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이 센트럴시티와 연결돼 있듯, 광주 광천터미널은 유스퀘어라는 공간에 면해 있다. 밤 아홉 시쯤 도착하긴 했는데 벌써 자러 가기는 이른 듯해 영화를 한 편 봤다. 영화는 별로 재미가 없었고 괜히 길기만 해서 끝나고 나오니 자정이 지나 있다. 시간이 늦어서인지 난데없이 객창감을 느끼며 미리 봐둔 찜질방을 찾아들어갔다. 터미널에서 5분 거리다.

 

낯선 곳에서 밤을 맞고 보니, 워낙 싸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나지만 이렇게 타지에서 홀로 잔 건 거의 처음이라는 생각이 났다. 친구랑 같이 숙박을 하든지 아니면 친구네 집에 가서 자든지 대개는 그랬다. 모르는 곳에서 낮을 보내는 건 마냥 새롭고 두근거리지만 밤은 조금쯤 무섭고 또 외롭다. 역시 잠은 집에서 잘 걸 그랬나, 싶다가도 객창감이 짙어지는 만큼 집에 돌아갔을 때 행복하겠지, 하며 덥고 시끄러운 수면실에서 잠을 청한다.

 

빛고을 광주, 햇볕이 뜨거웠다

 

 광주광천터미널에 연결되어있는 유스퀘어

그다지 쾌적한 환경은 아니었지만 피곤한 김에 곤히 잤는데, 일어나 보니 아홉 시다.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에 눈이 부시다.

 

광주에 온 건 지난 여름에 이어 두 번째인데, 단지 내가 여름에만 와봐서 받은 느낌일지는 모르겠지만 광주는 참 이글이글, 하다. '빛고을'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태양이 붉고 참 뜨겁다. 한마디로 덥다.

 

터미널 맞은편의 백반집에서 인심 좋은 주인 아주머니와 옆 테이블 아저씨 덕분에 아침을 잘 해결했다. 나는 3천 원짜리 '셀프 백반'을 먹었고 아저씨는 삼겹살을 드시고 계셨다. 아저씨가 난데없이 "학생, 나 좀 도와줘요" 하기에 도대체 뭘 도와달라는 건가 잠시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양이 너무 많아 그렇다며 내 그릇에 삼겹살을 잔뜩 집어 올려주셨다. 이런 거면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생각하며 감사 인사를 했다.

 

아저씨는 식사를 마치고 홀연히 가게를 떠나셨다. 나중에 주인 아주머니가 하시는 이야기를 얼핏 들으니 국가유공자신데, 삼겹살을 1인분씩 파는 가게가 잘 없다보니 근처의 상무지구라는 곳에서 여기까지 와서 종종 식사를 하고 가신단다. 가족이나 친구는 없으신가? 우연히도 오늘은 6월 25일. 이런 날이면 한 번씩 재조명되는 국가유공자들의 힘겨운 생활에 대한 뉴스를 본 게 떠올라서 사정은 잘 모르지만 괜히 안쓰럽고 내가 다 미안하다.

 

국립 518 민주묘지

- 개방 시간: 3~10월 08:00~19:00

                 11~2월 08:00~18:00

   입장료, 주차료 없음. 연중 무휴

- 민주묘지 내 518 추모관 / 어린이 체험학습관

   개관 시간: 09:00~18:00

   매주 월요일 휴관. 5월 중에는 휴관 없음

- 홈페이지 http://518.mpva.go.kr

아침 든든하게 먹고,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잡지도 뒤적거리면서 빛고을의 한가를 즐기다가 터미널 앞에서 518번 버스에 올라탔다. 노선 번호부터 의미심장한 518번 버스는 518기념공원과 518자유공원, 518민주묘지 등 광주의 주요한 518 민주화운동 관련 유적지를 거친다. 흔히 망월동 묘역이라고 알려져 있는 518민주묘지로 향했다. 버스는 30분에 한 대씩이라 꽤 기다려야 했고 터미널 앞에서 민주묘지까지는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국립 518 민주묘지, 망월동 구 묘역의 스산한 바람

 

 국립518민주묘지와 망월동 구 묘역으로 가는 안내 표지판

 국립 518 민주묘지의 추모탑

바람이 스산했고 나중에는 비도 한 방울씩 떨어졌다. 여행 중에 비가 오는 것만큼 반갑지 않은 일도 없지만 왠지 그걸 저어할 수가 없었던 게, 광주였기 때문이다. 날씨가 괜히 흐린 게 아닌 것 같았다.

 

광주 북구에 있는 국립 518 민주묘지는 1994년 시작된 묘지 성역화 사업의 결과로 1997년 완공된 것이다. 그 전에 오월영령들은 현재 묘지 뒤편에 있는 망월동 구 묘역에 묻혀 있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희생자들은 손수레나 청소차 등에 실려와 아무렇게나 매장됐다.

 

그 뒤 망월동 묘역이 민주화운동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하고 민주성지로서 세계적으로도 알려지자 군사정권은 묘지 자체를 없애버리려고 시도했다. 묘를 이장하도록 유족들을 회유하는 등 묘지를 분산시키려고도 했단다. 그런 역사적 의미가 있는 장소라서 국립묘지 완공 후에도 구 묘역을 원형대로 보존해 놓았고 이후에도 민주화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하다 돌아가신 열사들을 안장하는 묘지로 활용하고 있다.

