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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다라면 무조건 좋아하는데, 특히 부산의 바다에는 거의 '환장'을 한다.

새내기 때 친구들과 함께 처음 부산에 가서 겨울 바다를 보고 반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나, 20년 안에 여기로 이사 온다고. 내 뼈는 부산에 묻겠노라고. 대천에서 태어나 서해안의 야트막한 해변만 보고 자란 나에게 말로만 듣던 부산의 바다는 새로운 울림이었다. 바다는 같은 바다되 그게 같지가 않았다.

그 후로 나는 여건이 될 때마다 호시탐탐 부산에 갈 기회를 노렸다. 워낙 거리가 멀기에 만만치는 않다. 하지만 무조건 어떤 곳에 가야만 하겠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어느 순간 나에게는 부산의 바닷바람이 간절했다.

짐을 꾸려 출발했다. 대전역에서 무궁화호를 한 번 갈아타고 네 시간쯤 가야 했지만, 흐리고 비가 추적추적 내렸지만, 이름모를 산과 강 그리고 마침내 낙동강의 시작과 끝이 다 지나갈 무렵까지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채로운 창 밖 풍경을 보느라고 가져간 책을 거의 읽지 못할 지경. 그렇게 도착한 부산역.

태종무열왕이 활쏘던 해안절벽, 태종대

비온 뒤, 안개가 자욱해 더 멋있었던 태종대의 해안 절벽
 비온 뒤, 안개가 자욱해 더 멋있었던 태종대의 해안 절벽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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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태종무열왕 김춘추가 해안절경에 반해서 활을 쏘며 즐겼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태종대. 한 때는 신선이 살았다고 해서 신선대라고도 불렸다는데 이 이름은 거의 잊혀지고 이제 이곳은 그냥 태종대다.

부산 근처의 작은 섬 영도에 속해있는 까닭에 부산대교나 영도대교를 건너야 이를 수 있다. 광안리 앞바다의 야경을 수놓는 광안대교보다도 훨씬 짧은, 그닥 길지도 않은 다리 하나만 건너면 이어지기 때문에 섬이되 섬 같지 않다. 서울로 치면 꼭 강화도 같은 느낌이다.

태종대유원지
ㆍ이용시간 04:00~24:00, 입장료 없음
ㆍ다누비열차
- 하절기 09:00-22:00, 동절기 09:00-20:00
- 요금 1500원(성인 기준)
ㆍ찾아가는 길
- 서면역에서 88번 버스 이용 →
 태종대 차고지 하차(100분)
- 그외 101번,30번,8번 등 시내버스 많음
처음 부산에 왔을 때도 태종대에 갔었다. 11시에 있는 마지막 기차로 서울에 돌아가는 날이었다. 다누비 열차 운행은 끝났겠지만 걸어서라도 구경해 보자고 깜깜한 겨울, 늦은 저녁에 기어이 버스를 타고 태종대에 갔다. 그러나 가로등을 다 꺼놓아서 뭐 볼 수 있는 게 없었다. 입구 근처에서 헤매다 부산역으로 돌아가 야간 기차에 몸을 실었던 기억이다.

다시 찾은 태종대. 전날까지 장맛비가 세찼던지라 안개가 자욱하다. 그래서 다누비열차는 운행하지 않는다. 까짓, 걸어들어간다. 이번에야말로 태종대를 제대로 볼 기세다.

위태롭게 깎아지른 태종대의 절벽
 위태롭게 깎아지른 태종대의 절벽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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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대 절벽 위에서. 까딱 휘청, 했다간 황천행이다.
 태종대 절벽 위에서. 까딱 휘청, 했다간 황천행이다.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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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암괴석'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제대로 이해하려면 태종대로 가야 한다. 바다라고는 거의 서해안의 야트막한 모래사장과 갯벌만 보고 자란 나에게 있어서 태종대 같은 해안절벽은 고등학교 한국지리 교과서에서 본 것이 전부였다.

막상 눈앞에 펼쳐진, 위태로우나 그래서 더 절경인 벼랑 그리고 그 아래 물결치는 파도는 마음을 온통 사로잡는다. 태종무열왕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그와 같이 활을 쏘며 신선인양 즐겼음 싶다. 절벽에 올라 거칠 것 없는 해풍을 직접 온몸으로 맞으니 무섭지만 그만큼 신이 난다.

