했다. 원하는 게 뭐냐고 해 정당한 보상, 엘시디도 반도체처럼 라인을 공개해야 한다고 답했다. 위에 보고하고 다시 전화하겠다고 한 뒤 수차례 전화하고 집 앞으로 찾아왔다. 그사이 반올림 활동이 많았는데 회사와 약속이 있어 그냥 있었다. 5월 25일 홍○○ 차장과 인사팀 차장이 찾아왔다. 집으로 들어오라 하니 절대 안 들어오더라. 사람이 없는 밀폐된 식당에서 만났는데, 이런저런 질문을 꼬치꼬치 했다. 어머니 건강, 여동생 결혼 등 사소한 것까지 질문하면서 무조건 회사를 믿으라고 했다.

 

5월 27일 다시 찾아왔다. 산재처리 공식이 있다며 총 2억 정도 돈을 주겠다고 했다. 공식을 들먹이며 오빠 목숨을 두고 흥정을 했다. 내가 "회사를 상대로 구걸하는 게 아니다. 반올림을 통해 재심사하고 소송을 통해 정정당당하게 그 돈을 받겠다"고 했더니 반올림을 통하면 힘들기만 하다, 그냥 이거 받아라, 그들도 이익을 남기려고 활동하는 것이라고 했다. 재심사해도 불승인 나고 소송가면 2~3년 걸린다며 그동안 생활은 어떻게 할 거냐며 집요하게 합의를 요구했다. 6월 3일에 또 찾아 왔기에 "우리는 반올림 통해 재심사하겠다. 회사가 제출한 자료를 정보공개청구해서 확인하겠다"고 얘기했더니 회사 측에서 "제욱씨 병은 아무것도 아닌데, (삼성이) 초일류라서 성의표시로 돈을 주는 거다. 반올림 통하면 이것도 받을 수 없다"고 협박성 발언을 했다.

 

반올림을 안 만나게 하고 소송을 가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 초하류 그 자체였다. 이제는 반도체만이 아니라 엘시디도 피해가 늘어간다. 삼성의 비인간적 행위에 부모님은 통곡했다. 인사팀 차장이 아버지만 불러서 산재공식을 보자며 회사로 데려가려고 했다. 결국 모든 제안을 뿌리치고 반올림을 찾아와 재심사 청구를 했다. 차장들이 찾아오고 나서 신경정신 치료를 받는다. 약이 없으면 잠도 못 잔다. 위협적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아버지도 일이 손에 안 잡힌다며 술로 나날을 보낸다. 유족의 고통을 외면한 채 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지, 오로지 덮으려고만 하고 돈으로 해결하려는 삼성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 오빠는 신약을 많이 썼는데, 비보험이라 고스란히 돈을 냈다. 삼성은 피해자들이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치료비를 제공하고 유족에게는 적절한 보상을 해야 한다."

 

 

23일 고 황민웅·연제욱 추모 문화제 열려

 

반올림은 증언대회를 마무리하면서 "이들의 병이 삼성과 무관한 개인 질병이라면 왜 돈으로 피해자들 입을 막고 비밀리에 접촉해서 산재신청 포기를 종용하는 이중플레이를 하겠느냐"며 삼성의 진심어린 사과와 위로, 다른 피해자들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책임과 양심을 요구했다.

 

한편, 반올림은 오는 19일부터 23일까지 '반도체 노동자 건강권을 향해 달리다'라는 공동행동에 들어간다. 이들은 삼성전자 반도체와 엘시디 공장이 있는 온양, 천안, 탕정, 기흥지역 등에서 반도체·전자산업 노동자의 피해를 알리고 권리를 찾자는 선전을 벌일 예정이다. 공동행동 마지막 날인 23일에는 영등포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추가 집단산재신청을, 서울역 광장에서 피해노동자를 추모하고 삼성의 책임을 촉구하는 고 황민웅 · 연제욱 추모문화제를 연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일과건강 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삼성, #직업병, #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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