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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똑…

"중현학생∼ 중현학생∼ 일어나서 밥 먹어!"

 3년째 살고 있는 하숙집의 밥상
 3년째 살고 있는 하숙집의 밥상
ⓒ 이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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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숙집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잠결에 얼핏 잘 못 듣더라도 "준혁 학생 밥 먹어요" 하는 '지붕킥' 신세경의 목소리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부스스한 모양새로 자리에서 일어나 아래층의 주방으로 내려가면 흑미밥에 미역국과 달걀프라이까지 따끈한 아침상이 기분 좋게 차려져 있다. 잠에서 깨자마자 준비된 식사를 먹을 수 있다는 건 정말이지 근사한 일이다.

물론, 신세경 같은 이가 날 매일 같이 깨워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하지만 매일 아침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뜻한 밥과 국으로 배를 채우고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집 떠나와 살아가는 대학생에겐 더없는 기쁨이다.

누가 뭐래도 난 하숙 예찬론자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학교와 접해 있는 하숙집의 하숙비는 한 달 45만원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학교와 접해 있는 하숙집의 하숙비는 한 달 45만원
ⓒ 이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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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학교 앞에 있는 하숙집에서 생활한다. 좁지도, 넓지도 않은 옥탑방 한 칸이 내가 독차지하고 있는 나만의 공간이다. 비록 화장실은 다섯 명이 두 개를 나눠 쓰지만, 남자들뿐이다 보니 딱히 기다려야 할 일은 생기지 않는다.

우리 하숙집에선 매일 아침과 저녁이 제공되는데, 주인아주머니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다 보니 아주머니가 식사할 때 고개를 내밀면 점심도 곧잘 얻어먹는다. 하숙비는 보증금 없이 한 달에 45만 원. 전기나 수도요금, 가스요금 같은 각종 공과금은 내지 않는다. 인터넷만 따로 신청해서 쓰고 있다.

과거에는 집안에 여유가 있는 학생들이나 하숙을 할 수 있었고, 주머니 사정이 빠듯한 유학생들이 자취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은 하숙비가 근처의 원룸 비용과 비교해서 별로 차이가 나지도 않거니와 자취를 하면 식비가 빠지기 때문에 하숙이 오히려 더 경제적이다. 물론 월 45만원의 하숙집 월세가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거다. (그런데 요즘엔 물가가 오르면서 개별 욕실을 갖춘 월 60∼80만 원짜리 호화 하숙집도 생기는 모양이다.)

학교 앞에서 하숙집을 하게 된 지도 20년이 훌쩍 넘은 우리 하숙집 아주머니께 하숙집을 운영하시는 이유를 물었다. 아주머니는 (한사코 사진 찍기를 거부하시면서) "학생들이 다 자식 같으니 하는 거지, 돈 벌라고 하간?"이라며 웃으신다.

이런 하숙집 아주머니가 계시기에, 첨단을 달리는 21세기에도 나는 하숙을 고집한다. 이런 날 친구들이 "쌍팔 년도스런 인간이 너 말고 몇이나 되냐?"고 핀잔을 준다. 하지만 친구들의 핀잔도 우리 하숙집 아주머니 같은 분을 만나면 충분히 감수할 만하다.

그래서 나는 대학생 최고의 주거 문화가 바로 '하숙'이라고 꼽는다.

자취 해봤더니... 라면·배달음식에 푹푹∼ 난 치한 아니야!

 인근 원룸에서 홀로 식사중이라는 후배의 방을 급습하여 찍은 저녁식사. 혼자사는 이의 식단은 이 정도가 보통이다.
 인근 원룸에서 홀로 식사중이라는 후배의 방을 급습하여 찍은 저녁식사. 혼자사는 이의 식단은 이 정도가 보통이다.
ⓒ 이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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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금처럼 하숙하지 않았다면 다른 친구들처럼 원룸이라는 곳에서 자취했었을 터. 혼자 살면서 식사를 잘 챙겨 먹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라면과 배달음식에 푹푹 절어 사는 다른 친구들을 볼 때마다 새삼 하숙을 택한 것이 정말 환상적인 선택이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리고 난 자취를 했던 것을 후회하게 했던 사건(?)을 겪기도 했다.