남포동 국제시장과 깡통시장, 보수동 헌책방골목

한국해양대학교 홍보용 이미지
 한국해양대학교 홍보용 이미지
ⓒ 한국해양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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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를 빠져나오다 보면 옆쪽으로 섬이 또 하나 보인다. 다리 하나로만 영도에 연결돼 있는 작은 부속섬. 뭔고 했더니 학교란다. 섬 하나가 통째로 한국해양대학교 캠퍼스라고.

"옛날에 학생운동 할 때, 그냥 저 다리를 막아 버리면 게임 끝나는거라. 경찰이 절대로 못 들어온다. 쟤네는 요즘도 비 많이 오면 맨날 휴교다. 다리가 다 물에 잠기가."

부산에 평생 산 지인의 설명이다. 이차선 도로를 내 놓은 다리는 꽤나 길다. 매일 바다를 건너서 통학을 한다니 신기하기만 하다.

'보수동 책방골목' 맞게 찾아왔음을 알려주는 반가운 표지
 '보수동 책방골목' 맞게 찾아왔음을 알려주는 반가운 표지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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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로 돌아온 뒤, 다음 목적지는 보수동 헌책방골목. 부산의 번화가는 크게 세 가지 정도의 권역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번째가 국제시장과 자갈치시장, 용두산공원과 PIFF거리 등이 밀집한 남포동 권역이고 서울의 명동에 비견되는 서면 권역, 그리고 해운대·광안리 권역이 있다. 보수동 헌책방골목은 남포동 권역에 속한다.

몇 달 전에 <오마이뉴스>에서 기사를 본 뒤로 꼭 가보고 싶었던 보수동 헌책방골목. 지도를 보면서 남포동 국제시장을 지나 목적지에 이르니 '부산의 명소-보수동 책방골목'이라는 표지판이 맞게 찾아왔음을 알려준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헌책방 전문거리라는 보수동 책방골목. 헌책은 물론이고 새 책도 정가보다 저렴하게 살 수 있다. 끝에서 끝까지 십여 미터나 될까 싶은 작은 골목인데 여기서는 못 구하는 책이 없단다.

십여미터 남짓한 작은 거리가 온통 책으로 가득한 보수동 책방골목
 십여미터 남짓한 작은 거리가 온통 책으로 가득한 보수동 책방골목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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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가 커서인지 사실 조금은 실망했는데 참고서, 아동서적이 주를 이루는 것이 여느 헌책방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인문학 서적과 양장본 고서 따위가 빼곡하게 쌓여 있을 거라는 로망을 가졌던가. 사실 스스로도 그런 책을 얼마나 애독한다고 부푼 가슴이었나. 책 전시장이 아니라 이를 사고 파는 책방인 이상 수요에 따라 시장이 형성되는 게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니까.

그래도 구하기 힘든 책을 찾는 이들에게 최후의 보루가 되어주므로 이곳이 귀하다는 생각이 든다. 천장까지 쌓여있는 책들은 무질서해 보이지만 주인은 손바닥 들여다보 듯한다. 사고 싶은 책이 있어 물어보았더니 제목만 듣고도 빼곡한 가운데서 3초만에 척, 하고 뽑아다 준다.

특이한 형태로 디자인된 하수구. 책방골목이라는 보수동의 이미지에 잘 어울리게 우리 글자를 배열했다.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특이한 형태로 디자인된 하수구. 책방골목이라는 보수동의 이미지에 잘 어울리게 우리 글자를 배열했다.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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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는 선현들의 귀한 말씀도 곳곳에 새겨져 있다.
 바닥에는 선현들의 귀한 말씀도 곳곳에 새겨져 있다.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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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구경을 하고 나서 골목 끝 카페에서 커피라도 마시자 했더니 이런, 십 분 전 기웃거릴 때는 열려있던 가게가 그 새 닫았다. 문간에 매달린 '우걱우걱' 네 자를 보니 필시 저녁 식사를 하러 간 게다.

커피는 포기하고 밥을 먹으러, 다시 국제시장을 가로질렀다. 부산 국제시장은 서울 남대문시장과 조금 비슷한데 그게 또 완전히 같지는 않다. 일본과 가깝다 보니 그쪽 느낌이 나는 가게도 좀 있고, 영화제 덕분에 형성된 영화의 거리 근처에는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쇼핑 장소도 잔뜩이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억센 부산 사투리와 함께 해양도시다운 리듬감이 넘치는 곳이 부산 국제시장이다.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국제시장, 깡통시장을 거쳐 부평동 족발골목을 찾았다. 깡통시장에서는 6·25 이후 미군의 군용 물자와 함께 들어온 온갖 '미제' 물건들을 몰래 팔았는데 그 중 통조림 제품들이 많아 이름이 깡통시장이 됐단다.

