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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름은 타이론입니다. 남아공 케이프타운 중심부로부터 30km 떨어진 거대 흑인 거주지역 '칼리처'에 사는 3살 소년이에요. '칼리처'는 코사어로 '새로운 집'이라는 뜻이에요. 모래언덕 위에 양철과 각목으로 지은 집들이 수만 채가 넘게 있어요. 저희 집은 가로4미터, 세로 2.5미터쯤 되는 방 한 칸짜리 양철집이에요. 수도나 가스도 없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양철집에서 엄마와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어요.

우리 마을에는 원래부터 케이프타운에 살던 사람들뿐 아니라 짐바브웨나 모잠비크 같은 이웃 가난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도 많아요. 남아공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이고, 케이프타운은 인구가 350만 명에 달하는 큰 도시인데다 월드컵 경기까지 열리기 때문에 직업을 얻기가 쉬울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여기서도 생계를 이어나가기가 쉽지만은 않아요.

남아공의 흑인 밀집 거주지역 '칼리처'에 살고 있는 3살 소년 타이론
 남아공의 흑인 밀집 거주지역 '칼리처'에 살고 있는 3살 소년 타이론
ⓒ 이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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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은 부자들과 외국인들만의 잔치"

요즘 월드컵 축구 대회 때문에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몰려 왔다는데요. 월드컵을 계기로 엄마가 일자리 구하는 게 좀 더 수월해 지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었는데, 결과는 영 아니올시다예요. 엄마는 월드컵을 가리켜 '부자들과 외국인들만의 잔치'라며 고개를 내저어요.

제가 나가는 교회에서 월드컵 덕분에 웃음 짓는 사람은 릉와보 아저씨 딱 한 명뿐입니다. 월드컵 자원봉사자로 뽑히게 되었거든요. 경기장에서 주차관리를 하면서 매일 식대로 맥도널드 식음료권을 120란드(1만8천원)어치씩 받구요. 경기가 있는 날은 임금도100란드 (1만5천원)씩 받아요. 아르헨티나의 마라도나 감독과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노 호날두를 직접 봤다고 자랑이 대단해요. 하지만 그것도 지난 한 달간 뿐이었지요. 이제 월드컵이 끝나면 예전처럼 큰 길 교차로에서 신호 대기 중인 차 유리를 닦으면서 동전을 얻어야 합니다.

교차로에서 교통신호 대기중, 흑인 청년이 느닷없이 달려와 운전수의 동의도 없이 차 유리를 닦고 있다. 대가로 요구하는 금액은 약 50센트에서 2란드(75원~300원)
 교차로에서 교통신호 대기중, 흑인 청년이 느닷없이 달려와 운전수의 동의도 없이 차 유리를 닦고 있다. 대가로 요구하는 금액은 약 50센트에서 2란드(75원~300원)
ⓒ 이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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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때문에 되레 손해를 본 사람도 있어요. 루카스 누나는 전에는 경기장이 위치한 그린포인트에서 가족들이랑 같이 노점상을 했거든요. 관광객들을 상대로 목각으로 된 인형이나 상어 이빨 목걸이를 팔았지요. 그런데 그 자리에 경기장이 들어서게 되면서 경찰들이누나를 쫓아 냈어요. 월드컵 기간 중에 경기장 주변에서 노점을 하려면 FIFA에 무려 6만란드(900만 원)을 내야 한다는데 그만한 돈을 마련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쌀이 없어 수돗물로 끼니 때울 때도 많아

엄마는 제가 태어나기 전까지 시내의 대형 할인마트에서 일했어요. 임금도 1주일에 800란드(12만 원)로 마을의 다른 사람들에 비해 적은 편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출산휴가가 끝나면 엄마에게 다시 연락을 준다고 했던 할인마트는 제가 세살이 된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입니다.

그 후로 엄마는 가정부며 웨이트리스, 청소부까지 백방으로 일 할 곳을 알아보고 있지만 그런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으니 쉽지 않은가 봐요. 2010년 남아공 정부가 밝힌 공식적인 실업률은 25.2% 이고 OECD가 밝힌 대로 2005년 남아공에서 하루 생활비가 2달러 미만인 인구가 전체의 43%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사실 그리 놀랄 일도 아니예요.

지금 저희 가족이 얻는 유일한 생활비는 아빠가 보내주시는 돈이예요. 아빠는 저 멀리 이스트런던이라는 도시에 있는 주유소에서 일을 하고 있대요. 보름에 한 번씩300란드(약 4만5천 원)를 보내주시는데요. 세 명이서 먹을 식료품을 사기도 부족한 금액이에요. 모르는 사람들은 아프리카니까 물가가 싸지 않느냐고 묻곤 하는데 별로 그렇지도 않아요. 2009년 남아공의 빅맥 지수는 2.34달러로 한국(2.78달러)이나 미국(3.57달러)보다는 낮지만 중국(1.84달러)이나 태국(1.98달러), 필리핀(2.13달러)보다 높아요. 엄마랑 할머니는 쌀과 빵이 다 떨어지면 수돗물로 배를 채우는 경우가 부지기수예요.