제대 직후 반지하방에서 자취를 했을 때였다. 자취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어두컴컴한 복도에서 처음 마주친 옆방 여자 분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다(내 행동이 순진한 건지, 바보 같은 짓이었는지 생각할 틈 없이 당시엔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난 속으로 '같은 집 바로 옆집에 세 들어 사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인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얼핏 봤을 때, 그 여자 분은 눈에 띄게 화려한 미인은 아니었으나 참하고 얌전한 인상이었다. 탤런트 한효주랑 조금 닮은 것 같기도 했는데, 솔직히 마주칠 때 살짝 가슴도 설렜다.

헌데, 이 처자는 인사를 건넨 나에게 대꾸는커녕 "오빠!! 오늘 저녁 뭐 먹을 거야!!" 하고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지르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쾅! 하고 닫히는 문소리와 함께 분명히 '옆방에는 여자 혼자 산다'는 주인집 아저씨 이야기가 내 머릿속에서 겹쳐졌다. 그리고 그 위를 덮어버리는 생각들이 있었으니…,  '내 생김새가 문제일까?' '이 사회가 문제일까?' '그 처자가 문제일까?' 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이 순간 나 자신을 심각하게 했다. 

기실 반지하 월세 이웃이라는 게 얼굴 마주칠 일이 별로 없어 놓으니, 아무리 이웃이라지만 낯선 남자에게 경계심을 품는 것도 당연하다.

시대가 변한다지만... 내게 '하숙은 OO이다'

 학교 기숙사 내 세탁실 모습이다. 세탁과 건조비용은 각각 1천 원씩이라고 한다. 물론, 하숙집에 이런 최첨단 드럼세탁기는 없다. 간혹 하숙집 아주머니께서 직접 빨래를 해 주시긴 한다.
 학교 기숙사 내 세탁실 모습이다. 세탁과 건조비용은 각각 1천 원씩이라고 한다. 물론, 하숙집에 이런 최첨단 드럼세탁기는 없다. 간혹 하숙집 아주머니께서 직접 빨래를 해 주시긴 한다.
ⓒ 이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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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숙은 어떨까? 하숙생들의 관계 전반을 아우르는 코드는 '친함'을 넘어선 '공유'다. 시대가 변모하면서 대학생들 또한 점차 개인적인 생활을 선호하고는 있다지만 우리 하숙집에는 원룸이나 기숙사에서는 보기 어려운 매력적인 쌍팔 년도식 공동체적 요소를 여럿 찾을 수 있다. 시커먼 남자 놈끼리기는 하지만, 아침저녁으로 함께 식사도 하고 화장실도 함께 쓰다 보니 친해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네 것 내 것이라는 구분이 모호해진다.

치약과 휴지, 비누와 샴푸 같은 소모성 생필품은 다 떨어질 때마다 막내가 돈을 추렴해 한꺼번에 사 온다. 밤늦게 콜라나 주스가 마시고 싶어지면 그냥 거실에 있는 공용 냉장고에 들어 있는 것들을 입 맛대로 골라 마실 수 있다. 다만 내가 사 놓은 음료수가 그만큼 없어지는 것도 감수하면 된다. 최소한 마신 만큼은 눈치껏 채워 넣는 것이 공동체생활의 덕목이고 불문율이다.

 족발을 함께 먹은 사람과는 친구가 될 수 있다. 족발을 함께 먹지 않은 사람과는 친구가 될 수 없다.
 족발을 함께 먹은 사람과는 친구가 될 수 있다. 족발을 함께 먹지 않은 사람과는 친구가 될 수 없다.
ⓒ 이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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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숙집 동거인들과의 공유하기 때문에 가장 기분 좋은 것은 뭐니뭐니해도 '야식 타임'이다. 야식의 꽃, 족발은 사실 혼자서 먹기에는 가격도 만만치 않고, 양도 부담스럽다. 야식에는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배둘레햄'을 같이 짊어질 동지가 반드시 필요하며, 동거인들이야말로 이를 함께 할 최적의 희생양이라 하겠다. 족발을 함께 먹은 사람과는 친구가 될 수 있다.

건설적인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 몇 해 전 여름 방학 때 너 나 할 것 없이 정오까지 늘어지게 자면서 생활이 나태해졌을 때가 그렇다. 최소한 늦잠이라도 자지 말자는 취지로 한 달 동안 평일 오전 8시부터 오전 9시 사이에 아침밥을 먹은 횟수가 가장 적은 사람, 다시 말해 가장 늦잠을 많이 잔 사람이 족발을 쏘는 내기를 했다.