어떻게 보면 국제시장의 지류라고도 볼 수 있는 작은 골목인데 동행한 지인은 깡통시장을 유난히 좋아한단다. 깡통시장의 유래에 대해서도 "가난하던 시절 상인들이 팔 물건을 깡통에 넣어 가지고 다니면서 팔았다"는, 얼핏 그랬을 법도 한 나름의 주장을 편다. 그냥 보기에는 국제시장이나 깡통시장이나 별 차이가 없는데 꼭 깡통시장에 들러야 한달 정도.

부평동 냉채족발 먹고, 밤낚시 구경하러 이기대로 고고!

'부산족발'의 냉채족발. 바쁠 때는 한참씩이나 기다려서 먹는 가게란다.
 '부산족발'의 냉채족발. 바쁠 때는 한참씩이나 기다려서 먹는 가게란다.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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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지인들은 언론을 많이 타서 유명해진 '한양족발'에 많이 간다고 하는데 정작 부산사람들이 찾는 가게는 따로 있단다. 진짜배기 부산사람을 따라 들어간 '부산족발'집. 별로 족발을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냉채족발이 참 맛있다. 고기도 부드럽고, 밑반찬도 잘 나온다.

차림표를 보니 맛집임에는 틀림이 없다. '족발, 냉채족발, 오향장육' 세 가지로 심플한 메뉴. 진짜 맛있는 가게는 메뉴가 다섯 가지를 넘지 않는다 하지 않나.

흡족한 배를 두드리며 향한 곳은 이기대공원. 처음 듣는 곳이었는데 확실히 이름난 관광지는 아니다. 아는 사람만 안다는 도보여행 코스 내지는 출사 포인트라고. 부산에서 유명한 관광지는 볼만큼 다 본 나로선 이런 데가 더 좋다. 밤의 이기대에는 한가로운 강태공들 그리고 모기가 많았다.

밤의 이기대공원. 바위 위에서 낚시하는 강태공들이 참으로 한적해 보였다.
 밤의 이기대공원. 바위 위에서 낚시하는 강태공들이 참으로 한적해 보였다.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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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대에 깎아지른 절벽의 위엄이 있다면 이기대에는 야트막한 바윗돌의 운치가 있다. 바위 위에 앉아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다가왔다 멀어져가는 파도 따라 나도 쓸려가버릴 거 같은. 그냥 그래 버려도 괜찮을 거 같은.

낚시하던 아저씨 한 분이 손바닥만한 고기를 하나 잡아올렸다. 모르는 사람 눈에는 한없이 지루해 보이는 게 낚시지만 그 재미를 알고나면 그게 그렇게도 재밌다지. 나야 잘 모를 일이지만 마냥 지루해보이지만은 않았다. 유유자적, 그게 재미 아니겠는가.

파도소리에 귀 기울이며 한참을 그러고 있다 한 순간 훅 올라오는 파도에 냅다 일어나 도망쳤다. 치맛자락이 푹 젖어버렸지만 뭐 어떠랴 싶었다. 부산, 내가 사랑하는 도시에서.

여행정보
* 보수동 책방골목 가는 길
- 자갈치역 7번 출구에서 국제시장 지나 대청로 네골목에서 보수동 방면
- 부산역에서 부평동, 보수동 방면 59번, 60번, 81번 버스(배차간격 3~5분) 탑승 후 부평동이나 보수동 정류소 하차
- 그 외 시내버스 15, 40, 58-1, 126, 135, 186 등이며 40번, 81번, 135번은 책방골목 바로 앞에 정류장이 있어 편리하다.
- www.bosubook.com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으니 구할 책이 있으면 미리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문의해보자.

* 부산족발
- 부산시 중구 부평동 1가 35-5, 051-245-5359, jokbal.X-Y.net
- 족발, 냉채족발, 오향장육 가격 小 (2인기준) 2만원

* 참고 사이트 http://tour.busan.go.kr/
부산은 상당한 대도시이고 관광명소이니만큼 홈페이지에 정보가 잘 나와있다.

덧붙이는 글 | 더 많은 사진과 정보는 기자의 블로그에 있습니다.



태그:#부산, #부산여행, #보수동책방골목, #태종대, #이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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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는 곳이라도 누군가 가면 길이 된다고 믿는 사람. 2011년 <청춘, 내일로>로 데뷔해 <교환학생 완전정복>, <다낭 홀리데이> 등을 몇 권의 여행서를 썼다. 2016년 탈-서울. 2021년 10월 아기 호두를 낳고 기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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