 

 국립 518 민주묘지의 묘역. 오월영령들의 무덤이 정갈하게 정돈돼 있어 보기에도 좋고 그들의 넋이 제대로 위로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도 좋았다.

민주의 문을 지나 들어가 참배광장에서 분향을 하고 묘역을 둘러봤다. 국립묘지는 정갈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민주열사와 518 희생자들이 넓고 깨끗한 묘지에 따뜻하게 묻혀 있는 모습을 보자 괜히 내가 다 안심이 되었다. 마음의 빚을 덜었달까. 비록 불완전하지만 그래도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민주주의는 분명 이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거니까.

 

 오월영령뿐 아니라 여러 민주 열사들의 묘가 안장된 망월동 구 묘지

차분한 느낌의 국립묘지와 달리 뒤편으로 이어져 있는 망월동 묘역은 조금쯤 비장한 느낌이었다. 입구에서부터 열사를 추모하는 플래카드가 즐비하고 바람결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도 들려올 것 같다.

 

박종태, 이용석 열사를 비롯 비교적 최근에 돌아가신 노동열사들의 묘가 여러 기 있었는데 그 중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08년 촛불정국의 한가운데에서 분신해 돌아가신 고 이병열 열사의 묘였다.

 

 망월동 구 묘지에 안장된 고 이병열 열사의 무덤. 고 이병열 열사는 2008년 6월 촛불정국의 한가운데서 정권 타도를 외치며 분신하였다.

뜨거운 여름이었고 나는 촛불집회에서 만난 학교 선배들을 따라다니는 새내기였다. 선배들을 따라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이병열 열사 영안실에 가서 문상을 하고 거기서 밤을 샜다. 아침엔 상여꽃도 접었다. 서울광장 영결식과 이어진 가두행진에도 참여했다.

 

친지가 아닌, 생판 모르는 남의 상가에 간 것도 장례식에 참석한 것도 처음이었다. 영정사진으로밖에 본 적 없는 분이지만 그래도 마음이 굉장히 슬펐던 기억이 난다. 분신. 전설처럼 귀동냥한 전태일이라는 아름다운 청년이 그렇게 죽었더랬다. 나로서는 상상도 해본 적 없는 방식으로 목숨을 끊은 그가 슬펐고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이 슬펐고 그래도 바뀌지 않는 고지식한 무언가가 더 슬펐다. 만장의 행렬이 종로를 가득 메웠다.

 

그의 죽음 이후 만 이 년이 지난 지금, 달라진 건...

 

수많은 민주유공자들의 '화려한 휴가' 후 달라진 것은...

 

묘역을 둘러보고 나서 한편에 있는 추모관을 둘러봤다. 추모관은 518 민주항쟁 당시의 역사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잘 갖추어 놓았다. 어린이 체험학습관도 따로 있는데 민주주의 '조기교육'에 많은 도움이 될 터였다. 518 민주묘지 외에 상무대 옛터인 상무지구에 있는 518 기념공원과 518 자유공원에도 들러 보면 광주민주화운동을 이해하는 데 교과서보다 낫다.

 

 추모관 안에 전시돼 있던 피묻은 돌. 518 민주항쟁의 현장을 증거한다.

동명의 영화를 통해 잘 알려진, 광주 민간인 학살 당시 계엄군의 작전명은 '화려한 휴가'. 수많은 열사, 희생자들이 화려한 휴가를 떠난 후, 2010년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나는 더 이상 열사가 나지 않는, 그럴 필요가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소요비용

내일로티켓 54700원

골목집 셀프 백반 3000원

달콤 커피 아메리카노 3000원

버스비(광천버스터미널→518민주묘지) 1000원

버스비(518민주묘지→금남로) 1000원

떡볶이, 튀김 3000원

버스비(광주YMCA앞→광주역) 1000원

합계(내일로티켓 제외) = 12000원

우리는 느리지만, 때로 헛걸음질하고 되돌아가기도 하지만 그래도 분명히 전진하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80년의 역사를 기억하며 08년에 촛불을 들었고 20년, 30년 후에는 그 촛불의 기억이 또다른 역사, 또다른 진보를 만들어 낼 것으로 기대한다. 꼭 그래야 한다.

 

5월이 아닌 망월동의 오후는 매우 한산하여 한두 방울 흩날리는 빗방울과 함께 쓸쓸했다. 비장스럽게도 열사정신에 감화해서 눈물이 막 쏟아지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누굴 위해선지 모르게 나도 한두 방울 흩날렸다. 다시 518번 버스에 올랐다. 광주를 떠날 무렵엔 빗줄기가 굵어졌다.

덧붙이는 글 | 더 많은 사진과 정보는 기자의 블로그에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길이 없는 곳이라도 누군가 가면 길이 되는 거라고 믿는 사람. <청춘, 내일로>, <교환학생 완전정복>, <다낭 홀리데이> 등을 쓴 여행작가. 제4회 오마이뉴스 대학생 기자상(2010), 청춘 기자상(2013) 등 수상. 2016~ 제주도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