결과는 무시무시했다. 네 명의 참가자가 7월 한 달 동안 평일에는 단 한 번도 아침 식사를 거른 적이 없었다. 덕분에 방학 생활도 비교적 성실하게 꾸릴 수 있게 되었다. 막내 녀석은 목표로 하던 토익 700점을 넘겨 카투사에 지원할 수 있었고(하지만 추첨에서 떨어졌다), 나는 계절학기에 아침수업에 개근할 수 있었다.

족발을 함께 먹지 않은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없다!

 회선 하나를 3명에게 공유하고 있는 무선인터넷 공유기. 한 달에 1만 원씩 받는 인터넷 요금을 걷는 날은 꼼짝 없이 족발을 사야만 하는 날이다.
 회선 하나를 3명에게 공유하고 있는 무선인터넷 공유기. 한 달에 1만 원씩 받는 인터넷 요금을 걷는 날은 꼼짝 없이 족발을 사야만 하는 날이다.
ⓒ 이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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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도 끝도 없는 '공산당적 공유'를 추구하는 우리 동거인들은 인터넷 회선도 공유한다. 1년간의 외국 생활을 마치고 하숙집으로 복귀하고 나서 며칠 뒤, 3년짜리 약정 인터넷을 설치 한 날이었다. 어디선가 무선 공유기를 구해 온 녀석은 "그동안 인터넷 없이 버티길 잘했다"며 낄낄댄다. 내가 내는 월 인터넷 요금이 대략 2만5천 원인데 이걸 세 명에게 무선으로 공유해 주는 대가로 한 달에 각각 1만 원씩 받기로 했다. 매월 오천 원이 남는다. 인터넷 요금 걷는 날은 울며 겨자 먹기로 족발을 사야만 한다.

이쯤 되면 '남녀가 함께 생활하는 하숙집에서는 서로간의 풋풋한 감정을 키우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냐?'는 <남자 셋 여자 셋>스러운 망상이 생길 법도 하다. 남녀 사이의 일에 정답이라는 게 없으니, 아니라고는 말은 못하겠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건 확실히 별로다.

TV와 현실은 다르다. 한밤중에 팬티만 덜렁덜렁 걸치고 화장실도 가 줘야 하고, 아침에는 퉁퉁 부은 얼굴과 떡 진 머리를 하고 밥도 먹어줘야 하니, 제아무리 피 끓는 청춘이라지만 로맨스가 피어나기에 적절한 환경이라 볼 수 없다.

나 또한 들뜬 마음에 남녀 공용 하숙집에 들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화장실에 가기 위해 청바지를 주워 입어야만 하는 기가 막힌 환경에 질겁하여 결국 1학기 만에 짐을 싼 경험이 있다. 새침하기만 했던 여자 동거인들과는 밤에 족발 한 번 같이 먹은 적이 없다. 족발을 함께 먹지 않은 사람과는 친구가 될 수 없다.

하숙 동거인들에게 당당히 선포하다

요즈음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안부 인사로 "감기 조심하라"는 말을 나누는 이 계절이다. 그런데!!! 절대 감기에 걸리지 말아야 할 사람, 하숙집 아주머니께서 몸살감기에 걸려 드러누우셨다.

"아무리 아파도 학생들 밥은 해 주고 아파야지. 나는 아플 수도 없는 사람이여."

하숙집 아주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힘겹게 시장에 나서려고 하신다.

순간, 이 한 마디에 마음이 뭉클했다. 이제는 우리 학생들이 보살펴 드릴 차례가 아닌가! 밥솥에 남아 있던 딱 한 공기 분량 밥으로 미음을 끓여서 아주머니께 드리면서 "오늘은 저녁 준비하실 필요가 절대로 없다"고 두 번 세 번 당부했다. 그리고는 동거인들에게 당당히 선포했다.

"야! 아주머니 아프시다는데…,  오늘 저녁은 그냥 우리끼리 족발 시켜먹자!!!"

스마트폰을 위시한 각종 소셜미디어의 테크놀로지가 찬란한 21세기. 쌍팔 년도 하숙집은 없어지지도 않고, 족발은 질리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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