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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으로 5월 20일(7월1일)은 84세이신 어머님과 우리 집안 8대 종손인 형의 생신이 겹치는 날이다. 그러니까 어머님이 생신날 큰 아들을 낳으신 셈이다. 그런데 올해의 생신은 더 의미가 있는 날이다. 종손이 회갑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머님과 4남 2녀의 큰형인 두 분의 생신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꽤나 많은 고민을 하였다.

여러 생각을 하다 며느리와 딸들이 결정한 것은 온 가족 제주 여행이다. 여기서도 남자보다는 여자의 입김이 더센 것 같다. 어머님 아래로 3대에 걸친 손자 손녀까지 세어보니 총 28명이다. 이중 여행이 불가능한 사람은 현역 군인, 교환교수, 국내 항공사 기장으로 근무하는 손자 등이었고 그들을 제외한 우리 6남매 가족  22명이 가능했다. 날짜는 6월 25~ 27일까지로 잡았다.

업무상 22명 모두가 같은 시간에 출발은 어려울 것 같아 1진 17명은 6월 25일 아침에, 그리고 2진 5명은 오후에 김포공항을 출발하기로 했다. 단체가 움직이는 것은 역시 힘드나 보다. 아들이 K항공사 기장인 누나가 신분증을 가지고 나오지 않아 한바탕 소동을 피웠고, 사진을 찍겠다고 단단히 벼르던 나는 막상 카메라 베터리를 놓고 나오는 바람에 택배아저씨를 통해 007작전 같이 공수를 했으나 모델이 맞지 않아 결국은 사용을 못하는 비극(?)도 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제주지방에 3일간 호우 특보가 내렸다. 하지만 우리의 계획은 변경할 수가 없었고, 예보대로 제주 공항에 도착하니 비가 내리고 있다. 참으로 복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제주도에를 처음 와본 가족도 있고, 비행기를 처음 타본 조카들도 있고, 나 역시 84년에 신혼여행 때 와보고 처음이니, 그 기대를 깨버릴 수가 없어 모든 걸 계획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집의 본관이 제주 양씨인 관계로...제주 양씨, 고씨. 부씨, 삼성의 시조이신 양을나. 고을나. 부을나 선조의 탄생 설화발상지인 삼성혈을 제일 먼저 둘러 보았다.
▲ 삼성혈 우리집의 본관이 제주 양씨인 관계로...제주 양씨, 고씨. 부씨, 삼성의 시조이신 양을나. 고을나. 부을나 선조의 탄생 설화발상지인 삼성혈을 제일 먼저 둘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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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안은 제주 양씨이다. 그래서 첫 번째 방문지로 우리의 조상이신 양을나 선조의 탄생설화가 있는 삼성혈을 방문하여 제주 양씨의 탄생과 관련한 이야기를 어린 조카들에게 들려줬다. 그러나 별로 신통해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잘 가꾸어진 식물원인 일출랜드 모습니다. 제주가 다른 곳에 비해 유난히도 식물원이 많은 것은 비가 자주 와서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 일출랜드 잘 가꾸어진 식물원인 일출랜드 모습니다. 제주가 다른 곳에 비해 유난히도 식물원이 많은 것은 비가 자주 와서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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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는 드라마에서 이병헌과 송혜교가 어쩌고 저쩌고 해서 더 유명해 졌다는 이곳의 경치가 너무 좋았다. 하지만 강한 비바람으로 걸어보지를 못한 아쉬움이 크다.
▲ 섭지코지 어는 드라마에서 이병헌과 송혜교가 어쩌고 저쩌고 해서 더 유명해 졌다는 이곳의 경치가 너무 좋았다. 하지만 강한 비바람으로 걸어보지를 못한 아쉬움이 크다.
ⓒ 양동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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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1회용 비옷을 구입해 입고 각종 분재 등이 잘 가꾸어지 일출랜드와 용암동굴인 미천굴을 둘러봤다. 이후 어느 드라마에서 이병헌과 송혜교가 사랑을 나눴다는 섭지코지에 도착했다. 비오는 풍경이 정말로 아름답다. 하지만 비가 많이 오고 바람이 강해 언덕을 오르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아쉬움을 간직한 채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짙은 안개비에 뒤덮인 일출봉을 올라 보지 못한 아쉬움이 ...
▲ 성산 일출봉 짙은 안개비에 뒤덮인 일출봉을 올라 보지 못한 아쉬움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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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순천에 계신 숙부님께서 제주로 여행갔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삼성혈하고 성산일출봉, 선녀와 나무꾼, 우도는 꼭 들려 보거라"하는 문자를 보내 오셨다. 그런데 성산 일출봉에 도착하니 역시 폭우에 가까운 비와 강풍으로 버스 안에서 일출봉을 휘감고 있는 안개 구경만 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50년대 부터 70년대를 배경으로 꾸며놓은 일종의 역사 박물관 같은 곳. 
내부의 영화관 광고 판 모습입니다.
▲ 선녀와 나뭇꾼에서 50년대 부터 70년대를 배경으로 꾸며놓은 일종의 역사 박물관 같은 곳. 내부의 영화관 광고 판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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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선녀와 나무꾼이라는 50~70년대 우리 삶의 현장을 재현해 놓은 일종의 역사박물관이라 하는 곳에 갔다. 내가 어릴 때 우리 주변에 늘상 마주치던 물건이나 시장, 영화관 등 거리 모습들이 얼마나 정겨운지 연로하신 어머님은 마냥 감탄을 하신다. 겨우 50년 정도 지난 물건들이건만, 우리 주변에서는 거의 구경하기가 어렵고, 이런 박물관에나 와야 볼 수 있음에 아쉬웠다.