양철로 만든 집은 여름에는 찌는 듯 덥고, 겨울에는 살을 에는 듯 춥다.
 양철로 만든 집은 여름에는 찌는 듯 덥고, 겨울에는 살을 에는 듯 춥다.
ⓒ 이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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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20살, 할머니가 37살인 이유

그래도 저희집은 아빠가 멀리서라도 돈을 보내 주시니 다행인 경우이구요. 제 주변에는 아빠 엄마가 없는 친구가 허다해요. 에이즈 때문이에요. 남아공은 에이즈 발병률이 높은 나라 중 하나거든요. 2009년 현재 남아공 임산부의 29%가 에이즈 바이러스 보균자라서요. 그 덕에 국민 평균수명도 48세 정도에 불과하구요. 에이즈가 어떤 질병인지, 어떻게 감염되고 어떻게 예방할 수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돈도 별로 없고 전기도 원할하지 않아 즐길거리가 마땅치 않은 터라, 저희 마을처럼 아프리카 빈민지역에서 사는 사람들은 '사랑'을 이른 나이에 시작해요. 저도 중학교를 다닐 나이가 되면 남들처럼 '사랑'에 눈을 뜨겠죠. 고등학교를 가기 전까지 '사랑'을 해 보지 못하면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한대요. 저희 엄마가 지금 겨우 스무살이고, 할머니는 고작 서른 일곱살인 것도 다 이런 까닭이에요. 저희 마을에는 엄마와 할머니 말고도 스무살이 되기 전에 아이를 갖게 된 아줌마들이 굉장히 많아요.

엄마는 제가 태어나기 전에는 케이프타운으로부터 약 1000km 가량 떨어진 '고누비에'라는 작은 마을에서 살고 있었대요. 다른 친구들처럼, 엄마도 중학교 무렵부터 '사랑'을 하기 시작했지요.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요. 여기 사회에서 '사랑'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한편으로 임신은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거든요. 임신을 하게 된 여학생은 수치심 때문에 대부분 학교를 중간에 그만두게 된대요. 엄마도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할머니와 함께 멀리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이곳 케이프타운으로 오게 되었대요.

칼리처 주민이 공동 수도에서 빨래를 하고 있다. 뒤로 보이는 양철집 100채당 한개씩 이렇게 공동 수도가 설치되어 있다.
 칼리처 주민이 공동 수도에서 빨래를 하고 있다. 뒤로 보이는 양철집 100채당 한개씩 이렇게 공동 수도가 설치되어 있다.
ⓒ 이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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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졸업은 '절반', 대입시험응시는 '28%'

저는 아직 학교를 가려면 한참이나 남았는데, 엄마의 가장 큰 소원은 제가 고등학교까지 무사히 졸업하는 거래요. 한국과 마찬가지로 남아공도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인데요 남아공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사람은 2006년 기준으로 전체의 49%뿐이래요. 저희 마을에서 학교까지는 걸어서 한 시간 정도 걸리는데요. 이웃집 형이나 누나들은 비가 오거나 어른들이 심부름을 시키거나 하면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 많아요.

그러다 보면 유급을 당해서 몇 년째 같은 학년을 다녀야 하는데, 어차피 공부에 흥미도 없고, 대학에 갈 형편도 되지 않는데 고등학교를 굳이 졸업 하는 것보다는 일찌감치 일자리를 찾는 편이 더 낫다고 다들 생각하거든요. 2010년 대학 입학시험인 '매트릭'을 친 사람은 1998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사람들 중 28퍼센트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마을에 공동 수도와 공동 화장실은 약 100가구마다 한 개씩 있어요. 전기는 정부 몰래 전봇대에서 전선을 끌어서 쓰는 집이 많은데요. 이 곳으로 이주한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저희 가족은 마을 공동체에 아직까지 정식으로 편입 되지 못해 이웃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중이에요. 할머니는 전기가 들어온다 한들 TV 살 돈이 없다고 허허 웃기만 해요.

할머니는 술을 좋아해요. 쌀 살 돈으로 엄마 몰래 맥주를 사 마시다가 매번 들키구요. 그럴 때마다 교회의 한국인 선교사님께 혼이 나세요. '술을 마시면 딸과 손자에 대한 걱정을 잠시 잊을 수 있다'라는데요. 오늘도 선교사님 몰래 맥주를 사 마시고는 불콰해진 할머니는 '인종차별정책이 끝난 지 20년이 지났지만 가난하기 때문에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던 사람들에 대한 기회의 차별은 여전하다'는데 저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요.

이번 월드컵 때문에 우리 가족이 본 이득이 무언지, 엄마의 소원대로 과연 제가 학교를 끝까지 다닐 수 있을지 없을지, 저는 알 수 없어요.

덧붙이는 글 | 지난해 말 어학연수차 남아공으로 향한 이중현 기자는 현재 케이프타운에 머물고 있습니다.



태그:#남아공, #월드컵, #칼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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