그 다음 찾아간 제주 자연사 박물관은 섬나라 제주지역의 변화무쌍한 기후와 척박한 토양에서 우리 선조들이 어떻게 환경에 적응해 갔는지를 보여준다.

식사후 숙소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우리가족
▲ 우리 가족 식사후 숙소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우리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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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첫날 일정을 마치고 2진으로 도착하는 가족들을 공항에서 픽업해 골프장에 부속되어 있는 골프텔이라는 숙소에 도착했다. 저녁임에도 비는 줄기차게 내리고 있다. 어둠속에서 창문을 열자 묵직한 풀 내음이 밀려 들어오는 것이 상쾌하다.

큰형 한사람을 제외하고, 모두가 처음으로 이용해 보는 골프텔의 바깥 모습이 너무 아름답기만 하다.
▲ 골프텔 바깥 풍경 큰형 한사람을 제외하고, 모두가 처음으로 이용해 보는 골프텔의 바깥 모습이 너무 아름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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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 정원에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했다. 하지만 그 다음날 아침에도 비는 계속 왔다. 오늘부터는 인원이 22명으로 늘었고 복장도  통일했다. 막내 제수씨의 아이디어로 어머님과 누나식구는 분홍색 줄무늬, 첫째와 둘째 아들 가족은 검정색 줄무늬, 셋째는 청색 줄무늬를 입었다. 그랬더니 만나는 사람마다 "무슨 팀이냐 ?"고 묻는다. "3 대 한 가족"이라 했더니 모두가 부러워하는 눈치였고, 어떤 나이 지긋하신  분은 "참 보기 좋다"고 하신다.

줄무늬 T셔츠로 복장을 통일한 우리 가족의 별명을 "줄무늬 가족" 이라고 ...
▲ 올레길의 줄무늬 가족들 줄무늬 T셔츠로 복장을 통일한 우리 가족의 별명을 "줄무늬 가족" 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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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 가족 팀이 가는 곳마다 별명이 하나씩 생겨났다. 잠수함 관광에서는 줄돔가족으로, 동물원에서는 얼룩말 가족으로, 올레길에서는 줄무늬 가족으로 말이다. 그것도 듣기 좋다.

미역에 성게를 넣었다고 하는 성게해장국으로 2일째 아침을 먹고 요즘 제주의 랜드마크가 된 한 올레길로 향했다. 버스기사가 올레길 8번구간인 제주 여고에서 외돌개 구간을 권하며 제주 여고 근처에 내려 준다. 무릎연골 수술을 하신 어머님께 "차에서 기다리시겠느냐?"고 여쭈었더니 같이 가시겠다고 하신다. 내심 걱정은 되었지만 자식 손자들 모두 모여 여행을 하니 기분이 참 좋으신 모양이구나 싶어서 길을 나섰다.

우리 어머님 무릎이 아프신데도 손자, 손녀들과 함께 이렇게 올레길을 걸으셨답니다.
▲ 손자. 손녀들과 함께.. 우리 어머님 무릎이 아프신데도 손자, 손녀들과 함께 이렇게 올레길을 걸으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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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 외돌개 근처의 해변을 주름 잡는 우리가족들을 "얼룩말 가족" 이라고....
▲ 외돌개 주변의 얼룩말 가족들... 올레길 외돌개 근처의 해변을 주름 잡는 우리가족들을 "얼룩말 가족"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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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km구간의 올레길을 걷는 동안 우리 줄무늬 가족복은 유감없이 진가를 발휘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궁금해 하며 부러워하는 눈치다. 걷는 동안 우측통행 표시가 되 있지 않아 사람들이 부딪칠 뻔한 아쉬움이 있기는 했지만 주변 경관이 너무 좋았다.

문섬 부근에서 잠수함을 타고 해저에 들어가 고기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있는 우리 가족..
▲ 잠수함 속에서 해저 관광. 문섬 부근에서 잠수함을 타고 해저에 들어가 고기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있는 우리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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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을 타고 해저 50m까지 내려가 산호초와 고기들 노는 모습을 관광하는 잠수함관광은 좀 비싼 것이 흠이기는 했지만 아주 좋은 경험이 됐다. 또 수많은 돌기둥으로 유명한 주상절리를 구경한 뒤 버스 기사가 소개한 감귤농장을 찾았는데, 알고보니 산삼배양 농장이어서 씁쓸했다.

다리위에서 내려다본 숲의 색깔이 너무나 아름답다.
▲ 천제연 폭포 다리위에서 내려다본 숲의 색깔이 너무나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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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위에서 내려다 본 천제연폭포 주변 숲은 색깔이 참 좋았다. 하지만 폭포수는 많은 비로 흑탕물이 되어서 조금은 실망 하였고, 한때 삼풍백화점 사주의 소유였던 여미지 식물원의 희귀하고 아름다운 진귀한 식물들은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삼풍 사건으로 더 잘알려진 여미지 식물원에서..
▲ 여미지 식물원에서.. 삼풍 사건으로 더 잘알려진 여미지 식물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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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월드컵 16강전이 있는 날이었다. 바다가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의 횟집에서 회갑 맞은 큰 아들이 싱싱한 참돔으로 저녁을 한턱 거하게 쏘았다. 모두가 살살 녹는 회를 실컷 먹고 숙소에 돌아와 큰 아들회갑과 어머님 생신을 위해 준비한 케이크를 자르고 풍선도 불어서 띄우는 등 조촐한 잔치를 진행했다. 한가족 22명이 TV앞에 둘러 앉아 한국과 우루과이의 축구 경기를 목터져라 응원 했건만 아쉽게 패하고 말았다.

형제끼리 운동을 한번 하자는 형의 제안에 골프준비를 하였지만 비 때문에 도저히 불가능 했으나 3일째인 일요일 새벽에는 빗줄기가 좀 약해져 골프를 쳤다. 하지만 돌아와서는 다른 가족들 눈치를 많이 살펴야 했다. 형제들이 골프를 하는 동안 나머지 가족들은 도깨비 도로와 생각하는 정원을 다녀와 자랑이 대단하다. 아마도 같이 가지 않았다고 약 올리는 것 같기도 하지만 대열을 이탈한 죄(?) 때문에 할말이 없다.

여행을 마친 가족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고, 어린조카들까지 재밌고 보람된 여행이었다고 문자도 보내고 가족카페에 사진도 올렸다. 벌써 내년에 또 가자는 가족도 있다.

2년 전에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신 아버님은 우리가 어렸을 때 사촌간에 싸움이라도 할라 치면 "우리 집안에 5대 만에 사촌이 나왔는 데 사이좋게 지내야지 싸우면 돼겠느냐?" 하시며 야단을 치셨고, 늘 "형제간에 우애있게 지내야 한다"는 말을 우리에게 주지 시키셨고 몸소 실천 하셨다. 그래서인지 우리 가족 모두가 "아버님이 계셔서 여행을 같이 했으면 정말로 좋아 하셨을 것이다"고 입을 모았다. 정말로 의미있고 보람찬 가족 여행이었다.

이번 여행으로 우리 6남매 그리고 조카들 4촌간에 우애가 더욱 돈독해진 것 같아 다른 가족에게도 권해 보고 싶다.


태그:#한정공 , #솔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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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가는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의 역할에 공감하는 바 있어 오랜 공직 생활 동안의 경험으로 고착화 된 생각에서 탈피한 시민의 시각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그려 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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